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743
약먹는 천재마법사 743화
저공비행(11)
“이 개자식이…… 당장 비켜!!”
질리언이 목덜미에 주사기가 꽂힌 채로 격렬하게 어깨를 비틀었다.
“어라, 엉덩이가 아니라 목에 꽂아버렸네. 그래도 뭐 상관은 없겠죠~”
하지만 광대는 그런 질리언을 보며 낄낄 웃다가, 한 발로 어깨를 밟아 그를 돌더미 사이에 처박아 버렸다.
콰앙!!
“카학……!!”
아까와는 달리 고통스러운 기색으로 숨을 토해내는 대공의 모습.
광대의 옆에서 걸어 나온 레녹이 그런 질리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소우주를 극한으로 전개한 직후 취소해버렸으니, 그 반동도 상당하겠지. 당분간은 마력도 사용하기 어려울 거다.”
“조작술사……!!”
“네가 사용하는 거인화 능력은 그 전개 속도와 폭발력에 중점이 맞춰져 있더군.”
실타래로 뒤덮인 마력사의 바다 아래서 가면을 고쳐 쓴 레녹이 말했다.
“그건 네가 소우주를 완전히 전개하지 않고, 부분적으로 나눠서 휘두르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그렇다면 심상을 극한까지 끌어낸 뒤, 강제로 취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면 그만이다.”
레녹이 질리언의 소우주 능력에서 가장 주목했던 것은 바로 그 거인화를 시전하는 속도와 폭발력에 있다.
스스로의 몸을 확장시키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고 기민했던 전개속도.
그를 통해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며 자유롭게 소우주를 휘두르는 질리언의 전투능력.
하지만 레녹은 그것이 질리언이 소우주를 완전히 전개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전개해 반동을 최소화한 결과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질리언이 완전 거인화를 사용해 자신의 뒤를 추적해올 상황으로 만든 뒤.
아그네타가 선물해준 실고치를 사용해 마력사를 대량으로 방사.
미리 조작해 둔 시체거인들과 통채로 묶어, 거인화를 한 상태로는 결코 빠져나갈 수 없게 그 신형을 묶어버린 것.
그렇기에 질리언은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반동을 감수하고 소우주를 강제로 거둬들였지만.
광대는 그 반동이 심해지는 잠깐의 틈을 타 그대로 질리언을 제압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죽이 꽤 잘 맞지 않습니까?”
“입에 떠먹여 줬더니 판단을 못 하는군. 착각하지 마.”
“넙죽넙죽 잘 받아먹는 것도 능력이랍니다.”
레녹이 질리언과 직접 상대하며 감을 잡은 소우주의 허점과 그 찰나의 빈틈을 설명을 듣지 않고도 파고든 광대의 기민함.
피오와 지오가 전투에 끼어들기도 어려울 만큼 공방을 격렬하게 가속시킨 뒤.
질리언의 사고를 찰나의 순간 원하는 대로 유도해 순식간에 원하는 간극을 움켜쥔 전투 수행 능력까지.
그 와중에 아그네타의 마력사를 대량으로 방사시켜 주변의 방해까지 막아내는 그 모든 판단에 일말의 오차조차 없다.
“빌어먹을…… 이런 건 안 돼!!”
“피오, 가자!!”
쌍둥이가 뒤늦게 마력사의 바다를 헤치고 제압당한 질리언을 구해냈지만, 혈액 추출을 마친 레녹과 광대는 순순히 질리언에게 물러섰다.
이미 혈액 추출을 마친 레녹과 광대는 순순히 질리언에게 물러섰다.
광대에게 질리언의 피가 담긴 앰플을 받아든 레녹이 그 혈액을 유적지에서 습득한 열쇠에 발라 넣었다.
사아악……!!
열쇠의 겉면에 어려 있던 저주가, 질리언의 피를 바르자마자 중화되어 사라지는 모습.
자이로의 함궤에 열쇠가 정상적으로 꽂히는 것까지 확인한 레녹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대상의 혈액으로 중화시키는 게 방법이었나. 나쁘지 않군.”
원래는 좀 더 시간을 끌며 버틸 생각이었지만, 광대의 도움으로 질리언을 빠르게 제압하며 일이 잘 풀렸다.
열쇠에 걸려 있던 저주는 해제하는 데 성공했으니, 남은 것은 이곳에서 무사히 탈출하는 일뿐.
그렇게 생각한 레녹이 성채 바깥을 향해 시선을 돌린 그 순간, 하늘에서 붉은 장막이 사방으로 내리꽂혔다.
파아아아앗!!
마치 성채 바깥으로 나가는 것을 틀어막듯이, 반쯤 무너진 폐허를 휘감고 통행을 차단하는 장막의 형상.
그 술식의 진원지를 파악한 레녹이, 무너진 폐허 층계 저편에서 숨을 씩씩대는 6왕자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죽여 버리겠어!!”
“어라, 벌써 환술에서 깨어난 모양이네요.”
광대가 머쓱한 기색으로 뺨을 긁적였다.
“급조한 환술이라 생각보다 약빨이 약했나 봅니다. 아니면 저쪽의 술식저항이 생각보다 강했을지도?”
카바힘의 왕족 출신이자이자, 주문연맹의 사절로서 거인의 성채를 찾아온 존재.
재떨이를 던져 얼굴을 박살 낸 뒤 성채 알현실 벽에 걸어두었는데, 그사이에 의식을 회복하고 뛰쳐나온 것인가.
“변명은 됐다. 내 볼일은 끝났어. 넌 어떻게 할 거지?”
“어…… 죄송하지만 잠깐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눈을 뒤룩뒤룩 굴리던 광대가 멋쩍은 표정으로 질리언의 피가 담긴 앰플을 들어 올렸다.
“일단 여기서 바로 가공을 끝내고 표본을 추출해야 하거든요.”
“…….”
“이것만 끝나면 지금보다 훨씬 안전하고 사이좋게 탈출을 도모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레녹이 대답하지 않자, 광대가 딴청을 피우면서 슬쩍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성채 폐허 돌담 사이로 숨으면서 혈청을 만지작거리는 광대의 모습.
“아, 제가 잠깐 집중하는 사이 든든하게 등을 지켜줄 멋지고 실력 있는 조작술사 한 명 어디 없나~”
“행운을 빌지.”
“어, 어디 없나~~!!!”
광대의 절규를 뒤로 한 레녹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점멸을 난사해 성채 바깥으로 탈출하려던 그 순간.
6왕자는 레녹을 보며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이내 품 안에서 무언가를 휙 잡아 뜯었다.
화려한 장식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목걸이.
목걸이의 날카로운 끝단을 마치 단검처럼 제 가슴에 그대로 박아넣는다.
푹!!
“끄악……!! 아악!!”
이상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하며 온 몸을 비트는 6왕자의 모습.
하지만 그러면서도 제 가슴에 찔러넣은 목걸이를 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다.
레녹이 그 목걸이의 능력보다도, 6왕자가 시도한 그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음을 깨달은 순간.
하늘 위로 펼쳐진 붉은 장막이, 순식간에 한 곳으로 수렴해 중첩되기 시작했다.
화악!!
어두운 극장 아래 조명이 비추는 것처럼, 구름에 가려진 하늘 저편에서 정확하게 내리꽂히는 빛의 형상.
피눈물을 흘리며 목걸이를 쥐고 있던 6왕자가 멍하니 시선을 하늘 위로 들어 올린 그 순간.
하늘 위에서 떨어져내린 희끄무레한 형체가, 순식간에 6왕자의 몸 위에 내리꽂혔다.
파아앗!!
“끄아아아악!!”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비트는 6왕자의 모습.
무언가 하려는 것은 확실하지만, 굳이 저 술식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려줄 필요는 없다.
레녹이 일말의 지체도 없이 곧바로 도망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린 그 순간.
허공에서 밀집된 붉은 광채가 레녹이 서 있는 자리를 향해 정확하게 쏘아졌다.
콰아아앙!!
레녹조차 점멸로 겨우 반응해야 할만큼 엄청난 속도.
마력사를 조작해 간신히 균형을 잡은 레녹이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사방으로 스산하게 퍼져나간 붉은 안개 사이로, 소름 끼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참 지저분하고 시끄러운 곳이구려.]고통에 몸부림치며, 그제서야 가슴에 박힌 목걸이를 힘겹게 빼내는 6왕자의 모습.
그런 6왕자의 앞에 내려선 누군가 그의 머리를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그러니까 주문결속을 사용할 때는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말하지 않았소이까.]“끄, 으읍……!!”
뒷짐을 진 채로 주변을 빙 둘러본 그가 흐뭇하게 중얼거렸다.
[이렇게 재미있는 판에 끼어들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지. 나중에 톡톡히 사례하겠소.]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온 존재의 모습을, 레녹은 그제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이를 알 수 없는 외견에, 호리호리한 체격.
장소에 걸맞지 않는 단정한 차림. 콧잔등에는 얇은 안경을 쓴 채로, 레녹을 빤히 바라보며 웃고 있다.
발 아래로 휘몰아치는 붉은 마력의 기운은 더할 나위 없이 날카롭고 폭발적이었지만,
그런 강렬한 특징보다도 남자의 외견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이 하나 있었다.
“……영체?”
남자의 옷가지와 피부, 머리칼과 골격. 그 전부가 마치 홀로그램처럼 흐릿하게 흔들리고 있다.
분명 이 자리에 엄연한 실체로 존재하면서도, 그 형태가 완전히 물질로 고정되지 않은 듯한 애매한 존재감.
그런 레녹의 의문에 남자는 대답하는 일 없이, 대뜸 한 손을 펼쳐 옆으로 내밀었다.
키이잉……!!
붉은 구체가 남자의 손 안에서 순식간에 만들어지더니, 이내 거대한 고슴도치의 형상으로 변했다.
[빨리 일어나시오.]쾅!!
남자의 손안에서 만들어진 고슴도치가 질리언의 몸 위를 한바퀴 구른 순간, 그를 묶고 있던 마력사 다발이 모조리 끊어져 버렸다.
빠르게 거리를 벌리고 그 모습을 관전하던 레녹이, 붉은 마력의 성질을 인지하게 눈을 가늘게 떴다.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한 얆은 마력의 참격을, 수백번 넘게 중첩해 쏘아내는 듯한 위화감.
레녹이 다루는 마력사를 끊어내기 위해 강제로 마력의 성질을 특화시킨 듯하지 않은가.
하지만 고슴도치는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대로 몸을 한바퀴 더 굴러 엄청난 속도로 레녹의 코앞에 다가와 폭발했다.
콰아아앙!!
자신이 만들어낸 영체를 그대로 폭발시켜 화력의 장막을 세운 사이, 남자가 질리언을 돌아보았다.
“쿨럭, 쿨럭!! 나이아브…….”
[추하기 그지없군, 질리언. 이게 대체 무슨 꼴이오?]나이아브라 불린 술사가 질리언을 비웃었다.
[진작 연맹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고개를 숙였으면 이런 신세는 되지 않았을 텐데. 한심한 모습은 여전하군.]“……입 닥쳐.”
질리언이 나이아브를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세한 이야기는 일단 저놈을 잡고 나서 해도 충분하니까.”
[뭐, 그러도록 하지.]나이아브 역시 붉은 빛을 다시금 제 손에 그러모으며 대꾸했다.
[대신 이번 일에 대한 대가는 확실하게 받을 생각이오.]“…….”
질리언은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말없이 레녹을 노려보았다.
거인화를 남발하는 것만으로는 생포는커녕,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
조작술사를 상대로 어설프게 화력만 키우는 것은, 외려 내보일 틈을 늘려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피오와 지오 역시 각자 근거리와 원거리에 자리를 잡고, 레녹이 도망칠 길을 차단하고 있다.
네 명의 초인이 단 한 사람의 술사를 둘러싸고, 주변에서 수백 명의 기사들이 동시에 그 포위망을 한 번 더 둘러싼다.
이 자리에서 반드시 저 술사를 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빠져나갈 구멍 따위는 없어 보이는 살기의 그물 한복판에서, 레녹이 팔짱을 낀 채로 슬쩍 시선을 위로 던졌다.
나이아브가 나타나기 직전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던 붉은 광채.
그것이 왜 나타났는지 이제 대충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
“소환술이군.”
“뭐?”
[…….]피오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얼굴을 찌푸렸지만, 나니아브는 외려 흥미로운 기색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레녹은 그런 나이아브의 반응을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자기 자신을 소환수로 지정해서, 타인의 의식을 통해 소환되도록 손을 써둔 건가.”
[호오.]가면 너머에 감춰진 레녹의 눈동자가, 어느새 마안의 형상으로 변해있었다.
“본신이 아니라 마력 투영체로 출현한 건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이겠지.”
6왕자가 나이아브를 불러내기 위해 했던 것은 일종의 의식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목걸이를 제 가슴에 찔러넣는다는, 평소에는 결코 하지 않을 행동 자체를 트리거로 삼는 소환의식.
그를 통해서 이 자리에 갑작스럽게 나타난 강력한 주문연맹의 고위술사 나이아브.
나이아브의 육신이 실체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한 레녹은, 이 모든 공정이 소환술의 그것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시간과 장소를 뛰어넘기 위해 계통에 장난질을 쳤군. 그게 주문연맹의 방식이냐?”
[그렇소이다. 아주 정확하게 본질을 짚었구려.]나이아브가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이 세상의 모든 주문을 모아 단 하나의 의미로 연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본 연맹에서 추구하는 완벽한 대답이자, 이상향이올시다.]나이아브가 다루는 술식을 정확하게 간파하기는 어렵지만, 결코 소환술 계통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 출현과 현신이 소환수의 형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를 통해 레녹은 주문연맹이 술식의 계통을 뛰어넘는 시도를 반복하고 있음을 대번에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그것을 파악하다니 당신 역시 범속한 술사는 아니군. 괜찮다면 연맹의 손을 잡지 않겠소이까?]“주문연맹. 지금 뭔 개소리를 하는 거냐!”
기겁한 지오가 나이아브에게 소리쳤지만, 그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발 앞으로 나서 레녹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을 뿐.
[연맹은 희귀한 재능을 가진 술사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소. 자신의 재능을 저주라고 착각하는 술사들. 용도와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이한 주문과 술법들. 그 모두가 다음으로 향하는 의미로 귀결되는 과정이오.]나이아브가 자신을 가리켰다.
[중요한 것은 계통에 얽매이는 것이 아니라, 우수한 것을 취하고 열등한 것을 버리는 것!! 지금 내 모습이 연맹의 의사를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지 않소이까?]“…….”
[우리와 함께 한다면 당신 역시 능히 가능한 일이오. 그대가 다루는 술식에 한계를 느껴보았다면, 다른 계통 술식에게서 새로운 가능성을 느껴보았다면!]침묵하는 레녹을 향해 나이아브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이미 연맹과 그 뜻을 함께하고 있는 것이니.]“혓바닥이 아주 매끄럽기 짝이없군. 지금 감히 내게 포교를 하겠다는 거냐?”
레녹이 피식 웃으며 천천히 끼고 있던 팔짱을 풀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지만, 주문연맹의 기지에 설득되기엔 그 존재방식이 너무 조잡해 보이는군.”
[조잡…… 하다고?]발끈한 듯한 나이아브를 두고 레녹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 움직임에 주변을 둘러싼 초인들이 일제히 긴장하고 그를 주시했지만, 레녹은 무시하고 입을 열었다.
“소환수로서 장소를 뛰어넘어 현신하는 발상 자체는 참신하지만, 그 장점만큼이나 한계 역시 명확하지.”
가면 너머로 번뜩이는 자색의 안광이, 순식간에 나이아브의 뒤편에 쓰러진 6왕자에게 향했다.
맨몸으로 목걸이를 삼킨 고통에서 겨우 벗어나, 정신을 차리고 레녹을 경계하던 왕자가 움찔거렸다.
“소환사가 직접 의식을 치르지 않는다면 애초에 시작조차 할 수 없는 현신. 그리고-”
그 순간, 레녹의 몸이 그 자리에서 그림자처럼 푹 꺼졌다.
일체의 마력조차 사용하지 않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깜박이며 소멸해 버린 듯한 그 모습.
그 비현실적인 소멸에 다른 이들이 무어라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몸이 굳어버린 그 순간.
6왕자의 등 뒤에서 나타난 레녹이 그의 양 어깨를 두들겼다.
“현신하는 사이에는 소환사의 마력과 존재에 그 부담을 온전히 의존해야 하지 않나?”
“……!!”
전조조차 없었던 갑작스러운 접근.
왕자를 주시하고 있던 나이아브조차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등장에, 다른 이들이 곧바로 움직였다.
빠르게 손끝으로 붉은 괴조를 뽑아 든 나이아브가 레녹을 향해 날리고, 피오가 앞으로 크게 뛰었다.
레녹에게 어깨를 붙잡힌 6왕자 역시, 그 와중에 반격을 시도하려는 듯 온몸을 비틀어 입으로 마력을 토해냈다.
세 방향에서 거의 동시에 쏟아지는 마력과 참격의 투사.
하지만 레녹은 그것을 알면서도 태연하게 6왕자를 향해 마력사를 뻗었다.
“무겁지만 느려. 보고 반응하는 것도 따분하군.”
촤라라락!!
온몸에 마력을 휘감고 달려드는 6왕자의 모든 공격을, 마력사 몇 가닥만으로 잡아당기고 벗겨낸다.
왕자가 내뻗는 모든 마력과 의념을 세 호흡 앞에서 읽고, 시작하기도 전에 찍어눌렀다.
마치 인형처럼 휘청거리던 6왕자의 팔다리가 순식간에 반대 방향으로 꺾이며 완전히 으스러졌다.
“끄아아악!!”
등 뒤에서 달려드는 피오의 창대를 마력사로 묶어 땅에 처박고, 나이아브의 술식은 제자리 점멸로 한 번 더 회피.
로브 소매 안에서 떨어져 내린 단검을 마력사로 잡아챈 레녹이 말했다.
“주문연맹. 네가 소환술의 원리를 빌어 이 자리에 나타난 존재라면-”
날이 비틀린 단검을 역수로 쥔 채, 그대로 6왕자의 정수리 위에 꽂아 넣는다.
푹!!
아무런 저항도 없이 머리부터 관통당한 6왕자의 두 눈이 뒤집혔다.
성채 지하에서 그가 주도해서 고문해 죽여버렸던 이들보다도 못한 허무한 죽음.
피를 뿜으며 절명한 6왕자의 시체에서 단검을 뽑아낸 레녹이 물었다.
“소환사가 사망했을 때는 어떻게 될까?”
[……근본 없는 조작술사가 감히!!]“빅터, 끝났습니다!!”
노성을 지르는 나이아브의 영체가 그 자리에서 크게 흔들리며 휘청인 직후, 광대가 돌담 폐허 사이로 튕기듯이 굴러 나왔다.
피로 범벅이 된 입가를 훔치며 입맛을 다신 광대가 주변을 돌아보며 양 손을 합장했다.
“바로 시작해 보자구요!!”
부러진 손가락을 억지로 비틀어 수인을 맺은 순간, 무채색의 파문이 사방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파아아아앗!!!
성채의 하늘 위에 혀를 빼문 삐에로의 형상을 한 거대한 룰렛이 뿅 하고 튀어나온 직후.
삐에로의 혀가 힘차게 룰렛을 돌리기 시작했다.
차르르르륵!!
모두의 귓가에 울려 퍼질 만큼 강렬한 룰렛의 회전음과 동시에, 수인을 마친 광대가 히죽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자성영역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