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riter in the Corner of the Room RAW novel - Chapter 125
125. ‘무쌍 조선’ 대본 리딩.
한국 민속촌 테마파크 이벤트가 끝나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을 녹여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당신들은 제 사무실에 있는 거죠?”
“그거야 너랑 얘기하면 더 쉬우니까?”
이제는 아예 치트키로 자리 잡은 김시우였다.
“하아…저 대본 써야 하는데요?”
“또?”
“또라뇨…작가한테…그보다 최승용 배우님이랑, 정필규 배우님까지 데리고 오시다니….”
심지영의 뒤쪽에서 최승용과 정필규가 뻘쭘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지영 선배님이 오라고 하셔서….”
“저도….”
아무리 잘나가는 배우라고 해도, 더 잘나가는 배우이자 선배인 심지영의 말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녀의 말이 배우로서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심지영은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김시우와 배역 연구를 같이 하면 지금보다 더 연기를 잘할 수 있게 된다고 이야기를 했다.
심지어 다른 배우들로 사실 확인까지 해주자 그들은 심지영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너네도 나중에 가보고 싶다고 했으면서 내 탓만 하기는…아무튼. 오늘 잘 부탁해.”
“하아…네, 뭐. 작품이 잘 되면 저도 좋으니까요. 일단 점심부터 먹죠. 오늘은 탕수육 어때요?”
“좋지. 내가 살게.”
심지영은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시우 필름 사람들의 점심을 전부 사주었다.
가볍게 점심을 먹은 뒤 김시우는 본격적으로 심지영, 최승용, 정필규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서 뭐가 궁금한데요?”
“나…나부터 아니, 지밀나인이 대군을 보필하는 건 알겠어.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나였으면 그냥 적당히 따르는 게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어.”
“어렸을 때부터 키우듯이 지냈다고 생각해야죠. 누나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물어보는 거죠?”
“헤헤…걸렸네?”
김시우와 여러 작품을 하면서 대본 밖까지 상상하는 게 작업의 일부가 된 심지영에게는 이제 김시우의 도움이 크게 필요하진 않았다.
“봤지? 얘는 대본을 쓰면서 조연까지 세세한 설정을 생각하는 사람이라 이해가 가지 않거나 하는 건 다 물어봐.”
“신기하네요.”
정필규는 신기하다는 듯이 김시우를 바라보았고, 최승용도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제가 생각한 대본 속의 배역들이 있지만, 결국 표현하는 건 배우님들이니까 너무 제 얘기에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참고만….”
김시우가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그에게 조언을 구하려던 최승용과 정필규는 눈길을 돌리지도 않고 대본에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표시했던 곳을 찾기 위해 빠르게 뒤졌다.
“아….”
그렇게 김시우의 수난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 정필규는 찾아오는 날이 적었지만, 최승용을 비롯해 주연급 배우들은 수시로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 소식을 들은 김지현과 박준호도 마찬가지였다.
“젠장…누가 보면 여기가 배우들 소속사인 줄 알겠어.”
사실 소속사보다 시우 필름 사무실을 더 자주 찾아오는 배우들이었다.
시간은 지나 드디어 대본 리딩 날이 다가왔다.
김시우는 대본 리딩이 끝나자마자 그들에게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
‘일본 가면 당분간 숨 좀 돌릴 수 있겠네.’
대본 리딩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시작도 전에 이미 엄청난 관심을 받는 영화였다.
분위기가 안 좋을 수 없었다.
스태프에게 홀대하는 배우나 감독도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이번 영화의 감독을 맡은 박세용입니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박세용이 먼저 마이크를 들고 인사를 건넸다.
“사실 이 자리를 만들어 주신 분은 저의 선배이자 한국 최고의 영화감독인 박웅덕 감독님이십니다. 제가 과연 그분만큼 이 영화를 훌륭하게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창피하지 않은 영화를 만들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람들은 박세용의 자기소개에 박수를 쳤고, 이내 다음 사람이 마이크를 잡았다.
다음 사람은 어느덧 감독 다음으로 마이크를 잡을 만큼 유명해진 김시우였다.
“안녕하세요. 작가 김시우입니다. 어…잘 부탁드립니다. 아…그리고 싸우지 마세요. 이상입니다.”
김시우의 어딘가 이상한 자기소개가 끝나자 최승용을 시작으로 배우들의 자기소개와 스태프들의 자기소개가 끝났다.
각자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본격적으로 대본을 펼친 배우들과 박세용 그리고 스태프들은 첫 대사를 뱉을 최승용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숨을 죽였고, 잠시 후 최승용의 대사만이 들리기 시작했다.
대본 리딩은 깔끔하게 이어졌다.
각 배우들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몰입해 감정을 끌어내 보였다.
그저 대본을 읽는 것뿐인데 스태프들은 순식간에 몰입이 되었다.
이후 쉬는 시간마다 배우들에 대한 칭찬은 끊이질 않았고, 그들은 알게 되었다.
자신들만 배우들의 모습을 잘 담아낸다면 영화는 성공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대본 리딩이 무사히 끝났을 땐 분위기는 시작 전보다 훨씬 좋아졌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지나가며 서로에게 인사를 나누었고, 김시우도 그중 한명이었다.
“오늘 회식 갈 거야?”
“네…뭐 가야겠죠?”
김시우는 조금 피곤했지만, 그래도 팀의 단합을 위해서 회식에 참여하기로 했다.
심지영과 김지현 사이에 껴서 회식 장소에 도착한 김시우는 최승용과 정필규, 박세용, 이옥자, 박승환이 있는 자리로 향했다.
“어…잠시만요. 다온아.”
“네!”
“여기서 소율이랑 수혁이랑 먹을 거야?”
“네!”
“그래, 그러면 맛있게 먹고 이따가 갈 때 같이 가자. 수혁이 너도.”
“네, 시우형.”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시우가 박소율의 어머니에게 고개를 숙이며 부탁했다.
그러자 박소율의 어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아이고, 아닙니다. 저야말로 저희 소율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소율의 어머니는 김시우가 이 업계에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는지 알고 있기에 자기 딸의 친구들을 잘 보살펴주는 걸로 딸이 김시우의 눈에 들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김다온과 홍수혁의 걱정도 덜어낸 김시우는 자리로 돌아갔다.
“자, 한잔 받게.”
자리에 앉자마자 이옥자가 김시우에게 술을 권했다.
“아…제가 조금 이따가 운전을 해야해서 콜라로 마시겠습니다. 아니면 이따가 2차에서 몰아서 받겠습니다.”
“그 말 잊지 말아.”
이옥자가 김시우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나저나 저 아이 이름도 이옥자였다고?”
“아…네.”
대배우 이옥자가 꼬마 김다온을 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이름은 왜 바꾸었어?”
“어…그게….”
순간 김시우는 김다온 본인이 싫어해서라고 말하려다가 괜한 불똥이 튈까 서둘러 이유를 바꾸었다.
“활동하려면 아무래도 요즘 트렌드에 어울리는 이름이 좋을 것 같아서요.”
“흐음…그래? 아쉽구만.”
이옥자는 자신과 같은 이름을 쓰는 아이가 이름을 바꾸어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차마 학교에서 놀림을 받거나 옛날이름같아서라는 이유는 말할 수 없었다.
“자, 그럼 ‘무쌍 조선’을 위하여!”
“위하여!”
김시우는 콜라를 다른 사람들은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고기는 무려 소고기.
몰래 김다온과 홍수혁을 보니 야무지게 소고기를 해치우고 있었다.
“잘 먹네. 다음엔 한우 좀 사다 줘야겠네.”
“한우? 아…다온이?”
“네. 그냥 좀 신경이 쓰이네요.”
“너랑 닮아서 그런 거 아니야?”
“네?”
“뭐랄까? 특히 눈매가 닮았어. 원래 눈이 닮으면 닮았다고 느껴진다잖아.”
심지영까지 벌써 많은 사람들이 김다온과 닮았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이 정도면 진짜 내 잃어버린 동생 아니야?’
합리적 의심을 하는 김시우의 앞에 김지현이 말을 걸어왔다.
“작가님. 오늘 저 어땠어요?”
“네? 뭐…여전히 잘하시죠.”
“저희 처음 봤을 땐 둘 다 완전 신인이었잖아요.”
“하하…하긴 그때 생각하면 조금 제 머리가 어떻게 되었나 싶기도 하네요. 신인 작가가 혼자 다른 배우를 고르고….”
“그 덕분에 제가 지금 이렇게 유명한 배우가 되었는걸요. 다 작가님 덕분이에요.”
“지현 씨는 어떻게든 성공하긴 했을 거예요.”
둘이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자 심기가 불편해진 심지영이 끼어들었다.
“그럼 나는?”
“아니, 맨날 물어보고도 질리지도 않아요?”
김지현과 전혀 다른 반응에 심지영이 당황했다.
“어?”
“어제도, 엊그제도 일주일 전에도 사무실에 찾아와서 계속 연기가 어떠냐고 물었잖아요. 아니, 잘한다고 몇 번을 말해요. 솔직히 그것 말고 할 얘기가 없어요.”
김시우는 심지영이 연기가 어떠냐고 물을 때마다 난감했다.
처음에야 조금씩 조언을 했지만, 만난 지 3번 만에 더 이상 지적할 게 없어져 버렸다.
말 그대로 완벽한 연기를 보여주면서 어떠냐고 물어보면 그저 잘한다는 말만 나왔다.
그것도 한두 번이지 맨날 찾아와서 물어보면 아무리 김시우라도 짜증이 날 수밖에 없었다.
김시우의 반응에 놀란 심지영이 위축되었다.
그 모습을 본 김시우는 자신이 너무 과했다는 생각에 서둘러 수습을 하려 했다.
“아니, 뭐라고 하려는 게 아니라….”
“됐어. 작가가 배우 차별이나 하고….”
그 자리에 있던 스태프들과 박세용, 배우들은 어이가 없었다.
오히려 김시우를 다른 사람들과 차별대우하는 건 심지영이었다.
다른 작가가 들었으면 뒤로 넘어갈 만한 이야기였다.
“누나, 그런 게 아니라 완벽한 연기를 계속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자신감을 가지라는 얘기죠….”
“그런데 왜 김지현한테는 부드럽게 대답하고 나한테는 짜증 내?”
“아니, 뭐 지현 씨 오랜만에 물어봤으니까요.”
“아…나는 뭐 자주 만나서 짜증 내도 된다?”
“아니, 또 말을 그렇게 해석하면 어떻게 하….”
“나, 쌈 싸줘.”
“네.”
김시우는 서둘러 쌈을 싸서 심지영의 입에 넣어주었다.
“이것 참 선배 배우로서 보기 좋은 모습이군요. 앞에 선배님도 옆에 후배도 있는데 작가님한테 투정 부리기나 하고….”
김지현의 공격에 심지영이 꼭꼭 씹던 쌈을 단숨에 삼켰다.
“아 그래? 이 자리에 운으로 올라와서 그런 건 모르는 줄 알았는데.”
“하하, 제가 좀 운이 좋은 편이긴 합니다.”
심지영과 김지현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본 박세용은 노년 배우 이옥자와 박승환을 바라보았지만, 그들은 천천히 시선을 피했다.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야. 우리 늙은이들은 고기나 먹자고.”
“그래요. 승환 오빠.”
그녀들을 말릴 수 있는 노년 배우들이 박세용의 시선을 외면하자 이번엔 최승용을 바라보았고, 최승용은 누구 죽일 일 있냐며 되레 박세용에게 따졌다.
“제발…누가 좀 말려줘.”
박세용의 간절한 말에도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괜히 나섰다간 어떤 불똥이 튈지는 안 봐도 뻔했다.
“에휴….”
김시우를 제외하고 말이다.
한숨을 쉰 김시우는 표정을 굳혔다.
“지현 씨. 얼른 사과하세요. 지영 누나한테 제가 잘못한 건 맞으니까요. 그리고 누나도 지현 씨한테 사과하세요. 운만으로 이 자리까지 못 올라오는 거 아시잖아요. 바로 옆에서 연기를 봐놓고…운으로 저런 연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싸늘한 김시우의 중재에 김지현이 먼저 심지영에게 사과를 건넸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제가 술에 취해 실수했습니다.”
“아니야, 내가 술에 취해 실수했어. 미안하다.”
서로 사과를 하고 악수를 나누었다.
그렇게 잘 끝날 줄 알았던 둘의 싸움은 귓속말로 인해 다시 불이 붙었다.
“그런데 솔직히 너 안 만났으면 저 정도 연기는 못 했을 듯.”
“솔직히 하는 행동이 나이에 비해 어리신 거 같아요.”
심지영과 김지현은 악수를 나누며 가운데에 있는 김시우에게 동시에 귓속말을 했다.
그리고 그 귓속말을 서로 들어버린 탓에 다시 싸움이 시작되었다.
“뭐라고? 나이에 비해 어려?”
“작가님을 못 만났으면 연기를 못해요?”
‘아…일본 가고 싶다.’
지금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은 김시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