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363
약먹는 천재마법사 363화
미궁의 끝(2)
“마지막 관문…… 이 정도 규모였나.”
레녹조차 다리 아래쪽으로 펼쳐진 그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이 미궁이 진둔 자이기스 이더노어에게 가지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별 쓸모도 없는 석상을 단순히 장식삼아 미궁 안쪽에 채워 넣지는 않았을 터.
결계술사로서 정점이 이른 초월자라 생각했는데 골렘제작에도 이만한 조예를 지니고 있었던 것일까.
순식간에 머릿속을 가득 채운 의문에 대한 대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자이기스 본인이 아니라, 그와 가까웠던 어느 흑마법사가 남긴 유작이라더군.”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피해 빠르게 질주하는 바이크. 그 속도를 바로 옆에서 맞춰가며 태평한 말을 내뱉는 냉막한 인상의 여성.
그녀의 얼굴을 알아본 이벨린이 안색을 찌푸렸다.
“마이야……!”
“군령도시 요르타의 만귀야행(萬鬼夜行)에 대해서는 들어봤겠지? 이 세상의 모든 영과 귀를 잡아 승천으로 향하는 다리를 놓겠다는 계획. 방향성은 다르지만, 저건 그 프로젝트의 부산물이다.”
레녹과 이벨린이 거의 동시에 마력을 확 끌어올렸지만, 마이야는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휘저었다.
그녀가 가볍게 마력을 회전시키는 것과 동시에, 사방에서 세 사람을 향해 달려들던 초인들의 머리통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터져 나간다.
뻐버버벅!!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긴밀하면서도 잔혹하기 그지없는 손속.
하지만 마이야는 자신이 만들어낸 죽음에 단 한 줌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 의미는 다했지만, 저 물건들이 이상한 놈의 손에 넘어간다면 꽤 골치가 아파지겠지. 사실상 이 공간은 진둔의 유산을 모아놓은 창고나 마찬가지니까.”
마이야가 그렇게 말한 뒤 어깨에 얹어놓은 털뭉치를 향해 고개를 슬쩍 돌렸다.
‘이렇게 말하면 되냐?’
박사가 너덜너덜해진 털뭉치의 입을 빌려서 말했다.
[마지막 관문의 모습이 내가 알고 있던 것과 지나치게 상이하다. 이 시점에서는 다른 놈들의 힘을 빌려야 할 필요가 있어.]‘제기랄,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마이야는 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휙 돌려서 다시 레녹에게 말했다.
“아무튼 어떠냐? 평화를 중시하는 주시자들이라면 내 제안에 조금 관심이 가지 않아?”
“……”
침묵 속에서 바이크의 엔진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두두두!!!
시속 백 킬로미터를 가뿐하게 넘나드는 과속. 오직 스스로의 두 다리만으로 두 사람과 속도를 맞추며 마이야가 입을 열었다.
“날 도와준다면 너희들이 미궁 최심부까지 진입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 서로에게 그리 나쁜 일은 아닐 텐데.”
단순히 같은 목적을 위해 꼬신다면 넘어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니 마이야 자신은 승천자 본인보다 아티팩트 쪽에 관심이 있는 것처럼 말꼬리를 돌리고, 어디까지나 대의를 위해서라는 식으로 포장해 협력을 얻어낸다.
박사의 발상에서 비롯된 임기응변이었지만, 핑계로는 더할 나위 없다.
지금 이 시점에도 하나로 합쳐지는 거대한 다리 위로 연이어 진입자들이 도착하면서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
“막아!! 앞서나가지 못하게 해!!”
“그냥 죽여!! 영역을 전개하기 전에 숨통을 끊어야 한다!!”
“빌어먹을, 늦었어!! 끌려 들어간다!!”
“아아아악!!
쿠가가가가가가가!!!
5레벨과 6레벨의 초인들이 뒤엉켜서 싸우는 난전 속. 극소수에 해당하는 7레벨의 성위능력자들이 힘을 발할 때마다 다리 곳곳에서 눈부신 마력광이 번뜩인다.
개중에서 죽음을 각오한 술사 하나가 자성영역을 전개.
심상을 투영해 미궁 안에 나타난 또 다른 이계의 풍경에 전장의 분위기가 그곳을 중심으로 개편되기 시작한다.
이 다리의 끝에, 세 번째 관문의 너머에서 끝이 보인다는 것을 이 자리의 모두가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먼저 관문까지 도달한다면 그녀의 제안을 들을 필요도 없다.
레녹이 마이야의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스로틀을 한 번 더 꺾으려던 그 순간.
등 뒤에서 선명하기 그지없는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라이더, 잠깐 내려서 이야기 좀 하지.”
쿠우우웅!!!
엄청난 압력이 다리 일대를 찍어누르며 바이크를 강제로 멈춰 세웠다.
동시에 눈앞을 가로막은 장대한 자색의 장벽이 사방의 모든 것을 가로막고 뒤로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
제대로 전진하지 못하고 외형이 찌그러지기 시작하는 바이크의 모습에 레녹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친 듯이 바퀴를 회전시키고 있는데도, 속도가 줄은 수준이 아니라 거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정도.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중력의 강도 때문이 아니라, 그 중력으로 인해 일대 공간이 조금씩 비틀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리 위로 내리 찍힌 자색의 장벽이 공간을 어그러뜨리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를 막아버리고 있다.
결과로서 공간에 간섭하는 경지. 상대는 최소 성위의 끝에서, 그 너머로 나아갈 단서를 붙잡은 괴물이 틀림없다.
그런 레녹의 심정을 다 알기라도 한다는 것인 양, 뒤편에서 느긋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장엄한 유적지에서 버릇없이 오토바이나 찍찍 끌고 다니고 말일세, 젊은 사람이 그래서야 되겠나?”
“중력계열, 그것도 성위급 이상…….”
이벨린이 식은땀을 흘리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녀 역시 사방에 내리 찍히는 압력이 어떤 경지에 다다랐는지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시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야.”
“…….”
레녹이 침묵하는 사이, 목소리가 그 옆에 있던 마이야를 향해 말을 걸었다.
“누님도 오랜만이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
“발락…….”
마이야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최근에 경지에 올랐다고는 들었지만 벌써 나설 줄은 몰랐네. 진둔의 죽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움직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지간히 마음이 급했나 보지?”
“마음이 급한 건 누님도 마찬가지 아니오?”
쿵!
느긋한 대답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운동이라고는 전혀 인연이 없어 보이는 푸짐한 체격의 장년 남성.
수염을 제대로 깎지 않아서 푸르스름한 턱을 매만지며, 한 손으로 이를 쑤시는 그 모습은 이 미궁의 치열한 분위기와 지독할 정도로 괴리되어 있다.
당장 옆에서 칼날을 그 두툼한 뱃살에 들이밀어도 알아차리지 못할 것처럼 느긋해 보이는 인상.
하지만 그의 등 뒤에 떠오른, 십수 개가 넘는 시체의 모습이 그 모든 인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목이 매달려 죽은 것처럼 축 늘어진 시체를 등 뒤에 장식처럼 띄워 올린 기괴함. 평범한 인간의 감성과는 한창 동떨어진 잔혹하기 그지없는 손속.
남자는 그런 자신을 향한 공포의 시선조차 아랑곳하지 않고 허허 웃었다.
“진둔이 제정신이라면 우리 같은 존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는 않을 터. 누님은 그걸 알면서도 요람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것 같소만.”
“…….”
“뭐, 대충 어떤 상황인지 알 것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소. 내 개인적인 사유로 저 두 사람이 앞서나가는 것은 막아야겠으니. 이 자리에서는 내 뜻을 따라주길 바라오.”
발락이라 불린 남자가 예리한 시선으로 레녹을 응시했다.
“특히 마법사, 누님의 태도를 보아하니 꽤 괜찮은 실력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데. 섣불리 행동하지 말도록. 내가 자네를 죽이는 일이 없도록 말일세.”
노골적으로 레녹을 견제하는 듯한 발락의 말. 레녹이 살짝 표정을 찡그리고, 그것을 확인한 마이야가 피식 웃었다.
“거참, 내가 말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 그럼 알아서 잘해봐.”
마이야가 그대로 두 사람을 지나쳐 앞서가려는 순간.
“누님은 어딜 가시려고? 그쪽도 잠깐 내 이야기 좀 들어줘야겠소.”
쿠구구구궁!!
짙은 자색의 장벽이 순식간에 마이야의 앞으로 가로막았다.
고개를 뒤로 휙 돌린 마이야의 두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 시건방진 새끼가…… 당장 이거 안 치워?”
“안 치울 거요.”
“관문을 통과하기도 전에 한번 해보자 이거냐? 기계도시에서 누가 네 선배 노릇을 했는지 벌써 잊어버린 모양이군.”
“나이가 많다고 꼭 선배인 것은 아니지.”
마이야의 날선 시선에 조금도 주눅들지 않은 남자가 대꾸했다.
“선배 노릇을 해야 선배 대접을 해드릴 수 있는 것 아니겠소, 집행관 나으리?”
“……”
“승천문의 건조가 실패로 끝나고 속세로 도망친 누님의 말은 별로 마음에 와닿지 않는구려.”
“……못 본 사이에 상당히 겁이 없어졌구나, 발락.”
한 걸음 앞으로 걸어 나온 마이야가 무표정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 앞에서 그 말을 함부로 꺼낼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는데.”
“세월이 많이 지났지.”
발락이라 불린 남자가 팔짱을 끼며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일선에서 물러난 퇴물의 위세를 잊어버릴 정도는 말이오.”
쿠구구구구!!
그 말과 함께 사방을 짓누르는 압력이 더욱 강해지더니, 남자를 중심으로 터져 나온 자색의 파동이 수십 미터에 가까운 장대한 구역을 찍어 내렸다.
찌그러진 타원형의 형태로 회전하던 파동의 빛이 진해지는 것과 동시에, 한없이 증폭된 중력이 거대한 다리까지 조금씩 구부리기 시작했다.
근방 백여 미터 일대를 망라하는 거대한 중력장.
발락을 중심으로 사방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며 회전시키는 막대한 중력의 흐름이 근방의 모든 전투와 반항을 단숨에 잠재웠다.
“으윽……!!”
레녹과 이벨린은 물론이고, 다리 중간 즈음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악하던 경쟁자 모두의 목에 목줄을 채우는 강력하기 그지없는 인력의 집합.
사방이 풍경이 기이하기 일그러지며 시야각이 통째로 비틀린다.
단순히 빛과 시야를 구부리는 정도가 아니라, 중력조작의 힘만으로 공간 자체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경지.
실드와 공용마법의 보조가 없었다면 제대로 숨도 쉬기 어려웠으리라.
그제야 발락이라 불린 남자의 정체를 알아챈 이벨린이 희미하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발락 오에돈. 전단의 선봉에 서는 괴물이 이 미궁까지 당도했었나……”
“아는 사람인가?”
복마전과 발칸의 정세에 대해서는 훤하지만, 대륙이 돌아가는 정세에 대해서는 아직 어두운 레녹이 물었다.
“중력계열 초능력자로 얼마 전에 8레벨에 도달했다는 괴물이야. 극위에 오르자마자 이능개화전단에 들어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벌써 활동을 시작했을 줄은…….”
이벨린이 작은 한숨을 내쉬며 속삭였다.
“그 강력하고 특이한 능력때문에 예전엔 기계도시에서 초능력 연구에 전념했다던데, 그 과정에서 마이야와 안면을 쌓은 것 같아.”
뿌득, 뿌득……!!
아래쪽으로 쳐지는 어깨와 목을 억지로 밀어 올리며 이벨린이 예리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응시했다.
“실제로 얼굴을 보는 건 처음이라 알아차리는 게 늦었어. 음침하고 은둔자적 성정이 강하다 들었는데, 설마 저런 성격이었다니……”
“발락이 그만한 실력자라면 오히려 잘 됐다.”
레녹이 곧바로 마력을 끌어올리며 대답했다.
“두 사람이 대치하는 사이 기회를 보다 빠지는 게…….”
[그것보다 좀 더 좋은 계획이 있는데, 들어볼 생각이 있나?]“……!!”
느닷없이 배 아래 쪽에서 울려 퍼진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이벨린이 주먹을 내리찍었다.
[꾸엑!!]“뭐, 뭐야?”
“털뭉치…….”
[사, 살살…….]덜덜 경련하면서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마이야의 어깨 위에 항상 달라붙어 있던 털뭉치의 그것이었다.
이벨린이 이 심각한 상황 와중에도 황당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아니, 이게 말을 해……?”
[으윽……. 엄연히 신경과 감촉이 존재하는 하나의 생물이다. 지금은 이 친구와 의식을 연동시키고 있을 뿐이지만, 느낄 것은 다 느끼고 있지.]다소 가라앉은 장년 남성의 목소리. 하지만 레녹은 오히려 그 말을 듣고 차분하게 시선을 가라앉혔다.
“마이야가 아까부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눈다 싶었더니, 그쪽이 상대였던 모양이군. 우리의 협력을 얻어낼 생각인가?”
[눈치가 빠르군. 등대지기가 총애하는 마법사다워.]이쪽의 정체와 사정을 자세히 파악하고 있는 것을 내포하는 말 한마디.
이벨린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았지만, 레녹은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털뭉치를 빤히 응시했다.
“외부와의 통신이 모조리 끊겨나가는 이 미궁에서 멀쩡하게 의식을 이 생물체와 연동시키고 있다……. 그쪽도 평범한 술사는 아니군.”
[그러지 않고서야 진둔의 항하사미궁에 맨정신으로 걸어들어올 생각을 하겠나?]데굴데굴 굴러서 레녹과 시선을 마주친 털뭉치가 진중한 목소리로 전성을 흘렸다.
[그것보다도,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다만.]“……”
[제안은 아까 마이야가 했던 것과 동일하다. 미궁 세 번째 관문의 출입권한을 손에 넣고 엉뚱한 놈의 손에 아티팩트가 들어가지 않도록 막는 것. 그것을 전제로 두 사람을 진둔의 요람에 먼저 들여보내 주지.]“요람이라…….”
[주시자들에게도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 불가능해 보이는 대의를 추구하는 만큼, 그 선심은 신뢰할 수 있지. 욕심에 눈이 먼 괴물들보단 그쪽에게 부탁하는 게 합리적이라 생각했을 뿐이다.]털뭉치에 미리 녹음을 해놓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 술술 흘러 나온다.
청의 눈이 추구하는 결말도, 그들의 선심과 진정성도, 그리고 다른 주시자들에게 같은 제안을 할 생각도 없지만 그 진의는 조금도 목소리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개중에서 도움이 될만한 성정과 능력을 동시에 갖춘 것은 이 두사람뿐.
지금 마이야의 발을 붙들고 늘어진 중력계열 초능력자 발락조차, 마법사와 궁사의 도움이 있다면 어렵지 않게 헤쳐나갈 수 있다.
그것은 마이야와 박사, 두 사람이 복마전 소속이라는 것을 공식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기에 가능한 계획.
판데모니엄에 입단한 지는 시간이 좀 흘렀음에도 여태껏 그 정체를 내보인 적이 없던 마이야의 철두철미한 손속 때문에 가능한 제안이었다.
자신들을 배척하고 적으로 여기는 주시자들의 손을 빌려서 목표를 이룬다는, 박사의 다분히 개인적인 취향이 섞여 들어간 제안.
하지만 레녹은 마력을 끌어올려 실드를 덧대 내리 찍히는 중력을 밀어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제안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역시 거절하도록 하지.”
[어째서지?]“그쪽이 복마전 소속인 건 상관없지만, 정체를 숨기는 건 믿음이 안 가서 말이야.”
[……뭐?]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털뭉치가 주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