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d Idol Project: Hope RAW novel - Chapter 13
절대 들키지 말자
연습생들은 회사에서 공지한 데뷔 무대 심사 날짜를 듣고 당황했다. 예상보다 훨씬 일렀기 때문에.
연습생들은 두 달 남짓한 짧은 시간 내에 완벽한 무대를 준비해야 했다. 물론 원래 듣던 수업은 스케줄 그대로 소화하면서. 절대적인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평가는 실제처럼 준비된 무대에서 진행된다고 했다. 음악 방송처럼 카메라도 돌아가고 외부 관객도 초대해서.
팀 무대 하나와 개인 무대 하나씩. 아무리 다음 달 월말 평가를 생략한다고 해도, 두 달 안에 만족스럽게 준비할 수 있을까?
게다가 실제 무대처럼 준비해야 한다면, 춤이나 노래, 랩 외의 요소가 추가로 필요했다.
평소보다 더 긴장할 테니 멘탈도 단단하게 무장해야 하고 카메라를 보는 시선 처리도 능숙해야 한다. 무대 장악력, 스타성이나 끼라고 표현하는 플러스알파도 갖춰야 했다.
데뷔조에 들어갈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다.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실력을 쌓을 시간이 내게 주어지진 않았으므로. 그렇지만 한 편으론 이렇게 생각했다.
기회가 왔다고.
천금 같은 기회였다. 몇 년이고 데뷔를 기다리는 연습생들도 수두룩했다. 이리저리 기획사를 옮겨가며 데뷔를 노리는 연습생들도 있다.
그런데 거의 연습생이 되자마자 데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니!
아이돌 지망생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하지 않을까. 실력이 받쳐주기만 한다면.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나는 보컬 외엔 아직 실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두 달 동안 미친 듯이 연습하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성장 가능성을 어필하면 가산점이 있지 않을까?
두 달 후, 다른 연습생들과 비슷한 수준까지 실력을 키울 수만 있다면. 잠시 무대에 선 나를 상상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나에게 불리하지만은 않다고. 해볼 만하다고.
제 실력을 발휘하려면 긴장은 금물이었다. 중학교 때 나갔던 콩쿠르를 떠올려보면, 난 다른 사람에 비해 긴장을 하지 않는 편이었다.
다들 손이나 다리를 벌벌 떨 때, 나는 멀뚱히 기다리기만 했다. 기획사 오디션 볼 때나 갑작스러운 월말 평가 때에도 크게 긴장하진 않았다.
카메라를 부담스러워하지도 않았다. 내가 사진 찍히는 걸 즐기진 않아도, 누가 찍어주는 데에는 거부감이 없었다.
워낙 어렸을 때부터 엄마, 아빠에게 사진이나 동영상을 수도 없이 찍혀서 적응이 안 될 수가 없었다.
현오 형과의 음악 여행에서 찍은 동영상이 자연스러웠던 건 형이 편하다는 이유 하나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현오 형의 음악이 언제나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 ‘노래’에 관해서는 자신감이 넘쳤다.
그건 미신적인 믿음이기도 했고, 제삼자의 관점에서 현오 형의 노래를 평가해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노래로는 회사에 있는 어느 연습생에게도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목표는 아이돌의 정점에 서는 것. 여기서 머뭇거릴 순 없었다.
난 이번 데뷔를 놓친 후를 아예 가정하지도 않았다. 최후의 결전을 앞둔 장군처럼 배수진을 쳤다.
물러설 곳은 없다.
* * *
“데뷔한 후에도 골골거리고 싶냐? 아프면 재깍재깍 엄살이나 부려. 멍청한 게.”
오란은 춤 연습을 하다가 발목을 삔 박하를 붙잡아서 파스를 뿌려주면서 타박했다.
말과 행동이 어쩌면 저렇게 딴판일까. 겉으로는 툴툴대면서도 직접 친절하게 치료해주고 있다니.
이걸 츤데레라고 하나? 실제로는 처음 봤다. 왜 마음이 느끼는 대로 솔직히 말하지 않지? 그냥 성격이 그런가.
“뭘 봐.”
너무 뚫어져라 봤는지 오란이 짜증을 냈다. 처음 보는 유형이라 그런지 조금 재밌었다. 내 머릿속을 읽으면 오란이 당장 미간을 찌푸리겠지.
“왜 너도 어디 아파? 파스 뿌려줘?”
냉탕이었다가 곧바로 온탕?
뒤늦게 웃음이 터졌다. 오란이 나를 약간 미친 사람처럼 보는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존경까지는 무리지만, 친구로는 여러모로 괜찮은 사람이었다. 오란은.
* * *
흐릿하게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이원아, 함이원. 많이 졸려? 매점에서 빵이라도 사다 줄까?”
“…아, 내가 잤구나. 빵…. 급식실 갈래.”
초록 형이 날 데리러 왔구나. 급식실로 가는 복도에서 만나서 같이 밥 먹으러 가는데 내가 안 와서 교실까지 온 모양이다. 언제 잠든 지도 모르게 잠들었다. 아니, 잠이 아니라 기절이었다. 아직도 몽롱했다.
이젠 오전 시간조차 못 버티네.
데뷔조 평가일이 발표된 이후로 불가피하게 오후 수업 시간까지 수면시간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앞으로는 교과 수업 시간 전체를 잠에 투자하게 될 수도 있었다.
“정신을 못 차리네. 어제 도대체 몇 시에 집에 갔어?”
“3시? 4시던가? 어쨌든 마지막으로 갔어.”
“말릴 사람이 없다고 막무가내로 했구나. 학교 안 다니는 박하나 대학생 서혼 형이랑 똑같이 하려고 하지 말라니까.”
지온은 딱 정해진 시간에 귀가하는 스타일이었고, 내가 무리한다 싶으면 말려주는 사람은 초록 형이었다.
초록 형은 어제 엄마 생신이라 본가에 들른다고 조금 이르게 연습을 마쳤다.
“그래도 무리하진 말아야지. 평가일이 가까워져서 초조하겠지만, 그러다 아프면 오히려 손해야.”
“조심할게. 어젠 집중이 잘 되는 바람에 오버했어.”
“잘 지키는지 두고 볼 거야.”
하지만, 코앞까지 다가온 무대 평가가 나를 압박해왔다.
이 정도론 안 된다고. 넌 다른 사람만큼 노력하지 않았다고. 절대적인 시간이 한참 부족하다고.
그 정도로 해서 후회하지 않겠느냐고….
* * *
왜 오란이 지온을 제톤으로 불렀을까. 그 궁금증은 뒤늦게 풀렸다.
한참을 까먹고 있다가 쉬는 시간에 자판기 앞에서 지온을 마주쳤을 때 갑자기 떠올라서 바로 물어봤다.
복잡한 사연이 있진 않았다. 김지온은 언더에서 래퍼로 활동한 적이 있는데 그때 랩네임이 Z-on이었단다. 그걸 영국식 발음으로 읽어서 젯-온, 제톤이 됐다고. 제톤이 발음이 더 세서 오란이 좋아한단다.
“지온, 나도 제톤이라고 부를까?”
“맘대로. 이제는 둘 다 이름처럼 익숙해서.”
예민해 보이는 인상인 지온은 의외로 성격이 무던했다. 퇴폐미가 있다는 영화배우와 닮았는데 그 배우보단 훨씬 순해 보였다. 아마 나이가 어려서 그런 듯했다.
지온은 나이를 먹어서 골격이 변하고 젖살이 빠지면 더 인기 있을 스타일이었다.
“랩 연습은 잘했어? 네가 래퍼 중에서 독보적이라던데.”
“…단체 곡에서 자꾸 내 목소리가 튄다는데.”
“튄다고?”
“톤을 조금 바꿔보기도 했는데 계속 튄대.”
저음이긴 해도 지온이 톤이 그 정도로 특이하진 않은데? 게다가 팀의 조화를 깨뜨릴 정도로 지온이 실력이 모자라지도 않았다. 이상했다. 오히려 킬링 포인트가 될 텐데 왜….
“음. 혹시 같은 래퍼가 그러지 않았어?”
“응. 어떻게 알아?”
“괜한 트집이 아닐까? 네가 잘하니까 기죽이려고.”
몇 번이고 지적당하면 움츠러들게 된다. 그걸 노리고 일부러 지온을 건드리지 않았을까?
지온은 확연히 돋보이는 래퍼니까 견제당할 만도 했다. 내 짐작으론 그랬다.
“그런가…. 고마워. 괜히 신경 쓰였는데. 고민 해결했다.”
“지온. 나 눈치 있지?”
가볍게 웃던 지온의 입술 끝이 더 깊어졌다.
“Nun ja.”
무슨 뜻이지?
* * *
팀 무대를 준비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임의로 구성된 팀에는 친한 연습생이 아무도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스트레스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커버할 곡의 원곡을 부른 그룹의 포지션을 고려해서 팀을 구성한 듯싶었다.
나는 당연히 메인보컬의 포지션을 담당하게 됐는데 센터에서 춤추는 파트가 거의 없었다.
일명 고음 셔틀을 둔 그룹의 곡이었다
아. 그냥은 단체 곡에서 돋보이기 쉽지 않겠구나. 곡을 지정받고 댄스 동선을 연습하면서 줄곧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곡 자체는 장난기 넘치는 악동 같은 스타일에 스트릿 감성이 가미된 곡이라 춤의 디테일은 박하에게 도움을 받았다.
나도 한 명의 경쟁자인데 박하는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에 관해 묻자 박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원 형! 난 친절이 언젠간 되돌아온다고 생각해. 그리고 다른 사람 발목을 잡아서 끌어내리지 말고 서로 부축해가면서 올라갈 생각을 해야지! 데뷔한다고 해도 그런 태도론 절대로 성공 못 해. 솔로로 데뷔하는 게 아니니까.”
박하는 나보다 어른스러운 것 같다. 겉으론 발랄한 대형견 같은데 속은 애어른이었나.
“고마워. 대신 잘할게. 도와준 보람 느낄 수 있게.”
* * *
두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 자세히 기억하진 못했다. 연습한 만큼 노래와 춤이 몸에 새겨졌을 뿐.
아침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생활이 계속됐다.
아침 정도만 부모님과 식사를 같이할 수 있었지만, 몸이 고되다 보니 입맛이 없어서 대강 때우고 등교하곤 했다. 부모님과 대화를 나눌 틈도 없었다.
기획사에 연습생으로 들어간 날부터 부모님은 그저 묵묵히 지켜봐 주셨다. 걱정스러웠을 텐데도 내색하지 않으셨다. 아마도 부담이 될까 싶으셨겠지.
어차피 누가 대신해줄 수 없었다. 혼자 이겨내야 하는 고난이었다. 힘들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으니 견뎌야 했다.
내가 안간힘을 쓰는 동안, 어느새 두 달이라는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갔다.
드디어 맞이한 무대 평가 날.
중요한 날에 임하는 내 기분은 최악이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유난히 눈이 뻑뻑했다. 일어나기도 너무 힘들었다. 여기까지였다면 다른 날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런데 아침의 멍함이 계속되고 팔다리가 축축 늘어졌다. 씻고 아침을 먹으면 나아질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미열까지 올라왔다.
데뷔 쇼케이스를 위해서, 기획사에서는 외부 손님으로 업계 종사자들과 초대장을 받은 일반인 관객들뿐만 아니라 연습생들의 가족도 특별히 초대했다.
그러니까, 데뷔조 평가 무대가 부모님께서 그간의 걱정을 날리고 내가 이룬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라는 뜻.
그런데 몸 상태가 이렇다니. 젠장.
나는 필사적으로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애썼다. 부모님은 따로 출발하실 터다. 그러니 아침의 잠깐과 무대 위에서만 버티면 된다.
무대 의상이 될 옷을 챙겨서 최대한 빠르게 집에서 나왔다.
회사에 도착한 후 같이 팀 무대에 서는 연습생들과 가벼운 연습을 하고 대학로 소극장으로 이동했다.
최종 리허설은 어떻게든 마쳤다. 무대 뒤 바닥에 앉자 약 기운이 뒤늦게 도는지 아까보단 버틸 만했다.
개인 무대 리허설을 대충 넘겨서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팀 무대와 개인 무대를 무사히 보여줄 순 있을 것 같았다.
왜 컨디션이 이따윌까. 하필이면 오늘. 하루 늦게 아팠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었을 텐데.
무리하지 말라던 초록 형의 조언도 생각났고, 한계를 넘는 체력을 쓰지 말라던 박하의 말도 떠올랐다.
내가 멍청했다. 회사를 나섰다가 몰래 돌아가서 추가 연습까지 하지는 말아야 했다.
새하얘진 안색이 무대화장에 가려져서 다행이었다.
SEED 선배님을 담당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님이 화장을 도와주셨는데 하마터면 몸 상태를 들킬 뻔했다.
피부가 너무 창백하다고 어디 아프냐고 묻는 말에 원래 그렇다는 핑계를 댔다. 열이 잠시 내려간 상태가 아니었다면, 전부 들통나서 대표님 귀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내 입으로 말하긴 부끄럽지만, 컨디션 조절도 하나의 능력이었다.
하필 중요한 행사가 있는 날 몸살에 걸려 골골거리는 연습생이 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줄까? 아니, 감점당해도 할 말이 없다.
걱정하고 안타까워할 수는 있지만, 그 감정과 별개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것이다. 세상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다른 연습생들은 속으로 비웃겠지. 컨디션 하나 조절 못 하냐면서. 더럽게 운도 없다면서.
절대 들키지 말자. 무대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