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4
흑마력이 모두 빠져나간 그의 얼굴은 20년은 더 늙어버린 것처럼 폭삭 삭아버린 상태였다.
남자의 몸에 남은 흑마력을 모조리 추출한 레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죽여.”
“….예?”
“이제 괜찮을거다.”
용병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지만, 레녹은 신경쓰지 않았다.
방금 레녹은 순수한 마력제어능력만으로 다른 마법사의 마력에 직접 손을 대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할까.’
흑마력을 뽑아내기는 했는데, 이 상태로 오랫동안 잡아두는일은 불가능하다. 마력을 보관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용도로 제조된 특수용기가 필요했다.
레녹은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흑마력을 모두 허공에 날려버렸다. 오래 잡고 있어봤자 계속해서 마력만 소모될 뿐, 큰 이득이 되지 않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옥상 뒤켠으로 가서 새카만 마력덩어리를 허공에 풀어버린다. 흐릿한 안개가 되어 흩어진 마력들이 빠르게 공기중에 녹아 사라졌다.
보관할 수만 있다면 가져가서 흑마법을 파헤쳐볼 기회가 될 수도 있었을텐데, 아쉬운 일이다.
흘러간 일에 대한 미련을 빠르게 털어버리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 정말 대단한데.”
“…..?”
누군가 했더니, 스캐빈저의 남자에게 제압당해서 쓰러져 있던 웨이안이다.
아직까지 의식을 잃은 채 깨어나지 못한 줄 알았는데, 전투지역에서 벗어나 있더니 어느정도 기운을 차린 모양이었다.
그는 상처를 입은것으로 보이는 복부를 감싸쥔채 옥상 벽에 등은 기대고 레녹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천재같은 거라도 되는거야?”
“천재?”
“그래. 멀리서 그쪽이 마력을 움직이는게 보이더군. 태어나서 그런 마력제어능력은 처음 봤어. 내가 사용하는 마력이 얼마나 한심한 수준인지 아주 잘 알겠던데.”
웨이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자조적으로 웃었다.
“……”
레녹은 그의 말을 듣고는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크림갈 용병사무소에는 그 말고도 마력을 다루는 이들이 꽤 있었지만, 레녹이 흑마력을 긁어낸 움직임을 봤다고 말하는건 방금 웨이안이 유일했다.
그가 말한것이 거짓이 아니라면, 이렇게 어느정도 떨어진 거리에서도 레녹이 마력을 움직이는 과정을 정확하게 포착했다는 의미.
그건 웨이안의 마력감응력이 선천적으로 굉장히 예민한 수준이라는 증거였다.
어쩌면 그의 재능은 전위가 아니라 마력을 다루는 직종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름 마법사라고 잘난체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당신만큼 정교하게 마력을 다루는 마법사는 한명도 없었어. 그 움직임을 조금이라도 따라하다보면 나도 여기서 더 강해질 수 있을까?”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허벅지 옆에 널브러진, 완전히 박살난 두개의 톤파를 내려다보았다.
성과
처음 보았을때 시원시원해보였던 인상과는 전혀 다른 복잡한 표정.
무기력하게 적에게 제압당했던 그가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레녹은 대충 짐작할 수 있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많지 않았다.
웨이안의 시선에서야 레녹이 잘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정작 레녹 역시 재능 하나에만 목을 매달고 어떻게든 하루하루 버텨내기에 급급하다.
아무리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또 태연해 보이려고 애를 써도.
여전히 레녹은 이 낯선 도시의 뒷골목을 거니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마법사가 되고 싶은거냐?”
“글쎄. 예전에는 이 용병단에서 일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잘 모르겠어.”
웨이안은 그렇게 말하면서 무언가를 바라는듯한 시선으로 레녹을 쳐다보았지만, 레녹은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이제 막 소년티를 벗은 그가 뭘 원하는지 모를만큼 레녹은 눈치가 없지는 않지만.
그는 다른 누군가를 가르치면서 데리고 다닐만큼 형편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시도때도 없이 그를 괴롭히는 온갖 피로와 두통, 약한 체력과 불면증이 그와 함께하는 이상 레녹에게 여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헛된 희망을 심어주는 것 역시, 쓸데없는 오지랖에 불과할 뿐.
연초 한대를 꺼낸 레녹이 손가락 사이로 불꽃을 튀겨 올리며 대꾸했다.
“드레이 크림갈은 꽤 괜찮은 남자로 보이더군.”
“…….”
“적어도 나같은 놈보다는 훨씬 괜찮은 조언을 해줄 수 있을거다. 스스로 사업 하나를 꾸린다는게 쉬운일은 아니지.”
레녹은 연기를 길게 내뿜으면서 내심 헛웃음을 흘렸다.
공장을 탈출해 이 도시에 온지 고작 석달도 되지 않은 자신이 이런 말을 지껄이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웨이안이 정말로 스스로의 길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 조언은 레녹처럼 어중간한 타인이 아니라, 그가 둘도 없이 믿고 따르는 리더에게 구해야 할 것이다.
“자기 앞가림을 어떻게 해야할지 결심이 선다면 제니에게 한번 가보는것도 좋겠지. 그 여자, 싫다는 일을 억지로 시키는 사람은 아니니까.”
웨이안이 변할 수 있을까. 아니, 변하고 싶어할까?
그가 지금 레녹에게 중얼거렸던 미약한 다짐을 스스로의 미래로 바꿀 수 있을지는 그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주제넘는 말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뒤에서 웨이안이 뭔가를 더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지만, 레녹은 더 이상 듣지 않고 드레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잠시 흑마력을 뿌리러 다녀오는 사이 옥상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끝나 있었다.
용병들의 손에 죽음을 맞이한듯 축 늘어진 남자의 시체와, 바쁘게 발전시설을 비롯한 전선들을 점검하고 있는 용병들.
그리고 전투에서 명을 달리한 채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이들까지.
드레이는 용병들 사이를 바쁘게 움직여가면서 빠르게 주변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 마법사님,”
레녹의 얼굴을 보자마자 드레이는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까는 정말 실례가 많았습니다.”
처음 만났을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상 마지막에는 레녹 혼자서 적을 압도하고 확인사살까지 한 셈이니.
그의 옆에 서 있던 키델도 레녹을 보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 역시 레녹의 입에 연초가 물려있는것을 봤을텐데도 아무런 말도 없었다.
“사상자가 발생한건 유감이야.”
“……어쩔 수 없죠. 이쪽에서 일하다보면 항상 있는 일 아니겠습니까.”
드레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쓴웃음을 지었지만, 본심이 아니라는것은 분명했다.
옆에 서 있는 키델의 눈동자도 살짝 붉어져 있었다.
같은 사무소에서 생사고락을 같이 한 동료들이다. 정을 붙이지 말아야 오래 살아남는 곳이라지만, 그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되는 일이란 말인가.
비탄에 잠겨서 무너져내리지는 않더라도, 울적한 감정을 느끼는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레녹은 말없이 연초 끝자락을 잘근잘근 씹었다. 여기에 대해서 그가 더이상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일은 다 끝난건가?”
레녹의 말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산서버가 무사한 것을 확인했고, 현재 저희쪽에서 고용한 프로그래머들을 불러 백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마 20분 내로 끝날테니, 그 사이 스캐빈저 놈들이 더 뛰쳐나오지만 않으면 끝날 듯 합니다.”
드레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쪽 발로 쓰러진 남자의 시체를 툭툭 건드렸다.
“이 자의 신상을 조회해보니 스캐빈저 51지구 간부직을 맡고 있더군요. 3개지부가 합동해서 이번 일을 모의했다고 하더니, 아마 현장에서 직접 관리감독을 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그렇군. 나도 따로 이놈이 사용한 약물의 마력을 뽑아봤는데 별다른 소득은 없었어.”
“뭐, 흑마법사들이 이런 일에 손을 벌리는게 한두번도 아니니까요. 저희는 그냥 이 시체만 따로 폐기하고 마무리지을 생각입니다.”
틀린말은 아니다.
드레이 크림갈은 단지 용병으로서 보수를 받고 해당 건물을 탈환하고 서버를 지켜달라는 의뢰를 받았을 뿐, 스캐빈저가 어떤 방식으로 흑마법사들과 엮여있는지 조사할 의무는 없었으니까.
레녹 역시 흑마법사들의 유착관계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약물은 이야기가 달랐다.
“잘됐군. 그럼 시체를 폐기하기 전에 따로 혈액을 채취해서 제니쪽으로 보내줄 수 있나?”
“예?”
“마음같아서는 내가 직접 하는게 낫겠지만, 지금은 아무런 도구도 없어서 말이야.”
레녹이 그렇게 말하면서 양 손을 들어올리자 드레이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물론입니다. 마법사님이 원하시면 그렇게 해 드리죠. 그러고보니 아직 제가 입금을 안해드렸군요.”
그가 품안에서 핸드폰을 꺼내서 몇번 조작하고 나자, 레녹의 핸드폰이 같이 울렸다.
레녹의 계좌로 2천만 셀이 입금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제니에게도 따로 수수료를 보냈으니 확인하라고 말 좀 전해주시겠습니까?”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드레이는 그제서야 쓰게 웃더니 다시 용병들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레녹은 옥상 한쪽 구석에 걸터앉아서 건물 밖으로 특별한 이상이 없는지 내려다보았다.
이미 건물 안에 있는 스캐빈저들은 모두 전멸했지만, 혹시나 저쪽에서 추가로 병력을 보낸다면 레녹도 한번 더 마법을 사용해야 할 테니까.
말없이 연초를 태우면서 레녹은 이번 일을 통해 얻은 수확을 머릿속으로 점검했다.
‘성공보수 2천만 셀…… 당분간 생활비 걱정은 안해도 되겠군.’
발리츠 사에서 내걸었던 공장 폭파 보수가 5천만 셀이었던 걸 생각하면, 크림갈 용병 사무소는 이번 일에서 마법사를 고용하기 위해서 굉장히 큰 대가를 지불한 셈이다.
제니의 말로는 급히 마법사를 구하기 위해서 단가를 올린것 같다고 했으니, 아마 평균보다는 좀 더 높은 보수를 받은 셈이겠지.
하지만 레녹이 이번 일에서 얻은 진정한 보수는 그런게 아니었다.
‘사격보조마법의 위력이 생각보다 괜찮아.’
목구멍을 스치는 연기를 천천히 뿜어내면서 레녹이 씩 웃었다.
이번에 총포상에서 구입했던 리볼버. 총기류에 보조마법을 걸고 사용했던 사격콤보의 효과가 상상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WORLD 2.0을 즐길때는 그리 크게 실감나지 않았던 자잘한 보조마법들이 여기서는 레녹의 전투능력에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특히 [장전가속]이나 [조준보정]과 같은 보조마법들은 게임 안에서는 크게 티가 나지 않는 능력이었지만, 현실에서는 전혀 다르다.
레녹이 제대로 인지하고 대비만하고 있다면, 적이 코앞에서 달려들어도 장전과 격발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엄청난 효과를 내고 있다.
물론 레녹의 인지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크로켄같은 괴물에게 정면에서 통할거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마력소모가 큰 마법에 대한 의존성을 덜어낼 수 있다는것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
마력을 아끼면서 보다 효과적으로 위력을 뿜어낼 수 있다면 레녹의 전투지속능력 역시 크게 향상될 테니까.
며칠을 투자해서 얻어낸 것치고는 큰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그것 역시 레녹의 마총사 경험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이 정도라면 좀 더 좋은 총기에 자금을 투자해도 되겠어.’
사격보조마법의 효과는 총기의 품질에 따라서도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처음 총포상에서 총기를 구입할때는 효과를 자신할 수 없어서 가장 무난한 제품만을 골랐지만 이 정도라면 좀 더 괜찮은 총을 구입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레녹의 재능은 사격이 아니라 마법에 치우쳐진만큼 다시 마총사 쪽을 파고 들 생각은 없지만, 만족할만한 마법적 역량을 갖추기 전까지 이러한 사격마법은 큰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것이다.
‘보조계열 고유마법을 찾아서 배울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위력을 늘릴 수 있을텐데…. 지금은 힘들겠지.’
우연히 구할수만 있다면 더할나위없겠지만 당장 레녹이 신경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지금은 일단 건강을 챙기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것만으로도 바쁘다.
레녹이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으로 시간을 때우고 있는 사이, 누군가 뒤에서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마법사님, 이쪽은 정리 다 끝났어.”
어느정도 기운을 차린듯한 웨이안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레녹과 대화를 주고받은 뒤에 다른 용병들을 도와주고 있었던 모양이다.
웨이안은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레녹을 보고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는 않았다.
레녹이 드레이가 서 있는 곳으로 향하자 그가 복잡한 표정으로 남자의 시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체의 목에는 탁한 은빛으로 빛나는 군번줄이 꺼내져 있었다. 몸을 수색하다가 따로 발견한듯 했다.
“바이퍼 연대 출신이더군요.”
드레이가 착잡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전선을 오가다 몇번 마주친 적이 있는 부대였는데, 어쩌다 그쪽 출신 엘리트가 이런 꼴이 됐는지….”
그는 몇번 혀를 차고는 품안에서 손수건을 꺼내 남자의 일그러진 얼굴에 덮어주었다. 같은 군인 출신으로서 나름의 존중을 보내는 행위였다.
“은퇴한 군인들이 많은편인가?”
“숫자가 적지는 않죠. 델린저와의 전쟁이 끝난지도 좀 되지 않았습니까? 남을 사람은 남고, 그러지 못한 사람은 사회로 돌아와야죠.”
드레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이 놈은 그러지 못한 모양이지만.”
같은 은퇴군인 출신이면서도 드레이는 스스로가 제대했다는 것에 대해 큰 감흥은 없어보였다.
“…….”
델린저와의 전쟁이라. 돌아가면 또 찾아봐야 할 키워드가 생겼다.
레녹이 그 단어를 기억해두는 사이 드레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말했다.
“일단 서버의 백업도 끝났고, 발전시설도 정상화를 마쳤습니다. 이제 클라이언트에게 현황을 주지시키고 확인이 끝나면 공식적으로 의뢰가 끝나는 셈이죠.”
드레이는 품안에서 명함 한장을 꺼내서 레녹에게 건넸다.
“이번에 같이 일하면서 마법사님의 업무능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닿을 수 있다면 좋겠군요.”
여기서 명함을 건넨다는 것은 이제 레녹이 할 일은 더이상없고 일찍 퇴근해도 된다는 신호나 다름없다.
레녹은 순순히 그가 건네는 명함을 받고는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다음에 또 기회가 된다면.”
드레이 크림갈은 분명 뛰어난 용병이자 사업가다.
침착한 지휘능력과 몸을 사리지 않는 과감함, 높은 안목과 신중함을 고루 갖춘데다 동료 용병이 몇몇 명을 달리했음에도 큰 동요없이 일을 수습하는 솜씨까지.
이 바닥에서 일하는 이상 언제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것을 인지하고 있는것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작은 사무소로 만족하지 않고 계속해서 사업을 키워나가도 이상하지 않다. 인맥을 터놓고 연락을 이어가는것도 나쁘지 않았다.
기회가 된다면 또 같이 일해볼 수 있겠지. 레녹은 미련없이 등을 돌리고 계단이 나 있는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키델이 조용히 드레이에게 물었다.
“그래도 한번 물어보는게 좋지 않았을까요?”
“뭘?”
“저희 사무소에 들어올 생각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