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70
70. 네 영웅 탈출하다
그들은 계획했던 일을 매우 위험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의외로 일
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손불사의 몸에서 우근은 끊어졌지만 그는 별로 반기는 기색이 없
었다. 오히려 점점 어두운 그늘이 그의 얼굴에 깔려 가고 있었다.
감개가 무량한 듯 깊이 한숨을 들이켰다가 내뿜었다.
소영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노선배님, 운기하여 보십시오. 무공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는지
요?”
“늙은 거지는 이미 운기해 보았네.”
“노선배님의 무공은?”
“그들은 나를 써먹을 생각이었던 게지. 그래서 혈맥은 다치지 않
았네. 늙은 거지는 소대협을 구하려고 생각했었는데 뜻밖에도 소대
협이 먼저 나를 구하다니…. 허허….”
상팔이 웃으며 말했다.
“헤헤…. 그 소요자란 놈은 백번 치밀했으나 한번 소홀했군요.
큰 형님의 손목 힘이 얼마나 센지를 생각해 내지 못했으니 말입니
다. 바로 꽃을 날려 사람을 상하게 하고 잎을 따다가 적을 만든 지
경에 이르렀군…..”
소영이 머리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술잔이 없었더라면 할 수 없었을 것이오.”
이즈음 가까이 다가오는 발자국소리가 들려 왔다.
손불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늙은 거지의 몸에서 우근이 떨어져 나갔으니, 이제 그놈들이 가
만 두지 않겠지.”
그 발자국소리는 이미 창문 앞에 서 있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창
문을 두드렸다.
“누구냐?”
바깥에서 말소리가 들려 왔다.
“저는 명령을 받들고 왔습니다. 일러드릴 말씀이 있습니다만…”
손불사는 우근을 발로 밟고 있었다. 바깥 사람은 조금도 방 안의
동정을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손불사가 조용히 말했다.
“무슨 일인가. 들어와 말해라!”
창문이 열리면서 두 명의 청의동자가 들어 왔다. 사방을 훑어보
던 그들은 손불사의 우근이 벗겨져 있음을 보고 깜짝 놀랬다.
순간 그들은 칼을 빼들려고 했다. 문 뒤에 숨어 있던 상팔, 두구
가 나는 듯 그들에게 달려 들었다. 두 명의 청의동자가 칼집에서
칼을 뽑아 들기도 전에 이미 그들의 혈도가 상팔, 두구에게 막혀
버렸다. 과연 중주이고는 고수답게 몸 씀씀이가 전광석화와 같이
빨랐다.
손불사는 몸을 구부리고 두 자루의 칼을 집어 들고는 창문을 닫
았다.
“쌍검을 빼앗았으니 전력이 강화된 셈이군. 이제 가장 중요한 일
이 남았네. 어떻게든 그 형구의 열쇠를 찾아야겠는데, 그래서 얼른
세 분의 몸에 얽힌 형구를 따 버려야 할 게 아니오!”
그의 목소리는 더욱 낮았다.
상팔이 말했다.
“왜 이 청의동자에게 물어 보시지 그럽니까?”
“좋아요!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아무렇게나 엎어져 있는 청의동자에게 손불사는 엎드려 다가갔
다. 그의 몸을 더듬더듬하더니 혈도를 짚어 살려 내었다. 청의동자
는 부시시 일어나다가 손불사를 힐끗 쳐다 보더니 벌떡 일어섰다.
그러나 두 무릎의 혈도는 아직도 맞은 채여서 그대로 힘없이 주저
앉고 말았다.
그는 공포에 질려 두리번거렸다.
손불사는 장검을 다시 한 번 꽉 힘주어 잡고는 청의동자의 목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사정이 사정인만큼 네가 소리를 지른다면 당장에 죽여 버리겠
다.”
“지금 이 배는 강 한가운데 있어요. 이 주위에는 스물네 척의 배
가 호위하고 있으니 당신네들이 도망친다는 것은 도저히 안 될 소
리요.”
“그 일에 대해서는 네가 신경쓸 필요 없어. 넌 이 늙은 거지의
묻는 말에만 잘 대답하면 되는 거야!”
청의동자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입술이 굳게 닫혔다.
손불사가 물었다.
“이 형구를 따는 열쇠는 누가 보관하고 있느냐?”
“소요도장께서 보관하십니다.”
“믿을 수 없어!”
손불사의 목소리는 매우 위협적으로 들렸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숨소리까지 모두가 사실입니다. 하지만
못 믿으시겠다면 별 도리가 없지요.”
두구가 오랜만에 말했다.
“노선배님, 그들과 입다툼할 필요 없습니다. 이 두 놈을 죽여 버
리고 원상태로 돌아가 얘기합시다!”
손불사의 칼날이 청의동자 목 부근에서 두어 번 날카롭게 위협적
으로 번뜩거렸다. 찌를 듯이 칼을 고쳐 잡으며 그가 말했다.
“이 늙은 거지의 마음이 사나워지면 너의 그 반반한 얼굴에 칼자
국이 남을 것이다.”
이 말에 청의동자는 더욱 겁에 질린 듯했다. 자기의 준수한 얼굴
에 상처가 생긴다는 것을 매우 두렵게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왜 죽이지 않소?”
“죽인다고 네게 좋을 게 뭐냐?”
이때 또 누가 매우 바삐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손불사는 상팔과 두구를 힐끗 쳐다보고는 한 손가락으로 그 청의
동자의 혈도를 재빨리 집어 눌렀다.
똑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동시에 아리따운 여자의 음성이 귓
전을 때렸다.
“여러 어르신네들, 술과 안주를 더 하시겠습니까?”
두구는 창문을 살짝 열고 말했다.
“낭자, 들어오시지!”
호수에 미풍이 일 듯 어느새 그 소녀는 선실 안으로 사뿐히 들어
왔다. 날렵한 발걸음이었다.
상팔이 한 손가락을 뻗쳐 그녀의 등쪽 혈도를 향해 찔렀다. 이때
한 줄기 찬 빛이 눈 앞을 스쳐갔다. 뒤따르던 또 하나의 비녀가 얼
른 보검을 내리쳤던 것이다.
원래 이들 비녀와 동자들은 모두 특수한 훈련을 받아 몸이 날래
기 이를 데 없는 터였다.
상팔이 얼른 손가락을 거두었다.
“대단히 민첩한 계집이로군, 이 계집애를 달아나게 할 수는 없
어.”
두구가 이렇듯 말을 내뱉으며 얼른 선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뒤
따르던 비녀가 어느새 달아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손불사는 과연 빨랐다. 누구보다도 먼저 창문을 가로막고
서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일이 그야말로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났다.
“하하하… 우리들의 행색이 발각된 바엔 숨을 필요가 없겠군.”
상팔이 껄껄거리면서 그 녹의비녀에게서 보검을 뺏어 들었다. 손
불사는 다시금 선실 안으로 돌아서며 말했다.
“이 오색 거선 속에는 우리가 알 수 없는 많은 비밀 장치가 되어
있으니 밖에 나가는 것보다는 당분간 이 선실 안에서 지켜보는 것
이 좋을 것 같소.”
소영이 머리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좋아! 적을 사로잡으면 왕도 사로잡는 것이라 했겠다. 이제 소
요자를 사로잡는다면 사해군주를 협박하여 반드시 형구의 열쇠를
찾을 수 있겠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무리의 발자국소리가 돌진해 왔다. 네
명의 청의동자, 네 명의 녹의비녀를 거느리고 소요자가 노기 충천
해서 광풍이 몰아치듯 달려 오고 있었다.
손불사가 중얼거렸다.
“과연 소요자가 몸소 나타나셨군. 그놈의 무공이 고강한지라 이
늙은이는 아마도 그를 사로잡을 수 없을 거요!”
“우리는 각기 전심전력을 할 뿐이지. 지금 당장 성공이냐 실패냐
를 가릴 것은 없습니다.”
소영이 힘주어 소리쳤다.
이때 소요자의 성이 나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분들은 모두 무림에서도 고명한 신분을 가지신 분들이 어찌
말에 신용이 없소?”
손불사가 응답했다.
“거짓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병법에도 씌어 있소. 늙은 거지는 이
나이가 되도록 살면서 적대지중에 신의를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보겠
구료!”
“당치도 않는 소리를…..”
소요자는 채 말도 못 맺고 말았다.
잠시 긴장된 침묵이 흘렀다.
“하하하핫…. 하하하….”
돌연 소요자가 크게 웃었다. 두구가 따지듯 말했다.
“네가 우리 형제에게 형구를 씌운 것은 거짓말이 아니더란 말이
냐?”
소요자는 걸음을 뚝 그치고 힘주어 말했다.
“빈도는 본래 인성이 악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먼저 두려움을 주
어 복종케 한다. 그러나 우리 군주는 인성이 선하다고 여기시어 덕
으로 먼저 정복케 하시지…..”
손불사가 말이 끝나기도 전에 냅다 소리를 질렀다.
“말도 안 되지 소리. 늙은 거지도 벌써 진력이 나도록 들었다.”
두구가 소리쳤다.
“이제 형세는 분명해졌소. 우리와 화의할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싸울 것인가 한마디로 결정하는 수밖에 없소.”
소요자는 싸늘하게 말했다.
“흥! 기껏 늙은 거지의 몸에서 우근을 끊어 냈다고 큰소리를 치
는가! 그 형구를 풀 도리가 없거늘 어찌 감히 싸움을 걸어 온단 말
인가!”
“그까짓 형구쯤은 문제가 아니지, 싸우는데 별 지장이 없을 걸
세.”
“빈도는 벌써 이럴 줄 알고 대책을 세워 두었단 말이야. 너희들
이 지금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여 명령을 듣는다면 또 한번
살 기회는 있지!”
소요자가 천천히 걸어 나와 창문에까지 다가오며 말했다.
손불사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
“허허, 이 고집쟁이야. 네가 감히 늙은 거지와 한바탕 싸워 볼
생각이란 말이지! 하하하…..”
소요자는 손불사를 노려 봤다. 그의 눈이 불꽃처럼 번뜩였다.
“빈도가 설마 너를 두려워할까?”
“좋다. 생사가 결단날 때까지 싸우는 수밖에 없겠군.”
그는 소요자가 주의를 흐트릴까 봐 칼을 곤두세우고 바람을 가르
며 뛰쳐 나갔다.
소요자는 수중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한가닥 가벼운 바람을 일깨
우더니 칼끝을 재빨리 피해 나가면서 말했다.
“너희들이 빈도의 무공을 알고 싶다면 한순간도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
손불사는 팔을 내리고 장검을 거두어 들었다. 다른 한 손으로
훅! 하는 소리와 함께 일장을 격출했다. 그의 내력은 웅혼했으며,
장세는 강맹하기 비길 데 없었다.
소요자의 손에서 떨어져 나온 먼지 같은 것이 두 가닥의 날카로
운 기세로 음산하면서도 줄기찬 힘을 여러 갈래로 용출하고 있었
다. 손불사와 소요자의 장력은 서로가 강맹절륜한 것이어서 중간에
서 서로 부딪쳐 무형으로 와해되어 버렸다.
손불사는 내심 적이 놀랐다.
‘이 고집쟁이 노도를 경시해서는 안 되겠구나!’
그러면서 돌연 수중의 장검이 세 송이의 검화를 그리면서 소요자
의 앞가슴 세 곳의 큰 혈도를 노리며 급습했다.
소요자는 냉소하며 불진을 거두고는 검신을 향해 막아 섰다.
손불사는 생각했다.
‘이놈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가를 시험해 보자.’
손불사의 검세는 조금도 늦춤이 없이 그의 불진을 향해서 돌진하
고 있었다.
쏴샤! 쏴샤! 바람이 칼날에 부딪히는 듯한 소리만 들릴 뿐 숨소
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서로의 긴장된 눈초리는 쇠라도 뚫을 듯 기
운이 뿜어 나왔다.
손불사의 백련정강한 검세와 소요자의 봉비하는 진사는 부딪칠
때마다 일진의 날카롭고도 소름끼치는 금속성 소리를 발했다.
이윽고 그 유화한 소요자의 진사는 손불사의 장검을 타고 압박해
오기 시작했다.
손불사는 검신을 고정시키고는 암암리 내공을 써서 소요자의 진
사의 힘을 칼끝에 가늠했다. 검신에 압박해 오는 소요자의 불진은
점점 칼을 타고 은밀한 힘으로 손불사의 손을 타오르고 있었다.
“얍!”
손불사가 돌연한 기합을 발출하자 그의 검신은 바들바들 떨리면
서 소요자의 앞가슴을 냅다 찔렀다.
소요자는 얼른 한 걸음 물러섰다.
‘이 늙은 거지의 공력이 과연 보통이 아니구나!’
손불사는 두 발자국쯤 뒤로 물러서더니 다시 검신을 비켜 세우고
섰다.
소요자의 내력이 검신을 따라 진격하여 옴을 느끼고, 오히려 피
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수련한 정순한 내공으로 일격을 가할 작정
이었던 것이었다.
만일 그때 소요자가 피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은 모두 패하여
부상을 입을 뻔하였다.
그러나 어찌 소요자가 생명을 무릅쓰고 싸우겠는가! 그는 몸을
보살펴 피했던 것이다. 그러나 손불사는 그때 이미 소요자의 내력
이 어깨에까지 침격하여 한 대 얻어 맞았다. 손불사는 응변에 쾌속
했다. 얼른 두 발자국 물러서서는 기회를 타서 어깨에 맞은 상처를
드러냈다. 강하게 얻어 맞기는 했으나 중상은 아니었다.
소요자는 기선을 잡았지만 조금도 소홀히 하는 빛이 없이 뒤로
물러났다.
“형님, 그를 가게 버려 둘 수 없습니다.”
상팔이 성급하게 뛰어 들려 했다.
소영이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도장, 걸음을 멈추시오.”
소요자는 이미 멀찌감치 물러가고 있다가 소영의 고함소리를 듣
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말을…..”
“제가 또한 도장께 몇 초의 절학을 배우고 싶습니다.”
소요자는 소영의 몸에 얽힌 형구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당신은 쾌검으로 알려진 가장 훌륭한 검객이라는 것을 빈도도
들어 알고 있는 지 이미 오래요. 그러나 당신 몸엔 형구가 씌워져
있고 수중엔 칼이 없으니 어떻게 빈도의 상대가 될 수 있겠는가?”
“빈손으로 몇 초 배워도 마찬가지입니다.”
두구가 나서며 말했다.
“이 고집쟁이 노도야. 당신의 인물됨이 영웅이라면 즉시 형님의
몸에 매인 형구를 풀어야 하지….”
소요자는 머리를 내저으며 말했다.
“빈도는 수양을 쌓은 사람이오. ….허허, 어찌 필부의 언사 때
문에 격노하겠는가?”
상팔이 냉랭하게 말했다.
“당신이 만약 우리들로 하여금 사해군주의 휘하에 들어가길 원한
면 한 가지 방법이 있을 뿐이오.”
“오! 그것 참, 빈도가 가르침을 들어야겠는걸. 무슨 좋은 수가
있소?”
“우선 우리 형님의 형구를 풀고 그에게 장검 한 자루를 주시오.
그 후에 도장과 승패를 겨루시오. 만일 도장이 우리 형님을 이긴다
면 달갑게 하라는 대로 하겠소.”
그리고는 상팔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빈도가 불행하게도 당신의 형님에게 패한다면…..”
“그러면 사람을 볼 면목이 있겠는가? 죽는 수밖에 없지!”
잠시 있다가 상팔은 계속하여 말했다.
“죽여 버릴 것까지는 없지. 도장 자신이 정한 대로 하면 될 것이
니까.”
“만일 내 나이 삼십 전이라면 생각할 것 없이 즉시 대답해 버렸
을 것이오.”
“지금은?”
두구가 재빨리 물었다.
“지금? 글쎄, 빈도는 결코 경솔히 대답할 수가 없소.”
“뭣 때문에?”
상팔이 물었다.
“이 일이 지나친 모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감히 못하겠다고? 감히 할 수 없다면 죽은 귀신을 조상하는데
단장할 필요 없지, 죽어 버려라!”
두구가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이때 소영이 힘주어 말했다.
“만일 제가 몸에 형구를 쓰고 적수공권으로 도장과 양초를 겨룬
다면 도장은 해 보시겠소?”
이때 손불사는 이미 원기를 회복하고 있었다. 그는 두 눈을 부릅
뜨고 카랑카랑한 소리로 말했다.
“소요자는 지극히 경계심이 강한 사람인데 소대협이 그처럼 모험
을 한다 해도 그가 응낙할 리 없지!”
소요자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일생 동안 저지르지 않은 일을 해야겠다. 응낙하겠다.”
소영이 대답했다.
“그 길은 비좁으니 도장께선 선실로 들어오셔서 가르쳐 주십시
오.”
소요자는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창문 어귀까지 걸어 왔다.
“빈도는 바로 이곳에서 소대협의 놀라운 무공을 보겠소.”
소영은 가슴을 내밀고 두 발짝 큰 걸음을 떼어 놓고 말했다.
“도장! 출수하십시오.”
소요자는 소영을 힐끗 훔쳐봤다. 소영이 서 있는 자리는 바로 그
의 불진이 미칠 수 있는 곳이 아닌가!
‘이 사람은 나이도 그리 많지 않은데 이처럼 담략이 크고 호용한
기백이 있단 말인가! 정말 놀라운 일이구나.’
소요자는 내심으로 경의하는 마음이 솟구쳤다.
“어린 자네가 적수공권으로 어찌 빈도의 신기를 뺏을 수 있는가!
먼저 출수하라!”
상팔이 또 끼여 들었다.
‘네가 심중으로 너무하다 생각하거든 먼저 우리 형님의 형구를
벗김이 좋지 않겠는가?”
“허허…. 빈도는 재삼 설명했다. 여러분들이 무슨 소리를 한다
고 하더라도 빈도를 격노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고.”
소영은 은밀하게 진기를 제기하면서 말했다.
“도장께서 먼저 출수해도 좋습니다.”
“좋소. 소대협은 그토록 준걸이니 빈도는 명령대로 받들겠소.”
하고 불진을 휘둘렀다. 그것은 소영의 머리를 향해 강한 힘으로
돌진해 왔다. 그가 발출하는 초식이 한 자 넓이의 원을 그리면서
전율해 옴을 느끼며 생각했다.
‘불진을 보니 검세보다 더욱 피하기가 어렵겠구나.’
소영은 한편 두어 자 걸음으로 몸을 옮겨 이를 피했다.
소요자는 불진을 거두며 말했다.
“이 선실은 불과 몇 평의 넓이라, 나의 실력을 발휘하기에는 충
분치 못하군.”
소영이 받아 넘겼다.
“그렇다면, 도장께서는 내가 출수할 테니 받으시오.”
동시에 오른손을 들어 화살같이 날카로운 바람으로 일격을 가했
다. 소영은 이미 운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람은 무섭도록 빨랐
다. 일진의 경미한 휘파람 소리를 내며 소요자를 향해 질주했다.
아직도 어린 나이에 이처럼 놀라운 성취가 있었던가!
질주하는 바람은 암암리에 이미 소요자의 몸에 접근했다. 너무도
순식간의 일이라 소요자는 미처 생각할 겨를이 없이 얼떨결에 비켜
섰다. 지풍은 소요자의 몸을 스쳐가며 그의 넓은 옷소매에 구멍을
내 놓고는 창 밖으로 빠져 나갔다.
“앗!”
비명과 함께 엉뚱하게 청의동자가 나동그라졌다.
소영의 지력은 소요자를 피하며 그를 따라 온 청의동자에게 맞아
격살했던 것이다.
소요자의 놀라움은 대단했다. 얼굴빛이 확 변하며 한마디 했다.
“금강지력이군. 과연 비범하오. 그 기예는 바로 소림칠십이종 절
기 가운데 제칠종 절예인데 소대협은 어디서 배웠는지……”
“제가 사용한 것은 금강지력이 아니옵니다.”
“아니라고? 소림의 금강지력을 제외하고 이렇게 강력한 위세가
있을 수 있을까?”
두구가 냉소했다.
“그거 참! 너의 그 고루하고 얕은 견문이 이상할 뿐이다!”
소요자는 노했다. 비록 수양이 깊다 하나 이러한 모욕을 참을 수
가 없었다.
“나의 군주께서는 그 재주를 아깝게 여겨 아직 대력을 쓰지 않고
살려 두었음을 알지 못하는군! 그리고도 빈도를 이토록 노하게 만
드니 단단히 골탕을 먹어야겠군!”
손불사가 말했다.
“소요자! 너도 이미 알겠지? 우리들을 죽일 수 있는 기회는 이미
지났다는 것을!”
“손형이 우근을 풀었다고 해서 감히 이처럼 호언장담하는 것이
오?”
“늙은 거지는 너 소요오자를 상대할 자신이 있다. 소대협과 중주
이고는 비록 형구를 차고 있다 하나 또한 자신을 보전할 능력이 있
단 말이야.”
“빈도가 만일 여러분을 사지에 두고자 한다면, 여러분과 무공으
로 싸울 필요가 있겠는가?”
두구가 냉소하며 말했다.
“도장께서 만일 이 오색 거선을 가라앉히고 싶다면 우리 형제도
달갑게 여길 것이다. 그러나 몇 사람이나 건져낼 수 있겠는가?”
손불사가 말했다.
“하하…. 이 늙은 거지는 소요도장을 찾겠다.”
상팔은 말했다.
“우리 중주이고는 동남동녀 몇 사람을 찾겠다. ”
소영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수고스럽지만 도장께서는 그 사해군주에게 전해 주십시오. 소모
라는 분이 군주의 무공을 한번 보고 싶다고.”
소요자는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눈빛엔 완연히 살기를 띠고
있었다. 분명히 수양이 부족한 이 사람은 몇 사람의 말에 몸을 가
누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는 억지로 화를 누르고는,
“여러분이 이미 빈도의 살인방법을 시험해 보게 한 이상 어쩔 도
리가 없겠구료! 흥, 빈도는 곧 귀하들의 명령을 따르겠소.”
손불사는 돌연 장검을 휘둘러 대며 소리쳤다.
“늙은 거지는 오늘 도장과 물거품이 되겠다. 도장이 만일 이곳을
편안히 떠나고 싶다면 먼저 늙은 거지에게 항복하라!”
이때 한 동자가 급히 달려와서 소요자에게 낮은 소리로 몇 마디
이르고는 황황히 멀어져 갔다.
소요자는 태연했다. 그러나 경험이 풍부한 손불사는 이미 불길한
징조임을 알았다.
‘저놈이 분명 심경이 어지럽겠구나! 이 틈에 창문을 타서 저놈을
이곳으로 끌어 들이자. 그리하여 소영과 중주이고와 더불어 그를
항복시키는 거다. 그런데 형구의 열쇠를 저놈이 몸에 지니고 있을
까? 그렇기만 하다면 형구를 풀어 꺼릴 것 없이 일방 싸우며 한편
으로 달아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생각을 굴리면서 한편 몰래 진기를 모으며 기회를 노렸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휙! 갑자기 그가 창 밖으로 뛰쳐 나갔다. 손에 든 장검은 살벌한
검기를 발했다.
불의의 습격에 놀란 소요자는 얼른 불진을 휘두르며 손불사에게
대항했다. 그것은 부드러운 반면 강합을 지니고 손불사의 칼과 접
전하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려던 손불사의 의도는 소요자의 불진
에 막혀 버렸다.
빙글빙글 자리를 바꿔가며 두 사람은 일진일퇴의 대접전을 벌이
고 있었다. 간혹 가다 번갯불빛처럼 한 줄기 은광이 터져 나왔다.
그러던 중 한 줄기 빛살이 일어나더니 산을 밀치고 바다를 기울일
형세로 곧장 소요자를 압박해 나갔다.
소요자는 일소의 휘파람소리를 내면서 전력을 다해서 진사를 봉
장하여 대항하고 있었다.
진사는 한 조각 검은 구름처럼 은빛나는 검광을 막고서는 소요자
로 하여금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도록 했다. 편각 같은 시간에
두 사람은 벌써 이십여 번이나 승부를 다투었다.
그러나 불승불패의 대치한 상태로 서로는 백중한 형편이었다.
소요자는 손불사를 한 발자국도 밀쳐낼 수가 없었다.
소영은 두 사람의 대전을 긴장하여 세밀히 살펴보고 있었다. 과
연 소요자의 불진하는 초술은 여간이 아니었다. 손불사와 같은 고
수도 하마터면 소요자의 수중에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에도 두 사람은 몇 번이나 더 합세하여 싸웠다.
“우앗!”
돌연 소요자에게서 벽력과 같은 기성이 터지면서 그의 불진의 초
수는 급변하였다. 손불사는 소요자의 최후의 발악 같은 급변한 기
공에 두어 걸음 밀려 나올 수밖에 없었다.
소요자는 한편으로 품 속에서 무언가를 끄집어 내었다.
펑! 고막을 찢는 소리가 울리면서 어느새 그 물건은 땅바닥에 던
져졌던 것이다. 순식간에 창문은 연기로 가득 찼다. 시야가 가려졌
고 소요자와 손불사의 모습도 없어졌다.
아연한 순간에 손불사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숨을 쉬지 말아요. 마시면 죽는 거요.”
이런 와중에 소요자는 살짝 몸을 숨겨 창문을 빠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