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248
약먹는 천재마법사 248화
화로(1)
레녹은 그런 지오니스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일행의 리더이자 책임자였던 이벨린 마르시아를 제쳐두고, 정체를 위장한 채 신분을 숨긴 레녹을 가장 먼저 찾아온 이유는 무엇일까.
빙결마법에 대해 언급하며 먼저 대련을 제안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순수히 호승심에 불탔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지오니스가 내보인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직접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원로원과는 달리, 가장 먼저 이 자리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도 분명 있을 터인데…….
생각에 잠긴 사이 실습구역에 몰렸던 인파들이 하나둘씩 해산하기 시작했다.
그를 보좌하기 위해 따라왔던 몇몇 마법사들이 부리나케 그의 뒤를 따라 사라졌지만,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시는 일은 없다.
어쩔 수 없지.
당장 지오니스의 의중을 파악해내기에는 주어진 정보가 너무 적다.
뜻하지 않게 그와 손속을 겨루기는 했지만, 일단 정보를 좀 더 모아볼 필요가 있었다.
거기에, 지오니스와의 대련 도중에 변질된 왼쪽 눈의 마안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도 알아봐야 하겠지.
찰나의 순간, 자신이 심상으로 내새운 분기점 관측의 정경이 시각화되는 느낌이 들었던 만큼 당장 변화한 마안의 문제 역시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다.
레녹은 작은 한숨을 내쉬고, 방금 전까지 그를 안내해 주던 마법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본의 아니게 소란을 피운 모양이군요.”
“그, 그게……”
안내인은 방금 전의 친근했던 태도와는 달리, 어색한 표정으로 대답을 망설였다.
외부에서 손님으로 찾아온 마법사. 그것도 이런 환경에서 제대로 힘을 쓰기도 어려운 빙결마법사가 탑주의 직속제자와 자웅을 겨루었다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규격 이상의 실력자 앞에서 언행을 조심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보고 싶은데,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어디로 모셔야 할지.”
“마탑에서 가장 큰 도서관.”
고개를 돌린 레녹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책이 가장 많은 곳을 둘러보고 싶군요.”
* * *
“오호, 오호!!”
“…….”
“좋아, 아주 좋아!! 그래 바로 이거야!!”
잔뜩 흥분한 얼굴의 마우저가 턱수염을 부들부들 떨면서 미친 듯이 내달렸다.
“난 바로 이걸 보러 온 거였어!!”
땅딸막한 체형의 중년 남성이 팔다리를 마구 휘두르면서 내달리는 그 뒷모습을 이벨린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의 안전이 걱정되어서 같이 따라오기는 했지만, 어차피 그녀 역시 사흘 안으로는 한 번 들릴 곳이었다.
화산지대의 위치한 블레이버 마탑.
고루한 마법사들이 이렇게 불편한 지형지물을 감수하고 선택한 단 하나의 이점이자, 그 어디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든 시설.
나사 모양의 탑 가장 아래층.
화산이 끓어오르는 중심부에 해당하는 최심부를 직접적으로 건드려 그 막강한 화력을 그대로 금속 제조에 활용하는 거대한 화로가 그곳에 있었다.
세 갈래 거대한 기둥 사이에서 회오리치는 장대한 불의 기둥.
화산지대 클라오로니스에서도 단연코 가장 규모가 크고 뜨거운 화염.
단지 자연의 것이라기는 비정상적으로 뜨겁게 끓어 넘치는 그 용암을 간단한 공정만 거친 뒤 각지에서 가져온 금속에 흘려 넣는다.
용암에 섞인 강력한 자연에너지가 그대로 금속에 흘러 들어가며 순식간에 막대한 열기로 어떤 금속이든 주조가 가능한 형태로 녹여내고, 그렇게 녹인 금속들을 원하는 형태로 가공한다.
이렇게 한번 화로를 통해 가공을 거친 금속들은 이전보다 훨씬 더 손질하기 편하게 변하며, 여기서 외부자극을 줄 경우 역으로 천천히 그 경도와 내구도가 올라가는 특징이 있다.
화로를 통해서 금속을 한번 주물러주는 것만으로 외부 유통이 편해지고, 더불어 2차 가공까지도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화산지대 클라오로니스의 용암과 블레이버 마탑이 심력을 기울여 세운 거대한 화로탑.
무엇이 이런 일을 가능케 하는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그런 비밀을 유지한 심처가 이 대륙에 한두 곳도 아니었으니.
마우저에게 중요한 것은 금속을 다루는 이들에게 더없이 완벽한 화로가 눈앞에 나타났다는 사실 하나뿐.
마구 신나서 화로를 관리하는 마법사들을 붙잡고 이것저것 묻기 시작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이,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보고 있어도 괜찮나?”
이벨린은 무심코 고개를 뒤로 돌렸다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태연한 얼굴로 걸어 나온 레녹의 눈 밑이 거의 시커멓게 물들어 있었던 것이다.
“눈 밑에 그림자가 크게 졌어. 얼마나 열심히 조사를 하고 다닌 거야?”
“……자료조사를 하다 보니 그만.”
머쓱한 표정으로 눈가를 매만진 레녹이 대꾸했다.
마탑 중앙동에 위치한 대도서관. 그곳에 있는 온갖 서적을 뒤적거리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고 밤을 새우고 말았던 것이다.
당장 레녹의 수준에 도움이 될만한 마도서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마탑의 역사나 그들이 이뤄낸 실적에 대한 기록들은 다른 마법사들과 큰 교류가 없던 레녹에게 있어 굉장히 큰 흥미거리들 중 하나였다.
“나보다도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드디어 에이전트에 들어올 마음이 생기기라도 한 거야?”
생글생글 웃으며 그를 놀려대는 이벨린의 말에 레녹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컨디션이 쉽게 나빠지는 건 사실이다. 앞으로는 주의하지.”
상태가 꽤 호전되기는 했지만, 자성영역에 심상각인을 성공시킨 후유증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마력을 사용하는 전투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지만, 조금만 몸을 혹사시키면 이렇게 이상증세가 드러나고는 했다.
이벨린은 그런 레녹을 보고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몸조심해. 블레이버 마탑의 반응이 생각보다는 호의적이지만,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거니까.”
“알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걸 미리 봐두는 거야.”
레녹은 그렇게 말하며 거대한 화로의 탑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검붉은 열기. 은은하게 빛나는 탑의 내부에서 흐르는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번져나가며 시야를 흐린다.
“아마 틀림없이 이 거대한 마탑에서도 중히 취급되는 핵심시설…… 여기까지 우리에게 오픈했다는 것 자체가 이번 일에서는 큰 의미가 있을 테니.”
“……”
“도대체 어떤 식으로 열 흐름을 제어하길래 이만한 열량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는지 궁금하지만…… 저쪽에서 거기까지 알려주지는 않을 것 같군.”
블레이버 마탑 서대륙 지부의 외부 수입원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설의 핵심 자원이다.
아마 마탑의 모든 연구와 노력, 투자의 정수가 담겨 있을 터.
저걸 해석해 낼 수만 있다면, 혹은 내부 설계도를 구할 수만 있다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써먹는 것도 가능하리라.
왼쪽 눈동자에 손을 가져다 댄 채 고민에 잠긴 레녹을 옆에서 바라보던 이벨린이 어깨를 으쓱이는 사이, 느닷없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사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레녹으로서는 바로 어제 생생하게 들었던 바로 그 음색이다.
하루 사이에 대련의 여파를 추스르기라도 했는지, 레녹을 보고도 여유롭게 눈인사를 건넨 그가 서슴없이 화로 통제실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몸을 돌린 이벨린이 곧바로 그를 알아보고 손을 내밀었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군요. 지오니스 경.”
“반갑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손에 낀 장갑을 벗고 악수를 하며 말했다.
“뒤늦게 얼굴을 비추게 되어 죄송합니다. 마탑 내부에서도 처리해야 하는 문제가 산더미인지라.”
“아뇨. 이해합니다.”
“사실 그것 때문에 이런 식으로 내부 시설을 손님들에게 오픈한 것이기도 합니다. 현재 탑내 기능을 관리하는 마법사들을 제외하면 전원이 뒷수습에 힘쓰고 있으니까요.”
“복마전과의 일이 그만큼 거셌던 모양이군요.”
지오니스는 대답하기에 앞서 한창 마우저가 구경 중인 화로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바로 이 화로가 점거당하기 직전까지 갔다면, 믿으시겠습니까?”
“…….”
“단 두 명에서 마탑의 철저한 경계를 뚫고 순식간에 화로를 관리하던 통제실을 장악했습니다. 조금만 조치가 늦었다면 화로가 통째로 폭발하면서 마탑이 사라지고 말았겠지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탑이 패배할뻔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지오니스의 표정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그렇군요. 그래서…….”
이벨린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블레이버 마탑에서 어째서 복마전과의 분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못했는지, 그 이유가 여기 있었다.
마탑의 핵심중의 핵심시설인 화로의 통제권을 빼앗기는 건 물론이고, 제어에 실패해 터져버렸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섣부르게 밖으로 공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화로의 통제와 보안이 한번 뚫렸다는 것은 정말 큰 문제다.
이 사실이 외부로 밝혀진다면 마탑의 주가나 사업전망이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겠지.
“엔진실을 폭파시켜 억지로 시스템을 차단하는 선에서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원로원 전원의 마력을 끌어쓴 터라 대부분이 병상에 누워계시는 형편입니다.”
원로원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유 역시 그것 때문이었나.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흠잡을 데 없는 사유라는 것은 분명했다.
두 사람이 어느 정도 납득하는 기색을 보이자, 지오니스가 살짝 뜸을 들인 뒤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여러분께 거래를 제안하고 싶군요.”
“거래…… 말씀입니까?”
“네.”
차가운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최근 들어서 마탑 외부에서 알 수 없는 동굴들이 연이어 발견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건…….”
마우저가 말했던 바로 그 동굴이 아닌가.
이벨린이 무언가 짐작이 가는듯한 표정을 짓자, 지오니스가 곧바로 말했다.
“원로원에서는 복마전 쪽에서 마탑 내로 침입하기 위해 뚫어놓았던 땅굴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 추측이 사실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들이 만들어낸 루트를 확보해야만 하겠죠.”
“…….”
“괜찮으시다면 마르시아 님께서 그쪽 땅굴들을 조사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만약 복마전이 남긴 흔적이나, 혹은 위험요소가 남아 추후 외부인들의 방문을 저해할까 우려됩니다.”
지오니스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원래라면 저를 비롯한 원로원의 전력들이 직접 해결해야 할 문제지만…… 대외적인 시선 때문에 저 혼자 밖에 나서기는 어려운 형편입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의 손을 빌리고 싶단 말인가요?”
“맨입으로 하는 말은 물론 아닙니다. 손님에게 궂은일을 아무렇게나 맡길 수는 없죠.”
하지만 이벨린은 잠깐 생각하는 척만 하고는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죄송합니다.”
“…….”
“수뇌부에서 마탑 시설의 열람권한을 주신만큼, 기한 동안에는 탑 내 조사에 집중하고 싶군요.”
당연한 일이다.
지오니스의 말대로 복마전이 정말로 화로 통제실에까지 침입했다면, 굳이 화산지대 인근 동굴을 조사해 보지 않더라도 탑 내부에서 복마전의 흔적을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어지간히 파격적인 대가가 아닌 이상 이벨린의 입장에서 전력을 나눌 필요가 없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가볍게 탄식한 지오니스가 무어라 말을 이으려던 바로 그 순간.
콰아아아아아아아앙!!
귀청을 터트릴 것만 같은 무지막지한 굉음이 울려 퍼지며 거대한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었다.
“으아아아아아악!!”
“토네에에에!!”
처절한 비명 소리와 누군가를 절절하게 부르는 고함.
세명의 시선이 동시에 통제실 아래쪽의 화로로 향했다.
굳게 닫혀 있던 화로의 철문이 활짝 열린 채, 그 안에서 엄청난 양의 불길이 로켓처럼 사방으로 분사되고 있었다.
철문 앞에서 관리에 집중하던 한 마법사가 그 분사염에 휩쓸리더니, 순식간에 살점과 근육이 증발해 사라졌다.
같은 마탑의 동료가 통채로 증발해버리는 참상을 목격한 다른 마법사들이 패닉에 빠진 순간.
가장 먼저 이벨린이 움직였다.
섬전처럼 통제실 아래쪽으로 뛰어내린 그녀가 무차별적으로 사방에 난자하는 화로의 불길을 피해 순식간에 쓰러진 마법사들을 위로 던져올린 것이다.
그 직후 그녀의 의도를 눈치챈 레녹이 곧바로 허공에서 빙판길을 만들어 다친 마법사들을 통제실 안쪽으로 미끄러뜨렸다.
얼음으로 만들어낸 미끄럼틀은 막대한 열기에 순식간에 녹아내렸지만 잠깐이면 충분했다.
“흐아아아!! 아아아아!!”
“아하아악!!”
“끄으으으으으!!”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 화상에 의한 죽음이라고 하던가.
평생 동안 불꽃을 다루며 그 옆에서 함께해 왔을 마법사들 역시, 그 고통에서 피해갈 수는 없다.
“당장 의료반을 호출하고, 동력실에 연락해!!”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지오니스가 주위 마법사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화로로 향하는 마력원을 끊어야 멈출 수 있다. 움직여!!”
“늦었어요. 지금 당장 움직여야 할 겁니다.”
레녹이 손에 끼고 있던 장갑을 벗어 던지면서 중얼거렸다.
무슨 연유로 갑자기 화로가 작동 이상을 일으켰는지 모르지만, 지금 당장 멈추지 못한다면 마탑 중앙동이 통째로 무너져 내려도 이상하지 않다.
“화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을 잠깐이나마 틀어막고 문을 닫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서는 피해만 늘어날 뿐이에요.”
“……제가 화로의 불길 방향을 조작해 보겠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해봐야겠죠.”
지오니스가 마력을 끌어올리며 곧바로 통제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레녹 역시 계단 아래로 뛰쳐 내려가며 곧바로 수인을 맺기 시작했다.
그 잠깐 사이 다른 부상자들을 깔끔하게 대피시킨 이벨린이 레녹의 등 뒤에 내려와 속삭였다.
“반, 할 수 있겠어?”
“막을 수 있는 건 잠깐이야.”
레녹이 대답했다.
“느껴지는 열기와 마력의 농도를 생각해 봤을 때, 철문이 닫히고 난 후 30초……. 그 안에 화로의 동력원을 끊고 지오니스가 화로의 불길을 통제해야 본전이군.”
“알았어.”
이벨린이 그 자리에서 천천히 자세를 숙이면서 대답했다.
“내가 문을 닫을 테니, 그 뒤를 부탁해.”
“열기가 정말 엄청날 거야. 별다른 장비 없이도 괜찮겠나?”
이벨린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글쎄…… 저 화력이 계속 밖으로 튀어나온다면 중앙동이 잿더미가 되어버릴지도 몰라. 죽기 싫다면 그건 막아봐야지.”
“……좋아.”
레녹은 그렇게 대꾸한 뒤 왼쪽 눈을 감고 손으로 가렸다.
다시 눈을 뜬 레녹의 눈동자는 선명한 자색으로 물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