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izard Takes Medicine RAW novel - chapter 94
“……돈이 필요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런 변명은 됐습니다.”
건앤배럴에서 새롭게 구입한 리볼버.
굉장히 저렴한 가격에 샀던 싸구려 제품과는 달리, 이번에는 무려 40만 셀을 넘게 주고 구입한 유명 총기회사의 간판 제품이다.
번뜩이는 은빛 광채에, 새카만 가죽으로 감싸쥔 손잡이. 정교하게 제작된 실린더와 단단한 공이. 곧게 뻗은 총구.
모두 이전에 그가 쓰던 제품보다 만족스럽지만, 결국 레녹이 사용하는 사격보조마법을 버텨낼 수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레녹은 그 부분을 좀 더 개선하기 위해 이렇게 직접 무기개조를 전문으로 하는 업자를 찾아오게 된 것이다.
바로 예전에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바로 그 남자를.
이름을 몰라서 남자의 작업장을 찾는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막상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름모를 양아치들에게까지 입소문이 퍼질만큼 한가락 하는 실력이다. 어느정도 입소문이 퍼져있는 작업장을 위주로 움직이니 금세 알 수 있었다.
물론 단지 총기개조를 전문으로 하는 공방을 찾고 있던거라면 굳이 이 남자를 찾을 필요는 없었겠지만….. 레녹이 일부러 발품을 팔아서 그를 찾아온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쿠웅!
“그럼 이 물건도 같이 개조해주시면 되겠군요.”
한결 후련해진 얼굴로 등에 매고 있던 짐을 내려놓은 레녹이 말했다.
그것이 묵직한 금속으로 만들어진 더블배럴 샷건이라는 것을 깨달은 영감이 입매를 꿈틀거리며 레녹을 올려다보았다.
“…..너. 아까부터 나한테 무슨 물건이라도 맡겨놓은듯이 구는데. 이유가 뭐냐.”
“제가 말 그대로 영감님에게 빚을 지워놓았으니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난 너를 오늘 두번째로 보는데?”
레녹은 대답하는 대신 손에 들고있던 절단기를 긴 검지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다이크.”
움찔!
“이 이름을 아마 모르지는 않으실거라고 생각합니다.”
킬리안이 처음 제니의 술집을 찾아왔던 날.
이 절단기를 보고 회사에서 영감에게 단단히 벼르고 있다는 식의 말을 하지 않았던가.
남자가 레녹의 절단기를 보고 자신의 작품이네 뭐네 지껄였던 걸 생각하면, 킬리안이 말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뻔했다.
레녹은 이 사소한 우연에서 비롯된 만남에 여지껏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용할 수 있는것은 최대한 이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파노아, 킬리안, 마냐, 더스틴….”
알고 있는 이름들을 줄줄히 가져다대자 남자의 어깨가 연달아 움찔거린다.
이제 남자의 얼굴에는 희미한 두려움까지 깃들어있었다.
“……회사에서 보낸거냐? 날 찾아오라고?”
“그랬으면 지금 이렇게 영감님과 편하게 대화나 나누고 있겠습니까? 단지 알려드리고 싶어서 말입니다.”
레녹이 그렇게 말하며 씩 웃었다.
“제가 그쪽 친구들이랑 좀 오래 일하면서 안면을 익혔다는 사실을요.”
“…….”
“영감님의 존재를 알면서도 그 친구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은 제가 얼마나 믿음직한 고객인지 이쯤되면 슬슬 아실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씨발, 그래!”
남자가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소리를 빽 질렀다.
“내가 졌다, 이 새끼야. 이거 두개만 네가 원하는 대로 개조해주면 되겠냐?”
“당연하지만 맨입으로 하는 말은 아닙니다.”
레녹은 그렇게 말하면서 품안에서 지폐 다발을 꺼내 작업대 위에 슬쩍 내려놓았다.
남자의 눈이 살짝 크게 뜨이는 것을 확인한 레녹이 슬쩍 웃으며 말했다.
“돈을 얼마가 들어도 좋으니, 최대한 좋은 품질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남자에게 물건을 맡기고 공방을 나오면서 다시 간판을 확인한다.
팔머 공방이라…. 여지껏 제대로 통성명도 하지 않은 저 남자의 이름이겠지.
다이크 개발팀에 몸 담고 있었을 만큼 실력있는 자원이다.
다이크 기업이 공업도구 사업으로 덩치를 불리기 시작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팔머의 실력은 레녹이 생각하는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일단 총기는 됐고…. 다음은 소모품 쪽이군.’
숱한 격전을 치르면서 레녹의 마법수준은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조장비를 포기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무리 레녹의 마법이 강력하고 또 유연하다고 하더라도, 적은 비용으로 고밀도의 화력을 뿜어내는 총기의 유용성은 쉽게 버릴만한 장점은 아니었으니.
괜히 딜런이나 밀라같은 프리랜서들이 그만한 육체능력을 가지고도 보조장비로 총을 챙겨다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사격보조마법의 유용성을 생각하면 레녹이 총을 포기해서 얻는 손해는 몸이 가벼워지는 이득보다 훨씬 아래에 있었다.
‘사격보조마법을 개량하는 일도 순탄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잘만하면 마력을 대폭 아끼는 것도 어렵지 않겠어.’
마력을 다루는 노하우나 마력량이 부족해서 시도하지 못했던 여러가지 응용법.
부여마법을 손에 넣은 지금은 단순히 사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방식의 보조마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조금씩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보이는 풍경은 빠르게 달라진다.
낡은 권총 하나들고 공장을 탈출했던 그때에 비하면, 할 수 있는 일은 당장 셀 수 없을만큼 많다.
머릿속을 바쁘게 놀리면서 레녹은 곧바로 사람이 북적이는 거리를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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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제 연구실에서 함께 일하게 된 에반 바일런이라고 해요.”
늦은 오후. 창가 너머로 흘러들어오는 진한 햇살.
사람들이 가득 찬 강의실에 낭랑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레녹은 쏟아지는 무수한 시선을 받으면서 말없이 얼굴을 긁적였다.
솔직히 말해서 강의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의 시선이…. 그리 호의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리스는 그런 강의실의 분위기를 아는지 모르는지 태연한 안색으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에반은 마력이론 분야에서 상당한 성취를 지니고 있고, 이론적으로도 아주 우수한 자질을 가지고 있어요. 기본적으로는 제 연구실에서 연구를 도와주는 일을 하지만, 가끔씩 강의에 불러서 도움을 받을수도 있으니 미리 여러분들께 소개시켜드릴게요.”
“모두 반갑습니다.”
희미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건네자 앞줄에 앉아있는 몇명에게 작은 인삿말이 들려오기는 한다.
다른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놓고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거나, 아예 그에게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녀의 연구실에 들어오기로 결정했을때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기에, 레녹의 표정은 태연했다.
아리스가 레녹에게 눈짓을 하자, 레녹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곧바로 강의실을 나왔다.
“그럼 오늘 수업을 시작하도록 하죠. 저번 강의에서 설명했던 대로 수력계열 마법을 구성하는 마력 연동의 핵심은….”
문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아리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레녹은 손을 들어 얼굴을 매만졌다.
변장마법은 여전히 원활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아리스에게는 본의 아니게 레녹의 본 얼굴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굳이 대학의 다른 학생들에게까지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친 학생이 레녹의 원래 얼굴을 알아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레녹은 적당히 변장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다는 변명을 덧붙이고 아리스에게 양해를 구한 뒤 얼굴을 에반 바일런의 것으로 갈아치운 상태였다.
많은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이곳에서의 신분과 레녹의 위치를 적당히 떼어놓을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널찍한 복도를 눈에 담았다.
라바테논 대학.
말로만 들었던 마법대학. 마법사를 양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육기관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날이었다.
시정부에서 직접 자금을 들여서 투자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하더니, 과연 그 시설은 이루 흠잡을데가 없다.
말끔한 대리석과 화려한 샹들리에. 신발을 푹신하게 받쳐주는 두꺼운 카펫과 겨울이 다가오는 이 날씨에도 훈훈한 열기가 퍼져오는 복도.
코끝을 감도는 상쾌한 향기까지 모두 흠잡을데 없는 고급 시설이다.
이 정도라면 다이크 사에서 기획팀장을 맡고 있는 파노아의 사무실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을만큼 호화스럽기 그지없다.
‘일단 연구실로 돌아가야겠지.’
아리스의 연구실은 강의동과는 다른 건물, 그것도 홀로 2층짜리 건물 한채를 통채로 사용하고 있다.
처음 여기왔을때 잠시 확인하기는 했지만, 레녹이 난생 처음보는 장비나 서적이 가득해서 혼자서도 시간을 보내기에는 충분할 것 같았다.
아니, 오히려 아리스의 강의가 늦게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려는 순간.
파앙!
복도 뒤쪽에서 걸어나온 누군가가 레녹의 등을 향해 날카로운 마력을 쏘아냈다.
아치우드
쐐액!
“……”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날카롭고, 공격이라기에는 조금 가벼우며, 반대로 도발이라기에는 상당히 묵직했다.
상대의 역량을 가늠하려들기보다는, 대놓고 찍어누르겠다는 의도가 엿보이는 노골적인 마력의 응집체.
지금 당장 레녹이 그 머리채를 쥐어잡고 방향을 뒤집어버릴 수 있을만큼 허술하다.
‘어떻게 할까….’
마력체가 날아오는 그 짧은 시간동안 당장 생각나는 대처방법이 일곱가지가 넘는다.
지금 이 수작을 던진 상대를 죽기 직전까지 찍어누르는 건 어렵지 않아보이지만, 그랬다가는 모처럼 대학에 들어온 보람이 없어진다.
적어도 아리스의 시선이 닿는 곳에서는 적당히 이론에만 빠삭한 연구원을 연기해야했다.
레녹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고, 상대방에게 엿을 먹여줄 수 있는 최적의 수를 순식간에 찾아냈다.
‘이거면 되겠는데.’
우연찮게 고개를 슬쩍 돌리는 척 하면서 마력을 비틀어 응집체의 방향을 살짝 바꿨다.
그 누구라도 알아차리지 못할만큼 아주 은밀한 마력의 운용.
고작 잠깐 건드는 것만으로 응집체는 너무나도 손쉽게 시전자의 컨트롤을 벗어나 대뜸 천장으로 쏘아지고.
쨍그랑!!
천장에 매달려있던 고급진 샹들리에를 완전히 박살내버린다.
복도 한복판에 울려퍼지는 요란한 소음에 레녹이 문을 닫고 나온 강의실이 순식간에 소란스럽게 변한다.
문이 벌컥 열리고 아리스가 성큼 걸어나오는 것과 동시에 레녹이 고개를 돌리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에반. 이게 무슨 일이죠?”
복도에 깨져나간 샹들리에를 확인한 아리스가 푸른 눈동자를 미미하게 찌푸리는 사이, 그녀의 뒤에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력조절을 실수하더군요.”
구두소리를 내며 이쪽으로 걸어온 것은 머리를 한쪽으로 쓸어넘긴 훤칠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날카로운 턱선과 굵은 눈썹을 가지고 있는데도 입가에 걸린 미소는 더없이 부드러워 인상 자체를 선해보이게 만든다.
그는 아리스에게 친절한 미소를 지으면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하지만 아리스는 그런 그의 인사에 대꾸도 하지 않고 곧바로 물었다.
“아치우드. 마력조절을 실수했다는게 무슨 뜻이죠? 왜 샹들리에가 제 연구원의 바로 옆에서 박살나 있는지 설명을 듣고 싶군요.”
이제보니 아리스가 날카롭게 반응한것은 단지 수업이 방해받았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싸늘한 아리스의 말에도 아치우드라 불린 남자는 능숙하게 표정을 관리하고 말했다.
“저 분께서 복도에서 혼자 마력을 조립하다 실수로 반동이 일어난 모양입니다. 손에서 마력이 튀어오르더니 갑자기 하늘로 향하더군요.”
“………”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태연하게 거짓말을 하는 아치우드의 얼굴을 레녹이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그는 오히려 레녹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주기까지 했다.
처음보는 사람이지만, 그 심성과 귀계가 어느정도 짐작이 간다.
원하던 바가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아치우드는 지금 강의실 안에서 이쪽을 지켜보는 수많은 학생들과 아리스 앞에서 레녹을 망신주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샹들리에를 깨부순 레녹은 복도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경솔한 연구원이자, 자기 마력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푼수로 낙인찍히겠지.
안그래도 그리 호의적이지 못한 학생들이 레녹을 어떻게 바라보게 될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조금 재밌기는 한데.’
이런 식의 텃세를 경험해본 적이 한두번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또 한편으로는 용의주도하게 레녹을 엿먹이려고 드는 놈은 처음이다.
아치우드라고 했었나.
만약 레녹이 정말로 아무런 마력이나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꼼짝없이 그의 수작에 당할수밖에 없었겠지.
하지만 그는 지금 이 상황조차 레녹이 모조리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 증거로, 아치우드는 자신을 향한 아리스의 시선에 희미한 경멸의 감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고 있었으니.
부드러운 미소의 탈을 쓰고 있던 그의 표정이 살짝 흔들린다.
“……교수님?”
“다시 한번 물어보죠. 에반이 마력을 사용하다가 조절을 실수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만….”
대답하면서도 뭐가 잘못되었는지 전혀 짐작하지 못하는 얼굴.
오히려 지금 이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온 이유를 알아채는 것이 더 이상하다.
아리스가 직접 연구실에 스카우트할만큼 유능한 연구원이, 전혀 마력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미리 전해듣지 않고서야 어떻게 알겠는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아치우드의 태연한 표정과 거짓말이 대비되어 더욱 가증스럽게 다가온다.
이제는 완전히 싸늘해진 표정으로 아치우드를 올려다보던 아리스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아치우드. 한번만 더 이딴 식으로 내 연구원에게 손을 댔다가는 가만두지 않겠어. 알겠나?”
“……….”
“내 연구실에 들어오지 못한 것에 서운함을 느낄거라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런 치졸한 방식으로 화풀이를 하다니…. 내가 완전히 사람을 잘못 봤었네.”
유감스럽게도 아치우드는 인성이 글러먹기는 했지만, 멍청한 사람은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거짓말이 간파당했다는 것을 인지한 그는 그 와중에도 자존심이 아니라 실리를 챙길 줄 알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