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2
소문 들었어?
하눌 엔터는 회사 사옥이 상당히 큰 편이었다. 그래선지 건물 내에서 남자 연습생과 여자 연습생이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월말 평가 같은 이벤트를 제외하면 출퇴근 때 잠깐 마주칠까 말까.
일부러 피하려고 든다면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마주치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요즘의 공기가 더 이상했다. 여자 연습생들과 자꾸만 마주치고, 그럴 때마다 나를 힐끔거리는 시선을 느꼈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니 친하지 않은 남자 연습생들이 은근슬쩍 다가온다거나 나만 보면 하던 얘기를 멈췄다.
“혹시 내가 무슨 짓 했나?”
댄스 연습 한 타임을 마치고 널브러져 있다가 내가 겪은 이상행동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초록 형이 그 중얼거림을 용케 듣고 내가 말하려고 하는 바를 알아차렸다. 이 상황이 나에게만 수상쩍지는 않은가보다.
“신경 안 써도 돼. 너 천재라고 애들이 친해져 보려고 하거나 부러워하거나 그러더라.”
“응? 천재? 내가?”
“역시 이원은 몰라. 다른 연습생들 월말 평가 때 전부 shock 받았는데.”
충격받을 정도였다고? 지온의 설명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초록 형이 친절하게 덧붙였다.
“이원이 너 때문에 자극 좀 받았지. 여자 연습생들도 소문 듣고 네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그러던데.”
“여자 연습생들은 또 어떻게 알아?”
“우리 사이에도 다 연락망이 있답니다. 함이원 씨.”
정말 초록 형이 말해준 이유 때문이라면 곧 잠잠해질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금방 낭설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테니까.
그때까지 얌전히 연습만 하면서 지내야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원아, 소문 들었어?”
“소문? 나에 대한 소문 말고?”
“못 들었구나. 확실하진 않은데, 내년에 새로운 그룹 데뷔시킬 예정이라는 소문이 있더라.”
“진짜?”
“남자일지 여자일지 확실히 나오진 않았는데 아무래도 남자겠지.”
남자 아이돌 그룹인 씨드(SEED) 선배님들은 5년 차고, 여자 아이돌인 코넬(CORNEL) 선배님들은 이제 2년 차.
데뷔 간격을 봤을 때, 남자 그룹을 데뷔시킬 가능성이 컸다.
발 넓은 초록 형이라면 어디서 소문을 듣고 와도 이상하지 않았다.
워낙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희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반대로 헛소문을 들을 확률도 높았지만.
하지만 이 소문이 진실이기를 바랐다. 막연하게 데뷔 시기를 기다리기보다 차라리 떨어지더라도 데뷔 평가에 참여해 제대로 도전해보는 편이 더 좋았다.
벌컥, 문을 열고 박하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들어왔다.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는 박하는 주말이나 평일이나 꼬박꼬박 9시에 출근 도장을 찍는 애였다.
“잠깐 병원 좀 다녀오느라 늦었어. 쏘리!”
“너 어디 아파?”
“아니! 우리 엄마가 아파서 같이 가느라고. 심각한 병은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눈치를 보아하니 거짓말은 아니었다. 많이 아프시진 않다니 다행이었다.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
“우리 회사 내년에 그룹 런칭할 것 같다는 소문. 너도 들었지?”
초록 형의 질문에 박하의 눈이 반짝 빛났다.
“들었지! 근데 소문이 사실이라 치면, 데뷔가 내년. 데뷔조는 이번 연도에 뽑겠네?”
“아마도. 소문이 진짜라면 조만간 알려주시겠지.”
“어쨌거나 우리는 데뷔를 목표로 열심히 하는 수밖에.”
소문은 곧 사실로 밝혀졌다. 내년 데뷔를 목표로 남자 아이돌 그룹을 만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남자 연습생들은 온갖 감정에 휘둘리는 표정들이었다.
드디어 데뷔가 가까워졌다는 환희와 희망. 내가 데뷔조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불안….
나도 그들과 같은 기분을 겪고 있었다.
데뷔조는 일단 5명 기준이고, 데뷔 평가 무대를 실전처럼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 외에 특이하다고 느꼈던 시스템은 연습생들 서로를 대상으로 하는 ‘인성 평가’였다.
신입인 나는 이제야 알게 됐지만, 두세 달에 한 번씩 의례적으로 하던 자체 평가라나.
성실성이나 성격, 장점이나 단점 등에 대해 근거를 들어 설명하는 구술형 설문 조사라고 했다.
“그런데 모르는 연습생이 꽤 있는데. 모르면 어떻게 적어?”
연습 기간이 한 달이 조금 넘은 나에겐 무리였다.
이제야 얼굴이랑 이름 익히고 인사만 하는 정도인데.
연습실을 열 수 있는 출석 체크 카드키 겸 명찰을 목에 걸고 있지 않았더라면 이름도 몰랐을 수도 있다.
“앗! 짧게 적어도 돼! 인사를 잘한다, 늦은 시간에 마주쳤다 정도로.”
“이름이랑 얼굴이라도 알아서 다행이다.”
“형 같은 반 친구 이름도 못 외우는 타입이구나?”
“…….”
박하의 질문에 정곡을 찔린 듯 아팠다. 명찰이 있고 출석을 부르니까 반 친구 이름은 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데면데면한 타인이었다.
같은 반 친구랑 인사도 안 한다고 어떻게 말할까.
경험상, 인사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말을 걸게 되어 있었다. 말을 안 하던 시절의 나는 누가 말을 걸려는 시도부터 차단하기 바빴었다.
콤플렉스 없이 말할 수 있게 된 후엔 너무 정신을 빼놓고 다녔고 습관적으로 인사를 빠뜨렸다.
반 친구끼리 인사도 안 하는 건 너무했나? 하다못해 편의점 아르바이트생한테도 꾸벅 인사를 하는데.
앞으론 손이라도 흔들어야지. 나중에 인사도 안 하는 싸가지 없는 녀석이었다고 인증 글이라도 올라올 수도 있으니까. 연예인이 되려면 몸가짐을 단정히 해야 했다.
“분위기 살벌해지겠네. 그동안은 데뷔 멀었다고 생각해서 느슨해졌던 애들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테니까.”
그렇겠지. 서로가 경쟁자라는 사실을 실감할 테니까. 경쟁심에 장작을 넣으면 활활 커다랗게 불탈 것이다. 그 틈에서 나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럼 우리도 악착같이 해야지. 5분 됐다. 다시 연습 시작할까?”
초록 형은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휴식 시간을 칼같이 맞출 만큼 엄격했다. 우리가 같이 데뷔한다면 바로 추천할 만큼, 확신의 리더상이었다.
* * *
남자 연습생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고 열정으로 불타올랐다. 선생님이나 다른 연습생들 앞에서 리액션이 과해지기도 했다. 짝짓기 전의 공작새처럼 자신의 장점을 뽐내고 싶은 모양새였다.
여자 연습생들은 전체적으로 얼굴에 그늘이 졌다.
가끔 마주치면 침울함을 지우지 못한 채 힘없는 인사를 보내왔다. 혹시라도 회사에서 여자 그룹을 준비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지울 순 없었나 보다.
한 번 그룹을 데뷔시키고 나서 다시 새로운 그룹을 준비하려면, 긍정적으로 봐도 4년간은 어렵다고 봐야 했다.
싱숭생숭한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모습들이 보였다. 아이돌의 적정 데뷔 연령은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반 정도니까.
어쩌면 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가정에 나까지 착잡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춤 연습이 좋았다. 운동복이 땀으로 흠뻑 젖도록 격렬하게 춤을 추고 나면 잡념들이 사라지곤 했다.
다들 그런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목표에 집중하느라 그런 건지 늦은 자율 연습 시간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주말에도 마찬가지로 변화가 보였다.
원래는 아침부터 나와서 새벽에나 귀가하는 사람은 소수였다.
정확히는 나와 서혼 형, ?袈?형, 지온, 박하 그?고 가끔 다른 연습생 두세 명 정도 추가되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더 늦게 집에 돌아가는지로 승부를 가리는 연습생이 대부분이었다.
목표가 명확해지니 다들 죽기 직전까지 연습하려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긴장감 넘치는 며칠이 지나고, 나는 시간을 내서 보컬 선생님에게 상담을 신청하러 갔다.
상담실 안에는 어떤 연습생이 먼저 보컬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처음 보는 연습생이었다.
이 시기에도 새로운 연습생이 들어온다고? 회사에선 데뷔조 심사를 준비하기도 바쁠 텐데 오디션을 열었나?
그런데 이상하게 그 연습생은 보컬 선생님과 친근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게다가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사이처럼 편하게. 낯선 곳에 왔을 때의 긴장감도 전혀 없었다.
누구지?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낯선 연습생과 엇갈리면서 나는 가볍게 꾸벅 인사했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외모였는데 뭔가 살짝 부자연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들어가 보세요.”
의외로 말투는 귀엽지 않았다. 약간은 시니컬하고 다 귀찮다는 감정이 묻어났다.
뭐지….
그 연습생의 정체는 하루도 되지 않아 바로 밝혀졌다.
“인사해. 이쪽은 우리랑 연습했던 홍오란. 사정이 있어서 잠깐 쉬다가 돌아왔어. 그리고 우리랑 친하게 지내는 신입 함이원. 18살.”
초록 형의 소개에 따르면 하눌 엔터 연습생 선배인데 이제야 만나게 된 거라고 했다.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안녕. 빠른 연생이라 나도 고2니까 말 놓자. 고작 몇 달 차이로 존대는 무슨.”
상당히 까칠하다. 귀여운 얼굴에 그렇지 못한 성격. 기분 상하기보단 신선했다. 뭔가 아까 보컬 선생님과 대화할 땐 상당히 살가웠던 거 같은데? 착각인가?
“오란 형, 예상보다 빨리 돌아왔네! 역시 데뷔 계획 들었구나?”
“당연히. 팔다리가 부러졌어도 와야지. 데뷔 조를 나 빼고 짜게 둘 순 없으니까.”
“Are you OK, 오란?”
“제톤, 뭘 그렇게 돌려 말해? 왜 조심해?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오란이 연습을 나오지 않았던 사정을 밝히지 않으려고 했나 보다.
어차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기 때문에 별달리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사람이라면 누구나 밝히기 싫거나 꺼내기 힘든 일이 있기 마련이니까. 나를 포함해서 말이다.
나는 오히려 지온을 왜 제톤이라고 부르는지가 더 궁금했다.
“함이원. 나 성형하느라 한 달 조금 넘게 자리 비운 거야. 마침 연습생 계약이 만료되는 시기라 2달 정도 쉬고 재계약하겠다고 했었어.”
아직 이질감은 들지만, 수술 자체는 성공인 것 같았다. 문제가 있다면 예상보다 일찍 복귀했다는 점.
안정되지 않은 상태로 격한 연습을 해도 괜찮을까.
“아. 그랬구나. 연습엔 무리 없대?”
“하! 고작 물어본다는 게 그런 거냐? 웃긴 새끼네.”
“오란 형도 마음에 드는구나! 그럴 줄 알았지!”
저게 마음에 든다는 표현이라고? 보편적인 의사소통 시스템에선 저런 말을 비꼰다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오란과 오랜 시간을 함께한 박하의 해석은 나와 달랐다.
“하하. 오란이가 원래 성격만 까칠한 고슴도치지, 나쁜 앤 아니야. 오히려 되게 존경할 만한 애야. 너도 곧 알게 되겠지만.”
서혼 형의 묵직한 말에 막연한 신뢰가 생겼다. 타당한 근거가 없는데도 서혼 형이 무작정 감싸진 않을 테니까.
오란은 재빨리 우리가 하는 연습에 합류했다. 조금 지켜보니 춤 실력이 수준급이었다.
신기한 점이 하나 있다면, 그건 오란의 표정.
오란은 춤 연습을 하면서 실전처럼 표정 연기를 했다. 방긋방긋 젖살이 빠지지 않은 볼에 보조개까지 그려가면서.
무표정하게 말을 툭툭 내뱉던 사람은 어디 갔지?
프로페셔널한 태도가 감탄스러웠다. 그리고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습 때조차 진심이라니.
디테일에서 모자란 나에겐 저런 표정 연습도 필요했다.
표정도 얼굴 근육으로 만들어낼 수 있고, 나는 운동 지능이 좋다고 했으니 안면 근육의 움직임을 복사하면서 표정 연습을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
역시, 누구에게나 배울 점이 있다더니.
초짜인 나는 허투루 시간을 흘려보낼 수 없었다. 마음먹은 대로 바로 댄스 연습을 하면서 틈틈이 오란의 표정을 훔치려고 시도했다.
오란은 내가 하는 행동을 눈치채고 오히려 대놓고 표정 연기를 해줬다.
생색도 안 내고 고마워하길 바라지도 않았다. 서혼 형이 왜 오란을 감쌌는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일주일 후.
데뷔조 선발을 위한 무대 평가 날짜가 연습생들에게 공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