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nius Writer in the Corner of the Room RAW novel - Chapter 63
63. 천재작가 vs 천재배우. (1).
대본 리딩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혹여 숨소리조차 방해될까 자기 차례가 아닌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있었다.
첫 장면은 하승우 배우가 맡은 주인공 최현이 중앙 경찰학교를 무사히 수료한 뒤 부하들을 만나는 장면이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시킨 일은?”
“일단 불법적인 건 다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꼭 나를 형님으로 모셔야겠냐? 아버지 돌아가신 지가 3년이 넘었는데 왜 내가 형님이야.”
“그거야···. 당연한 소리 아닙니까? 형님이 아니면 누가 저희를 이끕니까!”
“하아···. 난 이제 경찰이라고.”
목소리만 들어도 최현의 깊은 고뇌가 느껴졌다.
조직폭력배 두목의 아들로 태어나 도련님으로 불리며 자랐다.
아버지와 같은 건달이 되고 싶지 않아 경찰이 되었건만···. 이제는 형님이 되었다.
만약 이 사실을 들키기라도 하면 다음 날 인터넷과 TV에 자기 얼굴이 도배 되어 있을 게 분명했다.
“아무튼 사과는 받아왔어?”
“받아왔습니다.”
최현이 중앙 경찰학교를 들어가기 전 부하들에게 지시한 것은 총 2가지였다.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충분한 보상 후 용서받아오기.
그리고 불법적인 사업체의 정리였다.
한 부하가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종이를 꺼냈다.
“협박한 건 아니겠지?”
“아닙니다. 대신 얻어맞느라 임플란트 2개 정도 했습니다.”
부하가 어금니를 보여주었고, 최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튼 앞으로 술집은 합법적으로만 운영하고 아가씨들도 그만 괴롭혀.”
“네, 형님.”
이후 첫 장면의 리딩이 끝나자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하승우 배우님. 리딩만으로도 확실히 클라스가 느껴집니다.”
“더 열심히 해야죠.”
한 스태프의 칭찬에도 하승우는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표정이 밝진 않았다.
그렇게 총 10시간의 대본 리딩이 끝이 났다.
“고생하셨습니다.”
사방에서 고생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김시우는 박준호에게 다가갔다.
“준호씨.”
“네, 작가님.”
“많이 피곤하시죠?”
“아, 아닙니다. 혹시 하실 말씀이라도···.”
“밥 한 끼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그 전에 잠깐 매니저한테 얘기 좀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
“네, 다녀오세요.”
박준호가 김시우와 밥을 먹기 위해 매니저에게 간 사이 김시우의 옆에 하승우가 다가왔다.
“김시우 작가님?”
“네, 하승우 배우님. 오늘 고생하셨습니다. 리딩인데도 감정이 느껴지던데요.”
“그런가요···. 그렇다고 여기서 만족하시진 않으시죠?”
“뭐···. 저야 더 욕심을 낼 수만 있다면 내고 싶죠.”
“저도 그 밥 약속에 껴도 되겠습니까?”
김시우와 박준호의 식사 자리에 하승우가 합석을 제안했다.
“박준호 배우가 오면 물어보겠습니다.”
잠시 후 박준호가 돌아왔고, 하승우 배우의 합석 제안을 이야기하자 박준호도 괜찮다고 이야기했고 결국, 셋이서 식당에 가기로 결정되었다.
더블유 필름의 인근 식당에 도착한 김시우와 박준호 그리고 하승우는 어색한 분위기를 띄우며 빈자리에 앉았다.
“다들 뭐 드시겠습니까?”
“저는 돼지고기 김치찌개 먹겠습니다.”
“저도요.”
“그럼 돼지고기 김치찌개 5인분 시키겠습니다. 아무래도 오늘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군요.”
김시우가 이내 식당 주인에게 다가가 돼지고기 김치찌개 5인분을 시킨 뒤 양손에 소주를 들고 돌아왔다.
“한잔씩 드시죠.”
“네.”
김시우는 소주를 잔에 따른 뒤 단번에 들이켰다.
그러고는 먼저 입을 열며 본론을 꺼냈다.
“캬야···. 일단 준호씨.”
“네?”
“제가 작가 주제에 조언하는 게 불편하실 수도 있지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게 이런 것뿐이라서요. 혹시라도 기분 나쁘시면 언제든 말씀하셔도 됩니다.”
“아···. 아니에요. 도대체 무슨 조언을 해주시려고···.”
“그냥···. 배역에 대한 조언이죠. 상세 설정집부터 볼까요?”
“네!”
박준호가 상세 설정집을 펼치자 미간을 찌푸렸다.
“작가님···. 이게 무슨···.”
“그게 박준호 씨가 연기할 연쇄살인마, 김춘호의 인생이에요.”
상세 설정집에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김춘호의 인생이 쓰여 있었다.
어릴 적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랐고, 보육원 원장에게 수시로 폭행당하며 몸이 성한 날 없이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던 와중 그와 같이 방을 사용하던 형에게 성폭행까지 당하며 그의 인격과 인생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김춘호 인생의 단편을 엿본 박준호는 맨정신에 이입하기에는 무리가 있는지 술을 연거푸 마신 뒤 다시 설정집을 들여다보았다.
“뭐가 쓰여있길래···.”
하승우가 궁금해하자 김시우가 그를 막아섰다.
“안 됩니다. 당신은 주인공이니까요. 저걸 볼 수 있는 사람은 당사자뿐입니다.”
“네?”
“설정집 앞에 써두었을 텐데요···. 본인을 제외한 그 아무도 보면 안 된다고.”
“알겠습니다.”
김시우의 말에 하승우가 아쉬운 듯 상체를 다시 뒤로 돌렸다.
“작가님. 제가 연기할 수 있을까요?”
상세 설정집을 본 박준호는 급격히 자신감이 사라졌다.
아무리 연기를 한다고 해도 이 배역의 감정을 온전히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었다.
연기란 본디 누군가를 모방하는 것에서 시작된 것.
그러나 지금 이 배역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모방하기엔 그 감정의 크기가 너무 거대했다.
“준호씨는 할 수 있습니다.”
“하아···.”
김시우의 말에도 확신이 서지 않는 박준호였다.
하지만, 그는 배우였다.
배우이기에 해내야만 했다.
어떻게든 김춘호를 이해하고 표현해내며 그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했다.
김춘호의 행동들을 일반적인 상식으로 바라보면 안 된다.
그가 겪은 것들은 일반적이지 않으니까···.
박준호가 상세 설정집에 집중하자 김시우와 하승우는 김치찌개를 한 숟갈 떠먹고선 소주를 마셨다.
“그러지 마시고, 하승우 배우님도 한번 보시죠.”
“그러죠.”
그렇게 하승우도 상세 설정집을 펼쳐 보았다.
하승우의 상세 설정집은 박준호와는 다르게 그리 눈살이 찌푸려지는 내용은 아니었다.
그냥 어디서 한 번쯤 봤을 법한 내용이었다.
어릴 때 조직폭력배 두목의 아들로 태어나 그들 사이에서 도련님으로 불리며 자랐고, 뒤로는 온갖 욕설, 불법적인 일을 들었다.
어머니는 폭력적인 아버지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고, 늘 조직을 물려받으려면 싸움을 잘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아버지 밑에서 맞고, 구르고, 피를 흘리며 자랐다.
그렇게 20살이 되던 해 최현의 아버지가 죽고 조직을 물려받게 되었지만, 당사자인 최현은 조직폭력배 두목이 되기를 거부하고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군대로 들어갔다.
물론 그의 부하들은 최현이 거부한 것을 거부하며 매일 같이 면회를 왔다.
최현의 정체를 알게 된 그의 동기, 선임, 후임, 행정보급관과 소대장, 중대장까지 그 누구도 더 이상 최현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결국 최현은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자신을 모시고 싶으면 불법적인 일들은 전부 정리하고 그동안 죄를 지었던 사람들에게 찾아가 용서를 구한 뒤 종이에 사인을 받아오라고.
이번엔 정말 대다수가 떠날 줄 알았지만, 그들은 최현의 지시를 따르며 불법 도박장부터, 불법 주점, 불법 대부업 등을 정리한 뒤 각자 자신이 피해를 주었던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구했다.
그사이 어릴 적부터 사람들을 지키는 것이 꿈이었던 최현은 전역 후 경찰이 되기 위해 고시원으로 들어가 1년 만에 합격 후 중앙경찰 학교로 들어갔다.
“생각보다 평범하네요···.”
“영화니까요. 만약 당사자가 앞에 있다면 그렇게 이야기하지는 못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겠죠.”
“하승우 배우님.”
“네.”
“최도현 그 자식 연기 영상 찾아봤는데···. 정말 메소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나던데요. 그럼 우리도 최소한 메소드는 아니더라도 그와 경쟁할 수 있는 연기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요?”
김시우의 말에 하승우의 손에도 힘이 들어가며 주먹이 쥐어졌다.
“더군다나 거기에 심지영 배우도 있습니다. 같이 촬영해봐서 알겠지만, 그 누나도 만만치 않은 거 잘 알고 계시잖아요.”
“그렇죠.”
“오늘부터 잘 부탁드립니다. 혹시나 대본을 읽다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주시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니까요.”
“알겠습니다.”
김시우의 말에 하승우도 의지를 다졌다.
그렇게 밥을 먹기 위해 들어간 식당에서 세 남자는 밥보다 대본과 설정집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
다음날 김시우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침부터 누구야?”
스마트폰을 열어 확인하자 수십 개의 메시지가 온 것과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세연]“아침부터 무슨 일이시죠?”
-여보세요? 왜 이렇게 늦게 받아요!
“자고 있었는데요.”
-일찍 일찍 일어나세요.
“네···.”
-그래서, 어제 대본 리딩은 잘 마쳤어요?
“네···. 뭐. 다들 프로 배우니까요.”
정세연은 최도현 욕을 하면서 마찬가지로 김시우를 응원했다.
다만, 심지영도 응원하고 있다며 자신은 중립을 지키겠다고 이야기했다.
-아! 그리고 다음 주면 나올 거예요.
“뭐가요?”
-노래요! 저랑 약속하신 거 잊고 계셨어요?
“벌써요? 원래 그렇게 노래가 빨리 나오나요?”
-뭐, 마침 복귀할까 생각하기도 했었고. 타이틀 곡은 아니지만, 신경을 타이틀 곡만큼 썼으니까 꼭 들어보세요.
“당연히 들어야죠.”
김시우는 자신을 위한 노래가 나왔다고 하니 가슴 한쪽이 시큰거렸다.
한때 자신이 좋아하던 가수가 자신을 위해 노래를 만들어 주었다.
이 복잡 미묘한 감정을 정확히 표현하긴 어려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좋은 느낌이라는 것을.
-그러니 제 영화도 잘 부탁드려요. 김시우 작가님.
“네, 노력하겠습니다.”
정세연과의 통화를 마친 김시우는 집필에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그에겐 아직 수십 개의 문자가 남아있었다.
지이이이잉.
컴퓨터를 켜자마자 울리는 스마트폰.
김시우는 영화 촬영이 끝날 때까진 글을 쓰는 것을 미루어야 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네, 준호씨.”
-작가님. 혹시 오늘 시간 있으세요? 다른 게 아니고 연기 좀 보여드리고 싶어서···.
“알겠습니다. 그럼 점심에 보죠.”
-네! 감사합니다. 작가님. 밥은 제가 사겠습니다.
여기서 약속이 끝났으면 아주 행복한 하루가 되었겠지만, 약속은 점점 늘어났다.
뒤이어 하승우 배우부터 비중이 있는 여러 배우에게 계속 연락이 왔다.
계속되는 연락에 짜증이 난 김시우가 소리쳤다.
“아, 그냥 이럴 거면 합숙을 하든가!”
그리고 김시우의 말은 곧 현실이 되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김시우는 제주도에서 ‘조폭 형사’의 배우들 그리고 김동수와 같이 합숙을 하고 있었다.
“뭐지? 왜 이렇게 된 거지?”
제주도에 온 그들은 배역에 몰입하기 위해 평소에도 설정을 유지했다.
하승우의 부하역을 맡은 배우들은 평소에도 하승우에게 형님이라고 했으며, 하승우는 그들의 보스가 되어 정의감 넘치는 경찰처럼 말투나 행동을 바꾸었다.
그리고 박준호는···. 솔직히 말하면 살짝 맛이 간 것 같았다.
가뜩이나 살벌한 외모에 살짝 맛이 가니 그 무서움은 배가 되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배우는 수십 명인데 그걸 보고 피드백해 주는 사람은 김동수와 김시우 단 둘뿐이었으나 유독 인기가 많은 김시우였기에 그는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연기를 보고 피드백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계속 같은 연기를 보는 김시우는 지겨움의 절정에 달했다.
‘사···. 살려줘.’
그렇게 김시우가 갈려 나갈수록 배우들의 연기력 그리고 배역에 대한 이해도와 몰입도, 팀워크는 빠른 속도로 상승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