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629
약먹는 천재마법사 629화
설계자(2)
엘라바 아터마이어.
레녹은 그 이름을 듣자마자 어째서 이버트가 엘라바를 데려온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라이먼 장인. 괜찮습니까?”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빠르게 생각을 정리한 레녹이 이버트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야기부터 들어보죠. 심성관 소집을 위해 엘라바 장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상부에서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이버트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수십 년 만에 외부인을 대상으로 심성관 개방 허가가 내려졌고, 일전에 설명을 드린대로 라이먼 장인이 소집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그 과정에서 외부인 출입을 허가하기 위해 엘라바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때문에 이번에 소집이 될 장인들에게 그녀를 소개시켜 주고 있습니다.”
쭈뼛거리며 서 있던 엘라바를 돌아본 이버트가 말했다.
“그런데 라이먼 장인의 소문을 들은 엘라바가 이번 일을 기회로 삼아 도움을 요청한 것이지요.”
“원래는 장비를 제작하는 야금술을 배우려 했는데, 여러 공방에서 제가 습관이 잘못 들어 있어 같이 일하기 어렵다고…….”
가만히 듣고 있던 엘라바가 설명이 필요하다 느꼈는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이 대규모로 철을 다루는 공장형 공방에서 일하기는 했지만, 원한다면 이버트 님이 도와주시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소개를 받고 제 공방을 찾아오셨다는 말이군요.”
“잠시만 기다려보게나.”
그 순간, 아무런 말도 없이 듣고만 있던 마우저가 대뜸 레녹의 어깨를 잡고 공방 한쪽 구석으로 데려갔다.
“반, 할 수 있겠나?”
마우저가 엘라바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작게 속삭였다.
“자네에게 찾아올 수 있는 손님들 중에서도 가장 난해한 유형일세.”
“……아마 그렇겠지요.”
인간의 신체와 관절의 가동범위는 태어나면서부터 그 한계가 정해져 있고, 자신에게 최적화된 동작을 찾아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상적인 동선과 신체조건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습관과 경험의 역할이고, 한번 굳어지면 바꾸기도 어려운 것.
습관을 교정해 달라는 것이 얼마나 막연한 일인지 마우저는 뛰어난 장인으로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우연히 이버트에게 연줄이 닿아 겨우 소개받고 온 모양인데, 굳이 받아줄 필요는 없어.”
마우저가 살짝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쓸데없이 손을 댔다가 상태가 더 나빠지면 괜히 덤터기를 쓰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레녹은 그런 마우저의 말을 이해하면서도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한 번 확인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반……!!”
엘라바 아터마이어. 그 이름이 지금 이 시점에 나타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레녹은 지금 이 공방을 찾아온 손님이, 틀림없이 승천문을 설계한 장인의 후예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헌이나 자료,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도 어떤 흔적도 없던 그 이름이 이 시점에 나타난 이유.
심성관에 소집을 내리기 위해 엘라바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인지.
레녹은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그녀를 도와주는 일을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마우저에게 대놓고 설명하고 설득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레녹은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판단을 마우저에게 납득시키기로 했다.
“이거, 퇴직금이 아닙니다. 잘 보세요.”
“엥?”
눈을 동그랗게 뜬 마우저의 눈에 레녹이 쥐고 있던 종이봉투 안쪽 지폐를 꺼내 보여주었다.
“발행일자가 족히 20년은 된 지폐입니다. 그런데도 보관상태가 굉장히 좋고 빳빳하게 펴져 있죠. 어떤 공방에서 이런 돈을 현찰로 보관하고 있다 퇴직하는 장인에게 쥐여주겠습니까?”
“…….”
“공방을 직접 차리는데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를 리가 없을 텐데도 저런 말을 자연스럽게 하죠. 하물며 여러 공방에서 습관을 핑계로 거절을 당했는데도 화로 앞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요.”
“……뒷배가 있다는 말이군. 하지만 이 도시에서 수십 년을 넘게 살면서 아터마이어라는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어.”
마우저가 미간을 찌푸렸다.
“확실한 건가?”
“글쎄요…….”
확실한 걸로 치자면, 아마 기계도시 전역을 통틀어서도 가장 확실한 이름이 아닐까.
하지만 레녹은 그 말을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고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 부분은 제가 어떻게 잘 조절해 보겠습니다.”
돌아서서 작업대 쪽으로 움직인 레녹이 긴장한 엘라바의 면면을 천천히 주시했다.
“일단 평소 공방에서 어떻게 일을 하셨는지 보고 싶군요. 괜찮겠습니까?”
“아, 넵. 물론이죠.”
레녹이 가만히 턱을 매만지다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호신용 권총을 만들어보는 걸로 하죠. 물론 100% 수제작이어야 합니다.”
권총에 들어가는 부품들은 그 종류와 크기가 다양한 만큼, 야금술 실력을 가늠해 보기 좋다.
특히 수제작 호신용 권총은 기계도시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물건들 중 하나인 만큼, 공방에서도 장인들을 시험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
엘라바 역시 호신용 권총의 제작 방법에 대해서는 알고 있는지, 스스럼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힘차게 대꾸한 엘라바가 곧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화로에 가져다대고 쇠를 녹이고, 이어붙이면서 끊임없이 두들겨 부품의 형상을 만든다.
그라인더를 통해 세세한 부분을 잘라내고 다듬어 조립한 뒤, 기름칠을 한 뒤 탄환을 장전.
그렇게 장전이 끝난 권총의 손잡이 부분을 작업대 끝에 향하도록 거꾸로 내려놓는 것까지가 한 사이클.
레녹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일하는 엘라바의 모습을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끼어들지 않을거라고 말했던 마우저까지 꽤 흥미로운 기색으로 그녀를 관찰하고 있을 정도.
“후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달아오른 철을 식히고, 남은 부품들을 조립해 넣던 엘라바가 시선을 돌렸다.
“집중력은 나쁘지 않군. 작업하는 동안에는 주변의 풍경이 보이지 않아야 정상이지.”
마우저가 옆에서 훈수를 하듯 거들었다.
엘라바는 그 말에 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권총 부품들을 순서대로 조립해 넣었다.
모름지기 뛰어난 장인이라면 설계도와 부품 도면에 기대지 않고서도 장비의 조립 순서와 원리를 파악해낼 수 있어야 한다.
작업대 위에서 언제나 정해진 부품이나 장비만을 다루고 정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
엘라바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는지 도면을 참조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권총 부품들을 끼워 맞추었다.
찰칵!!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완성된 권총에 탄환을 한발 장전하고, 손잡이를 거꾸로 돌려 레녹의 앞에 내려놓는다.
“…….”
레녹은 그 권총을 곧바로 집어들고 살피는 대신, 가만히 침묵했다.
마우저가 대신 레녹을 돌아보며 먼저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내가 먼저 해도 되겠나?”
허락을 기다리지 않고 마우저가 냉정한 눈길로 엘라바를 돌아보았다.
“미안하지만 다른 공방에서 오래 머물지 못했던 이유를 알 것 같군.”
냉정한 마우저의 목소리에 엘라바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힘조절도, 박자감도, 균형도 미묘하게 간극이 어긋나 있어. 철을 두들기려면 리듬이 중요한데, 그쪽으로는 아예 감을 잡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군.”
“…….”
엘라바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마우저는 그런 엘라바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고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디자인, 설계능력, 겉으로 보이는 것들은 경험을 통해 다듬을 수 있다. 정 어렵다면 외주를 맡겨도 되지. 하지만 철을 만지는 것 만큼은 스스로 해내야 해.”
“흠흠.”
정작 아직까지도 철을 만지는 일에 대해서는 초입에 가까운 레녹이 말없이 헛기침을 했을 뿐.
마우저는 침묵하는 엘라바를 보며 혀를 쯧쯧 찼다.
“자질이 없다고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여러 공방에서 그 비슷한 문제를 지적받았을텐데도 아직 고치지 못했다면, 좋은 소리를 듣기는 어려웠겠지.”
무어라 말하지 못하는 엘라바를 대신해, 레녹은 그녀가 내려놓은 총을 집어들었다.
“무르군요.”
“……네?”
“하지만 어느쪽은 또 굉장히 단단합니다.”
엘라바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레녹이 말했다.
“탄창을 수납하는 카트리지의 강도가 일정하지 않습니다. 마우저 장인의 말대로, 작업과정에서 힘 조절이 되지 않는다는 증거죠.”
“……”
어두운 표정으로 동의하는 엘라바를 보며 레녹이 가만히 권총의 표면을 두들겼다.
“하지만 반대로 권총의 외형과 이음새는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외형만큼은 흠잡을 곳이 없어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나요?”
“아뇨……?”
“힘조절과는 별개로, 철을 식히고 굳혀 조형하는 온도 조절은 아주 정확하게 해내고 있습니다. 또한 부품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손재주 자체는 탁월하다는 뜻이기도 하죠.”
“자, 장인님…….”
“손재주가 좋고 오감이 예민한데, 정작 철을 두들기는 감각과 힘조절에 미숙하다니 이상하지 않습니까?”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권총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쳤다.
“오감이 예민하다는 것은 신체를 인지하고 통제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는 것. 그럼에도 감각과 힘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어색하죠.”
망치를 꾹 움켜쥔 엘라바를 향해 레녹이 말했다.
“엘라바 장인이 지닌 신체조건 자체는 굉장히 우수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완전히 다른 곳에 있지요.”
“……예?”
대답 대신 총을 들어올린 레녹이 공방 한쪽 구석에 놓인 과녁을 향해 탄환을 발사.
타앙!!
요란한 총소리와 함께 뛰쳐나간 탄환이, 과녁을 한참 빗나간 벽면 오른쪽 구석에 처박혔다.
“한발 더 쏴볼까요?”
레녹이 곧바로 탄환을 하나 더 꺼내 호신용 권총에 장전한 뒤, 똑같이 과녁에 겨누고 말했다.
“이번에는 왼쪽 하단 구석으로 갈 겁니다.”
타앙!!
그 말대로 과녁을 정확하게 노리고 쏘았는데도, 벽면 왼쪽 구석에 구멍을 내버리는 탄환의 형상.
마우저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기껏 인가받은 공방에 벌써부터 총알자국이…… 나시사가 나중에라도 알면 기함을 하겠군.”
레녹은 그런 마우저의 중얼거림을 무시하고 재차 입을 열었다.
“힘이 한쪽으로 쏠렸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강하게 굳혔어야 할 총열이 무너져 사격을 시도할 때마다 총열이 비틀리고 있는 거죠.”
“그, 그러면…….”
“강하게 두들기는 부품은 붕괴되고, 힘이 필요 없는 접합부는 완성도가 상당하다. 이건 힘조절을 못한다거나, 감각이 부족하다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레녹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구체적으로 연원을 짚어내기는 어렵지만, 이건 아마 감각보다는 선천적인 체질의 문제에 가까워 보이는군요.”
공방 안이 조용한 침묵에 잠겼다.
엘라바가 어안이 벙벙한 기색으로 물었다.
“저, 그런 이상한 체질이 저한테 있었다는 말인가요……?”
“혹시 어릴 때부터 남들에 비해 식습관이나 생활패턴 자체가 다르지 않았습니까?”
“마, 맞아요!!”
엘라바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채소가 싫고 고기만 좋아해서……!!”
“그건 그냥 편식을 하고 있던 게 아니었을지…….”
황당하다는 마우저의 중얼거림에 이제까지 아무런 말 없이 물러나 있던 이버트가 물었다.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아뇨.”
레녹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의사가 아닌 만큼, 체질의 문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섣불리 손을 댔다가 큰일이 날 수도 있을 것 같군요.”
“그렇습니까…….”
“일단 좋은 병원에 데려가서 상태를 확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그렇지 않습니까, 마우저 장인?”
레녹의 눈짓을 받은 마우저가, 뒤늦게 그 말에 숨겨진 의도를 깨닫고 어정쩡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 어…… 어. 그렇지. 상급 공방지구 근처에 규모가 큰 종합병원이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
“아, 그렇죠. 나시사 누님을 뵈러 간 자리에서 같이 만나지 않으셨습니까.”
“그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잠깐 밖으로 나가지 않겠냐?”
“예?”
“스승님과 나시사의 건강에 대한 이야기야.”
“…….”
화덕진군의 공방에서 일했던 이버트에게는 흘려들을 수 없는 화제.
진지한 마우저의 말에 이버트의 표정 역시 살짝 굳었다.
“알겠습니다. 잠깐이라면…….”
“천천히 처리하시죠.”
레녹은 그렇게 말한 뒤, 마우저와 이버트가 공방을 나서자마자 엘라바를 향해 시선을 홱 돌렸다.
당황한 기색의 엘라바를 보며 레녹이 빠르게 물었다.
“엘라바 장인. 자신의 문제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까?”
“……네?”
“지금부터 할 일에 대해 일체 발설하지 않겠다 맹세한다면, 당신을 도와드리겠습니다.”
레녹의 담담한 말에 엘라바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혈육이 없는 제게 공방의 장인들은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어요.”
“…….”
“공방에서 어엿한 장인으로 일하고 싶어요. 만약 할 수 있다면……!!”
“좋습니다.”
레녹은 그렇게 말한 뒤 벌떡 일어나 공방 문을 꽉 닫았다.
차르르륵!!
동시에 공방 창문에 두꺼운 커튼을 치고,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게 막아버린다.
삽시간에 어두워진 공방 안쪽 공간의 모습에 엘라바가 눈을 끔벅거리며 레녹을 돌아보았다.
“지금 뭘 하시는 건가요……?”
레녹은 대답하기에 앞서 작업대 한쪽에서 빠르게 전선과 앰플, 진통제를 비롯한 여러가지 도구들을 꺼내 작업대 위에 바지런히 늘어놓았다.
“사실 엘라바의 문제는 체질 쪽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체적인 조건이나 근력만 본다면, 장인으로서 작업을 못할 수가 없을 정도지요.”
그녀가 호신용 권총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하는 모습을 레녹은 주의깊게 눈여겨보았다.
다양한 초인들과 일선에서 싸우며 그들의 동선과 균형을 관찰하고, 또 모방하려 노력해 왔던 레녹은 인간의 신체적인 균형과 골격에 대해 이제 꽤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근력의 발현, 자세를 잡는 과정에서 보이는 균형감각이나 악력은 흠잡을데가 없습니다. 오히려 인위적으로 조형된 결과물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예요.”
육체적 재능과 정신적 재능. 이 두가지가 모두 갖춰져야만 반드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둘 중 하나만 상한선을 초과하더라도 대부분의 상황에서 평균 이상의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은 당연한 일.
그렇기에 엘라바의 신체조건과 자질을 생각했을 때, 지금처럼 형편없는 결과가 나온다는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신체가 아닌 정신의 문제. 그것도 엘라바가 지닌 장인으로서의 재능을 가로막을 정도로 큰 무언가가 있습니다.”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전선을 들어 자신의 손목 안쪽에 푹 꽂아 넣었다.
인공 피부 아래 숨겨진 레녹의 티켓과 연결되어 희미한 전류를 내뿜는 모습.
전선 반대쪽을 엘라바의 손목 끝에 가져다 대며 레녹이 말했다.
“재능을 가릴 정도의 정신적인 문제. 인간의 그릇 자체에 간섭할 수 있는 건 기아스 같은 강력한 금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죠.”
“기, 기아스라고요?”
엘라바 역시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달리 말하자면 장인의 재능을 억누르는 것을 대가로 해야 할 만큼, 엘라바의 정신 안에 숨겨야 할 만큼 중요한 기억이나 정보가 있다는 의미.”
레녹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났다.
“이런 조치 자체가 평범한 인간이라면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말에 여태껏 황망한 표정으로 레녹의 말을 듣고 있던 엘라바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제, 제가 평범하지 않다는 말인가요…….”
“지금부터 그걸 제대로 확인해 봐야겠지요.”
물론 말은 이렇게 했지만, 레녹은 엘라바가 평범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쯤 확신하고 있었다.
‘기억과 정신에 간섭하는 기아스. 감각이 망가지고 어긋날 정도로 강력한 금제. 모두 평범한 인간의 정신으로는 버텨낼 수 있는 힘이 아니야.’
이곳이 마도공학의 정점에 달한 기계도시라는 걸 생각하면, 엘라바 아터마이어는 승천문 설계자의 혈족.
혹은 설계자 아터마이어의 손이 직접 닿은 존재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그녀가 지닌 재능을 억누르면서까지 숨겨둔 기억과 정보는, 틀림없이 승천문과 관련된 비밀일 터.
‘이버트는 심성관에 외부인을 출입시키기 위해 엘라바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엘라바의 티켓에 커넥터를 연결한 레녹의 눈동자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승천문 설계자의 핏줄이 심성관을 개방하는 데 필요하다는 건, 그 두 가지 개념 사이에 강한 연관성이 있다는 의미.’
구세계의 유물을 비롯한 보구들이 보관되어 있는 심성관과 마키나 지고의 프로젝트로 불렸으나 실패한 승천문.
그 두 가지 개념이 크게 다르지 않고, 서로 얽혀있다는 것은 이 시점에서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미 어떻게 해야 할지는 전부 생각해 두었다.
레녹과 엘라바의 티켓을 연결한 뒤, 그를 매개로 삼아 엘라바의 정신을 외부에서 직접 관조한다.
그를 통해 인위적으로 기아스를 해제하고, 그 너머에 숨겨진 아터마이어의 기억과 정보를 뽑아내는 것.
레녹은 망설이지 않고 두 사람의 손목을 연결한 전선 사이에 마력을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