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3
“씨발, 늦었어!!”
마오렌이 저 멀리 뛰어간 뒤에야 마력간섭에 저항하고 구덩이를 기어오른 용병들이 숨을 헐떡인다.
마력을 통한 육체강화에 익숙해져서 그 간극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것이다.
앞으로도 이 점을 잘 파고든다면 전투에서도 쏠쏠하게 써먹을 수 있겠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런저런 전술을 구상하던 레녹의 귀에 거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봐, 반!”
시뻘개진 얼굴로 레녹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는 에릭센.
그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레녹을 노려보면서 씩씩대기 시작했다.
“거기서 구경만 하고 있던 이유가 뭐야. 좀 도와줄 수 있었잖아!!”
“무슨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레녹 역시 심드렁한 반말로 대꾸했다.
“내가 도와줘야 할 사람은 저기서 샷건을 들고 날뛰는 여자뿐이야.”
“뭐, 이새끼야?”
“우리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잖나? 이제와서 같은 동료인 척하면 나도 좀 어색해.”
고작 세마디.
나름 예의를 차리는 척 하던 에릭센의 가면이 벗겨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당연한 일이다. 에릭센은 레녹에게 정당한 도움을 요구하고 그에 대한 항의를 하려는것이 아니다.
그는 단지 단순히 만만해보이는 누군가를 향해서 화풀이를 하고 싶은것 뿐이었다.
다른 용병들의 시선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주변의 분위기를 등에 업은 에릭센이 거칠 것 없이 행동에 나섰다.
마력을 가득 담은 주먹이 레녹의 턱주가리를 정확히 노리고 날아온다.
그 단순무식하고 몰상식한 선공에 레녹도 참지 않았다.
물론 가만히 있어도 실드에 막혀서 레녹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할거라는 사실을 알지만, 굳이 그때까지 기다려줄 이유도 없다.
에릭센의 복부를 향해 가벼운 충격마법 한방을 쏘아냈다.
그라임의 충격마법을 보고 연구해서 실용화시킨 열화마법이지만, 사람 하나를 담가버리기에는 충분한 위력이다.
터엉!
반응조차 하지 못한 그의 배가 기묘하게 짓눌리고, 허리가 앞으로 푹 꺾였다.
입을 쩍 벌린 그의 목구멍에서 끈적한 침이 떨어져내렸다.
“씹…! 이 무슨….우, 우웨에에엑….!!”
단 한번의 반공에 어찌할줄 모르고 미친듯이 헛구역질을 하는 에릭센.
레녹은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인 에릭센의 뒤통수에 손을 얹었다
에릭센은 장기를 직접 두들기는 고통에 레녹이 뭘 하는지 신경조차 쓰지 못하고.
레녹의 다섯 손가락 사이에서 새파란 전류가 튀어올랐다.
[볼트]파지지지직!!
뒤통수에 전기찜질을 당한 에릭센이 거품을 물고 제자리에서 쓰러진다.
위력을 적당히 조절했으니 죽지는 않겠지.
그 모습을 눈앞에서 직접 목격한 다른 용병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멈춰섰다.
레녹이 정확하게 어떤 방식을 썼는지는 몰라도, 그 솜씨가 굉장히 능숙하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본 것이다.
‘용병들이라 그런지 그 마법사보다는 훨씬 눈치가 빠른데.’
눈앞에서 체인 라이트닝을 날려도 아티팩트의 힘이라고 착각하던 어느 마법사를 떠올린 레녹이 천천히 그들을 향해 걸었다.
저벅, 저벅.
“………”
레녹이 걸을때마다 용병들이 조금씩 뒷걸음질치면서 대열이 홍해처럼 쫙 갈라졌다.
더 이상 오염체들과 뛰노는 밀라를 쳐다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클라리아와,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는 미구엘.
복잡한 시선이 오가고, 레녹이 그를 지나치기 직전 그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런 실력을 가지고 계셨다면 미리 말씀을 해주시지 그랬습니까.”
“………”
“그랬다면, 이렇게 대접해드리지는 않았을텐데요.”
“대접?”
약간의 원망마저 들어있는 그 말에 레녹이 피식 웃었다.
“그런 걸 받아보자고 미개발지구까지 와서 오염체를 잡는건 아니라서.”
미구엘과 같은 용병들에게 더 나은 대접을 받아봤자 아무런 의미도 없다.
레녹이나 그들이나,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가는 하루살이보다 못한 인생인 것을.
단순히 형편으로만 비교하면 레녹보다 오히려 그들이 더 나을수도 있었다.
통장에서 빠져나갈 1억 2천말 셀의 거금을 떠올리며 얼굴을 굳힌 레녹이 단호하게 등을 돌렸다.
“저쪽도 슬슬 끝나가는군.”
“………”
이미 십여마리의 오염체를 거의 다 박살낸 밀라와, 그런 그녀를 막으면서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끼어들기 위해서 마력을 끌어올리는 마오렌.
저 둘 사이에 미구엘의 지분은 아무것도 없다.
힘없이 고개를 떨구는 그를 보면서 레녹이 나직하게 말을 끝맺었다.
“미리 말했던 대로 정산은 따로 해도 괜찮겠지?”
“자, 잠깐…!!”
다급한 목소리로 끼어든 것은 초조한 표정으로 입술을 씹으면서 두 사람을 바라보던 클라리아였다.
그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미구엘을 쳐다보다가 이내 표정을 싹 바꾸고 레녹을 향해 웃었다.
“미구엘은 몰라도 저는 그 사실에 동의한 적이 없어요.”
“……….”
“에릭센과 미구엘이 의견을 강요하는 바람에 저도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 뿐이에요. 지금이라도 기회를 주시면….!!”
“이 여자 뭐야?”
그런 클라리아의 말을 끊은것은 레녹의 뒤에서 성큼 나타난 밀라였다.
오염체들을 상대로 어지간히 난동을 피웠는지 온몸에 모래먼지와 알 수 없는 체액이 가득 묻어있었다.
레녹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녀를 상대로 거리를 벌렸다.
오염체들이 뭘로 이뤄졌을 줄 알고 아무렇게나 피부에 저런걸 묻히고 다닌단 말인가.
어지간히 무신경한 사람임은 틀림없었다.
밀라는 입을 꾹 다문 클라리아를 보면서 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야, 하던 말 계속 해봐.”
“…….”
레녹은 클라리아의 침묵을 이해했다.
오염체의 체액을 덕지덕지 묻힌 채 눈동자를 희번뜩거리는 모습을 보고 제 할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
“무슨 사정인지는 알겠는데, 이제와서 꼽사리 끼려고 같은 동료들을 버려서야 되겠어?”
“저, 저는 그런게 아니라….”
“알아, 나도 알지. 저 친구들을 버려도 우리 마법사님이랑 친해질 수 있다면 이득이다 이거잖아.”
클라리아가 고작 밀라가 토벌한 오염체 몇마리의 소유권을 주장하고싶어서 이렇게 동료들을 손절해버린것이 아니다.
제대로 된 마법사와 친분을 트는것이 이 바닥에서 얼마나 값어치있는 일인지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마법을 온전히 완성하고 실전에 투입가능한 마법사 전력은, 그만큼 쉽사리 보기 힘들면서도 귀중한 인재였다.
마오렌과는 달리 오직 눈치만으로 지금 이 일을 벌인것이 레녹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듯 한데….. 개인의 능력과는 별개로 안목이 제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밀라는 클라리아의 호흡이 느껴질 만큼 얼굴을 가까이 붙였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클라리아가 무엇을 보았을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무슨 말 하고 싶은지 알지?”
“……..네.”
“그래, 착하지.”
그녀는 그제서야 만족스럽게 웃고는 클라리아의 어깨를 두드렸다.
생전 처음보는 사람을 상대로 이렇게 살기등등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를 레녹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지금 레녹에게 달라붙으려는 날파리를 옆에서 대놓고 쳐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의 호의를 사려고 노력하고 있는것이다.
방금 그가 용병들의 발을 묶어놓으면서 오염체들을 경직시키는 단 두번의 마법만으로 이미 그가 어떤 실력을 가졌는지는 대충 직감하고 있을 터.
계산된 행동인지, 직감에서 나오는 본능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클라리아를 대신 쳐내는 그 모습이 적어도 밀라 본인을 위한 일이 아니라는것은 확실해보였다.
터벅.
레녹은 다가오는 밀라를 멀뚱히 쳐다보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밀라와 마찬가지로 오염체의 체액으로 범벅이 된 마오렌이 힘없이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보이는 밀라야 그러려니 해도, 마오렌까지 저렇게 체액을 묻히고 다니는걸 보면 오염체의 체액 자체는 인간에게 큰 악영향을 주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잠깐 레녹을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제가 졌군요.”
“………”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당하면 그리 화도 나지 않는법이지요. 오늘있었던 일은 굉장히 인상깊었습니다.”
마오렌은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그리 말하고 있었지만, 레녹은 그가 구덩이를 기어올라온 직후 그에게 보냈던 강한 분노의 시선을 기억했다.
그 순간 느꼈던 짜증이 어마어마했을텐데, 앙금을 완벽하게 가라앉히고 웃음을 내보이는것을 보면 마오렌 역시 손익계산이 끝났다는 말일 터.
예상대로 그는 체액으로 젖은 손을 몇번 털더니 품안에서 명함 한장을 꺼냈다.
“여기, 드릴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지만 받아주시겠습니까?”
플라톤 용병 사무소의 명함.
사무소 전화번호와 마오렌의 개인연락처가 적힌 명함을 받아든 레녹은 아무 말 없이 그것을 품안에 넣었다.
마오렌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그럼….”
레녹의 능력을 확신한 순간부터 마오렌은 더이상 질척거리지도, 더럽게 굴지도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이래야 했던것마냥 깔끔하게 명함만을 건네고 물러서는 그 모습은 아까 숫자를 앞세워서 억지로 점유권을 주장하던 사람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졌다.
약하면 천대받고, 강하면 대우받는 세상.
그 두가지 얼굴을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드러내놓고도 마오렌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그리고 레녹 역시 그럴거라는 사실 역시 알고 있는 듯 했다.
그 사실을 고려하고 보면 그 역시 평범한 용병은 아니었다.
옆에서 그 순간을 멀뚱히 바라보고 있던 밀라가 대뜸 말했다.
“나도 명함있는데, 줄까?”
“……필요없어.”
이미 딜런에게 사무소의 명함을 받았는데 그녀의 명함까지 챙길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괜시리 마오렌에게 지는 기분을 느끼기 싫었는지 품에서 체액에 젖은 명함을 꺼내더니 레녹의 소매속에 쑤셔박았다.
“………”
레녹은 짜증을 눌러참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여기서 벗어나지.”
“좋아. 나도 좀 씻어야겠어.”
밀라를 따라서 폐허 안쪽에 주차해두었던 지게차로 향하면서 레녹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마오렌이 미구엘을 비롯한 다른 용병들을 모아놓고 뭐라 떠드는것 모습이 보인다.
“………..”
연달아 일어난 소란에 잊혀졌지만, 레녹은 오염체가 한번에 여러마리 나타났을 때 마오렌이 보여주었던 그 수상쩍은 표정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때 보여주었던 웃음과, 이상할 정도로 순순히 물러서는 마오렌의 태도가 연관되어 있다면 그건 지나친 추측일까?
만약 오염체들을 인위적으로 제어할 방법이 존재하는 거라면.
미개발지구에서 살아가는 부랑자들의 인구가, 아주 은밀하고 흉험한 방식으로 조절되고 있는 거라면ㅡ
레녹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피식 웃었다.
솔직히 말해서 절대로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지금의 레녹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물론 이 도시의 안위에 대해 아예 관심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솔직하게 말해 레녹의 코가 석자인 상황이 아니겠는가.
지금 그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것은 아직까지 옥션에 걸려있을 스테모니아 단 하나뿐이었다.
지게차에 시동을 걸고 손짓하는 밀라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잠깐의 만남. 순간의 교차.
그러나 의미없는 순간은 아니었다.
용병들 역시 마냥 일처리가 깔끔하지만은 않다는것을 되새기기에는 충분했으니까.
지게차에 올라다 용병들을 쭉 지나쳐 다시 발칸으로 돌아간다.
토벌의 대가를 정산할 시간이었다.
스테모니아
“….숫자가 이게 맞나?”
“네가 하나 날려먹은 걸 계산하면 확실해. 토 달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