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 Finger RAW novel - Chapter 81
81. 또 다시 부모님을 찾아
소영은 금화부인을 향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누님은 소영의 목숨을 구해 주려다가 몸에 중상을 입었잖소? 소
제의 마음이 어찌 편안하겠소?”
금화부인은 소영을 빤히 쳐다 보더니 배시시 웃었다.
“좋소. 동생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라도 내가 진맥을 받지. 무위도
장께서 좀 수고해 주셔야겠군요.”
무위도장은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그녀의 앞으로 다가섰다.
그는 금화부인의 백옥같이 흰 손목을 덥석 잡더니 눈을 감은 채
맥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방에는 침묵이 짙게 깔렸다.
이윽고 무위도장이 금화부인의 손목을 놓으며 입을 열었다.
“부인의 상처는 대단한 것은 아니군요. 그런데 조용히 앉아서 휴
식을 취하지 않고 무리하게 돌아 다니셨기 때문에 상처가 악화되었
소.”
금화부인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맞았어요. 도장께선 의술이 보통은 넘는군요.”
소영이 끼여 들었다.
“완쾌될 가망이 있소?”
무위도장이 대답했다.
“지금 부인의 기혈은 이미 내부에 깊숙이 침투했기 때문에 많은
시일을 휴양해야 되겠소.”
“긴 시간이 필요하다면 나는 여기서 오래 머무를 수 없어요.”
금화부인의 말에 무위도장이 머리를 저었다.
“안 되오 늦으면 칠 일, 빠르면 오 일은 요양이 필요하오.”
“그럴 수 없어요. 나는 내일 오전에 이곳을 떠나야 되오.”
“부인, 빈도가 일부러 부인에게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오. 만약
에 부인께서 적당한 휴식을 취하지 않고 이대로 몸을 움직인다면
상처는 손을 대 볼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될 것이오. 그 때에는 보살
이 인간세상에 다시 태어나 부인의 병을 고치려고 하더라도 가망이
없소. 부인은 왜 병을 악화시키려고 고집하시오?”
금화부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고집이 아니에요. 내가 만일 여기서 오, 륙 일 동안 있는다면
천하의 어떤 명의가 와도 내 병을 고칠 수 없어요. 나는 하루라도
더 오래 살고 싶은 욕심에서 이곳을 바삐 떠나려는 것이에요.”
금화부인의 말에 소영은 의아하여 물었다.
“그건 무슨 소리요. 살기 위해 휴식을 취하지 않겠다니?”
“꼭 알고 싶소?”
“알고 싶소이다.”
금화부인이 가벼운 한숨을 내쉬며 설명했다.
“일이 이쯤 되었으니 숨겨 무엇하겠소? 사실 나는 심목풍에 의해
중독을 입은 지 오래되었소. 열흘마다 한 알의 해독약을 그에게 받
아 먹지 않으면 나는 생명을 잃게 된다오. 삼 일 후면 내가 해독약
을 받아 먹을 날이니 그 날까지 심목풍에게 가야 되오. 그 날이 지
나면 나는 독성을 이길 수 없어 죽고 마는 것이오.”
“그런 일이 있었오?”
소영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묻자 금화부인은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동생을 속일 것 같소? 나만이 아니라 백화산장의 중요한
인물들은 모두 그 약에 중독되었소. 무공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욱
독성이 무서운 약을 먹었다오.”
금화부인은 힘이 드는지 말을 잠시 끊고 한숨을 내쉬다가 다시
이었다.
“듣기로는 그 독약은 독수약왕이 오랫동안 연구해서 만들었다 하
오. 그 약은 심목풍만이 해독할 수 있을 뿐 천하에 해독할 방법을
아는 사람이 없는 무서운 약이오.”
“음…. 심목풍은 정말 악독하고 잔인한 놈이군.”
소영은 주먹을 불끈 쥐며 허공을 노려 보더니 금화부인에게 물었
다.
“독수약왕이 만든 약이니 그가 해독할 수 있잖겠소?”
금화부인이 대답하기 전에 손불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타깝게도 독수약왕이 어디로인지 숨어 찾을 수 없으니…..”
“그가 이곳에 있다 하더라도 당장 해독약을 만들지는 못할 거예
요.”
금화부인이 한 마디 힘들여 하더니 사르르 눈을 감았다. 몹시 피
곤하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돋
아 있었다. 거칠게 숨을 몰아 쉬던 그녀가 차츰 숨결이 안정되더니
머리를 옆으로 떨어뜨렸다. 잠이 든 모양이었다.
무위도장이 소영에게 눈짓을 하며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금화부인의 잠을 깨우지 말자는 뜻이었다.
소영은 무위도장의 뒤를 따라 나섰다. 방을 나서자 무위도장이
소영을 돌아 보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
“소대협은 금화부인을 구할 생각이오?”
“물론, 구해야 합니다.”
“꼭 구할 생각이라면 모험을 해야 될 것이오.”
“모험을 하다니요? 어떤 모험을 한다는 말이오?”
무위도장은 주위를 한 번 살펴 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녀의 상처는 대단치 않소. 다만 치료를 하지 않고 무리를 했
기 때문에 나쁜 피가 엉켜 있을 뿐이오. 빈도가 건방진 소리를 하
는 것이 아니오. 삼, 사 일이면 그녀의 내부에 뭉친 핏덩이를 없앨
수 있소. 오 일 후면 완전히 회복시킬 수 있지요. 그러나 가장 골
칫덩어리는 그녀의 상처가 아니라 심목풍이 그녀에게 먹인 독성이
문제요.”
“도장께선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소?”
소영의 물음에 무위도장은 머리를 흔들었다.
“심목풍이 금화부인에게 어떤 독을 사용했는지조차 빈도는 모르
고 있소. 안다 하더라도 삼, 사 일 동안에 해독약을 제조할 수는
없소.”
하고는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금화부인이 백화산장으로 들어 간다 하더라도, 수백
리의 길이 그녀의 생명을 뺏을 것이오.”
소영은 가볍게 탄식했다.
“도장의 말씀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군요. 금화부인의 목숨은 구
할 수가 없다는 것이오?”
“방법은 하나뿐이오. 하지만, 이 방법에 소대협이 응할는지 모르
겠소.”
“어떤 방법이오?”
무위도장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빈도가 침과 혈지법을 써서 그녀의 무공을 폐지하고…..”
“무공을 폐지시킨다 하더라토 그녀의 내부에 침투한 독성을 막을
수는 없잖소? 그러니 그녀의 목숨은 어차피 끊기는 것이 아니오?”
무위도장은 말을 중간에서 끊고 소영이 성급하게 끼여 들자 천천
히 머리를 저었다.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 보시오. 이것은 가장 손쉬운 해독 방법
이오.”
“어서 말해 보시오.”
“우선 그녀의 무공을 없앤 후 그녀를 한증막에 넣어 식초를 사용
해서 독을 증발시키는 방법이오.”
“꼭 됩니까?”
무위도장은 자신있게 대답했다.
“빈도가 자신이 없다면 함부로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이오.”
“그렇다면 그녀의 몸에서 독을 제거한 후 다시 무공을 지닐 수
있나요?”
“없소이다. 일생 동안 무공을 몸에 지닐 수는 없소.”
소영은 고개를 떨어뜨리며 물었다.
“다른 방법은 없소?”
“빈도에게는 이 방법 이외에는 방법이 없소.”
소영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침울한 표정으로 심각하게 무엇인
가 생각하던 그는 머리를 들며 입을 열었다.
“그건 보통 일이 아니군요. 소제는 감히 결정을 내릴 수가 없겠
소.”
“물론 소대협이 단독으로 결정할 일은 못 되오. 무엇보다도 본인
의 의사가 중요하니까. 소대협이 꼭 그녀를 살려야겠다는 의향이
있다면 간곡히 권해 보시오. 생사는 그녀의 선택에 달린 것이니까
요.”
“그럴 수밖에 없겠군요.”
소영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두 사람이 방에 들어 서니 금화부인은 누운 채로 눈을 뜨고 있었
다. 소영과 무위도장이 나란히 들어 서는 것을 본 금화부인은 가벼
운 미소를 띠며 물었다.
“도장과 동생은 무슨 얘기를 했소?”
“누님의 상처에 관한 얘기를 했소.”
소영이 다가 서며 대답하자 금화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쓸쓸하게
웃었다.
“쓸데없는 짓이오. 내일 오전에 나는 이곳을 떠나야 되오. 무위
도장이 내일 오전까지 내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면 좀 늦어도 되지
만…….”
소영은 말을 하려고 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것을 본 금화부인
이 얼굴에 웃음을 거두며 물었다.
“동생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그만 두는 거요?”
“누님은 내 생명을 구하려다가 이 지경을 당했는데…..”
소영이 다시 말끝을 얼버무리자 금화부인이 갑갑한 듯 재촉했다.
“무슨 얘긴지 속시원히 틸어 놓는 것이 좋을 텐데……”
소영은 무위도장을 힐끗 바라 보고 말했다.
“무위도장에게 한 가지 훌륭한 방법이 있다는데…..”
“그것은 가장 둔한 방법인데 어찌 훌륭한 방법이라고 하시오?”
무위도장이 소영의 말허리를 끊고 겸손해 했다.
소영은 가볍게 고개를 흔들면 금화부인에게 말했다.
“무위도장은 너무 겸손하신데…. 사실 나도 누님에게 말하기는
거북하오. 이 방법은 누님의 생명을 건질 수는 있지만 무공을 모두
잃어야 되오. 지금으로서 가장 좋은 방법은 달리 없소. 누님의 의
향을 듣고 싶소.”
금화부인은 피식 웃었다.
“내 무공을 없애는 것은 생명을 없애는 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인
데.”
“그래서 나도 적극적으로 권할 수는 없소. 선택은 누님에게 달렸
으니까.”
금화부인은 도리질을 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소. 더욱이 무공도 잃고 싶지 않소. 때문에
내일 오전에 이곳을 떠나 백화산장으로 돌아가겠소. 오늘 밤에 운
기를 조식하면 얼마간은 체력이 회복될 테니까.”
무위도장이 한 걸음 나서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때가 이미 늦었소. 지금 금화부인은 걸어 다닐 수 없을 뿐만 아
니라 운기조식은 상처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오. 조용히 앉아서 움
직이지 않는 것이 가장 좋소.”
금화부인은 돌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안색이 파리하게 질리고
있었다.
“그, 그게! 사실이오?”
“부인, 지금 시간이 흐를수록 피곤해지지 않소?”
“네, 그래요.”
“그렇다면 내 말이 틀림없소이다. 부인은 백화산장으로 갈 수 없
소.”
금화부인의 안색이 흑빛으로 변했다. 그녀는 두려움과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진기를 끌어 모으며 높은 소리로 말했
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곧 가야겠어요.”
“부인! 안 됩니다.”
소영이 그녀의 앞을 막아 서자 금화부인이 생긋 웃었다.
“또 부인이라고 부르는군.”
소영은 입을 다물었다. 무위도장이 대신 말했다.
“부인, 지금 그런 것에 신경쓸 계제가 아니오. 부인은 백 리도
채 걷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오. 부인이 무리해서 걷는다면 오직 죽
음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오.”
금화부인은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나도 짐작해요. 허나 위험을 무
릅쓰고 모험할 수밖에 없어요.”
“부인, 기회는 한 번뿐이오. 고집을 부리지 마시오.”
소영이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묵묵히 서 있더니 불쑥 입을 열었
다.
“도장! 만일 부드러운 침상을 마련해서 누님을 눕히고 백화산장
으로 들고 가면 어떨까요? 상처에 지장이 있겠소?”
“그렇게 하면 상처에 별다른 지장이 없을 것이오.”
무위도장의 대답에 소영은 얼굴을 펴며 말했다.
“그럼 누님, 잠시 기다려요. 소제가 모시고 가겠소.”
“소대협이 백화산장으로 가려고?”
손불사가 눈을 휘둥그래 뜨며 물었다.
“저는 단지 십 리 길을 함께 갔다가 되돌아 오겠소.”
무위도장이 말했다.
“소대협은 잊고 있는 일이 있군요.”
“잊다니…. 무엇을?”
“소대협의 상처가 채 아물지 않았으므로, 역시 걸을 수 없소이
다.”
갑자기 금화부인이 깔깔거리고 웃었다.
“호호, 동생에게 이런 성의가 있다는 것만도 나는 감격했소. 동
생이 나를 데리고 간다는 것은 너무 위험이 크오. 심목풍에게 발각
되는 날이면 동생은 물론이고 나까지토 피해를 당할 것이오.”
“그러나 누님은 몸이…..”
“괜찮소. 나는 백 리까지만 갈 수 있으면 살아나오. 길옆 아무
데나 쓰러진다 하더라도 곧 심목풍의 일파에게 발견될 테니까. 심
목풍은 아직까지 나를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백방
으로 나를 구하려고 노력할 것은 틀림없소.”
금화부인은 문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더니, 소영을 돌아 보며 정
이 담뿍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동생, 몸 건강하게 잘 있소. 훗날 만나길 빌겠소.”
말을 마치자 그녀는 훌쩍 몸을 날려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몸이
몇 번 움직이더니 지붕 너머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소영은 급히 금화부인의 뒤를 따라 가려고 했으나, 손불사가 앞
을 가로막는 바람에 멈춰 섰다.
“소대협, 금화부인의 말이 맞네. 그녀와 만일 동행한다면 스스로
를 해칠 뿐만 아니라 그녀까지도 해치는 결과밖에 안 되네.”
소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 섰다. 여태껏 한구석에 가만히 서
있던 육연대가 문으로 다가 서며 입을 열었다.
“소녀도 이제 가야겠어요. 만일 존자에게 발각당하면 목숨을 부
지하지 못해요.”
“이대로 돌아가도 생명이 위험할 텐데 낭자께선 어찌 돌아가려고
하지요?”
손불사의 물음에 육연대는 공손하게 대답했다.
“빙궁의 규율은 몹시 엄해요. 혼자 도망 나오면 어디까지든 쫓아
와서 죽여요. 어차피 죽음을 당할 바에야 궁으로 돌아가겠어요.”
육연대는 소영에게 시선을 부으며 말을 이었다.
“소공자, 훗날 저의 공주를 만나거든 잘 대해 주세요.”
말을 마치며 그녀는 몸을 날려 밖으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바
라 보던 손불사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들의 심정을 이 늙은이는 도무지 모르겠단 말이야.”
무위도장이 고개를 끄덕여 손불사의 말에 동감을 표하더니 소영
을 돌아 보며 물었다.
“소대협의 몸은 어떠시오?”
“한기는 완전히 사라졌소. 상처도 많이 나아진 듯하오. 정확히
말해서 이젠 아무렇지도 않소.”
“다행이오. 빈도는 이제 한 가지 부담을 덜게 되었소.”
문 밖을 내다 보고 있던 손불사가 몸을 돌리며 무위도장을 향해
물었다.
“도장께선 여기서 심목풍과 일전을 벌일 참이오?”
무위도장은 느닷없는 질문에 눈을 둥그렇게 뜨더니, 힘없이 고개
를 늘어뜨리며 침울한 어조로 대답했다.
“우리 무당파의 실력으론 백화산장의 세력과 대항할 수 없다는
것을 빈도는 잘 알고 있소. 몇 명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역시
계란으로 바위를 깨뜨리려는 우스꽝스런 몸부림에 불과하오. 그런
데……”
“우리는 더 물러설 수 없는 막바지에 몰리게 되었소. 지금 형편
으로는 죽기를 한하고 싸우든가 아니면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
든가 양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소.”
손불사가 다시 물었다.
“도장은 이미 무림의 구대문파와 연락을 취했잖소? 그들에게 구
원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물론 구대문파와 합세하면 심목풍의 세력이 아무리 강하더라도
결코 패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나 애석한 일은…..”
무위도장은 갑자기 말을 중단하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손불사는 무위도장의 얼굴을 바라 보며 의아한 듯 물었다.
“왜 그러시오? 그럼 구대문파는 고수를 파견해서 도와 주려 들지
않는단 말이오?”
무위도장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며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보다
못한 손불사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비로소 그는 말을 꺼냈다.
“비록 고수를 파견하겠다는 의사는 보내 왔지만 그들은 전력을
다해 도와 주지는 않으려고 하오. 구대문파는 제각기 사리사욕에만
급급해서 자기들의 이해타산만 따지고 있소. 심목풍에겐 오히려 어
부지리(漁夫之利)를 주는 결과지요.”
“그 말이 맞구료. 그들이 뿔뿔이 흩어져 있으니 심목풍이 하나하
나씩 정복하기에 좋은 기회와 구실만 줄 뿐이겠소이다. 그래 도장
께선 어떻게 하실 작정이오?”
“사실 고민이오. 백 년 전부터 무림의 구대문파 사이에는 비록
큰 원한관계는 없지만 사소한 일로 곧잘 충돌하고 있소. 더욱이 각
문파에 이렇다 할 인재가 없어 문파 사이는 그저 덤덤한 관계요.
그 중에서도 소림파는 수십 년 동안 일체 다른 문파와 왕래를 끊다
시피 했소.”
“도장과 소림 장문인과의 교분이 두팁다던데…. 이것은 헛소문
이었구료.”
무위도장은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소림파의 장문인과 빈도는 제법 교분이 두텁소. 허나 이번 무당
파가 당하게 된 일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기에 소림의 장문인조차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소.”
무위도장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개인적인 교분은 어디까지나 개인 관계에서 끝날 일이 아니겠
소? 까딱 잘못하다간 일파의 기둥 뿌리가 뽑힐 지경이니 소림파의
장문인도 자기의 직책을 남용할 수 없는 것이지요.”
손불사는 무위도장의 침울한 표정에서 시선을 떼며 말했다.
“그것도 일리가 있소. 하지만 구대문파가 옛정을 끊어 버리고 서
로 경원하며 아웅다웅하다니…. 이것은 스스로 멸망의 구덩이를
파는 결과요.”
옆에 서서 묵묵히 듣고 있던 소영이 끼여 들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어떻게 강적을 상대하느냐에 있지 않소?
소제가 한 가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 있는데 도장께서 가르쳐 주시
기 바랍니다.”
“무엇이오?”
“그 금화부인이 어떻게 이곳에 왔을까요?”
“글쎄…. 그건 이 늙은이도 의문스러운 일이었는데.”
손불사도 의심스럽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위도장은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그것보다도 더욱 의심스러운 것은 그 악기소리요. 그 소리가 울
리자 심목풍이 몹시 놀라며 허둥지둥 달아나고 말았는데….”
“도장께선 음률에 조예가 깊으신 줄로 알고 있는데 그 소리는 악
기에서 울린 것입니까?”
소영이 눈을 반짝이며 묻자 무위도장은 석연찮게 대답했다.
“글쎄요. 퉁소소리도 같고 비파소리 같기도 하고…. 두 가지의
악기가 한꺼번에 울린 것도 같고…. 아무튼 빈도가 듣기로는 퉁소
와 비파가 한꺼번에 울린 것 같았소이다.”
손불사가 고개를 흔들며 중얼거렸다.
“이 늙은이는 수백 년 동안 무림을 뒤흔든 인물들을 생각해 보았
지만, 악성(樂聲)으로 적을 무찌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
다는 것은 듣지 못했는데……”
소영도 같은 말을 했다.
“이건 확실히 괴상하군요. 저도 무예를 닦을 때 사부님에게서 무
림 각파의 과거사를 자세히 들었는데 악성으로 적을 무찌를 수 있
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은 기억이 없군요.”
무위도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손불사는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소영과
무위도장을 번갈아 바라 보며 입을 열었다.
“이곳은 이런 일을 얘기할 곳이 못 되니 우리는 이제 돌아갑시
다.”
“그럽시다.”
소영은 황금덩어리 하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려 놓고 촛불을 껐
다.
“이제 갑시다.”
소영은 앞장서서 문을 나섰다. 그 뒤를 바짝 붙어 따라 오며 손
불사가 소영의 오른 손목을 잡았다.
“소대협은 체력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니 이 늙은이가 한 팔의
힘을 빌려 주어야겠소.”
그는 갑자기 진기를 끌어 모으더니 소영의 손목을 잡은 채 몸을
날렸다. 자연 소영의 몸이 딸려 올라 갔다.
소영은 심목풍이 부하를 이끌고 추격하다가, 악성을 듣고 혼비백
산해서 도망쳤다는 것이 커다란 의문으로 마음에 남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부모에 대한 안부였다.
‘부모님께 어떤 일이 생기지나 않았을까?’
소영은 급한 마음에 걸음을 재촉했다.
세 사람이 호숫가에 이르니 운양자가 네 명의 중년 도사들을 이
끌고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사고가 없었나?”
무위도장이 낮은 소리로 묻자 운양자가 머리를 흔들며 대답했
다.
“모든 것이 잘 되었으며 침범해 온 적도 없었습니다.”
소영이 앞으로 나서며 운양자에게 물었다.
“운도장께서는 소제의 부모님을 보셨소?”
“두 분 어르신네를 심목풍이 노리고 있다는 것을 빈도는 잘 알고
있소. 그래서 중주이고와 사마건 등에게 산 속의 은밀한 곳을 택해
숨게 하시라고 호송을 부탁했소.”
소영은 속으로,
‘잘하려던 짓이 오히려 잘못된 결과가 되지나 말았으면….’
하고 생각하며 아무래도 안심이 안 되어 다시 물었다.
“그들은 돌아왔소?”
“아직 산에서 돌아오지 않았소.”
소영은 마음이 불안했으나 더 이상 묻지 않고 몸을 날렸다.
그가 배 위로 뛰어 내리자 무위도장과 손불사도 배로 올라탔다.
운양자와 네 사 람의 도사는 다른 배에 탔다.
두 척의 배는 파도를 헤치며 바람처럼 미끄러졌다. 배의 속도는
매우 빨랐으나 소영에게는 더없이 느리게만 생각되었다.
‘부모님께 아무런 일도 없었으면 오죽이나 좋으랴. 벌써 두 차례
나 부모님은 곤경을 치르셨으니…. 내가 강호에 발을 디딘 후 잠
시라도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지 못했으니 이런 불효가
또 어디 있으랴.’
소영은 초조함을 누를 수 없어 직접 노를 잡고 힘껏 저었다.
삐이걱, 삐이걱.
소영이 공력을 이용해 노를 젓자 배는 쏜살같이 미끄럼쳤다. 배
가 언덕에 닿자 소영은 일행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곧장 몸을 날
렸다. 집을 향해 한달음에 뛰어 온 그는 활짝 열려진 대문을 향해
크게 외쳤다.
“누가 있소?”
어두컴컴한 집 안의 내실 쪽에서 금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소공자세요?”
뒤이어 불빛이 번쩍이더니 촛불이 밝혀졌다. 소영이 성큼성큼 안
으로 들어 서니 금란이 경장을 하고 마주쳐 나오고 있었다.
“부모님들은 이미 중주이고가 보호해서 산으로 가셨어요.”
“그 분들이 지금 어디 계신지 낭자는 아오?”
“그건 모르겠어요.”
소영은 고개를 돌렸다. 손불사와 운양자가 나란히 문 밖에 서 있
었다.
소영은 운양자에게 물었다.
“운도장은 아시오?”
“하하, 소형은 안심하시오. 영존과 영당께서 안전하고 편안하게
계시다는 것을 빈도가 보증하겠소.”
소영은 손을 모아 쥐고 공손히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소제도 운도장께서 치밀하시다는 것을 알고 있소. 허나, 부모님
을 직접 뵈옵기 전에는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군요.”
“하하, 소대협의 효심에는 감동할 뿐이오. 빈도가 이미 사람을
시켜 신호를 보내도록 했으니 곧 신호가 올 것이오.”
소영은 잠시도 기다릴 수 없다는 듯 조바심을 했다.
“부모님이 계신 곳을 운도장께서 아신다면 소제를 그곳으로 좀
데려다 주면 고맙겠소.”
“소대협의 효심에 빈도는 마땅히 응해야겠지만, 짐작컨대 중주이
고는 이미 신호를 받고 하산하고 있을 것이오. 우리가 산으로 찾아
갔다가 길이 엇갈리면 오히려 시간 낭비밖에 안 될 테니 기다리는
것만 못할 것이오.”
소영은 조바심을 누르며 말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기다리기로 합시다. 그런데 얼마나 기다려야
될까요?”
“늦어야 한 시진이면 될 것이오.”
소영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 갔다. 대청에 앉은 그는 넋을 잃
은 듯 허공을 응시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두 번이나 부모를 납치당했으니 소영이 안절부절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이도 어리니 효심이 지극할 것은 당연하지.’
운양자는 마당에 선 채로 소영의 표정을 지켜 보았다.
금란은 한쪽에 비켜 서서 이따금 대문 쪽으로 눈길을 주고 있었
다. 대청에 켜 놓은 초가 다 탔으나 소영의 부모도 중주이고도 나
타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소영이 운양자를 바라 보며 짜증스
럽게 물었다.
“운양도장, 우린 얼마나 기다렸소?”
“아직 한 시진이 못 되오.”
소영은 무엇인가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얼굴에는
초조와 불안이 감돌았다.
금란이 촛불을 새로 갖고 와서 촛대에 꽂았다. 그녀의 얼굴에도
불안한 표정이 돌고 있었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좀 이상하다. 혹시 중도에서 일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운양자는 속으로 은근히 걱정되어 소영에게 말했다.
“소대협께선 앉아 계시오. 빈도가 신호를 보낸 제자에게 물어 보
고 오겠소.”
하고 소영의 대꾸도 기다리지 않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운양자가 막 대문 앞에까지 다다랐을 때였다. 갑자기, 휙! 바람
을 가르며 한 사람이 쏜살같이 달려 들었다. 하마터면 두 사람은
정면으로 부딪칠 뻔했다.
“앗!”
운양자는 급히 몸을 피하며 손을 내밀어 상대방의 왼쪽 손목을
덥석 잡았다.
이때 소영도 대청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운양자에게 손목
을 잡힌 사람은 무당문하의 제자였다.
운양자는 그의 손목을 놓아 주며 핀잔하듯 물었다.
“무슨 일인데 이토록 서두르느냐?”
그 제자는 숨을 헐떡이며 잠시 정신을 못 차리더니 갑자기 운양
자 앞에 넙죽 엎드렸다.
“제자는 마음이 조급해서 달려 왔기 때문에 그만 정신이 희미해
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사숙께서 용서해 주십시오.”
대청에 서 있던 소영이 갑갑증을 누를 수 없어 몸을 날려 달려
나왔다. 그는 무당파의 제자를 향하여 성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어서 말하시오!”
제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제자는 명령을 받아 산 속의 중요한 곳에서 지키고 있었는데..”
“내 부모님이 또 납치를 당했단 말이오?”
소영이 말을 가로채며 묻자 무당파의 제자는 얼굴에 부끄러운 표
정을 띠었다.
“제자는 잠시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길목을 지키고 있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혈도를 찔렸습니다.”
말을 듣고 있던 운양자의 낯빛은 흑빛으로 변했다. 그는 가벼운
신음을 내며 제자에게 다그쳐 물었다.
“그 후는? 어떻게 깨어났느냐?”
“제자는 장문의 사부님에 의해 구원되었습니다.”
“도장은 현재 어디에 있느냐?”
“사부님은 제자를 구한 후 경과를 물어 보셨습니다. 제자의 말을
들은 사부님은 ‘너는 사숙에게 급히 통지해서 소대협과 함께 산으
로 올라 오시도록 일러라’ 하시고는 제자와 헤어졌습니다. 제자는
명령을 받고 급히 이곳으로 달려 온 것입니다.”
‘아, 부모님에게 또 불상사가 일어났구나.’
소영은 처음에는 몹시 놀라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그러나 막
상 일이 터지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자 오히려 침착해졌다.
‘구해야 한다. 백 번을 끌려 간다 해도 모두 생명을 걸고 구해야
된다. 절망하고 낙담해서 한숨만을 터뜨릴 수는 없다.’
소영은 단단히 다짐하며 무당파의 제자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곳까지 달려 오느라고 고단할 테니 휴식을 취하시오.”
제자는 운양자와 소영에게 인사를 하고는 뒤로 물러 섰다.
운양자는 허공에 시선을 둔 채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뜻밖에도 변고가 일어났으니…. 빈도는 부끄럽기 짝이 없소.”
“일은 이왕 벌어진 것이니 운도장은 너무 상심치 마시오. 우선
상황을 자세히 아는 것이 급하니 어서 산으로 올라갑시다.”
소영의 말에 운양자는 몸을 돌려 대문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빈도가 길을 안내하겠소.”
소영도 즉시 운양자의 뒤를 바짝 따랐다. 두 사람의 몸은 두 줄
기 바람처럼 허공을 뚫고 내달렸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십 리 길
을 달렸다.
두 개의 산봉우리를 넘자 울창한 밀림이 한 옆으로 나타났다. 이
때 이미 날은 환히 밝아 있었다.
앞에서 달리던 운양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소영도 급
히 멈춰 섰다.
운양자는 밀림 속의 어두운 곳을 뚫어질 듯 노려 보고 있었다.
“운도장, 길을 잃었소?”
운양자는 고개를 저으며 숲 속으로 몸을 날렸다.
소영이 뒤따르려고 했을 때 운양자가 한 도인을 안고 나오고 있
었다. 여기도 무당파의 제자 하나가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운양자는 도인을 내려 놓더니 그 사람의 등을 손바닥으로 후려
갈겼다. 도인은 숨을 길게 내쉬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운양자를
보더니 급히 몸을 일으켜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제자를……”
“절은 필요 없다. 빨리 경과나 말해 보아라.”
운양자가 소리치자 도인은 무겁게 고개를 숙이며 입을 열었다.
“제자는 이곳에서 지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 의해
갑자기 혈도를 찔리고 쓰러졌는데…. 사숙께서 구해 주셨어요.”
“너의 혈도를 찌른 사람이 누구냐? 어떻게 생겼더냐?”
“제자는 옷깃이 스치는 소리만 들었을 뿐 미처 고개를 돌려 바라
볼 틈도 없었습니다. 누가 나타났구나 생각하는 순간 그만 혈도를
찍혔습니다.”
운양자는 소영을 돌아 보며 말했다.
“소대협, 그 사람이 혈도를 찌르는 수법은 매우 놀랍소만, 두 제
자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은 것을 보니 사람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었던 것 같소.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절대로 심목풍의 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소.”
소영이 말을 받았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군요. 하지만 이상한 것은 심목풍을 제외
한 누가 무엇 때문에 소제의 부모님을 납치하려고 했을까요?”
“백화산장의 사람들은 모두가 악랄한 수법을 씁니다. 우리 무당
파의 제자들을 이처럼 봐 줄 리는 없소이다. 이건 틀림없이 제삼자
의 짓이오.”
운양자는 도인을 바라 보고 손짓을 하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너는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으니 먼저 내려 가거라.”
도인은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산을 내려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
보고 있던 소영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심목풍이 아니고서는 정말 이상한 일이군.”
소영이 중얼거리고 있는데 멀리서 이쪽으로 달려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채 그들을 주시했다.
나타난 사람은 무위도 장과 상팔, 두구, 사마건 등이었다. 이들
이 나타나자 소영은 다소 마음이 놓였다.
무위도장을 선두로 네 사람은 차례차례 소영의 앞에 다다랐다.
상팔과 두구는 소영의 앞에 걸음을 멈추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소제들은 죽어 마땅합니다. 형님의 어떤 벌이라도 달게 받겠습
니다.”
소영은 이미 모든 것을 손에 쥔 듯이 알 수 있었다.
‘부모님이 납치당한 것이 틀림없구나.’
그는 커다란 실망을 느꼈으나 양손을 내밀어 두 사람을 일으켰
다. 그리고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두 분 형제, 어서 일어나시오. 이미 이 소영은 모든 것을 짐작
했으니 자세한 경과나 들려 주시오.”
상팔이 몸을 일으키더니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소제는 두 분 어르신네를 한 곳의 석굴 안에 모셨었소. 소제가
동굴 안에 있었고 두제가 동굴 밖에서 지키고 있었는데…. 한밤중
이 되자 돌연 두제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소. 소제가 급히 뛰어
나가니 전신을 검은 옷으로 휘감은 괴한이 서 있었소. 두제는 그
괴한에게 혈도를 찔린 채 발앞에 쓰러져 있었소.”
“상형은 그 사람과 싸움을 했소?”
“부끄럽소. 나는 몹시 당황했기 때문에 앞쪽의 적만 보았지 뒤에
서 기습할 줄은 미처 몰랐소. 더욱이 그들의 무공이 어찌나 민첩한
지 소제가 대항하려고 했을 때는 어느 틈엔가 혈도를 찔리고 말았
소.”
소영은 상팔의 옆에 서 있는 두구를 주목하며 입을 열었다.
“두형은 그 사람을 똑똑히 보았소?”
“말하려니 부끄럽기 짝이 없군요. 소제는 어느 틈엔가 날아온 암
기에 의해 혈도를 찔리고 정신을 잃었소.”
무위도장이 거들었다.
“그것은 두립타혈(豆粒打穴 : 콩알로 혈도를 때리는 것)의 절기
로 높은 내공이 아니고서는 펼쳐 낼 수 없소. 더군다나 두형 같은
고수를 상대했으니 적의 무공은 가히 짐작을 못하겠소.”
소영은 사마건에게 물었다.
“사마형은 적을 유심히 살펴 보았소?”
사마건은 어색한 웃음을 잠간 얼굴에 스치며 입을 열었다.
“부끄러운 일이오. 소제는 상형의 뒤를 지키고 있었오. 상형이
석굴을 나갈 때 소제는 이미 일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고 각별히
경계했소.”
그는 잠간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소제의 생각으로는, 상형과 두형의 무공이 높으니 강적을 만난
다 하더라도 수십 합은 싸울 줄 알았소. 그런데 사람의 몸이 갑자
기 번쩍 움직이기에 아차! 적이 또하나 있어 상형을 암습하는구나!
하고 생각했소. 그래서 급히 상형을 불렀소. 그런데 이것이 소제의
실수였소. 소제가 있는 위치를 적에게 노출시킨 결과였지요.”
“그래서 어찌 되었소?”
“그들은 한 줌의 암기를 날렸소. 소제는 즉시 몸을 날려 피해 냈
으나 두 군데에 그만 암기를 맞고 말았소.”
“그렇다면, 사마형 역시 그 콩알의 암기에 부상을 입었군요?”
소영이 다그쳐 묻자 사마건은 숨돌릴 사이도 없이 대답하기에 쩔
쩔맸다.
“동굴 속이 너무 어두워서 상대방이 소제의 혈도를 정확히 겨냥
치 못했던 모양이오. 소제는 암기에 맞았으나 다행히 혈도가 막히
진 않아 싸울 능력이 있었소.”
“그럼 사마형은 그들과 싸웠소?”
“싸움이 붙었었소. 허나 두 초식도 지나기 전에 소제는 혈도가
찔려 쓰러지고 말았소.”
소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사마형은 저 암기에 맞아 부상당한 뒤에 적과 싸웠으니 자연 힘
이 달렸을 것은 분명하오.”
“소대협의 말은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소. 상대방의 무
공이 소제보다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소제가 당한 것이오. 그의 무
공은 놀랍소. 불과 이 초의 격투 끝에 혈도를 찔려 보기는 소제로
선 처음이오. 그런 무공은 이 세상에도 몇 명 없을 것이라고 생각
되오.”
“저의 부모님은 어찌 되었소?”
“소제가 혈도를 찔린 후 동굴 안에는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
소. 그러니 소대협의 존당께서는…..”
무위도장이 끼여 들었다.
“빈도가 동굴로 달려 갔을 때 이미 동굴 속에는 두 분 어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소. 심지어 은란조차도 실종되었소.”
“도장께서는 그 사람이 사용한 암기를 살펴 보았소?”
소영의 물음에 무위도장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품 속에서 콩알만
한 두 개의 암기를 꺼냈다.
“소대협은 이런 암기를 본 적이 있소?”
소영은 암기를 받아 손바닥에 올려 놓고 자세히 살펴 보았다. 그
것은 황색이었는데 쇠는 아니고 무슨 나무의 열매 같았다.
“본 적이 없소이다.”
“그것은 보리자(菩裏子)란 것인데 일종의 내력만을 이용해서 사
용하는 것이오. 한꺼번에 여러 군데의 혈도를 찌를 수 있지요.”
“도장께선 이런 암기를 누가 사용하는지 아시오?”
“빈도의 기억으로는 이런 암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한 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소. 허지만 그 사람은 이미 금궁 속에 갇혀 있소.”
“금궁이 열리지 않았으니 그 사람이 강호에 나타났을 리는 만무
하고……”
“그렇기 때문에 빈도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겠소.”
“그 사람에게 제자가 있소?”
“빈도가 알기로는 그 사람은 한 명의 제자도 두지 않았소.”
무위도장은 잠깐 끊었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또 하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괴한은 두 분의 어르신네
를 납치하는 데에만 목적이 있었던 것 같소. 각처에서 수비하고 있
던 빈도의 제자들에게 혈도만 찔렀을 뿐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않
았으니…. 분명 백화산장의 사람들은 아닌 것 같은데…..”
사마건이 뒤이어 입을 열었다.
“또 하나 의심스런 것은 그들이 어떻게 우리가 몸을 숨긴 동굴을
발견했느냐는 점이오.”
무위도장은 운양자를 돌아 보며 물었다.
“그 석굴을 아는 사람은 운사제와 나 이외에 무당 문하에서 누가
또 있나?”
“삼제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군요.”
“삼제 말고는?”
“삼제 말고는 사형의 시중을 드는 두 동자만이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절대로 함부로 입을 열어 비밀을 누설하지 않을 텐데..”
듣고 있던 소영이 끼여 들었다.
“도장, 소제가 한 가지 알려 드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 있소.”
무위도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소영에게 몸을 돌렸다.
“소대협이 알려 줄 것이 있다니…. 어서 말해 보시오.”
“심목풍은 각 문파에 첩자를 두고 있소이다. 물론 무당파에도..”
“뭐요? 그것이 사실이오?”
무위도장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는 전혀 처음 듣는 이야기이
며,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