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23
약먹는 천재마법사 623화
의문의 컨설턴트(1)
“심성관……?”
마우저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근 수십년간 마이스터 이외 장인을 들여보낸 적이 없는 그 비처에 소집을 내린다는 말이냐.”
“저도 어디까지나 들려오는 이야기만 전해주는 거라 확답은 드릴 수 없습니다만…….”
이버트가 곤란하다는 듯 말했지만, 레녹은 그 말을 들은 순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레녹이 마이스터 선발식에서 구세계의 마총, 테레메르의 종언을 정비하는데 성공한 뒤로 다른 마이스터들 역시 마총 정비를 시도해 보았을 터.
하지만 레녹과 달리 실패한 뒤, 아직 그가 밝히지 않은 사실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나머지를 들으려 하는 것이다.
레녹이 정말로 구세계의 유물을 정비할 수 있는 지식과 솜씨를 지니고 있는지.
선발식에서 보여주었던 것이 그냥 우연이 아니었는지를 확인하고 싶어 할 터.
심성관 같은 숨겨진 비처에 소집을 내린다는 것은, 그 사실을 다른 장인이나 외부에는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지만 레녹은 엑스 마키나의 소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도 그리 기뻐하지는 않았다.
‘소집을 통해 심성관에 내려가더라도 그 자리에서 마총을 훔쳐 나올 수는 없어.’
마이스터들 밖에 출입이 불가능한 심성관에 레녹이 방문한 시점에 마총이 사라진다면, 그 범인이 누구로 지목될지는 불을 보듯 뻔했다.
‘결국 소집이 열리는 일전 전후로 적당한 날짜를 잡아 혼자 직접 해저장벽 안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말인데…….’
다행히 아르마델타 합금 제조법을 손에 넣었으니, 공방에서 마우저의 도움을 받아 합금을 제조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터.
남은 것은 아직 이버트도 제대로 모르는 듯한 소집일자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계획을 짜는 것뿐이다.
“라이먼 장인. 소개가 늦었군요.”
레녹이 생각에 잠긴 사이 이버트는 꽤 정중한 태도로 레녹에게도 악수를 건넸다.
“암살범을 제압하기 위해 직접 손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누님을 위해 나서주셔서 무척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누님도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군요.”
“제가 아니라 경호원이 큰일을 했지요.”
“그분께도 의식을 되찾은 뒤에는 책임에 따른 보상을 할 예정입니다.”
그렇게 말한 이버트가 피어오르는 담배연기를 손으로 흩어 보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것보다도 이 사건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 같아서 걱정이 되는군요…….”
“나시사는 상급 공방지구의 관리자이자, 화덕진군의 공방을 물려받은 엘리트 마이스터였어.”
마우저가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만약 정말로 사이드스쿼드가 움직였다면, 그 범인은 같은 엑스 마키나의 위원들일 텐데.”
“그야 그렇습니다만…… 문제는 같은 전쟁망치 파벌 내부에서도 마이스터들의 관계가 그리 좋은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이버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규모가 큰 제작 업무나 사업을 따내기 위해 서로 견제하고 깎아내리는, 장인이 아니라 기업가에 가까운 마이스터들도 상당하죠.”
“…….”
같은 파벌 안에서도 나시사를 견제하기 위해 암살기도를 저지를 정도로 사이가 좋지 않은 마이스터들도 있다는 말인가.
기계도시 내부의 분열과 대립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건 레녹도 알고 있었지만, 설마 그 대상을 특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갈등이 격할 줄은 몰랐다.
“특히 라이먼. 당신은 조심하는 게 좋을 겁니다.”
이버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분 자체가 모호한 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요? 출신이 불분명한 장인이 선발식에서 주목을 받은 이상, 당신을 시기하는 장인들이 늘어날 거예요.”
“…….”
“당신의 공방을 상급 공방지구로 이전시켜준 것도 특권이라 생각할 겁니다. 다른 공방에도 당신을 고깝게 여기는 도제들이 많아요.”
출신이 불분명한 장인이 단기간에 이렇게 주목받고, 성장하는 것 자체를 견제하는 것.
레녹은 그 사실 자체를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선발식의 마지막 순간. 레녹이 구세계의 유물을 정비하겠다고 꺼내놓았던 그 순간 마이스터들이 보여주었던 표정을 기억하고 있다.
기특한 후배가 아니라, 견제하고 경계해야 할 경쟁자를 보는듯한 얼굴.
스승과 제자가 아니라, 대등해지면 가차 없이 밟아버리려 하는 본질을 언뜻 엿보았었기 때문이다.
온갖 인간군상들이 모인 거대도시와는 달리, 거의 모든 장인들이 같은 시장에서 같은 능력을 시험받고 있기 때문일까.
이런 종류의 견제와 경계심은 레녹으로서도 꽤 오랜만에 느껴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나시사 누님을 대신해서 상급 공방지구 관리자를 위임하고는 있지만, 누님의 결정을 대행하는 것 이외의 배려를 당신에게 해줄 수는 없을 겁니다.”
이버트 역시 나시사를 구해준 레녹을 배려해 주고 싶어도, 관리자를 대행하는 자기 앞가림을 하는 것조차 힘겨울 터.
레녹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죠.”
그 순간, 이버트의 등 뒤에 조용히 다가온 젊은 청년이 그의 귀에 대고 무어라 속삭였다.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듣고 있던 이버트가 황급히 고개를 돌리고 두 사람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가봐야 할 것 같군요.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나시사 누님의 간병은 저희 공방에서 책임지고 수행할 테니, 두 분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 바쁠 테니 조심히 들어가라.”
마우저가 손을 흔들고, 레녹도 간단히 묵례를 하려다 무심코 움직임을 멈췄다.
이버트에게 전언을 전해준 젊은 청년이, 레녹에게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나시사 공방의 도제로 보이는데, 레녹에 대한 평판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건 사실이었나.
“그쪽 장인분을 보니 이버트 장인이 한 말이 아예 틀리지는 않은 것 같군요.”
“예?”
화들짝 놀라 청년을 돌아보는 이버트를 보며, 레녹이 먼저 옥상 난간에서 몸을 떼고 마우저에게 고갯짓했다.
“저희도 이만 돌아가는 게 좋겠습니다.”
“…….”
쓴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키는 마우저와 함께, 레녹은 이버트를 두고 먼저 일어섰다.
공방 이전을 위해 이쪽도 미리 준비해야 할 일이 많다.
나시사를 상대로 벌어진 암살 기도로 인해 시간이 많이 늦어졌지만, 이전이 결정된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이었다.
* * *
마이스터 선발식이 끝난 직후.
마키나 중심지구 부촌에는 알 수 없는 괴담이 아무도 모를 만큼 은밀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달빛조차 비추지 않는 밤중에 나타나는 밤까마귀가 기계장벽으로 둘러싸인 하늘을 활강한다는 괴담.
놀라운 것은 그 괴소문을 의외로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일까.
“난 실제로 봤어. 그 괴물이 맨션 외벽을 종잇장처럼 쥐어뜯는 걸 봤다고.”
“온몸을 믿을 수 없을 만큼 기이하게 구부려서 사람이 지나다닐법한 복도 위를 비행하더군.”
“어떤 미친 장인이 그런 걸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조심하게. 발톱으로 인간의 육신을 찢어발기고도 남을 괴물이야.”
두려움 섞인 목소리로 두런두런 떠들며 밤거리 사이로 사라지는 행인들.
이 도시에 이유 없는 괴담이 없다 믿는 이들은 서둘러 귀가하고, 인적없는 공원에는 싸늘한 바람이 불어닥친다.
키 크고 마른 나무들 사이에 둘러싸인 낡은 벤치 아래서, 코트를 걸친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노인이 하나.
새하얀 머리가 부산스럽게 휘날리는 것도 정돈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기다리던 남자의 눈앞이 순간 새카맣게 변했다.
화악!!
“윽……!!”
노인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그 순간.
공원의 나무 사이에 내려앉은 거대한 밤까마귀가 아무런 말도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힌 표정으로 주저앉은 노인의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약속했던 정보는?”
“헉!!”
다시 벌떡 일어선 노인의 바로 옆에, 어느새 벤치에 걸터앉은 레녹이 손을 내밀었다.
“문서로 준비한 겁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주시죠.”
“……경시청에서 몰래 빼돌린 이번 암살미수 사건의 정황증거들일세.”
노인, 랭뮈어가 그제서야 떨리는 손으로 레녹에게 얇은 파일철 하나를 내밀었다.
레녹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파일을 펼쳐 훑어보기 시작했다.
랭뮈어는 밤까마귀의 눈치를 보며 슬쩍 다시 엉덩이를 붙이고 입을 열었다.
“나시사 솔머의 암살미수 사안이 워낙에 민감한 문제인지라, 이 사건을 손을 대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나도 겨우 줄을 물어다 구할 수 있었네.”
“그런 것 치고는 별로 의미 있는 내용은 없군요.”
“…….”
할 말을 잃어버린 랭뮈어의 눈앞에서 레녹이 빠르게 파일철을 속독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경호부서에 오랜기간 잠입 정황. 본래 군적은 특수전술대대 사이드스쿼드. 신원조사를 통해 발견된 건 막대한 돈이 가족명의 대포계좌로 입금되었다는 사실 하나뿐…… 이건 사실상 조사를 시작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엑스 마키나의 위원을 상대로 암살을 기도해, 성공 직전까지 간게 무려 수십 년 전의 일일세.”
랭뮈어가 대답했다.
“최근 마키나의 정세가 어지럽다고는 하나, 누구도 이렇게까지 손을 쓸 거라 생각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야. 경시청에서 조만간 곧 공식발표가 있을 거라 하더군.”
“…….”
레녹이 입을 다물자, 오히려 더욱 긴장한 기색으로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위원의 모습.
레녹은 그런 랭뮈어의 반응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그 자리에서 생각에 잠겼다.
‘나시사 솔머의 암살사건을 어디까지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군…….’
랭뮈어에게 암살사건의 정보를 요구한 건 나시사를 대신해 복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다만 나시사 솔머가 기계도시 최고의 장인이라 불렸던 화덕진군의 제자로서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면.
그녀가 암살시도에 휘말린 것 자체가 화덕진군이라는 존재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
그리고 기계도시 최고의 장인이라 불렸던 화덕진군이라면, 틀림없이 승천문 프로젝트와도 관련 있는 존재가 아니겠는가.
레녹은 카이세의 비밀을 추적하는 것과는 별개로, 이번 사건이 승천문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레녹 하나만이 아닐거라는 사실.
결정을 내린 레녹이 파일철을 돌려주며 말했다.
“나시사 솔머의 암살사건에 대한 정보는 당분간 가져오지 않아도 좋습니다.”
“후, 후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랭뮈어를 보며 레녹이 물었다.
“설계도면에 대해서는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일단 기계머리 파벌의 다른 위원들에게도 자네가 건네준 설계도면 파일을 공유했네. 내 기준에서는 하나같이 믿을 수 있는 자들이야.”
랭뮈어가 대답했다.
“중심지구 내부 구조물. 그것도 은밀하게 숨겨진 비밀공간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네. 다만 해당 설계도면을 직접 보았거나, 알고 있는 이들은 아직 찾지 못했어.”
“…….”
기계머리 파벌은 대부분 학자 출신으로 시작해 엑스 마키나의 위원에 오른 지식인 집단.
그만큼 상대적으로 다른 파벌에 비해 연구분야가 넓어 가닥을 잡아줄 줄 알았는데, 마냥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다른 파벌의 위원들에게도 자문을 구해야겠군요.”
“다, 다른 파벌……?”
살짝 놀란 기색으로 랭뮈어가 물었다.
“강철심장이나 전쟁망치의 위원들은 이쪽 지구에 거주하지 않네. 그들이 모여사는 구역까지 향하려면 반드시 상급 공방지구를 거쳐야 하지.”
“……그렇습니까?”
“그래. 사실상 상급 공방지구가 엑스 마키나 위원들의 거주지를 교차해 경유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상급 공방지구라…….”
일이 이렇게 된 이상 레녹에게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해야 할까.
랭뮈어는 그런 레녹의 반응을 읽어내지 못하고 계속해서 말했다.
“나야 선발식의 과오에 책임을 지고 있다지만, 다른 위원들은 달라. 그들이 자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이유는 어디에도-”
후욱!!
거센 바람이 불고, 어느새 레녹과 밤까마귀의 형상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레녹이 앉아 있던 벤치 바로 옆에, 마치 거대한 발톱으로 짓뭉갠듯한 섬뜩한 흉터자국이 남아 있었을 뿐.
새파래진 안색으로 말없이 그것을 바라보던 랭뮈어가, 한숨을 푹 내쉬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공원 바깥에 대기시켜둔 수행원이 올 때까지는, 이 차가운 공원에서 혼자 버텨야 했다.
* * *
공방을 상급 지구로 이전하는 일은 꽤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레녹의 공방이 들어설 위치는 물론이고, 이사업체와 고용직원들의 인건비까지 모두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
나시사가 애초에 레녹의 공방을 방문하기 전에 관련 업무를 모조리 끝내두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꼼꼼하다 못해 치밀한 사람이었군요.”
“그런 면모가 장인 일을 할 때도 돋보일 만큼 재능 있는 녀석이라, 스승님도 적지 않게 예뻐했었지.”
굵직한 냉장고를 어깨 한쪽에 얹고 번쩍 짊어진 마우저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현장에서 은퇴한지 시간이 꽤 흐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근력은 여전해 어지간한 인부들보다 몇 배에 달하는 작업량을 소화하고 있었다.
“공방 일 뿐만 아니라 엑스 마키나에서도 이런 저런 업무들을 다방면으로 소화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럼 나시사 장인이 혼수상태인 지금 여러가지 업무들이 마비될 가능성이 무척 높다는 의미 아닙니까?”
“……이버트가 관리인 자리를 대행한다고 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
긍정적인 소식은 아닌만큼, 레녹은 입을 다물고 인부들을 도와 공방 내부에 작업대와 장비 거치대 위치를 정하고, 창고와 내부 시설 이전을 도왔다.
이전에 마우저의 명의를 빌려 사용한 공방보다 무려 세배는 더 넓고, 화로의 크기는 네 배 더 큰 거대한 공동.
매끈한 페인트와 깔끔한 파이프들이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는 공방의 풍경은 장인이 아닌 레녹의 마음까지 차분하게 만들었다.
“후후, 그래도 이렇게 이사를 오고 나니 또 묘한 기분이 드는 것도…….”
마우저 역시 이렇게 넓은 공방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뿌듯했는지, 희미하게 미소를 짓다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막상 이 깔끔한 공방으로 이전을 시켜준 나시사를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공방 예약 어플의 관리 메뉴를 통해 이전 사실을 공지를 해두었습니다. 저번에 예약을 받아놓고 일을 처리하지 못한 손님이 있으니 일단 그쪽부터 해결하고, 차례대로 공방을 오픈하는 게…….”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을 다비의 마력과 다시 연동시켜 놓으려고 들어 올린 순간.
쾅!!
한 점의 먼지도 묻어 있지 않던 공방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바깥에서 먼지를 풀풀 뿜어냈다.
인상을 찌푸린 마우저를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온 것은, 고집스러운 인상의 중년 남성.
맡길 장비나 짐은 커녕, 양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가벼운 차림새가 눈에 띈다.
그는 마우저를 깔끔하게 무시하고 레녹의 앞까지 걸어와, 곧바로 입을 열었다.
“네가 라이먼이라는 놈이냐?”
“…….”
레녹이 대답하지 않은 채 물끄러미 남자를 바라보자, 마우저가 얼굴을 확 구긴 채로 먼저 나섰다.
“이봐. 누가 노크도 없이 그따위로 문을 두들기고 들어오라고 했지?”
쿵!!
작업대 근처에서 망치를 쥐고 강하게 내리치자, 그제서야 중년 남성도 살짝 놀란 기색으로 마우저를 돌아보았다.
뒤늦게 그의 손에 들린 단단한 망치를 확인한 중년 남성이 그제서야 한발 뒤로 물러나,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니…… 난 이쪽 공방이 오늘부터 독특한 사업을 시작했다고 하길래, 한 번 일을 맡겨볼 생각으로 왔지.”
“……독특한 사업?”
마우저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레녹을 돌아보았다.
레녹은 말없이 남자의 행색을 위아래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상급 공방지구에서 사업하는 장인이신 것 같은데, 제게 무슨 일을 맡기신다는 말입니까?”
“엥? 이 녀석이 상급 공방지구에서 일하는 장인이라고?”
오히려 레녹의 말에 마우저가 놀란 듯 눈썹을 크게 꿈틀거렸다.
남자 역시 대뜸 그런 대답을 들을 줄은 몰랐는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레녹을 돌아보았다.
“난 아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방금 전까지 땀을 흘리다 찬 바람을 쐬어서 모공이 꽉 닫혀 있고, 목 위로 보이는 피부색이 크게 다릅니다. 화로 같은 열원 앞에 오래 서 있었다는 증거지요.”
“흐, 흐음…….”
쿵!!
들고 있던 작은 박스를 힘겹게 작업대 위에 내려놓고 땀을 닦아낸 레녹이 돌아서며 말했다.
“하물며 저희 공방에 대한 소식을 하루만에 듣고 찾아올 정도로 귀가 밝다면, 동업자라고 생각하지 않는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니겠습니까?”
“…….”
“호오, 그랬구먼. 듣고보니 하나같이 다 들어맞아.”
기묘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 장인을 두고 마우저가 흥미롭다는 듯 턱수염을 쓰다듬었다.
마우저는 그런 남자를 무시하고 레녹에게 역으로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럼 왜 상급 공방에서 일하는 장인이 자네에게 일을 맡기러 온 걸까?”
“일을 맡겨볼 생각으로 왔다고 하면서도, 정작 수중에는 아무런 장비나 물건도 들고 오지 않았습니다.”
레녹이 작업대 위에 걸터 앉은 채로 대답했다.
마우저가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 물었다.
“맡겨야 할 물건이 운반이 불가능할 만큼 크기 때문인가?”
“아뇨.”
레녹이 부정하자 마우저가 머쓱하게 뺨을 긁적였다.
“상급 공방에서 다뤄야 할 만큼 취급이 중요하면서도 크기가 큰 물건이라면, 대형 공장의 핵심 설비 같은 중요한 사업체의 물건일 겁니다. 그런 중요한 거래물품을 저희처럼 막 올라온 장인들에게 맡길 리는 없겠죠.”
“그렇다면?”
“독특한 사업이라고 언급하지 않았습니까?”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턱을 매만지던 레녹이 중얼거렸다.
“저희는 그에 대해 일체 언급한 적이 없었으니, 이건 틀림없이 나시사 장인이 미리 조치해둔 결과물일 테고, 그때 제가 그분에게 보여드린 결과물에 대해 생각해 보면…….”
나시사는 레녹이 어떤 식으로 공방에서 일을 했고, 선발식에서 성과를 냈는지 알고 그를 찾아와 레녹을 시험했다.
그 과정에서 레녹에게 상급 공방지구 이전을 통보하고 어떤 일을 맡기려 했다면, 아마 틀림없이…….
머릿속에서 빠르게 퍼즐을 끼워맞춘 레녹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장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컨설팅. 굳이 따지자면 공방 운영을 비롯한 사업 전반에 대한 상담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겠죠. 맞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