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06
약먹는 천재마법사 406화
주문제작(2)
세 사람은 곧바로 옥상에서 내려와 바이크가 제작되고 있는 공방으로 향했다.
“주문하신 옵션들은 사실 대부분 설치가 끝난 지 오래입니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기계 소리 사이로 빅터가 레녹을 안내하면서 말했다.
“다만 미리 전해주셨던 요구사항대로라면, 바이크 자체의 성능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일부러 남은 작업을 미뤄두고 있었지요.”
“더 탑재할 수 있는 옵션이 남아 있다는 말인가?”
“원래라면 탑승자의 안전 때문에 자체적으로 브레이크를 걸어 일부 기능을 제한하고 있습니다만, 견뢰에게 그런 안전장치가 필요할 리는 없을 테니까요.”
후우웅!!
고요한 엔진음을 내뿜으면서 서 있는 것은 장대한 바이크의 위용.
단단하고 두꺼운 타이어와 바퀴 아래쪽으로 고개를 내민 수십 갈래의 파이프, 새카만 철갑으로 덧칠된 날카로운 외견과 안장.
이음새 사이로 흘러나오는 선명한 마력광과 바이크 동체를 중심으로 올라오는 뜨거운 아지랑이.
크기로만 따지자면 웬만한 4륜 구동에 버금가는 압도적인 체급.
레녹이 살짝 감탄하며 위압감 넘치는 외견을 재차 구경하는 사이, 스스럼없이 바이크로 다가선 빅터가 말했다.
“10종의 외형 변경. 6중 분사 실린더 추가. 10단 추진기, 최상급 강도의 합금 외갑. 그리고 무려 마력핵 융합 엔진으로 만들어진 토대동력원까지.”
근처의 작업대에서 벤치와 나사못, 망치가 복합적으로 조합된 장비를 집어 든 그가 바이크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하지만 각 옵션에 걸려 있는 브레이크를 떼어내고 나면 여분의 회로에 연결할 수 있는 재밌는 부품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빅터, 자네 차량안전규제는 어쩌려고 그러나?”
뒤에서 하품을 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세바스찬이 물었다.
“자네가 아까 나랑 떠들면서 말했던 물건들을 하나라도 집어넣으면 교통관리국이 아니라 방위군에서 자네를 찾아올지도 모를걸.”
“팔아먹을 양산품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야?”
씩 웃은 빅터가 대꾸했다.
“반 님에게 따로 선물하는 물건에 귀찮은 규제를 따질 생각은 없다고.”
“그냥 자네가 이런 짓을 하고 싶어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고?”
세바스찬의 말에 빅터는 대답하지 않았다.
철컥!!
바이크 이음새 사이를 거침없이 열어젖힌 그가 손에 쥐고 있던 장비를 들고 서슴없이 내부 구조를 만지기 시작한다.
장비를 집어넣고 움직일때마다 외형 장갑부가 움찔거리면서 불빛을 환하게 드러내고, 내부에 숨겨져 있던 기능들이 차례대로 튀어나오며 레녹의 눈앞에서 전시회를 펼친다.
차르르르륵!!
방금 전까지 세바스찬과 술잔을 들고 떠들고 마시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민하게 움직이는 손놀림.
그에 맞춰 공방 천장 사방에 매달려 있던 다양한 기계 팔들이 빅터의 주위에 모여들어 무수한 부품들을 그에게 직접 전해주기 시작한다.
시선을 돌리지도 않고 전달받은 부품을 바이크에 재차 조립.
이미 완성된 부분까지 분해했다 재조립하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부품을 끼워 넣는다.
레녹은 그런 빅터의 손에 들린 부품의 정체가 무엇인지 마력감지로 확인하고, 피식 웃고 말았다.
기계 팔 위로 쉴 새 없이 오가는 부품 중에서, 유난히 눈에 익은 물건들이 몇 가지 보였던 것이다.
“초진동 블레이드에, 88연발 기관포, 탄약 내장 쉘과 후면 장착형 샷건이라. 하나같이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물건일 텐데, 잘도 숨겨서 들어왔군.”
“역시 반 님이라면 알아보실 줄 알았습니다. 지하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친구들만 장비로 사용할 수 있는 비싼 친구들이니까요.”
쉴 새 없이 장비를 조정하면서 빅터가 대답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열추적 미사일도 두 발 정도 탑재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두고, 자동사격 시스템까지 탑재 중이죠.”
“……미사일이라고?”
레녹의 황당한 질문에도 빅터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남는 공간에 열원 추진기를 때려 박고, 마지막으로 내장용 역장 글라이더까지 장착하면…… 잠깐이지만 하늘을 나는 것도 가능해질 겁니다.”
철컥, 철컥!!
몬스터 바이크 안에 들어가는 수만 개의 부품을 모조리 분해한 뒤, 기계 팔에 매달아 놓고 단 한 번의 오차도 없이 재조립해 완성시킨다.
제작공정에서 발생하는 오류나 문제가 없는지를 주문자의 눈앞에서 직접 확인하고 검토하는 일련의 기예.
머릿속에 이미 바이크의 완벽한 설계도가 존재하는 것도 모자라, 비슷한 작업을 수백 수천 번씩 해보지 않고서야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닌가.
땀을 줄줄 흘리면서 실실 웃어대는 빅터의 얼굴은, 이미 레녹 본인보다는 자기만족의 영역에 더 가까워 보였다.
“시의회가 공군을 창설하면서부터 굉장히 엄격했던 비행체 규제들이 풀리고 있어요. 아마 외곽구역에서라면 사용해도 흔적이 남을 일은 없을 겁니다.”
“잠깐이지만 하늘을 날고, 기관포와 미사일을 탑재하고 초합금으로 제작된 물건이라…….”
곰곰이 생각하던 레녹이 기가 찬 얼굴로 웃었다.
“이렇게 놓고보니 바이크가 아니라 날개없는 전투기나 다름없군.”
“오, 어떻게 아셨습니까? 사실 지금 이 바이크에 탑재된 엔진도 원래는 전투기에 사용되는 물건이거든요.”
“…….”
갈수록 상식을 뛰어넘는 대답을 하는 오터블의 사장.
레녹이 그 모습을 보며 슬슬 말려야 하나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가만히 구경하던 세바스찬이 한마디 거들었다.
“빅터는 내가 알고 있는 마이스터 중에서도 커스텀에 대해서는 최고야. 기업체를 운영하면서도 실력은 현장에서 뛰는 장인보다 뛰어나지.”
“……단순히 일의 영역이 아니라는건 확실해 보이는군.”
살짝 떨떠름한 레녹의 대답에 세바스찬도 웃었다.
“말은 좀 멍청하게 하는 친구지만, 결과물이 실망스럽게 나오는 일은 없을걸세.”
어느새 바이크 아래로 들어간 빅터의 옷이 땀에 흠뻑 젖어들었지만, 전혀 신경쓰지 않고 바이크 내부 엔진을 매만지는 데 집중했다.
“사용자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장치 제거, 몬스터 바이크에 기본적으로 장착되는 사격장치 풀 옵션 업그레이드. 재밍을 위해 사용되는 소모재 자동 충전기능까지…… 최종 점검 완료.”
시간이 멈춘 것처럼 바이크를 조립했다 분해하며 기능을 점검하던 빅터가 손을 멈춘것은 수십분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후우……!! 별다른 문제는 없는 것 같군요. 지금 당장 굴려도 괜찮은 수준입니다.”
땀으로 흠뻑 젖은 그가 혀를 내두르며 멋쩍게 웃었다.
“이거 시간이 좀 걸렸군요. 죄송합니다. 나이를 먹으니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네요.”
“……아니, 충분했다. 적어도 당신이 얼마나 자기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지는 믿을 만하군.”
“다행입니다. 사실 저도 왕년에는 쓸 만한 라이더였던지라, 옛날 생각이 나서 좀 흥을 낸 감이 있군요.”
레녹의 차분한 대답이 빅터의 기분을 조금 진정시키기라도 한걸까.
멋쩍게 웃은 그가 슬쩍 몸을 돌려서 바이크를 향해 손짓했다.
“본사 뒤쪽에 저희 회사 제품을 구매하신 고객님들을 위한 시운전 코스가 있습니다. 한번 이용해 보시겠습니까?”
“흠…….”
잠깐 고민하던 레녹이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 대신 빅터 당신이 바이크를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
“……네?”
“왕년에 잘나갔다는 라이더의 솜씨를 보고 싶군.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은데, 괜찮겠지?”
* * *
“반. 빅터가 아무리 자네를 통해서 반사이익을 챙겼다고 해도 너무 짓궂은 것 아닌가?”
본사 뒤쪽에 위치한 시운전 코스.
땀을 줄줄 흘리면서 조심스럽게 몬스터 바이크를 운전하는 빅터의 모습에 세바스찬이 웃음을 터뜨렸다.
“빅터는 너무 늙었어. 젊었을 적에는 저 친구도 온갖 탈것에 심취해 몇 년 넘게 떠돌아다니던 시절도 있었지만, 이젠 아니지.”
온몸을 감싸는 보호대와 단단한 헬멧을 착용한 빅터가, 자신이 만든 괴물을 타고 아주 천천히 시운전 코스를 돌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초보 운전자를 배려하기 위한 코스를 돌면서도 바이크 손잡이를 쥔 양손이 덜덜 떨리고 있다.
그만큼 자신이 만든 바이크가 얼마나 위험한 물건인지 제대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철저하게 레녹의 주문대로 만들어진 새로운 바이크는 감속과 가속, 속도를 통제하는 부분에서 인간의 감각으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극단적으로 조정되어 있다.
다비의 자동운전 알고리즘에 바이크 운전을 맡기는 레녹의 입장에선, 다비가 가장 편하게 퍼포먼스를 발휘할 수 있도록 맞춰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
전뇌 정령의 연산 능력과 시뮬레이팅, 경로 탐색과 변수 예측 능력은 아무리 뛰어난 라이더나 초인이라 해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대로 튀어나가 헬멧째로 처박혀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확실히 노화를 피할 정도로 뛰어난 초인으로 보이지는 않는군.”
“초인들 모두가 노화를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지 않나.”
세바스찬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맺혔다.
“선택받은 재능과 육신을 가지고도 시간 앞에서는 상대적으로 공평해지지. 그걸 뛰어넘을 수 있는 건 자네 같은 괴물들뿐일세.”
“…….”
“그 사실에 대해서는 이제 와서 아무런 감상도 없네. 그러니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빅터가 코너에 처박히기 전에 말해주지 않겠나?”
능청스러운 대꾸에 레녹이 희미하게 웃었다.
“알고 있었군.”
“따로 이야기를 하고 싶었겠지? 빅터도 그걸 알았기에 더 이상 묻지 않고 빠져준걸세.”
레녹이 세바스찬과 따로 만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빅터도 알고 있었던 건가.
거기까지 듣고 나서야 레녹은 망설이지 않았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군. 내가 그쪽의 사무실을 찾아가지 않는 선에서 따로 접선할 방법이 필요했어.”
“반, 자네가 공룡기업 간의 힘 싸움에 끼어들었다는 소문이 자자해. 내 고객들의 말로는 굉장한 거물을 상대로 균형을 맞추기 직전까지 와 있다고 하더군.”
“…….”
세바스찬은 그런 레녹을 슬쩍 바라보다 말했다.
“반 자네가 그동안 했던 일을 생각하면, 아마 직접 만나볼 생각일 거라 짐작하는데……. 내 말이 틀린가?”
아킬레우스와 다이크의 힘 싸움에 대한 내막이 벌써 소문이 돌기 시작한 건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런 귀빈들을 상대하는 세바스찬이기에, 따로 부탁해야 할 일이 있었다.
레녹이 그 말을 받아서 용건을 꺼내기 위해 천천히 말을 고르는 사이, 세바스찬이 먼저 말했다.
“마드리치 오니온을 찾는 것을 원한다면 협력하지.”
“…….”
“대신 조건이 있네.”
예상하지 못한 세바스찬의 제안.
그 이름과 내막을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알고 있는 그의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것보다 레녹을 놀라게 한 것은 그의 적극적인 태도 그 자체였다.
항상 레녹에게 함께 일 하나 해보자며 친근하게 굴던 세바스찬이지만, 반대로 모든 순간에 한발 물러선 듯한 태도를 고수했던 그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나올 줄이야.
“뭔가 알고 있는게 있군.”
주머니 안쪽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던 레녹이 시선을 가라앉히며 물었다.
“거래를 원하나?”
“……이 시점에서 날 찾아왔다는 것 자체가, 어느 정도 방향성을 손에 쥐고 검토하기 위함일 테니까.”
살짝 굳은 얼굴로 세바스찬이 대답했다.
“그 과정을 도와줄 수 있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레이엄 캠벨을 통해 아킬레우스의 네트워크에서 얻어낸 정보가 아니었다면, 굳이 그를 찾아올 일은 없었을 테니까.
양지의 고객들을 위주로 활동하는 세바스찬의 인맥이라면, 레녹이 생각하는 계획에 보다 빠르게 가까워지겠지.
“좋아.”
고민하던 레녹이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 조건에 대해 들어보고 결정하지.”
* * *
철컥, 철컥!!
“흠…….”
팔머에게 개조받은 리볼버. 갑각을 덧대 반동과 내구성을 조정한 스나이퍼 라이플. 마키나의 장인에게 선물 받은 충전식 샷건까지.
레녹은 작업대에 내려놓은 장비들을 내려다보다, 이내 고개를 숙이고 다시 그것들을 매만졌다.
철컥, 후두두둑!
“아. 놓쳤군.”
사격 보조 마법 없이 총기를 정비할 때면 종종 있는 일이다.
레녹의 손재주는 빈말로도 좋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라, 주기적으로 총기를 정비함에도 불구하고 탄창이나 부품을 놓쳐서 잃어버리는 일이 잦았다.
물론 마법사답게 잃어버린 부품을 되찾기 위해 허리를 굽혀본 적도 없지만, 레녹은 마법을 사용하는 대신 직접 허리를 숙이고 부품을 주워들었다.
[마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을텐데.]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누군가가, 어딘가 싸늘한 전성을 내뱉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용하지 않으려고 직접 주웠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흠…… 본의가 아니라 이건가.]목소리는 대답하는 대신 가만히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베일 너머로 복잡한 칠채색의 광채가 쉴 새 없이 번뜩였다.
[아무래도 네가 움직일 때마다 주위 마력도 같이 반응하면서 변동하는 모양이군.]“그럼 뭐 어떻게 해야할까?”
[이제부터 움직이지 마라.]“…….”
레녹은 터져 나오는 한숨을 삼키고 말없이 고개를 들어 올렸다.
카르텔의 회장, 올리비에라 론 메이즈의 연구실.
이전에 방문했을 때와 달라진 바 없는 거대한 마도서의 위. 책장이 접히면서 전환되는 공간의 차가운 병기고.
온갖 총기와 병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창고의 작업대 위에서 레녹은 두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애초에 왜 설명도 듣지 못하고 이런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가볍게 손짓하는 것만으로 바닥에 널브러진 총기들을 수거한 레녹이 물었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정교한 행위를 지속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지?”
3사장 아윤이 교단의 손을 잡았다는 것을 밝히고 만났던 마지막 만남.
그때 레녹은 올리비에라에게 칠채보의 마안을 조사하고 싶다는, 다소 과감하기 그지없는 거래조건을 걸었었다.
단순히 성능 좋은 마안을 이식하는 것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던진 제안이었지만, 의외로 올리비에라는 레녹의 제안을 비웃지 않았다.
오히려 흥미로운 듯한 기색으로 고심하다, 이제 와 다시 레녹을 그녀의 연구실에 다시 불러들였던 것이다.
대륙에서 한손에 꼽히는 마안 보유자의 말인 만큼 일단 순순히 따르기는 했지만, 그리 내켰던 것은 아니다.
레녹이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몸을 쓰는 일에 능숙하지 않다는 약점 자체가, 올리비에라에게 공개되는 것 자체가 영 꺼려졌기 때문.
아직 카르텔의 회장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고는 있기는 하지만, 이 협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올리비에라가 결말에 대해서 어떤 생각으로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이상, 레녹의 비밀과 관련된 일은 조심해야 했다.
하지만 올리비에라는 레녹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코웃음을 쳤다.
[칠채보의 마안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내 눈을 조사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냐.]“그럴 리가 있겠나.”
레녹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당연하지만 자료가 존재하는 항목에 대해서라면 조사를 게을리하는 성격은 결코 아니다.
“현존하는 마안들 중에서도 한 손 안에 들어가는 강력한 이능. 일곱 가지 마력의 성질변화를 자유자재로 조합하며 한계가 없는 힘을 뿜어낸다고 하지.”
[오호라.]“하지만 아마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거야. 어떤 식으로든 마안의 능력 자체가 그쪽의 심상과 깊게 연결되어 있겠지.”
[짧은 사이에 공부를 이것저것 해온 모양이구나.]아이를 타이르는 듯한 올리비에라의 말을 레녹은 깔끔하게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스스로의 심상을 투영하는 자성 영역의 구축원리. 올리비에라 당신은 이 이론을 마안과 결합시켜 기존의 이능과는 다른 무언가로 승화시킨 것이 아닌가?”
[…….]“8레벨의 극위마법사가 위계를 초월해서 거머쥔 공능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는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지. 하지만 대충 짐작은 간다.”
레녹이 침묵하는 올리비에라를 보며 웃었다.
“자성 영역의 심상 각인에서 파생되는 부분전개. 기존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결실이 존재하는 거겠지. 바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당신의 연구실처럼 말이다. 아마 승천자의 사상 전역처럼 명칭이 존재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만…….”
[부르는 이름 따위가 무엇이 중요하겠느냐.]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만 있던 올리비에라가 대답했다.
[수십, 수백억이 살아가는 이 별에서 역사상 그 경지에 다다른 이들의 숫자는 한 줌조차 되지 않을 터인데. 의미를 전하고 이해할 수 있다면 충분하다. 남들이 무어라 부르든 아무런 의미도 없지.]“그렇군.”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올리비에라 당신이 연구를 시작한 계기와도 관련이 있겠지?”
[……마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지.]고개를 휙 돌린 그녀가 대꾸했다.
[선천적인 이능을 개화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네놈처럼 이미 한쪽 눈에 마안을 각성한 상태라면 큰 조정은 필요 없다.]“…….”
“요컨대 마법보다는 이능의 적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라 이 말인가…….”
말은 간단하지만 그렇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마안은 어디까지나 마법이 아니라 이능에 가까운 힘.
마안의 능력을 술식으로 조합해 사용하는 건 쉬운 일이지만, 마안의 존재 자체에 간섭해 방향성을 조정하는 일은 그렇지 않다.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레녹 역시 진작에 오른쪽 눈에 마안을 개안시켜 출력을 분담하고 있었겠지.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올리비에라의 마안을 직접 관찰하고 그 흐름을 모방하는 것으로 이능에 대한 감을 잡으려 했건만…….
[더 이상 말은 필요 없겠지. 고작 이 과정조차 통과하지 못한다면 이번 일은 없던 것으로 하겠다.]냉엄한 올리비에라의 목소리가 레녹의 생각을 끊어버렸다.
[그 무례함에 필적하는 그릇이 아니었다면 감히 내게 거래를 요청하는 제안을 들어주지도 않았을 터. 기준치조차 만족하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일부러 설명을 자세히 해주지 않는 것 역시 이능에 대한 적성을 판별하기 위함이라 이건가.
올리비에라 역시 레녹에게 원하는 바가 있기에 지금 레녹의 거래에 응하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이 말일 텐데…….
문제는 레녹이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 근방의 마력이 따라 동조하며 반응하고 있다는 것 자체다.
본신의 마력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과는 별개로, 초월적인 마력 감응력이 오히려 이능에 대한 적성 검증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
이 과정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올리비에라는 레녹에게 자신의 마안을 조사하는 대가로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알려주지 않겠지.
“그럼 이렇게 하지.”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레녹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내가 최근에 꽤 괜찮은 게임을 하나 배워서 말이다.”
[게임이라고?]“그리 어려운 게임은 아니다. 나도 배운 지는 얼마 되지 않기도 했고.”
레녹이 코트 안쪽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내며 웃었다.
“그쪽이 말한 수련을 위해서라도, 몇 판만 상대해 줬으면 좋겠군.”
오셀로와 바둑을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장기말.
레녹이 꺼내 든 것은 항하사미궁에서 진둔과 단둘이서 두었던 보드게임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