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12
약먹는 천재마법사 412화
군령의 주인(2)
자정을 지나 새벽을 넘어, 이제는 동이 트기 직전의 여명에 가까워진 시간.
푸르스름한 아스팔트 사이를 힘겹게 걸어 올라온 몇몇 이들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허억, 허억…….”
레이스에 참가한 모든 경쟁자들이 레녹의 독주에 휘말려 죽은 것은 아니다.
요령 좋게 잠깐 숨어서 몸을 피하거나, 당장의 순위를 포기하더라도 생존을 우선시한 이들.
그리고 레녹과 정면에서 경쟁하고도 그 몸을 온전히 건사하는 데 성공한 극소수의 실력자들.
그런 이들이 뒤늦게라도 레이스를 끝내기 위해 갱단 본부 앞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왜 레이스 마지막에 그딴 마약 덩어리가……!”
“갱단한테 따져야 해…… 이건 약속과 다르잖아!”
구시렁거리고 짜증을 내고 있기는 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모를 만큼 멍청한 이들은 아니다.
이름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빅터라는 바이크 라이더 한 명에게 맥을 못 추고 당해버렸으니 약속받은 공용물자를 챙기기는 어려울 터.
그래도 갱단이 공공연히 선포했던 페널티를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굳이 시간을 들여 결승선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
그중 선두에서 눈이 돌아간 표범을 들쳐멘 구릿빛 피부의 창사 역시, 입을 꾹 다물고 걷는 데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이들의 코끝에, 순식간에 비릿한 피 냄새가 감돌기 전까지는.
“잠깐, 이거 뭐야……?”
이 자리에서 이렇게 선명한 죽음의 기척을 느끼지 못할 만큼 수준 낮은 초인은 없다.
순식간에 서로 눈빛을 교환한 참가자들이 서둘러 갱단 본부 앞까지 뛰어 올라가고.
시체들이 담벼락에 전시되어 있는 본부 안쪽에서 흘러넘치는 피바다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미친……. 그리모어 갱단이 어떻게……?”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혀를 빼물고 죽어 있는 무수한 단원들의 모습.
손에 쥐고 있던 연장조차 놓지 못하고 경련하는 그 처참한 몰골에 참가자들의 안색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 와중에 표범을 들쳐메고 있던 창사만이 마력의 흔적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렇군. 저 정도 괴물이 상대였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
“뭐?”
“저길 봐라.”
구릿빛 피부의 청년이 턱짓을 하는 것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갱단 본부 깊숙한 곳, 안뜰에서 벌어지는 전투로 향했다.
“으아아아아!!”
목이 터져라 고함을 내지르며 굵직한 대검을 휘두르는 그리모어 갱단의 보스.
그리고 그 칼날 앞에서 쉴 새 없이 번뜩이는 날카로운 전광.
어둠 속에서 그 섬광의 편린을 이어붙이는 전극의 회오리 사이를 쉴 새 없이 주파하는 살아남은 갱단원들의 모습까지.
숨이 터져라 맞부딪히는 참격과 검광의 사이에서 터져 나온 불똥이 어느 순간 급격하게 덩치를 키우며 사방을 환하게 밝히고.
화아아악!!
그 사이에서 고개를 까닥이는 마법사의 얼굴을 고스란히 비췄다.
라이더 재킷을 입고 입에 연초를 문 흑발의 청년.
외관은 지겹도록 듣던 것과 살짝 다르지만 저만한 수준의 전격 마법사가 이 바닥에 둘이나 존재할 리가 없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표범을 들쳐멘 창사의 등 뒤에서 나직한 욕설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견뢰였나!!”
“빌어먹을, 저런 괴물 새끼랑 같이 레이스를 뛰고 있었다니……!”
“바이크 라이딩 실력이 말도 안 된다 했어.”
“왜 싸우고 있는 거지? 레이스에서 우승했잖아?”
“조용히 해라.”
창사는 그런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견뢰가 싸우고 있다. 너흰 지금 이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나?”
“그게 무슨……?”
이해할 생각조차 없다면 더 이상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창사는 그 말에 대꾸하는 대신, 저 멀리서 싸우는 레녹의 움직임을 지켜보는 데 집중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다른 이들이 호들갑을 떠는 잠깐 사이에도, 칼날과 마력이 수십 번씩 허공을 찢어발기고 난자하며 처절한 살기를 사방에 흩뿌리고 있다.
눈앞에서 온몸이 갈려 나가도 이상하지 않은 공세의 파도 사이에서 저 마법사는 손가락 하나 허투루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 위로 내려찍히는 꼬챙이를 실드로 빗겨내고, 등허리를 두들기는 도끼날을 전격으로 치대며.
코앞까지 다가온 칼날을 매만지고 그대로 고개를 비틀어 꺾는 그 순간.
카가가가각!!
레녹을 향해 질주하던 그 모든 살기 어린 공세가 방향을 잃고 긁혀 떨어져 나갔다.
푸르스름한 불똥만이 쉴 새 없이 튀기며 마법사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음을 보여줄 뿐.
“카학……!!”
“대장을 방해하지 마!!”
“타이밍 재!! 마력을 잘 봐!!”
“X발, 저게 말이 되냐고……!!”
입으로는 쉴 새 없이 쌍욕을 내뱉고, 지껄이는 말이 엇갈리는 와중에도 갱단원들 역시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고 있다.
정면에서 공방을 교환하는 대장의 호흡이 빌 때마다 견제를 넣고 시선을 끌며, 혹시 모를 기회를 노려 사방에서 화력을 지원한다.
다만 그 모든 의도와 공세의 흐름을 읽고 움직이는 레녹의 움직임이, 더없이 완벽하고 간결했을 뿐.
“역시…….”
들쳐멘 표범의 무게도 잊고 홀린 듯이 레녹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고개를 돌리지도 않고 머리 뒤쪽을 향해 쏘아지는 공세를 받아친다.
실드로 받아내고 버티는 수준이 아니라, 역으로 전격을 터뜨려서 화력으로 공격을 받아내는 경지.
그것은 창날 끝으로 다른 창날을 받아내는 만큼이나 균형과 힘의 조절에 대해 완벽하게 숙달되어 있다는 반증이다.
거대도시 외곽구역에서 한 손에 꼽히는 투사가 전격 마법사라는 소문은 역시 허언이 아니었다.
레녹의 간결하면서도 섬뜩한 움직임 하나하나를 유심히 지켜볼 때마다 얻어가는 것이 있을 정도.
난잡하고 요란한 갱단원들의 공방 사이로 간결하게 내뻗는 섬광 하나하나가, 그 와중에도 착실하게 머릿수를 줄여나간다.
그것이 마법사의 손에 한 움큼 들려 있던 나사 조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피이잉!!
“으아아아악!!”
하나둘씩 그 힘과 저력을 다한 갱단원의 미간에 바람구멍이 뚫리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이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발아래로 치덕대는 끈적거리는 핏물.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걸리는 무거운 시체들이 오히려 다른 이들의 정신을 더욱 선명하게 일깨워준다.
두두두두두!!
십수 명의 초인들이 오직 한 사람의 마법사를 상대로 마력을 터뜨릴 때마다, 일대 공간이 폭격이 쏟아지는 것처럼 들썩이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사이로 난잡하게 흩날리는 이미 죽은 단원들의 살점과 시체.
레녹의 선공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이미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방패와 장애물로 삼아서 피 웅덩이 사이를 거침없이 뒹굴었다.
살아남은 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기 위해 죽은 이들을 능욕하는 처절하기 그지없는 전장.
다른 참가자들이 멍한 표정으로 목적지에 펼쳐진 참상을 보고 입을 쩍 벌렸다.
“갱단이……. 전멸한다. 몰살당할 거야.”
“외곽구역에서 제일가는 광전사라는 양반이…… 참 허무한 마무리군.”
“그럼 이 레이스는 살아남은 우리의 승리인가?”
처절하게 비명을 내지르는 단원의 등 뒤로, 새파란 전광이 번뜩였다.
[대라전(帶羅電)] [군청사뢰(群靑社雷)]어두운 밤하늘 사이로 피어오른 청색의 광채가 회전하며 꽃잎처럼 흩날리다 팔 방위에 그 화력을 뻗치고 지상을 두들긴다.
콰아아앙!!
그에 맞춰 사방에 떨어져 내린 장갑차의 부품들이 감전되며 전격의 범위와 화력을 증폭시키고.
일대를 까마득하게 뒤덮은 거대한 전기장의 필드가 만들어지며 그 안에서 저항하는 모든 것을 짓눌러 터트렸다.
으지지직!!
살점이 타들어 가다 못해 으스러져 아작나는 섬뜩한 소리.
레녹이 마력을 휘두를수록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대던 목소리가 사그라들고, 그 메아리만이 살아남은 이들의 귓가에 환청처럼 휘감겼다.
무아지경으로 이어지는 공방의 사이에서, 눈치채지도 못하게 찔러 들어오는 날카로운 반격에 하나둘씩 숨이 끊어지는 단원들의 모습.
미친 듯이 휘두르던 남자의 대검이 우뚝 멈춘 것은, 더 이상 자신의 옆에 서 있는 단원이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인지한 뒤였다.
레녹은 그런 남자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군령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 봤지.”
“후우, 후우…….!!”
“단순히 자신의 존재를 군령술의 법칙 아래 의탁한다는 의미는 아닐 거야. 그것보다는 훨씬 더 영적인 측면에서의 개념이겠지.”
“끄으으윽……!!”
어느새 움직임을 멈춘 남자의 피부 위에는 수백 개가 넘는 나사 부품들이 징처럼 박힌 채, 근육의 움직임을 방해하고 있다.
나사가 박힌 피부와 두개골 위로 뜨거운 피가 흘러내려 그 온몸을 새빨갛게 뒤덮었다.
온몸이 나사 조각에 박혀 고정된 채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그 모습을 보며 레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소우주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그건 네 주인이 그것을 허락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따지자면 군령술은 자신의 심상을 술자에게 바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힘이겠군.”
그리모어 갱단의 보스. 거대도시 외곽구역을 두 개나 점유하고 있는 조직의 수장이 성위 능력자가 아니라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
하지만 레녹의 눈앞에서 대검을 휘두르던 이 남자는 온몸에 나사 조각이 틀어박힌 이 순간까지도 레녹을 향해 소우주를 전개하지 않았다.
목숨이 위험해진 상황에서까지 자신의 비전을 숨기고 싶다는 한심한 생각 때문이 아니다.
틀림없이 그의 심상을 움켜쥔 누군가가, 소우주를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그건 다시 말하자면 지금 이 광장에서 일어난 일련의 전투를, 레녹이 목표로 하는 군령술사 역시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다는 증거일 터.
“그러니 지켜보고 있다면 슬슬 나와주지 않겠나?”
덜덜 경련하면서 멈춰선 남자를 바라보며 레녹이 물었다.
“내가 이 도시 곳곳에 숨어 있는 당신의 군령들을 찾아 똑같이 박제해 버리기 전에.”
[어려운 일이군.]그 순간, 레녹의 발치에 쓰러져 있던 단원의 입에서 싸늘한 전성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저 멀리 떨어진 다른 갱단원이 그 말을 이어받았다.
[의사를 전달하기에는 너무 야만적이고, 또 폭력적인 방식이야. 내가 선호하는 방식은 아니지.]어딘가 희미한 냉소가 섞인 듯한 공허한 목소리.
“…….”
[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애타게 나를 찾는 자도 실로 오랜만이군. 그렇다면 응할 뿐이다.]쩌저적……!!
천천히 동이 터오는 아침 하늘.
그 아래로 마치 장승처럼 일어서 레녹의 주위를 배회하기 시작하는 수십 구의 시체들의 모습.
레녹은 주위를 쭉 둘러보다 피식 웃었다.
“귀신이 나타나기에 좋은 시간대는 아니군. 해가 뜨고 있다.”
[호오, 그런 미신에 구애받는 것을 즐기는 편인가?]목소리가 대답할 때마다, 레녹의 주위를 배회하는 시체들이 하나씩 그 힘을 잃고 다시 고개를 땅에 처박는다.
이미 죽어버린 인간조차,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한 번 써먹고 버리는 잔혹한 성정.
방금 전까지 그가 했던 말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언행이지만, 두 사람 모두 굳이 그것을 지적하려 들지는 않았다.
백 년을 넘게 살아온 노괴의 도덕관념과 폭력성의 기준이 일반인과는 한참 다르게 비틀려 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으니.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었지. 도시의 외곽구역에 피에 미친 마법사가 배회하고 있다는 말……. 흔한 괴담 정도로 치부하고 넘겼지만.]잠깐 뜸을 들인 목소리가 웃음기 어린 어조로 물었다.
[이제 보니 꼭 부풀려진 헛소문은 아니었던 모양이구나.]“…….”
왜 레녹이 전위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지, 술사로서 전사를 뛰어넘는 전투력을 손에 넣었는지.
이유를 설명하고 오해를 푸는 것도 지겨운 일이라 레녹은 그냥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 시큰둥한 태도가 오히려 더 그의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시체들 사이로 희미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 그 정도 동량은 되어야 감히 나와 대화를 해보겠다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지. 후회없는 자리가 되지는 않겠구나. 한번 대담을 나누어 볼까.]“끄르르륵……!!”
이미 죽은 다음에도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절규를 내지르며 자빠지는 시체들의 모습.
하지만 그 추하기 그지없는 몰골조차, 그림자 저편에서 솟아오르는 듯한 담담한 음색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발칸에서 날뛰던 무법자들을 수백, 수천 번을 넘게 심판해 온, 거대도시 사법기관의 수장이었던 남자가 물었다.
[다이크의 어린 마법사야. 네 무례에 정말 많은 이들이 싫증을 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그쪽이 진작 나타나 문제를 해결하기만 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지.”
그제서야 품안에서 연초를 꺼내든 레녹이 입에 물고 불씨를 붙이며 웃었다.
“반갑다, 마드리치 오니온. 직접 만나는 건 처음이군.”
* * *
군령. 육신에 묶여 실재하지 않는 영이라는 힘을 다스리는 형태로 속박하여 술식의 기조로 삼는 것.
마력과는 다른 동력을 사용하면서도 그 뿌리는 같이 하고 있지만, 엄연히 마법이나 주술 같은 술식들과는 다른 체계의 일종이다.
같은 군령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사용하는 술식과 스타일에는 큰 차이가 있는바.
군령술을 다루는 이들끼리도 천차만별이기에 그런 이들이 모여서 요르타라는 오래된 도시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영을 다루는 방식의 최선두에 서 그들을 대표하면서도 그 역사를 따지고 들어가면 마법만큼이나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원시적이면서도 세련된 정통학문의 일종.
그리고 마드리치 오니온은 그런 군령술을 수십 년 넘게 다뤄오며 일가를 이룬 극위 능력자들 중 하나였다.
“당신만 한 권력자가 군령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게 갱단을 이용한 레이스라니, 조악하기 그지없군.”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를 내려다보는 마드리치의 앞에서 레녹이 웃었다.
“만귀야행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 레이스에 숨겨져 있는 비밀을 알아차리기 어렵지 않을 텐데. 그렇게까지 군령을 보충해야 할 사정이 있기라도 한 건가?”
그리모어 갱단이 시정부의 공용물자를 보상으로 내걸고 주최하는 레이스.
자정에 시작해 동이 트기 직전까지 계속되며 사전에 인원을 철저하게 정해두고 진행된다는 사실에 의문을 가지는 이들이 없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레이스가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다는 것 자체가, 레녹처럼 눈치챈 이들을 철저하게 처리해 왔다는 증거.
갱단의 손에 은밀하게 처리된 이들의 누구의 손에 들어갔을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마드리치는 그런 레녹의 말을 듣고도 아무런 음정의 변화 없이 대답했다.
[외려 그 정도는 눈치챌 정도의 식견과 지성이 있어야 자격을 갖추었다 말할 수 있는 것이다.]“뭐라고?”
[군령술에 대해 무지한 이들이 흔히 착각하는 것 중 하나지.]천천히 허공을 배회하던 남자의 몸 사이로 마드리치가 웃었다.
[되먹지도 못한 아해들의 영을 쥐어 짜봤자 지저분한 찌꺼기만 흘러나올 뿐. 현실에 안주해 기름진 영육 따위는 인신공양의 금술에서나 쓸모 있는 법이다.]“…….”
[영으로서 술사에게 복속된다는 것은 당사자 역시 술자의 근원에 접촉해 그 소망을 같이한다는 의미. 자신의 존재 자체를 온전히 군령의 아래 맡긴다는 것이다. 비록 그 행위 자체가 온전히 자의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양보다 질에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그제서야 마드리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한 레녹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레이스 자체를 고의적으로 백귀야행과 비슷하게 구성하고 이상을 눈치채는 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말이군. 그렇게 상대적으로 우수한 이들만을 골라서 네 군령으로 삼아온 건가?”
[야행을 완주하는 것 자체가 군령이 되기 위한 의식을 수행한 것이나 마찬가지. 그중에서 이상을 눈치채고 갱단에게 이의를 제기할 정도의 영민함과 담력을 갖춘 자라면 최소한의 조건은 갖추었다 할 수 있다.]마드리치가 말했다.
[상대적으로 영적 소양이 부족한 이 대지에서 군령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뿐이었지. 오랜 전쟁 사이 죄인들을 거두어 심판하던 때는 내 힘이 마를 날이 없었건만…… 뭐든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은 없는 법이 아니겠느냐.]그렇게 말하는 것과 동시에 남자의 팔이 삐걱거리며 들어 올려진다.
그 손짓의 방향이 향하는 곳은 광장의 뒤켠에서 지금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레이스의 참가자들.
레녹이 그 의도를 눈치채고 반응하기도 전에, 남자의 몸을 빌린 마드리치가 그대로 주먹을 움켜쥐고.
휘오오오오!!
사방에서 불어닥친 회색의 광풍이 그대로 참가자들의 어깨를 붙잡고 머리통을 꺾어버렸다.
“꺼억……!!”
우드드득!!
사지를 붙잡힌 채 제대로 저항하지도 못하고 즉사하는 이들의 모습.
순식간에 구경꾼들 수십의 목숨을 거두어들인 마드리치가 손을 털면서 혀를 끌끌 찼다.
[보아라. 지저분하고, 아무런 가치도 없지. 네 손에 죽은 다른 이들의 영체 역시 다르지 않다. 단순한 원념으로서 살아 있는 생명을 향해 비명을 토해내기만 할 뿐.]“…….”
방금 레녹이 죽인 갱단원들의 영을 모아서 파도처럼 쏟아붓기만 했을 뿐.
수준급의 군령술사의 손에 들어간 것만으로 원념들은 알아서 살아 있는 생명을 공격하고 목을 졸라 비틀어 죽여버린다.
[한 번 쓰고 버리는 소모품과 같은 삶이라…… 개탄스럽지 않느냐? 존재의 가치는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져 벗어날 수 없는 굴레와도 같은 것이다. 군령술식은 그런 비루한 이들에게도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 주는 숭고한 의식이지.]침묵하는 레녹을 향해 다시금 시선을 돌린 그가 말했다.
[네게도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 나의 권역 아래서 군령술을 배워보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