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32
32. 무림 사대영웅과 대결
마문비는 은근히 이를 갈며 몸을 옆으로 돌려 소영의 곤세(棍勢)
를 피했다. 양은곤(凉銀棍)은 마문비의 요혈을 찍으려고 했던 것인
데 반 치의 차로 앞가슴을 스치고 말았다.
마문비는 자기가 이미 패배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모험적으로 주도권을 쟁취지 않으면 맹렬하게 전개해 오는
소영의 곤법을 막아 낼 수 없으리라 판단했다.
한편 소영은 자기가 휘두른 양은곤이 마문비의 가슴을 스치고 지
나 가자 자기의 일격이 실패한 것을 알고 팔을 굽혀 회수하려고 했
다. 이 틈에 마문비가 빠르게 반격해 들며 왼손에 든 부채로 비스
듬히 소영의 오른팔을 베려고 했다.
소영은 방금 실패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에 양은곤을 더 잡고 있
으면, 또 자기에게 불리하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곧 두손을 폈다.
양은곤이 땅바닥에 떨어졌다.
마문비는 소영이 차마 무기를 버리리라고는 생각치 않았다. 그런
데 뜻밖에 이와같은 행동을 보자 놀라는 표정이었다.
소영은 손발이 홀가분하여 훨씬 민첩하게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는 오른팔을 굽혀 부채의 공격을 피하고 왼손으로 재빨리 일장을
쳐 냈다. 마문비는 오른팔이 아직도 저려서 검을 휘두르기에 불편
을 느껴 왼손의 부채 만으로 소영을 공격했다.
소영은 일장을 쳐 낸 다음 연환섬전장법을 발휘하여 초마다 더
빠르게 연환 칠 장을 쳐 내 마문비의 부채를 눌러 버렸다.
이 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마문비의 부하 세 사람은 여태껏 마문
비가 강적과 싸워서 통쾌하게 이기는 광경만 보아 왔기 때문에 오
늘의 싸움은 그져 놀라을 따름이었다.
소영이 연환으로 재빨리 장법을 전개하자 마문비는 부채와 장검
을 들고만 있었지 도무지 맥을 추지 못했다.
그는 암암리에 부채 자루의 용수철을 누르려 했다. 그러나 그는
어디까지나 무림의 유명한 인물이고, 패권을 잡을 만한 재질을 겸
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암수를 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여 차마
손을 쓰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었다.
이때 소영이 갑자기 장세를 거두고 훌쩍 오 척 정도 뒤로 물러났
다. 소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총타주는 무공이 매우 높소. 이렇게 백 초를 더 싸워도 승부를
가릴 기회를 얻기가 어려울 것이오. 조금 후에 다시 싸우기로 합시
다.”
소영은 말을 마치자 돌아서서 초가를 향해 달려 갔다. 마문비는
속으로 외쳤다.
‘정말 부끄럽다!’
소영이 비록 마문비를 추켜서 말했지만, 마문비 자신의 생각으로
는 싸울수록 더 빨라지는 소영의 연환장법 앞에는 결코 십 초를 더
지탱해 나가지 못할 것 같았다.
이때 초가 앞에서는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전노파는 지팡이
한 개로 혼자서 칠, 팔 명의 포위공격을 막아 냈다. 그렇지만 아직
도 네 사람이 더 남아 있어 그들은 전노파를 돌아 지나쳐서 초가
안으로 들어 갔다.
그 광경을 본 소영은 매우 다급해져서 진기를 끌어 모아 힘껏 달
려가 수라지력을 발출하여 한 사나이를 찍어 쓰러뜨렸다. 전노파는
그것을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어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래서 연속 삼 초를
쳐내 적 한 사람을 부상시켰다. 전노파를 포위 공격하던 무림의 고
수 칠, 팔 명은 소영이 아주 쉽게 자기네의 동료 한 사람을 쓰러뜨
리는 것을 보자 투지를 잃고 말았다.
전노파는 여장부답게 지팡이로써 맹렬한 초술을 발출하여 포위공
격 해 오는 군호들을 연달아 반격하여 물리쳤다.
소영은 번개처럼 다시 초가의 문앞으로 달려가며 외쳤다.
“서라! 억지로 들어 가려는 자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
이때 이미 네 명의 사나이는 초가의 문앞에 접근해 있었지만, 금
란이 연속적으로 쳐 내는 암기에 막혀서 주춤하고 있었다. 이들 중
두 사람은 칼을 들고 있었으며, 한 사람은 연편(軟鞭-부드러운 채
찍)을 들고, 또 한 사람은 호차(虎叉)를 들고 있었다.
소영은 네 사람을 노려 보았다.
“나는 결코 사람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소. 그렇지만 경우에 따
라서는 사람을 해칠 수도 있으니, 굳이 여러분이 초가 안으로 들어
가기를 고집한다면, 내가 사람을 상하게 한다고 나를 탓하지 마시
오.”
그러자 연편을 쓰는 사나이가 노한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누군데 그처럼 거만하오?”
“나는 소영이오. 여러분께서 무슨 일이 있으면 모두 이 소영에게
말하시오. 그리고 여러분들이 마음대로 저 초가로 들어간다면 그것
은 죽음을 찾아가는 거나 마찬가지니 그렇게 아시오.”
네 사람 중에서 우두머리인 듯한 연편을 소지한 사나이가 날카로
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믿을 수는 없소.”
“믿지 못하겠거든 한 번 해 보시지.”
그러자 연편을 쓰는 사나이는 오른손을 휘저으며 낮은 소리로 칼
을 쓰는 두 사나이에게 말했다.
“곤(昆), 중(仲) 당신들은 일제히 이 악한에게 덤벼 드시오.”
칼을 든 두 사나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란히 서서 소영의 길을
막았다. 그리고 연편을 든 사나이가 호차를 든 자를 돌아 보며 외
쳤다.
“우리는 초가로 들어 갑시다.”
소영은 양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노한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이 내 경고를 듣지 않으면 고생을 사서 하는 결과가 되
오.”
그러나 이들은 금란의 암기와 상대하느라 소영이 마문비와 싸우
는 모습을 못보았으므로 소영의 경고를 무시했다.
호차를 든 사나이가 초가를 향해 달려 들어 갔다. 그러자 소영이
노호를 지르면서 검을 휘두르며 그의 앞을 가로질렀다.
칼을 든 사나이는 소영의 이처럼 맹렬한 기세에 질려서 멍청히
서 있기만 했다.
그때 호차를 든 사나이는 초가에 바싹 접근했다가 갑자기 사, 오
척 밖으로 밀려 나왔다. 시선을 모아 바라 보니 소영이 어느새 장
검을 들고 초가의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소영은 호차를 든 사나이를 일격에 쓰러뜨렸다. 그 사나이는 두
눈을 치뜨고는 입을 멍하니 벌린 채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그 자
리에 있던 사람들은 소영의 이처럼 빠른 일격을 목격하자 간담이
서늘해졌다.
이때 무거운 음성이 들려 왔다.
“너희들이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하니 빨리 물러나거라.”
연편을 든 사나이가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얼른 대답했다.
“저희는 총타주의 체면을 손상시켰으니 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 말소리의 주인공은 마문비였다. 마문비는 급히 앞으로 두어
걸음 걸어 나가서 호차를 든 사나이를 발길로 걷어 차며 말했다.
“너희들의 무공이 낮은 것이 아니라 그의 무공이 높다.”
호차를 든 사나이는 두어 번 뒹군 다음 벌떡 일어나더니 말했다.
“총타주님, 왜 출수를 허락하지 않으십니까?”
마문비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네 사람이 합력해서도 그를 이기지 못했는데, 하물며
혼자의 힘으로 덤비다니… 쓸데없이 목숨을 버릴 필요는 없어.”
호차를 가진 사나이는 그래도 마땅치 않은 얼굴로 말했다.
“조금 전에는 제가 미쳐 방비도 하기 전이었을 뿐입니다. 그걸
가지고 어떻게 졌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마문비는 안색이 약간 변하여 외쳤다.
“어서 물러가지 못할까?”
그 호차를 든 사나이는 소영에게 굽히고 싶지 않았지만 마문비의
말이 두려워 급히 물러섰다.
마문비는 고개를 돌려 뒤에서 싸우고 있는 장면을 바라봤다. 전
노파는 이미 전국을 제어한 듯 공격일변도로 나가고 있었다. 마문
비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오늘의 싸움은 이 마문비가 부하 몇으로 이길 것 같지 않구나!’
마문비는 유성 화포(流星火砲)를 꺼내 오른손으로 공중을 향해서
던졌다. 불꽃이 사방에 흩어졌다.
소영이 냉랭하게 내뱉듯이 말했다.
“마문비, 원군을 부르는 거요?”
마문비는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그렇소. 오늘 이곳에 온 사람은 애당초 나 혼자만이 아니오. 다
만 내가 전 노선배님을 존중하기 때문에 호걸들에게 억지로 뒤에서
기다리도록 권했던 것이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전 노선배님이 나
의 체면을 세워 주신다면 이 이상 더 좋은 일이 없으련만…”
소영이 말을 받았다.
“아깝게도 그분이 총타주의 체면을 세워 주지 못했구려!”
마문비가 어떤 결심이라도 한 듯 단호히 대답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 이상 노선배님을 설복할 능력이 없으니,
오늘 이곳에 온 호걸들에게 이야기하여 공중의 의견에 따를 뿐이
오. 그러니 싸움이냐, 화친이냐 하는 것은 결코 나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오.”
소영은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이 한 사람 때문에 중원의 호걸들과 마 총타주를 수고롭게 해서
매우 미안하오.”
마문비는 그 말을 듣자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 말했다.
“오늘의 싸움은 무림의 운명이 걸린 중대한 싸움이오. 물론 개인
의 체면이나 승부에 관한 것도 아니고, 오직 대국적인 견지에서 해
결할 문제라고 볼 수 있소.”
소영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형은 공명정대한 마음과 영웅다운 기품을 지니고 있군요. 조
금 전에 있었던 우리들의 대결에서 당신은 결코 지지 않았으니 그
처럼 겸손하실 필요는 없소.”
마문비가 말을 받았다.
“삼장주가 나에게 사정을 보아 주신 거지요. 그렇지 않다면 나는
틀림없이 패했을 것이오.”
마문비는 잠시 말을 끊고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나는 소형의 위명을 들어온 지 이미 오래요. 빠른 말을 타고 이
틀 동안 밤낮을 쉬지않고 소형의 뒤를 따라간 적이 있소. 그러나
만날 인연이 없었던지 끝내 소형을 뵙지 못하고 말았소. 그리고 처
음으로 만난다는 것이 이렇게 싸움판에서 만나게 될 줄은 차마 몰
랐소.”
소영은 이 말에 마문비는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고 느끼며
속으로 감탄해 마지 않았다.
“마형은 어느 소영을 쫓아갔었소? 설마 나는 아니겠지요?”
마문비는 흠칫 놀라는 기색이었다.
“이 세상에 소영이 몇 사람이나 되오?”
소영이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둘이오.”
마문비가 말을 이었다.
“일찌기 들어보지 못한 소리요. 세상에는 동명이인이 더러 있을
수도 있지만, 둘 다 그처럼 절기를 지녔다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
오.”
소영은 탄식하듯 말했다.
“그렇소. 세상에서 이처럼 공교로운 일도 없을 것이오. 그러나
실제의 일이고 보니 둘 중에서 하나는 소영의 이름을 사칭하는 가
짜 소영일 것이오.”
마문비가 침착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례한 말씀을 묻는 것을 용서하시오. 삼장주의 소영이란 이름
은 진짜요? 가짜요?”
소영은 냉랭하게 대답했다.
“진짜면 어떻고, 가짜면 또 어떻소?”
마문비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 것이 아니오. 진짜와 가짜의 소영이 모두 절기를 지닌 고
수라면 그들이 각각 행한 뒷자취는 영원히 남을 것이니, 그때 가서
감히 누구의 행적이 옳았다고 가려 낼 수 있으리오?”
소영은 고개를 들어 힐끗 바라 보고는 말했다.
“마형의 원군이 왔소.”
마문비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들은 결코 이 마 모를 돕지는 않을 것이오.”
소영이 비꼬듯 말했다.
“마형을 돕지 않는다니? 설마 이 소영을 도우러 온 것은 아니겠
지”
“그들은 다만 백화산장의 삼장주를 만나러 왔을 뿐이지, 이 마
모를 돕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니오.”
마문비는 가볍게 한 번 한숨을 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 사람들은 사전에 나와 약속이 있어서 온 것은 아니오. 모두
가 제멋대로 온 사람들이오….”
소영은 그의 말을 가로챘다.
“나는 강호에 나온 지가 그리 오래 되지 않았소. 그런데 무슨 큰
죄악을 저질렀기에 이 많은 무림 고수들이 나를 찾아 몰려왔단 말
이오.”
마문비가 역시 천천히 타이르듯 말했다.
“소형은 기품이 비범할 뿐만 아니라 확실히 악을 행할 상은 아니
오. 그러나 현재 백화산장에 가담했기 때문에 무림의 공적(公敵)이
된거요.”
그 사이에 말 몇 필이 질풍같이 달려 왔다. 전노파는 들고 있던
지팡이로 급히 삼 초를 공격하여 포위하고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몸을 날려 급히 초가로 갔다.
전노파는 소영의 곁으로 다가가서 멈추어 서며 이렇게 말했다.
“적의 숫자가 너무 많으니, 우리들은 함께 적을 막읍시다.”
소영은 달려오는 군호들을 바라 보았다. 그 모습은 각양각색으로
수 십 인에 달했다.
전노파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 맨 앞장 서서 달려 오는, 얼굴이 붉은 사람이 바로 신전진건
곤(神箭鎭乾坤) 당원기(唐元奇)요. 그리고 저 사람은 본래 팔 힘이
놀라울 정도로 세니까 장력으로 부딪치면 안 되오.”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당원기가 다가와서 높은 소리로 외쳤
다.
“누가 백화산장의 소영인가?”
“내가 그 사람이오. 무슨 분부라도 있소?”
“잘 만났군. 내 은추를 받아라!”
그는 오른손을 휘둘러 거대한 은추를 곧장 날려 소영의 앞가슴을
향해 찍었다. 그때 소영과 그의 거리는 구 척 정도 되었다. 그의
은삭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하기 때문에 은추를 자유자재로 조종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소영을 향해 똑바로 공격해 왔다.
소영은 암암리에 운기해서 장검으로 획 그것을 찍어 냈다.
이때 전노파가 다급한 어조로 소영에게 말했다.
“그의 은추와 부딪쳐서는 안 되오!”
그리고 전노파는 지팡이를 내밀어 은추를 찍었다. 그러나 날아
온 은추의 힘이 너무 강해 오히려 전노파의 팔이 진동을 받아 팔이
저리고 아팠다. 그러나 은추는 다시 소영의 검세에 찍혀 떨어졌다.
당원기는 순간 흠칫 놀랐다.
“이녀석! 제법이군. 내가 다시 한번 시험해 보지.”
당원기는 다시 손을 휘둘러 은추로 찍어 왔다.
당원기는 그 힘이 천하에 소문나 강호의 사람들은 그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당원기와 겨루는 사람은 누구
든 그의 무기와 정면으로 맞부딪치려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당원기는 다른 사람과 겨루는데 있어서 여태껏 자기의
은추를 정면으로 부딪쳐 오는 사람은 만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소영이 장검으로써 그의 은추를 처음으로 맞부딪친 사람이 된 것
이다.
소영은 냉랭한 목소리로 외쳤다.
“좋소. 다시 당신의 은추를 받겠소.”
소영은 진기를 운기하고, 경력을 강처럼 운행하여 힘을 검날에
집중하여 은추를 향해 찍었다. 그러나 검과 추가 부딪쳤지만 아무
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소영은 끄떡 않고 서 있는데 신기하게도 은추만 떨어졌다. 당원
기는 이 광경을 보자 어이가 없었다.
전노파는 소영이 당원기의 은추를 받아 내지 못할까 걱정스러워
서 지팡이를 내밀어 언제든지 구원할 자세를 취하고 바라 보고 있
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소영이 연달아 이 추를 받아 내고도 끄떡
없이 서 있는 것을 보자 속으로 감탄해 마지 않았다.
은추는 휙휙! 소리를 내면서 태산이 무너져 내린 듯 소영에게 덮
쳐 왔다.
당원기가 노성을 질렀다.
“좋다. 내 은추를 감히 또 받았겠다!”
당원기는 다시 은추를 내리쳤다. 그러나 소영의 경공은 천하 제
일의 유선자에게서 전수받은 것이었다.
소영은 몸을 번쩍이는 순간 이미 당원기의 앞으로 번개처럼 접근
하여, 좌장으로 당원기의 앞가슴을 때리고 오른손에 든 장검으로는
당원기의 은추를 달아 맨 연삭을 눌렀다. 이와 같은 수법은 매우
위험한 것 같지만, 당원기의 은추의 공격을 막는데는 이보다 더 좋
은 방법이 없었다.
당원기는 보기와는 다르게 신기할 정도로 민첩해서 그는 곧 팔을
굽혀 그 큰 은추를 회수했다. 그렇지만 소영은 그에게 틈을 주지
않고, 장검을 재빨리 휘둘러 연달아 삼 검을 공격해 내고, 좌장을
검세에 곁들여 사 장을 쳐 냈다.
이 한 차례의 검과 장풍의 맹공으로 당원기는 눌려서 잇달아 후
퇴를 하여 반격할 힘을 잃고 거의 소영의 검세에 부상을 입을 정도
가 되었다.
“삼장주, 빨리 돌아와요!”
소영이 전노파의 고함소리를 듣고 곁눈질 해 보니 전노파는 지팡
이를 가로쥐고 초가의 문 앞을 막아서 있었다.
이때 초가의 양쪽에서 엿보고 있던 무림의 고수들이 각각 칼을
뽑아 들었다. 형세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소영은 오른팔을 굽혀 검을 회수하고 몸을 날려 초가의 문 앞으
로 물러났다.
이때 누구든 손을 써서 그를 제지할 수도 있었지만, 모두 미동도
하지 않고 소영을 바라 보고만 있었다.
소영이 가까이 오자 전노파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저 마문비의 왼쪽에 있는 도인은 청성파(靑城派)의 삼대 명검
중 으뜸인 인월도장(印月道長)이오. 이 사람의 검술은 매우 정예하
니 경시해서는 안 되오.”
소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가르쳐 주셔서 고맙소이다.”
전노파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문비의 오른쪽에 있는 홍의를 걸친 사람은 강호에서
유명한 완화고수(玩火高手)인 삼양신탄 육괴장(三陽神彈陸魁章)이
오. 그는 독화정가(毒火井伽)와 함께 강호에서 정사(正邪)이화로
불리우고 있소. 이 사람의 온몸은 그대로 불덩어리니까 그와 손을
쓸 때는 특별히 조심해야 하오.”
소영은 시선을 돌려 주위의 사람들을 모두 훑어 보았다. 마문비,
인월도장, 삼양신탄, 당원기 외에도 주위에 둘러 선 이십여 명의
사람들은 언뜻 보아도 평범한 무리들은 아닌 것 같았다.
소영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심목풍은 강호에 나오자마자 당장 강호를 뒤흔들어 놓았구나!’
이때 마문비가 높은 소리로 외쳤다.
“삼장주의 무공은 내가 방금 교훈 받았소만 확실히 고명하외다.”
소영이 말을 받았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마문비는 담담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 인월도장은 당대의 청성 장문인의 수제자로 검술이 정예하시
어 이름을 강호에 떨치고 있는 분인데, 소제가 삼장주의 무공 자랑
을 했더니 부러움을 금치 못하여 소형의 검술을 교훈받으시겠답니
다.”
소영이 아무말도 하지 않자 마문비는 소영이 난처해 하는 줄 알
고 다시 말을 이었다.
“인월도장이 소형과 승부를 가리기 전에 우리는 한 치도 더 앞으
로 나가지 않겠소.”
마문비는 다시 주위의 호걸들을 돌아 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은 모두 일 장씩 뒤로 물러서시오. 그리고 인월도장과
백화산장 삼장주의 검술 겨루기를 구경만 하고 계십시오.”
마문비는 강호에서 명망이 높은 사람이어서 모두 그의 말에 복종
하여 일 장 정도 물러섰다.
소영이 전노파를 돌아 보며 말했다.
“할머니도 관전만 해 주십시오.”
소영은 가벼운 걸음으로 오 척 정도 걸어 나와서 포권을 하며 허
리를 굽혔다.
인월도장은 오른손을 번쩍이더니 싹! 하는 소리를 내며 등에 꽂
았던 장검을 뽑아 들고 소영의 앞 오 척쯤 되는 거리에 서서 문호
를 열고 싸울 자세를 취했다.
소영은 순간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이 주위의 영웅들은 마문비, 육괴장, 당원기와 인월도장을 수령
으로 여기는 것 같구나. 그렇다면 이들 네 사람만 물리친다면 나머
지 사람들은 모두 겁이 나서 도망가 버릴 것이다.’
소영은 이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칼을 한 번 퉁기고 입을 열었
다.
“도장은 명문 대파의 사람이시니 기선을 잡으려고 먼저 출수하시
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제가 먼저 출수하겠소이다.”
“자아, 소대협! 출수하시오.”
소영이 장검을 번쩍 들자 검끝이 세 번 부르르 떨리고 세 송이의
검꽃이 일었다. 이 검법은 봉황삼점두(鳳凰三点頭)라는 것이었다.
인월도장은 장검을 한 번 휘둘러 흰 광망을 일으켜 소영의 검세
를 봉해 버렸다.
소영은 다시 검을 번뜩여 두 송이의 검꽃을 일으키며 상대방을
찔렀다.
그러나 인월도장은 다시 획분음양(劃分陰陽) 일 초로써 땅! 하는
소리를 내며 소영의 장검을 물리쳤다. 그는 마문비가 하도 소영의
검초 내력을 칭찬하였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강하게 그의 검을 받아
보려고 했다. 그러나 소영은 검을 돌려 회고약류(廻顧弱柳) 초식을
발하여 인월 도장이 반격할 틈을 주지 않고 또 일검을 휘둘렀다.
인월도장도 소영의 이 검세를 다시 막아 냈으나 검세의 진동을
받아 팔이 약간 저렸다. 하여 인월도장도 검세가 쓸어 오는 것을
보자 이번에는 강하게 맞부딪치지 않고 검을 한 번 휘둘러 소영의
오른팔을 향해 찔렀다.
소영은 할 수 없이 팔을 낮추고 공세를 피했다.
인월도장은 이 틈을 이용하여 기선을 잡아 장검으로 연속 공격을
시도하여 단숨에 오검을 찔러 냈다. 소영은 그 이상 반격할 수가
없어 잇따라 오 보를 물러났다.
소영은 속으로 감탄해 마지 않았다.
인월도장은 소영이 물러서는데도 연달아 팔 검을 공격한 후에야
기세가 약간 누그러졌다.
소영이 인월도장의 검세가 느려져 다시 반격을 전개하자 쌍방의
검이 한데 어울려 맹렬한 싸움이 전개되었다.
어느덧 해는 서산마루에 걸려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했다. 순식간
에 그들은 벌써 백 초 이상을 싸운 것이다.
마문비는 시력이 매우 뛰어나고, 또 인월도장의 곁에 제일 가까
이 서 있었으므로 인월도장의 이마에 구슬 같은 땀방울이 흐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반대로 소영은 싸움이 더할수록 용감해져서 검세가 점점 사나와
졌다.
순간 소영은 갑자기 검세를 더하여 겹겹으로 싸인 검기를 밀어
냈다. 은색 광망이 파도처럼 밀려 갔다. 쨍그랑! 하고 금속이 부딪
치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어느새 검기는 사라지고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났다.
소영은 그대로 검을 들고 서 있는데 인월도장의 장검은 땅바닥에
떨어져 뒹굴었다.
인월도장은 천천히 소매를 들어 이마의 땀방울을 씻었다. 이윽고
그는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삼장주의 검술은 과연 높은 경지에 이르렀소. 나는 적수가 될
수 없소.”
소영이 포권을 하며 말을 받았다.
“도장께서 양보하셨겠지요.”
인월도장은 천천히 땅바닥에 떨어진 검을 주어서 검집에 꽂았다.
“삼장주는 빈도를 이기긴 했지만 천하의 영웅들을 다 이긴다고
할 수 없을 것이오.”
인월도장은 말을 마치고는 빠르게 달려 갔다. 소영은 총총히 사
라지는 인월도장의 뒷모습을 지켜 보고 있다가, 그가 완전히 사라
지자 그만 긴 한숨을 쉬었다.
그때 갑자기 홍의를 걸친 사나이가 등에 꽃은 화룡봉(火龍棒)을
뽑아 들고 냉랭하게 외쳤다.
“나는 육괴장이오. 삼장주의 절학을 교훈받을까 하오.”
“그야 물론 모셔야지요.”
이때 전노파가 갑자기 큰소리로 말했다.
“그의 무기와 화기를 조심해요.”
육괴장이 이 말을 듣자 코웃음을 쳤다.
“중원에 이름이 떠들썩했던 전노파가 백화산장에 가담할 줄은 정
말 몰랐소.”
전노파가 노한 소리로 말을 받았다.
“노신이 백화산장에 가담했다고 누가 그랬소?”
육괴장이 반박했다.
“여러 사람이 똑똑히 지켜 보는 가운데서 당신은 백화산장의 편
을 들었소. 그래도 내 말이 거짓말이오?”
전노파는 다시 말을 받았다.
“노신은 소영과의 약속 때문에 그를 도와주는 것 뿐인데, 그게
백화산장과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마문비가 이때 말참견을 했다.
“그렇다면 노선배님은 소영이 백화산장의 삼장주란 사실을 알고
계시오?”
“물론 알고 있소.”
마문비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당신이 소영을 도와 주는 것이 천하영웅들과 적대되는
것임을 왜 모르시오? 만일 노선배님께서 백화산장의 사람이라면 모
르되,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당신이 그의 편에 가담한단 말이
오? 아무튼 오늘의 싸움이 끝난 후에는 그 승부가 어떻게 되든 노
선배님은 누명을 벗기 어렵겠소이다.”
전노파가 말을 받았다.
“노신의 일은 총타주 당신이 관여할 바 아니오.”
이때 육괴장이 언성을 높였다.
“나는 이미 전노파의 이름을 들은 지 오래요. 소영을 처치하고
나서 교훈을 받겠소.”
소영은 그 말을 듣자 크게 노했다.
“당신은 그 보잘것 없는 화룡봉을 믿고 그렇게 큰 소리요?”
“삼장주, 당신이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면 한번 시험해 보시지.”
육괴장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룡봉을 휘둘러 곧장 내리 쳤
다. 소영은 이미 전노파의 경고를 받고, 화룡봉의 위력이 괴이하다
는 것을 알고 피해 버렸다. 그리고는 장검을 휘둘러 육괴장의 오른
팔을 향해 찔렀다.
육괴장이 팔을 낮추어 소영의 검세를 피하고 화룡봉으로 소영의
허리를 쓸어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무수한 검꽃이 떨어져 내리며
두 팔을 향해 검세가 밀려 왔다. 육괴장은 재빨리 몸을 돌려 이 보
후퇴했다.
그러자 소영은 기합소리를 내며 검과 장풍을 함께 쳐 내 속공을
전개했다.
육괴장은 소영의 이와 같은 세력에 눌려 감히 화룡봉의 위력을
전개하지 못했다. 이처럼 한 번 때리고, 한 번 찍는 공세는 매우
어려운 것이지만 소영은 공격을 자유자재로 해 내고 있었다.
이때 당원기가 등에 메고 있던 활을 내려 화살을 쏘아 냈다.
화살은 무서운 위력을 지녔고 당원기는 소영이 이동하는 거리까
지 계산에 넣어서 화살을 쏘았으므로 소영은 틀림없이 맞게 되어
있었다.
이처럼 형세가 다급해지자, 소영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장검
을 휘둘러 음우폐일(陰雨弊日) 초식으로 검기를 일으켜 문호를 봉
해 버렸으나 소영의 검세는 화살의 방향을 약간 위로 치우치게 하
는데 그쳤을 뿐 막아 내지는 못했다.
장전은 칼을 스치고 싹! 하는 소리와 함께 소영의 어깨쭉지 옷을
찢어 놓았다.
소영은 깜짝 놀랐다.
육괴장은 이 틈을 이용하여 기선을 잡고 소영을 물리쳤다.
이때 전노파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크게 외쳤다.
“좋소. 당신들은 소위 강호에서 이름난 인물들인데, 이렇게 떼를
지어 공격하시오?”
당원기는 화살을 또 꺼내서 시위에 재다가, 전노파의 이와 같이
꾸짖는 말을 듣고는 가슴이 뜨끔하여 다시 화살을 주머니에 넣어
버렸다.
소영은 당원기의 화살로 마음이 흩어져서 암암리에 그의 거동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그가 장전을 거두는 것을 보고는 마음을 놓았
다. 그는 정신을 가다듬고 장검을 다시 휘둘러 삼 초를 맹렬히 공
격하여 다시 육괴장을 열세로 몰아 넣었다.
육괴장은 독화정기와 함께 강호의 정사이화라고 불리우고 있는
만큼 호탕한 위인인지라 화기를 사용하기 전에 미리 경고를 했다.
“삼장주의 무공은 과연 높소. 하지만 이제부터는 내가 화기를 전
개 할 터이니 조심하시오.”
소영은 그 말을 듣자, 한 차례 한숨을 내쉰 후 건청기공을 잔뜩
운 행하여 몸 주위를 강기(薑氣)로 둘러쌌다. 소영은 그러면서도
검세는 조금도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육괴장은 뒤로 훌쩍 뛰어 팔 척 가량 물러서서 소영의 검
세의 위력권 밖으로 탈출했다. 육괴장이 곧 화룡봉을 휘두르자 번
쩍하며 화설(火舌)이 빠르게 뿜어 나왔다. 그 화세는 길게 뻗어 오
다가 소영의 앞삼척 전방에서 화염 덩어리를 만들었다.
소영은 깜짝 놀랐다. 소영은 진기를 끌어 모아 날아 올랐다. 그
러자 화염은 소영의 두 발을 스치고 지나 갔다. 육괴장은 일격이
있은 후에는 소영이 반드시 위로 솟아 오르리라는 것을 예상했다는
듯, 화룡봉을 들어 공격했다.
소영은 공중에서 다리를 굽히고 몸을 한 바퀴 빙 돌아 옆으로
사, 오 척 날아 갔다. 실로 아슬아슬하게 그 무서운 화염을 피해
냈다.
육괴장은 소영의 날쌔게 피하는 신법을 보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
다. 육괴장의 화룡봉 속엔 세 개의 기관이 장치되어 있어 적과 대
결하는데 있어서 세 번 밖에 불꽃을 뿜어 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
러므로 나머지 한 개마저 써 버린다면 이 화룡봉은 평범한 무기가
되어 버린다. 그렇게 되면 시간을 소비해 가며 다시 화약을 장전해
야만 한다.
한편 소영도 맹렬한 불꽃을 두 번 피하기는 했지만, 그 불꽃의
기세가 너무도 지독한 것이었으므로 은근히 가슴이 뛰었다.
두 사람은 이와같이 피차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쪽도
공격하지 못하고 경계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
“육괴장, 노신이 들은 풍문에 의하면 이 화룡봉은 싸울 때마다
독화를 세 번밖에 분출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게 정말이오?”
전노파가 은근히 소영에게 알려주기 위해 물은 것이다.
육괴장은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소. 이 화룡봉은 이제 한 번밖에 더 불을 뿜어 낼 수가 없
소. 하지만 무수한 무림의 고수들이 바로 세 번째로 뿜어 내는 독
화에 상한 자가 많으니 삼장주도 조심하시오.”
이때 전노파가 다시 입을 열었다.
“무림의 사람이라면 마땅히 공명정대한 행동을 취해야 하오. 암
기를 사용한다는 것은 벌써 떳떳하지 못한 수단이오. 이 화기로 싸
운다면 당신이 혹시 이길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서 당신이 이긴다
고 하더라도 영웅은 될 수 없는 것이오.”
육괴장은 그 말을 격분한 나머지 말을 가리지 않고 전노파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전노파는 그 말을 듣자 발끈 화가 치밀어 올라서 악을 쓰며 말했
다.
“남들은 그 화기를 겁낼지 몰라도 이 늙은이는 조금도 무서워하
지 않는다. 삼장주, 잠깐 물러서시오. 노신이 이놈과 한바탕 해야
겠소.”
소영이 천천히 대답했다.
“우리는 아직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거늘 어떻게 그만 둘 수가 있
소.”
소영은 말을 마치자마자 와락 달려 들어 검을 중궁(中宮)으로 뻗
어 곧장 육괴장의 심장을 향해 찌르자 육괴장도 다시 화룡봉을 휘
둘러 불꽃을 쏘아 냈다. 화룡봉 속에 장치되어 있던 최후의 마지막
화염은 앞의 두 번보다 훨씬 강렬했다.
사실 소영이 이처럼 그에게 몸을 날려 와락 덤벼든 것은 그로 하
여금 마지막 화룡봉을 쏘아 내도록 유인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서
소영은 불꽃이 뿜어 나오는 것을 보자, 등을 땅에 붙이고, 다시 옆
으로 한 번 뒹굴어서 독화를 피하고 벌떡 일어났다.
육괴장은 싸움을 많이 해 본 사람이라 소영이 피하면서 협초를
전개하여 독화를 피하는 것을 보자, 곧 경각심을 높였다.
그래서 조금 전에 소영이 와락 덤벼 들었을 때는 불꽃을 방출하
여 막고, 잇따라서 금침정해(金針定海) 초식으로 찍어 갔다.
소영은 벌떡 일어서자마자 화룡봉이 벌써 앞가슴에 닦아 있었으
므로 어쩔 수가 없어서 장검을 휘둘러 폐문추월(閉門推月) 초식으
로 문호를 봉해 버렸다.
검과봉이 부딪치는 순간 펑!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육괴장은
화룡봉의 초술을 바꾸어 갑자기 연속 삼봉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소영은 검을 휘둘러 몸을 지키며 오직 수세로써 삼 봉을
모두 퉁겨 버렸다.
육괴장은 오른손으로 화룡봉을 휘둘러 끊임없이 공격하면서 왼손
으로는 품 속을 더듬어 삼양열화탄(三陽熱火彈) 두 알을 끄집어 냈
다.
소영은 두려움을 금치 못했다.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그가 재차 화기를 사용한다면 어떻게
피할 것인가?’
그러나 소영은 이런 생각과는 관계 없이 좌장을 쳐 냈다. 그래서
육괴장이 막 삼양열화탄을 꺼냈을 때는 소영의 장력이 이미 도착하
여 바로 육괴장의 왼손을 때렸다.
육괴장은 손에 암기를 들고 있었기 때문에 소영의 장력을 제대로
막지 못하고 펴자 열화탄은 사, 오 척 앞으로 날아가서 떨어져 땅
에서 훨훨 타올랐다.
소영은 그 광경을 보자 속으로 탄식하고는 단호한 결심을 했다.
소영은 끊임없이 검을 휘둘러 넘실거리는 검영(劍影)의 파도 속으
로 육괴장을 몰아 넣었다.
장내에 둘러 서 있는 사람들은 당원기가 소영에게 패하는 것을
봤고, 청성파의 삼대 명검의 으뜸인 인월도장이 패하는 것도 보았
으며, 육괴장은 아직이 패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상황을 보니 조
만간 패할 위기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맞설 수 있는 사람은 마문비뿐이었다.
전노파는 소영이 연승하는 것을 보자 그 용기와 무공에 감동되어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슬그머니 질투심도 생겼다.
육괴장은 가까스로 십여 합을 지탱해 나가고 있었다.
이때 소영이 큰소리로 외쳤다.
“손을 놓으시오!”
육괴장은 뜻밖에도 고분고분해졌다. 소영의 말대로 화룡봉을 팽
개쳐 버렸다. 소영이 그의 암기가 너무도 지독한데 화가 나서 검끝
을 곧장 육괴장의 가슴에 들이댔으나 육괴장은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나의 기술이 부족해서 졌으니 죽어도 유감은 없소. 삼장주는 빨
리 손을 쓰시오.”
소영은 그의 용기가 가상하게 여겨져 육괴장의 가슴에 들이댔던
장검을 거두어 버렸다.
육괴장은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삼장주의 무공은 과연 높은 경지에 이르렀소.”
“과찬이시오.”
소영은 시선을 돌려 장내를 훑어 보며 입을 열었다.
“나와 단독으로 겨루어 볼 분이 또 계시오?”
장내의 호걸들은 이미 소영의 용기와 그의 무공을 다 본터라 감
히 단독으로 겨루겠다고 나오는 자가 없었다.
이윽고 마문비가 가볍게 헛기침을 몇 번 하고 나서 입을 열었다.
“삼장주의 무공은 우리들이 보아서 잘 알았소이다. 심목풍이 좌
우의 손처럼 의지하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오.”
소영은 그 말을 듣자 양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가 무어라 대답
을 하려는데 또 마문비가 말을 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오늘 싸움은 무림의 일반적인 명성을 겨루는
무술 경기는 아니외다. 삼장주가 비록 연승했다고는 하지만, 이것
은 어디까지나 우리들이 삼장주의 무공을 떠본 데 불과하오. 우리
들은 삼장주를 제거하려는 마음이 더 굳어졌소이다.”
전노파가 말을 가로채고 나섰다.
“사설만 늘어 놓을 것 없소. 당신들이 한꺼번에 덤비고 싶다면
마음대로 출수를 해 보시오.”
소영은 전노파의 말을 듣고서야 비로소 마문비의 말뜻을 깨닫고
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소. 나는 지금 틀림없이 백화산장의 삼장주요. 그러나 나는
절대로 악한 일은 하지 않았소. 그렇지만 여러분이 나를 핍박하고
공격한다면 나는 변명할 말이 없소. 다만 한 마디 일러 두고 싶은
것은 무기에는 눈이 없으니 여러분께서 떼를 지어 공격하신다면 유
혈의 참극이 벌어질 것이 두렵구려.”
“우리들은 이미 강호에 몸을 들여 놓은 사람들인데 어찌 생사를
그다지 두려워하겠소? 삼장주께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줄 아오.”
소영은 안색이 돌변했다.
“여러분께서 꼭 싸우시겠다면 할 수 없소이다.”
소영은 정신을 가다듬어 검을 쳐들고는 타는 듯한 시선으로 마문
비를 노려 보았다.
마문비는 견문이 넓은 사람이었다. 검을 쳐드는 소영의 태도를
보자 그게 바로 상승검도 중의 어검수법이란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
다.
마문비는 겁이 덜컥 났다. 그가 이번에 출수하면 틀림없이 누구
든 그의 검 앞에 피를 뿌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곧 부채
의 용수철을 눌렀다.
“여러분은 물러나시오. 내 혼자서 삼장주와 싸우겠소.”
주위의 호걸들은 마문비의 처사를 이상하게 생각했지만 그러나
마문비의 무공이 워낙 높으므로 잠자코 그의 말대로 물러섰다.
소영은 전신의 공력을 장검에 모으고 조용히 서 있었다. 마문비
는 부채를 들어 소영의 앞가슴을 겨누고 용수철을 누르고 있었지
만 곧 출수하지는 않았다. 소영은 검을 옆으로 들고 서서 공수(攻
守)를 겸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마문비는 묵묵히 한참 동안 소
영을 노려 보았지만 여전히 손을 쓸 기회를 얻지 못했다. 소영은
몸을 두어 번 부르르 떨더니 갑자기 휴우 하고 긴 한숨을 내쉬며
장검을 떨구고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
“마형! 돌아가시오. 기회는 얼마든지 있소.”
마문비는 부채를 도로 넣어 버리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신의 이 일검을 받아 낼 수 없소.”
“마형은 지나치게 겸손하시군요.”
“제가 아무리 보아도 소형은 진짜 백화산장의 사람 같지 않소.”
소영은 담담하게 웃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틀림없이 백화산장의 삼장주인 걸요.”
“그 이면에는 반드시 숨은 사정이 있을 것이오. 나는 소형과 터
놓고 얘기하고 싶소.”
마문비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소제는 강호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무수한 소년 영웅들과 친분
을 맺어 왔소. 그러나 소형 같은 뛰어난 재주와 지혜와 무공은 처
음 보았소. 지금 강호는 가는 곳마다 살기가 등등하고 악마가 성행
하여 도의가 꺼져가고 있소. 소형은 이제 소년 영웅이시니 기둥이
되어서 도의를 지키고 마를 제거하여 무림을 위해 평탄한 길을 열
어서 백세에 불멸할 공을 세우셔야 하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뭣 때
문에 마의 소굴에 몸을 맡기시고 인간에게 죄를 지으시려 하오?”
“소제의 고충을 다 말씀드리기는 힘드오. 내일밤 이 때에 여기서
기다리겠소. 마형께서 틈이 계시다면 만나 주시기 바라오.”
마문비가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소. 내일 삼경까지 소제는 있는 힘을 다해서 천하 영웅들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막겠소.”
마문비는 돌아서서 군호들을 거느리고 재빨리 달려 갔다.
소영은 마문비의 사라져 가는 모습을 바라 보고는 야릇한 정을
느꼈다. 전노파는 지팡이로 땅을 한 번 치고 나서는 말했다.
“오늘밤 이곳에서 피가 내를 이루고 시체가 산적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좋은 장면으로 끝나게 됐군요.”
소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것은 마문비의 영웅다운 기품과 비범한 기지에서 기인된 것이
오.”
전노파가 말을 이었다.
“그가 만일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그만한 나이에 어찌 하남, 호
북, 강서 등 사 성의 무림 인물들을 영도할 수 있겠소.”
소영은 하늘을 우러러 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오늘 밤에는 다시 침범하는 자가 없었으면 좋으련만…”
이때 뒤에서 금란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삼장주님은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소영은 금란을 돌아보며 물었다.
“은란과 당낭자의 독상은 어떤가?”
“약을 먹은 후 크게 호전되어 지금 밀실에서 조식을 하고 있습니
다 제가 들어가서 돌보겠습니다.”
금란은 돌아서서 방 안으로 들어 갔다.
이때 전노파가 갑자기 깔깔 한바탕 요란스럽게 웃어젖혔다.
“노신은 오늘 정말 통쾌한 구경을 잘 했구먼. 많이 피곤하지?”
소영은 씁쓰레하게 웃었다.
“저는 아직 괜찮소이다. 오히려 할머니께서 저희들을 위해 친히
싸워 주시고 그들과 원수가 되었으니 저는 미안한 마음 금할 수가
없습니다.”
전노파가 말을 받았다.
“우리의 일은 교환 조건으로 이루어진 거야. 오늘은 내가 삼장주
를 도와 주었지만, 내일은 삼장주가 나를 도와 주어야 할 테니 미
안해 할 것도 없지.”
소영이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내일 할머니께서는 누구의 연회에 가시는지 미리 저에게 알려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전노파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일이면 자연히 알게 될 텐데… 갑자기 알고 싶어졌나?”
이때 은란과 금란, 당삼고가 나란히 나타났다.
소영이 말했다.
“저 할머니께서 해독약을 주셔서 두 분이 살아났소. 두 분께선
저 분에게 감사를 드려야 하오.”
전노파가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약을 준 건 교환조건에 불과해. 그러니 두 사람은 이 노신
에게 감사를 드릴 필요가 없어.”
당삼고는 그 말을 듣자 어리둥절해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는
듯 나직이 소영에게 물었다.
“당신은 무엇으로써 저분의 해독약과 교환하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