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123
전혀 다른 두 분야의 전문가들이 이렇게 섞여서 하나의 목표를 위해 작업을 진행한 것은, 흑마법의 장로로 살아온 그에게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조금 이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서 만났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이제와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었다.
“저 친구들은 결국 아무것도 모른 채 이곳을 떠나는군요.”
“처음부터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크레이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깊게 알고 있어봤자 죄악으로 밖에 남지 않는 지식이야.”
“그 죄악을 신으로 섬기고 있는 제 앞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지 않습니까?”
“……광신도들이란 이해할 수 없군. 스스로의 교리를 그렇게 말할 수 있기에 광신이라고 할 수 있는 건가?”
재앙이라는 이해불가한 존재를 종교로 삼아 섬기면서도 정작 스스로를 관조하는 남자의 태도는 기이하기 짝이없다.
크레이그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남자의 목에 걸린 작은 펜던트로 향했다.
펜던트 안에는 상어머리를 한 거대한 용의 모습이 오밀조밀하게 음각되어 있었다.
“글쎄요.”
남자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같은 불나방을 바라보는 재미 때문에라도, 잠시 믿음을 내려놓는 외도를 그만둘 수 없는 것 아닐까요.”
“………”
크레이그는 그 말을 부정할 수 없었기에, 대꾸하는 대신 입을 꾹 다물었다.
“어쨌든 좋습니다. 이번 실험을 통해 얻은 데이터와, 인공영역의 전개방식에 대한 데이터를 대가로….. 저 친구들의 안전은 제가 직접 보장하죠.”
그래. 이거면 됐다.
남은 공정은 이제 그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들 뿐.
계획이 크게 어그러진 지금에 와서 쓸데없는 희생을 늘릴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 모든 일은 처음부터 크레이그의 고집으로 시작된 것이었으니.
“시간이 됐군요. 이벨린 마르시아가 오기 전에는 출발해야겠죠. 그 괴물과 얽혔다가는 발칸쪽의 포교에도 지장이 생길테니.”
시정부의 사냥개들 중에서도 가장 날카로운 이빨을 가졌다 평가받는 궁사.
그녀가 이번 일에 직접 모습을 드러낸 순간부터, 계획의 성공여부는 완전히 불투명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수였어. 그녀만한 초인이 이 일에 끼어들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역시 비자금이 문제였던 건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남의 일인양 유유자적하게 말하는 남자.
크레이그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하려던 찰나.
[회포는 적당히 풀고 빨리 끝내지?]공동 전체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팔시온의 수장, 자운 오디스였다.
[본진에 남겨놓은 애들만으로는 오래 못버텨. 시간을 끌어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너도 어지간하군.”
자운 오디스는 동료를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본인이 동료라고 여기는 존재는 극히 소수에게 집중되어 있다.
그에게 있어 팔시온의 다른 조직원들은 돈을 위해서 아무렇게나 희생시켜도 되는 장기말에 불과할 뿐.
….아니, 그런 그에게 거래를 제시하고 힘을 빌린 크레이그가 할 말은 아니었나.
“그럼 저는 이쯤에서 물러나도록 하죠.”
남자가 안경을 추켜올리는 것과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두드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공동에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끼기기기기기긱….!!
마치 강철이 비틀리는 듯한 기이한 소리와 함께 공동의 한쪽 공간이 활짝 열리고, 그 안쪽에서 공동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 현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은 크레이그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전이술식…. 그것도 이렇게 아무런 전조 없이 사용하다니.’
수십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을 단체로 이동시킬 수 있는 공간계열의 술식.
일반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출발지와 도착지에 모두 정교한 공정을 거친 뒤 막대한 영창과 소모비용을 통해 간신히 가능할 짓을,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고 있었다.
아무런 마력이나 동력도 없는 남자 본인의 힘이라기보다는, 무언가의 힘을 빌렸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터.
그리고 그 무언가가 그들이 믿고 있는 광신의 힘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자, 장로님….!”
“꼭 돌아오셔야 합니다!!”
균열이 생긴 공간으로 들어가기 전에, 간절한 표정으로 그를 부르는 흑마법사들을 보며 크레이그가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걱정하지 말거라.”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더 이상 거짓말도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
팔시온의 본진이 무너져내리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일전에 트레이드 센터의 암호키를 빼돌리기 위해 찾아왔던 때 짐작하기는 했지만, 이 테러리스트들 중 마력을 다루는 이들의 숫자는 적다.
방금 레녹이 쓰러뜨리고 지나쳐온 검사처럼 마력을 잘 다루면서도 투지에 불타오르는 이는 더더욱 적었다.
처음부터 도시 밖을 나도는 부랑자와 떠돌이를 모아 만들어진 조직이다.
개인의 힘이 집단의 그것을 능가할 수 있는 이 세계에서는 오히려 이렇게 덩치가 애매한 오합지졸보다 극단적으로 정예화된 소수의 팀플레이가 더 잘 먹히는 법.
그건 이렇게 마력을 다룰줄 아는 프리랜서들만을 모아서 성공적으로 테러조직의 본진에 진입한 시점에서 이미 증명된 일이나 다름없었다.
복도가 갈라졌다 길게 모이는 구역.
레녹은 저편에서 빠르게 다가오는 십수개의 인기척을 느끼고 걸음을 멈춰세웠다.
다다다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곧바로 모퉁이를 돈 일련의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각기 사용하는 무장과 총기류를 들고 사방을 경계하는 프리랜서들.
그 사이에 첸의 얼굴은 보이지만, 히나의 모습은 없다. 아직까지 복도를 헤매고 있는 것일까.
“바, 반이군….!!”
“역시 살아있었어!”
레녹의 얼굴을 알아보고 표정이 환하게 변하는 프리랜서들.
빠르게 머릿수를 체크해보자, 그 짧은 사이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낙오되었다는 사실을 짐작가능케했다.
아무래도 레녹이 만났던 것처럼, 약물로 도핑을 한 검사와 같은 이들이 각 복도를 지키고 있었던 것인가.
첸이 어두운 안색으로 말했다.
“거의 자살에 가까운 돌격으로 이쪽의 살을 깎아먹는 놈들이 많았어. 전장이 이렇다 보니 피한 사람이 많지 않아.”
“……..”
저항이 생각 이상으로 격렬했던 모양이다.
모두들 표정이 좋지는 않았지만, 의욕을 잃은 사람은 없었다.
이만한 작전을 진행하면서 전사자가 없을수는 없다는 사실을 대충은 이해하고 있었다.
애써 표정을 추스른 첸이 다시 일행의 의욕을 돋구려는 듯 목청을 돋궜다.
“그대로 여러개의 복도가 만나서 이어진 걸 보면, 아마 이곳은 팔시온의 본진 안쪽 구조에서도 중간 경유지에 해당하는 구역이겠지. 여기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목표를 찾을 수 있을거야.”
첸의 말에 다른 프리랜서들도 다시 무장을 고쳐잡았다.
“….그래. 자운 그놈과 크레이그의 얼굴을 확인하기만 하면 돼. 체이샤가 그 화력으로 이쪽을 지원해줄 수만 있다면…..”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아.”
뒤에서 들려온 말과 함께, 눈부신 광채가 번뜩였다.
퍼억ㅡ!!
첸의 뒤에 서 있던 프리랜서 둘의 머리통이 반응도 하지 못하고 수박처럼 박살났다.
뇌수를 바닥에 쏟아내며 쓰러진 시체를 군화발로 짓밟고 모습을 드러낸 것은, 사이한 눈매를 가진 청년.
자운 오디스가 이곳에 서 있었다.
그의 모습을 확인한 프리랜서들이 기겁하면서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자, 자운 오디스!!”
“테, 테러범이 직접 여기에 왔다!!”
온갖 무기를 비롯한 총구가 그를 향해 쇄도했지만, 그는 그걸 보면서도 씩 웃기만 할 뿐.
달리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들을 응시했다.
“계획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벌레같은 놈들.”
싱글싱글 웃으면서 그가 쌍욕을 내뱉었다.
“너희들 때문에 이번 일에서 손해본 돈이 얼마나 되는지 알기나 해?”
“…..미쳤군. 지금 도시를 상대로 테러를 저질러 놓고 한다는 말이 그거냐?”
첸의 말은 날카로웠지만 자운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고 코웃음을 쳤다.
“돈만 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하는 깡패새끼들이 말은 잘하는군.”
“뭐?”
“까놓고 말해서 네놈들이랑 우리가 다를게 뭐냐? 단지 사업장을 발칸 안으로 잡았는지, 밖으로 잡았는지 그 차이일 뿐이야. 중요한건 돈이지. 돈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는거. 그게 우리들의 본질이라고.”
“…….아니.”
첸이 허리춤에서 천천히 두 자루의 곡도를 꺼내면서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우리는 인신매매나 장기적출사업따위를 하지는 않아.”
“그 말, 그쪽 갱단이나 스캐빈저 놈들한테도 똑같이 들려줄 수 있나?”
“그런 범죄자 새끼들이랑 우린….!!”
옆에 서 있던 프리랜서들 중 하나가 발끈하면서 앞으로 나서며 쏘아붙였지만, 의외로 첸은 그의 어깨를 강하게 잡고 뒤로 밀었다.
“거기까지는 내 알 바 아니지. 논점이 달라. 시간을 끌고 싶은가보지?”
첸이 단번에 자운의 의도를 파악한 것을 깨달은 레녹도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단지 화풀이라기에는 과장과 억지가 섞여서 절로 그 말에 반박하게 만드는 논조다.
실제로 발칸에서 자운과 비슷한 수위의 범죄를 저지르는 쓰레기들은 40번대 구역에 얼마든지 있겠지만, 그들과 지금 여기 모인 프리랜서들은 엄연히 다른 존재.
하지만 이 말에 굳이 반박하면서 시간을 잡아먹는 것이 자운 오디스의 의도라는 것을 첸은 빠르게 눈치챈 것이다.
“………”
“네 뜻대로 놀아날 수는 없지…!!”
파앗!
자운이 입을 다문 것을 깨달은 첸이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지금 그를 상대하는데 어떤 말도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몸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자리에서 자운 오디스와 말싸움에서 승리하는것도, 그를 죽이는 것도 아니다.
바로 그가 은근 슬쩍 가로막고 있는 저 널찍한 복도 아래쪽을 지나, 크레이그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가자!!”
“저 테러범을 죽여!!”
첸의 난데없는 돌진으로 다른 프리랜서들이 순식간에 정신을 차리고 자운이 아니라, 그의 뒤쪽 복도를 향해 달리기 시작하고.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자운의 입매도 기이하게 비틀렸다.
“나, 참. 이래서 머리좋은 새끼들이랑은 상종하기 싫다니까.”
따악!!
자운이 희고 길쭉한 손가락을 튕기는 것과 동시에 소매에서 번쩍이는 무언가가 튀어나온다.
허공에서도 찬란한 광채를 흩뿌리는 그 물건이, 정교하게 세공된 보석이라는 것을 깨달은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리면서 소리쳤다.
“피해!!”
번쩍ㅡ!!
콰아아아앙!!!
자운의 몸 주위에서 발광한 보석이 폭발하듯이 터져나가고, 그 안에 억눌려있던 마력이 새어나오면서 다채로운 색감의 칼날로 변해 사방을 휘저었다.
촤아악!!
“끄아아악!!”
“파, 팔이!!”
보석을 꺼내는 순간을 놓치지 않은 이들은 어떻게든 피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움직임을 놓친 이들은 가차없이 응징당했다.
사방에 피를 흩날리면서 다친 곳을 부여잡고 주춤주춤 물러나는 프리랜서들.
“뒤로 빼지마!! 죽는다!!”
첸이 온 몸을 비틀면서 고함을 쳤지만, 이미 늦었다.
흉악한 웃음을 지은 자운이 섬광처럼 앞으로 내달리면서 순식간에 두명의 멱살을 휘어잡고 그대로 땅바닥에 내리찍었다.
꽈아앙!!
뒤통수가 깨진 프리랜서 두 명의 눈동자가 그대로 뒤집혔다.
자운이 그대로 목젖을 쥐어뜯자 너덜너덜해진 목구멍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피범벅이 된 양 손을 들어올린 자운이 등 뒤에서 달려드는 칼날을 맨손으로 받아넘겼다.
쌔액!!
감탄이 나올정도로 부드러운 움직임.
보석술식을 사용하는 술사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몸을 완벽하게 통제할 줄 아는 격투가라는 증거였다.
허리춤에서 보석을 하나 꺼내쥔 자운의 왼손이 새파랗게 발광하는 것과 동시에.
콰아아아앙!!
그의 팔을 타고 수십배로 부풀어오른 거대한 주먹이 사방을 휩쓸면서 그대로 프리랜서들을 휘저었다.
“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