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431
약먹는 천재마법사 431화
기억의 궁전(1)
문을 박차고 나서자마자 들리는 기이한 이명.
삐이이……!!
기묘할 정도로 한적해진 작업장 근방의 거리에서 거슬리는 소음이 울려 퍼진다.
주위의 사람을 자연스럽게 물리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쿵!!
마력사로 묶은 남자의 몸을 던지듯이 아스팔트 위에 내려놓는다. 동시에 거리 곳곳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내는 십수 명의 남녀.
작업장을 포위하듯이 가지런히 서 있는 사람들을 보며 레녹이 웃었다.
“오래 기다리게 했군.”
눈에 띄지 않도록 평상복을 입고 있지만, 특유의 정갈하고 가라앉은 분위기는 숨길 수 없다.
현장에서 직접 움직이는 교단의 사제들. 그것도 완전히 교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기준점으로 삼은 광신도들이다.
한 번에 이렇게 많이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나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괜찮아. 기다리는 건 익숙하거든.”
여유롭게 레녹의 얼굴을 뜯어보던 아밀라가 대답했다.
“반가워, 에반. 아밀라 베인저야. 편하게 아밀라라고 불러줘도 좋아.”
싱글싱글 웃으며 손을 내민 그녀가 재차 말했다.
“잠깐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혹시 시간 있을까? 그쪽에게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거야.”
빙긋 웃은 레녹이 손가락을 들어 귀를 가리키며 물었다.
“오르골 소리. 잘 들리나?”
그제서야 다른 사제들의 귀에도 천천히 들려오는 교단의 찬송가.
자신들의 정체가 순식간에 발각당했다는 것을 깨달은 사제들이 희미하게 안색을 굳히고, 아밀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신앙이 너무 강해도 문제라니까. 흔적이 남을만한 물건들은 싹 다 놓고 오라고 말해도 제대로 들어 먹는 놈들이 없단 말이지.”
“…….”
“뭐, 나도 오래 숨길 생각은 없었어. 우리는 정체를 감추고 다니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는 편이거든. 입을 닥치고 사람들 사이에 녹아드는 일이라면 모를까, 지금처럼 직접 움직일 때는 더더욱 말이야.”
무릎을 툭툭 털고 일어선 아밀라가 씩 웃으며 말했다.
“다시 소개할까? 교단 북동부 지부장 주교 아밀라 베인저야. 이제는 베인저 주교라고 불러줘도 괜찮아.”
“알았다, 아밀라.”
“……너도 영 말을 들어 먹는 데는 소질이 없군?”
아밀라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올려 까딱였다.
그 손짓에 자연스럽게 다른 사제들이 이끌려 걸어 나오고,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했다.
철컥, 철컥!
제각기 품 안에서 가진 장비들을 꺼내들기 시작하는 사제들의 모습.
음산한 소리를 내는 뼈톱, 길쭉하고 날카로운 꼬챙이와 말뚝, 한쪽 면만 날이 서 있는 의식용 칼, 마치 사람의 목을 베기 위해서 만들어진 큼지막한 낫까지.
대체적으로 효율적인 전투를 추구하는 도시 음지의 초인들과는 궤가 다른, 상대를 압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듯한 무기들.
그 위압적인 풍경에 뒤에 서 있던 카시아가 침을 꿀꺽 삼키고, 아치우드가 레녹의 앞으로 빠르게 걸어 나왔다.
“……?”
전혀 예상하지 못한 아치우드의 움직임에 레녹이 눈썹을 추켜올리고.
양 손 가득히 마력을 끌어올린 아치우드가 당당하게 사제들을 향해 소리쳤다.
“건방진 사이비 놈들이 감히 라바테논의 인재를 탐내려 드는 것이냐!!”
“…….”
“바일런 조교수님의 두뇌는 이 도시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일진저, 그 지성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너희들뿐만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겠지?!”
“…….”
방금 전까지 레녹이 논문을 쓴 당사자인 줄도 몰랐던 사람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당당한 발언.
카시아 역시 긴장했던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눈을 깜박였다.
“이미 나를 비롯해 무수히 많은 투자자들이 조교수님과 함께하기 위해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교수님을 납치하려면 나를 먼저 넘어야 할 것이야!!”
이 와중에 은근슬쩍 그 투자자들의 무리에 자신을 끼워넣고 어필하는 태도. 어느새 교수님으로 격상된 입에 발린 금칠까지.
마치 오래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아치우드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은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숨 쉬듯이 태세를 전환하는 아치우드의 노골적인 처세술에 레녹도 감탄을 터트렸다.
“귀족가의 자제다운 입놀림이군. 그런데 너무 속내가 노골적인 것 아닌가?”
“……오늘 너희 귀도 교단 놈들을 가만두지 않겠다!!”
억지로 레녹의 말을 무시한 아치우드가 곧바로 수인을 맺고 영창을 시작했다.
[차련사수(車聯社輸)] [구람지평(具濫之萍)]두두두두두!!!
파블렌 아치우드가 사용하는 계통의 마법은 바람의 속성을 갖춘 기류 계통.
사방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대기의 흐름과 바람의 속도, 예리함을 극한까지 갈고 닦아 온갖 방식으로 그 힘을 구현해내는 절기다.
아치우드의 손짓과 동시에 발밑에서 일어난 바람의 늑대들이 도로 위를 내달리고, 사제들의 머리 위에서 바람의 칼날이 내리 찍히기 시작했다.
동시에 일대를 중심으로 강렬한 바람이 휘몰아치며 아치우드의 손 끝으로 모여들어 거대한 바람의 구체로 변했다.
[풍월(風月)]키이이잉!!
손아귀 사이로 응집된 기류의 흐름이 영창과 함께 구현되어 사방 일대를 휩쓸었다.
한적한 거리 한복판에 구현된 거대한 달의 형상. 기류의 흐름만으로 거대한 바람의 구체를 만들어 이 자리에 막대한 압력을 내리찍은 것이다.
콰아아아!!
본격적으로 전투를 시작하기에 앞서 일대 환경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개편하고 상대의 움직임을 제약한다.
귀족가의 자제답게 기본적인 전투훈련은 받았는지, 그래도 마법사로서 어떤 식으로 공방을 이어나가야 되는지는 대충 알고 있는 듯 보였다.
사제들이 그 자리에서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장비를 들어 올리는 모습에, 아치우드가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하하하핫!! 역시 교단의 전사들이라 해도 위대한 아치우드의 마법 앞에서는……!!”
그 순간, 바람 사이를 뚫고 섬전처럼 내뻗은 신형이 그대로 아치우드의 배를 걷어찼다.
뻐어억!!
“꺼억……!!”
몸이 기역자로 꺾인 아치우드가 두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부들부들 경련하는 그의 입가에는 침이 섞인 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턱!
힘없이 쓰러지는 아치우드의 멱살을 허공에서 움켜쥔 상대가 거침없이 뒤통수를 향해 손을 내질렀다.
아치우드의 두개골을 단번에 박살 내고도 남을 날카로운 손질.
그 순간, 아치우드의 뒤쪽에서 튀어나온 섬광이 그대로 상대를 휩쓸고 집어삼켰다.
콰앙!!
“거기까지 하지.”
“카하악!!”
레녹의 발 밑에 쓰러져 있던 남자가 그 자리에서 로켓처럼 튀어나가 아치우드를 죽이려는 상대를 들이받은 것이다.
정작 그렇게 쏘아진 남자 역시 본의가 아니었는지, 서로 뒤엉킨 채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지르고 있었다.
팔다리와 관절이 부러진 채 나뒹구는 두 사람을 앞에 두고, 아치우드를 마력사로 잡아 끌어낸 레녹이 말했다.
“미안하지만 귀도 교단과 할 이야기는 없다. 논문의 연구결과에 대한 투자는 다른 곳에서 받아도 충분한지라.”
“어머, 그건 좀 아쉬운걸. 멍청하게 구경만 하고 있길래 이런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거든.”
아밀라가 빙긋 웃었다.
“뭐, 나도 긍정적인 답변을 기대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팔다리를 부러뜨려놓고 나면 생각이 좀 달라질걸.”
“…….”
철컥!!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 십수 명의 사제들이 무방비한 마법사를 향해 장비를 추켜들었다.
상대는 고작해야 대학의 조교수. 그것도 육체능력이라고는 전무한 정령술사다.
정령을 꺼내 들기 전에 선수를 취할 수만 있다면 전투의 결과는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
머리와 심장만 살려둔다면 정보를 빼내는 것은 어떤 방법으로든 가능하다.
아밀라는 그런 그들의 등 뒤에서 천천히 수인을 맺기 시작하며 말했다.
“정 안 되면 어디 골방에 처박아놓고 교단의 찬송가를 128배속으로 들려주는 것도 괜찮지. 나도 존나 무식한 방법이라 생각하긴 하는데, 항상 효과가 괜찮더라.”
“에, 에반……?”
아치우드의 때아닌 삽질 뒤로 긴장된 얼굴로 돌아온 카시아가 물었다.
“일단 제가 시간을 끌고 있을 테니, 그래도 에반이 먼저 도망치는 게 맞지 않을까요……?”
레녹은 천천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사제들을 힐끗 보고는, 카시아에게 빠르게 물었다.
“실전 경험은 있으십니까?”
“……없지는 않아요. 그래도 발을 붙잡아놓는 정도라면……!”
“그럼 제가 하죠.”
카시아의 말을 끊은 레녹이 말했다.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조교수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이런 저런 경험을 많이 겪었거든요.”
“아아, 나도 그거 들었어, 에반.”
사제들의 뒤에서 아밀라가 말을 보탰다.
“아티팩트를 수집하러 다니는 탐험가 일을 했다고 하던가? 유감스럽지만 고작 그딴 경험 가지고는 우리 애들을 상대하기 어려울걸.”
“…….”
레녹과 카시아가 작업장 안쪽에서 나누는 대화 역시 도청하고 있었던 것인가.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대놓고 이 자리에서 이야기할줄은 몰랐다.
하지만 레녹은 그 말에 당황하는 대신, 품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논문 쪽으로만 주목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에반 바일런은 공식적으로는 정령술사다.
당연히 에반의 신분으로 전투에 나설 때를 대비해 수십 가지 전술을 세워두었다.
그동안 써먹을 일이 없었던 정령술식의 첫 시연에 살짝 기대감마저 느끼며 레녹이 마력을 끌어올리려던 그 순간.
“다비, 약속했던 포메이션 E로 시작하…….”
[부우우…….]“……다비?”
[브우.]말을 잊어버린 것처럼 울음소리만을 반복하는 다비의 모습에 레녹이 멈칫거렸다.
레녹의 손길에 따라 순순히 기어 나오기는 했지만, 어딘가 살짝 기운이 없어 보이는 듯한 모습.
찰나의 순간 빠르게 오가는 고민을 마친 레녹이 거침없이 다비를 거두어들였다.
“……이리 와.”
[……?]허공에 떠올라서 마력을 내뿜으려던 다비를 한 손으로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태가 좋지 않다면 내가 직접 할게. 걱정하지 마.”
정령의 컨디션이 어떤 환경에서 영향을 받는지는 명확하게 검증된 일이 없다.
다만 교단이 거리에 퍼트리고 있는 이명이나, 알 수 없는 광신의 기운이 다비의 상태를 저하시키고 있다면 정령을 혹사시킬 이유는 없다.
그렇게 생각한 레녹이 다비의 머리와 턱을 마구 쓰다듬으면서 앞으로 직접 나서기 시작했다.
레녹의 손길에 따라 다비의 머리가 쪼물딱 쪼물딱 비벼지면서, 동시에 다비의 꼬리가 기운을 차리고 꼿꼿하게 솟아올랐다.
[……!!]파앗!
그 순간 레녹의 품 안을 뛰쳐나간 다비가 순식간에 사제들의 머리 위 허공을 질주하며 미친 듯이 전기를 뿜어대기 시작했다.
[포메이션 EMP 갑니다!!]파지지지지직!!!!
전뇌정령을 중심으로 광대한 전기장이 이는 것과 동시에, 일대 거리의 모든 전력이 정령을 중심으로 수렴한다.
[부우…… 우우우웅!!]푸슈우우……!!
새파란 파동이 원형의 동심원을 그리며 사방으로 물 밀듯이 퍼져 나갔다.
신호등과 가로등, 상가의 불빛과 점등이 순식간에 꺼지며 거리가 통째로 정전상태에 빠지고.
순식간에 어둠에 잠긴 거리 속에서 새파란 전격이 사제들의 머리에 정확하게 내리꽂혔다.
빠지지직!!!
“윽, 잠깐……!”
“피할 수가 없……!!”
“조심해라, 정령술사라면 틀림없이…… 어라?”
거침없이 내리꽂히는 정령의 전격에 몸을 움츠리던 사제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일어서기 시작한다.
전격계열의 정령이 내뻗는 공격치고는 화력 자체가 그리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따끔거리는 수준에 불과한 공격.
일대 거리를 정전 상태에 빠트린 것 치고는 허무할 정도로 맥아리가 없는 광역기였다.
“뭐, 이런 거지.”
아밀라는 그리 놀라지도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희귀한 정령술사라고는 하지만, 그만큼 수준이 높을 가능성도 낮다.
아니, 애초에 에반 바일런이 강력한 정령술사였다면 라바테논 대학의 조교수라는 이름보다 훨씬 더 유명세를 가지고 있었을 터.
하물며 지금 그들이 거리에 쉴 새 없이 울리고 있는 귀를 찌르는 이명은, 교단의 사제들 이외 다른 사람들의 집중력을 강하게 흩트리는 물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지를 발휘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헥, 헥…… 저 힘냈어요…….]힘겨운 듯이 혀를 빼물고 레녹의 품안에서 축 늘어진 정령의 모습.
아밀라가 다비를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맘에 쏙 드는 아이인걸. 정령을 격리시켜 놓을 수 있는 새장이 교단 창고에 있었던가…….”
“광신도가 탐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야.”
싸늘하게 중얼거린 레녹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이미 전투는 끝났다.”
아밀라가 웃었다.
“그러니까, 일단 교단 가스펠 100시간 연속 재생한 뒤에도 똑같이 말할 수 있는-!”
키이이잉!!
그 순간, 아밀라의 눈앞이 갑자기 컴컴해지더니 귀도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팔다리가 제멋대로 휘저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감각조차 고장난 것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커허…….”
그녀의 몸이 앞으로 기울어지는 것과 동시에, 느닷없이 눈동자가 뒤집힌 사제들이 하나둘씩 기이한 신음을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쿵!! 쿵!!
입에 게거품을 문 채로 부들부들 경련하는 사제들의 모습은, 방금 전까지 강맹하게 앞으로 질주하던 광신도의 그것과는 완전히 상반되어 있다.
“어……라?”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고개를 갸웃거린 아밀라가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내 입으로 말하기도 그렇지만, 우리 교단 애들은 웬만한 정신공격에는 잘 안 당하는 편이거든.”
“그런가?”
“환영이든 환각이든, 애초에 잘 안 먹힐 텐데. 우리 교리를 뚫고 들어올 만큼 강력한 술식을 영창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을 테고.”
순식간에 전황이 뒤집힌 이 순간에도 태연하게 이쪽의 수작을 물어보는 아밀라 역시 제정신은 아니다.
“생체 전기에 손을 좀 댔다.”
레녹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품 안에서 호신용 권총을 꺼내 들었다.
반의 신분으로 들고 다니는 전용장비는 아니지만, 에반의 이름으로 다닐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한 물건이다.
철컥!!
슬라이드 형식의 간소한 피스톨. 장전을 마친 레녹이 그대로 총구를 쓰러진 사제의 머리통에 대고 한발씩 당겼다.
탕! 탕!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숨이 끊어지는 사제들의 모습.
아밀라 역시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고 있을 뿐, 오히려 그녀는 레녹의 대답이 더 궁금한 것처럼 보였다.
사제들을 다 죽일 때까지 시간을 벌 겸, 레녹 역시 순순히 입을 열었다.
어차피 지금 이곳에서 오랜 시간이 끌릴수록 유리한 것은 레녹이었다.
“정령의 마력공명 능력을 통해 강력한 전기장을 구축. 생체 전기에 간섭 가능한 전자기펄스를 일대에 흩뿌리는 거지. 신경계를 교란해서 감각에 혼선을 주기만 해도 성공이나 마찬가지다.”
순간 레녹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아밀라가 눈을 끔벅였다.
“인간의 감각을 뒤바꿔서 억지로 기절시켜 버렸다는 건가……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단순히 강력한 정령술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가능한 일은 결코 아니다.
체내 신경계와 생체 전류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그에 비견되는 강력한 전격 조작능력.
분야와 영역을 초월해 마력을 가지고 노는 수준이 전제가 되어야만 손이라도 대볼 수 있는 말을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있지 않은가.
마력으로 만들어진 전격을 인간의 생체 전기에 간섭할 수 있을 정도로 치환해 조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말할 필요도 없다.
단순히 마력의 성질변화를 거치는 정도가 아니라, 그 체계와 계통을 통째로 전환시키는 정도가 아니라면-
“너, 뭐 하는 놈이야.”
그제서야 눈앞의 마법사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실력자라는 것을 직감한 아밀라가 눈을 날카롭게 치떴다.
“단순히 머리좋은 연구자는 절대 아니……!!”
타앙!!
“귀도 교단이 어떤 식으로 자신들의 교리를 사람들에게 대충 주입시키는지는 알고 있다.”
그녀의 눈앞에 총을 쏴서 입을 틀어막은 레녹이 다른 말을 꺼내 들었다.
“스스로의 몸과 정신이 변형될 때까지 혹독하게 단련시켜 교리를 말 그대로 뼈에 새긴다지. 감각기관이 진작 맛이 가 있을 테고, 오히려 손을 대기는 쉬워지거든.”
탕!!
“광신으로 단단하게 무장한 그쪽의 정신을 직접 건드리는 것보다는 말이다.”
“…….”
별다른 마력도 사용하지 않고 총 한 자루로 열 명이 넘는 사제들을 싹 다 쏴 죽여 버린 레녹이 손을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턱!!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아밀라의 머리에 손을 얹고 그대로 마력을 끌어올렸다.
레녹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깨달은 아밀라가 히죽 웃었다.
“내 기억을 보려고? 소용없을걸.”
“아니, 가능해. 이미 그쪽 선교사를 상대로 한번 시도해 봤거든.”
“……뭐?”
웃음기가 싹 사라진 아밀라를 보며 레녹이 웃었다.
“굳이 너희들의 정신방벽을 뚫을 필요도 없어. 필요한 만큼의 자극을 전달해 정신을 몰아넣고, 그 상황에서 가장 명확하게 떠오르는 이미지를 관조하는 정도면 충분하지.”
“잠깐, 그렇다면 설마 윌터 마르티네스를 죽였던 게 바로……!!”
“시작하자.”
레녹이 괜히 다른 사제들을 제압한 뒤 하나씩 죽여 버리고, 아밀라를 사로잡았던 것이 아니다.
윌터 마르티네스를 상대할때 그의 심상을 읽어내 그가 숨어 있던 팔굉성채의 위치를 알아냈던 것처럼.
레녹은 이번에는 아밀라를 상대로 정확하게 똑같은 일을 시도하려 했던 것이다.
자색의 마안이 회전하는 것과 동시에 아밀라의 머릿속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의념.
교단의 교리로 만들어진 정신방벽을 지나 순식간에 그 기저에 도달한다.
새하얀 빛의 기둥 사이로 의식을 뻗는 것과 동시에 그녀의 기억에 접속, 그대로 데이터를 구현했다.
전뇌정령의 강력한 연산보조없이는 시도할 수 없는 기억 수복.
그 순간, 새하얀 궁전의 모습이 레녹의 눈앞에 펼쳐졌다.
파아아앗!!
* * *
철이 들던 무렵에 이미 그녀는 교단의 아이였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는 대신 교리를 익히고 적성을 확인한다.
매 분기마다 모습을 감추는 그녀의 친구들이 있었지만, 원장은 그들이 더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 말했을 뿐.
나이가 들고, 머리가 굳으며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상관없는 일이었다.
교단의 교리가 옳은가.
외해의 종말들은 정말 그들을 구원해 주러 다가오는 신인가.
우리의 낙원은 정말로 저 닫힌 하늘 저편에 있는가.
영민한 그녀는 그 모든 의문에 누구도 제대로 된 대답을 해줄 수 없을 걸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판단으로 교리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체화하기 시작했다.
결국 정답을 낼 수 없는 일이라면, 어느 쪽에 서야 할지 고르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니까.
그 생각이 무너진 것은 교단 100주년을 기념한 축제 당시, 교주를 직접 만난 다음의 일이었다.
수만 명의 신도들 사이에 섞여, 먼발치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었는데도 알 수 있었다.
새하얀 옷을 걸치고 만신전의 중심에 앉아 자애로운 눈길로 그들을 내려다보는 그 남자는, 틀림없이 그만한 숭배를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존재였다.
아마 그때부터 아밀라 베인저는 그 자리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에반이라고 했나요…….”
뚜둑.
의식이 끊겼다.
장대한 음악소리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행진.
아주 오래된 기억 속에서 지나간 일을 영화처럼 틀어두고 있을 뿐인 그 심상의 한복판에서.
그 기억의 일부여야 했을 교주가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반갑습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