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103
103.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
뉴욕 센트럴 파크 서쪽.
유명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마주 보는 위치에 내셔널 갤러리가 세워져 있었다.
새하얀 대리석으로 지어진 미술관은 5층 높이에 웅장하리만큼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관광책자에 항상 빠지지 않을 정도로 뉴욕의 명소였다.
전세계 유명 작가들의 미술 작품과 역사 유물을 5천 점 이상 소장하고 있어 국내외로도 이름이 높았다.
센트럴 파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5층 한편에 슈스터 헤이든의 개인 집무실이 자리했다.
유럽산 마호가니 소파에 앉은 헤이든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뗐다.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하려고 한다고?”
헤이든의 측근인 매콜이 바로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며칠 전 그랙 회장하고 만났다고 합니다.”
“튀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경고가 부족했던 모양이군.”
매콜이 슬쩍 눈치를 보며 말했다.
“인수할 수 없도록 막을까요?”
슈스터 가문이 가진 인맥과 힘을 동원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한쪽 다리를 꼰 자세로 소파 팔걸이를 가볍게 두드린 헤이든은 잠시 고민하다 머리를 가볍게 내저었다.
“워싱턴 포스트도 바닥에 떨어졌군. 고작 돈에 넘어가다니. 하긴 옛날 명성으로 먹고 사는 구닥다리 유물이니 어쩔 수 없나.”
“그럼······.”
“그냥 내버려 둬.”
“알겠습니다.”
그나저나, 하면서 헤이든이 말했다.
“기껏 신사답게 충고까지 해줬는데 쓸모없게 되어버렸군.”
헤이든은 파티에서 만난 재성의 얼굴을 떠올리며 어리석다 생각했다.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행동하는 게 거슬리긴 했으나 어차피 워싱턴 포스트는 발행부수가 계속 떨어지며 몰락의 길을 걷고 있는 신문이었다.
미국의 대형 언론사 중 하나라 상징적인 의미는 있겠지만 딱 그뿐이었다.
이미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것을 주워 먹으려는데 굳이 방해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여기저기 돈을 뿌려대다가 탈이라도 나면 볼만하겠군.’
헤이든은 심술궂은 표정을 짓다가 금방 생각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진지한 목소리로 매콜을 향해 말했다.
“은 시세가 얼마나 떨어졌지?”
“뉴욕 상품 거래소 기준으로 현재 온스당 9달러 20센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달러를 유지하던 가격이 절반 넘게 날아가 버렸군.”
“그 때문에 페닉에 빠진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매물을 던져대고 있는 상황입니다.”
“후후후. 살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것이 바로 수렁이지.”
계획한 대로 상황이 순조롭게 흘러가자 헤이든은 입가에 짙은 미소를 지었다.
“물량 확보는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겠지?”
“현재까지 실물과 상품을 합쳐 39억 달러어치를 매입했습니다. 늦어도 이번 주 안에 목표한 물량 확보를 끝낼 수 있을 겁니다.”
“JP 모건하고 HSBC 은행 쪽 움직임은 어때?”
“워낙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어서 정확하게 파악하긴 어렵지만 두 곳도 거의 마무리 단계인 걸로 보입니다.”
“그렇겠지.”
멍청한 투자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격탄을 맞아 수백억 달러를 허공에 날린 HSBC 은행과 달리 월가의 지배자이자 보이지 않는 손인 JP 모건이 허투루 움직일 리가 없었다.
헤이든은 눈을 반짝이며 지시를 내렸다.
“온스당 9달러 아래를 찍으면 계획한 대로 움직이라고 해.”
“알겠습니다.”
곧 크게 요동칠 은 시세를 생각하며 헤이든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며칠 뒤 은 시세는 전고점 대비 60% 가까이 폭락하며 온스당 8달러 92센트를 기록했다.
그런데 다음날 갑자기 상승으로 반전하더니 거짓말처럼 가파르게 올라갔다.
* * *
한편 미 전역은 미국 대통령 선거로 뜨겁게 타오르는 중이었다.
방송에서도 연일 여론조사 결과와 토론 그리고 후보 광고등을 내보내며 분위기를 달구었다.
그런 와중, 재성은 워싱턴에 위치한 호텔에서 보름만에 그랙 회장과 다시 만남을 가졌다.
워싱턴 포스트 매각 협상을 위해 마련된 자리였기에 두 사람 외에도 고문 변호사와 회사 임원등 여러 명이 함께했다.
이틀째 이어진 협상에 다들 약간 지친 기색이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기다란 테이블 위에는 온갖 서류들과 커피잔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자, 그럼······. 이게 최종 합의를 끝낸 계약서입니다.”
도널드 변호사가 안경을 고쳐 쓰면서 말했다.
“두 분께서 마지막으로 확인을 해보시죠.”
그는 작성된 계약서 두 부를 재성과 그랙 회장에게 각각 나누어주었다.
재성은 꼼꼼하게 계약서에 적힌 내용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다.
“이상 없군요.”
그랙 회장도 손에 든 계약서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나도 마찬가질세.”
도널드 변호사는 테이블의 양쪽 끝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두 분 다 괜찮다고 하시니 이걸 최종본으로 하겠습니다. 문제가 없다면 서명을 해주십시오.”
이제 사인만 하면 모든 매각 절차가 마무리되는 것이었다.
재성은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내 계약서 끝에 서명했다.
그리고 옆으로 돌리자 권혁재 과장이 그걸 받아서 그랙 회장에게 건네주었다.
양쪽의 사인이 끝난 후, 두 부로 나뉜 계약서를 고문 변호사들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걸로 계약이 모두 완료됐습니다.”
도널드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선언하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이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축하했다.
서로 수고했다며 인사말이 오가는 가운데 그랙 회장은 시원섭섭한 얼굴로 한쪽 손을 재성에게 내밀었다.
“오랜 가업이었던 신문사를 이렇게 떠나보내려니 섭섭한 마음이 크군. 부디 워싱턴 포스트의 명성이 빛바래지 않도록 잘 운영해 주게.”
“워싱턴 포스트는 앞으로도 최고의 신문으로 남을 겁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재성은 자신감 있는 태도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계약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재성은 데이비드와 함께 대기하고 있던 리무진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하자 데이비드가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하셨군요. 대단합니다.”
재성은 데이비드를 향해 당연하다는 듯 미소 지었다.
“내가 그럴 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보며 데이비드가 조심스럽게 걱정을 드러냈다.
“그런데 워싱턴 포스트의 적자가 예상했던 액수보다 더 큰 것이 걸리는군요.”
당초 이쪽에서 예상한 올해 적자는 1억 달러 내외였다.
그런데 막상 회계장부를 자세히 살펴보니 적자가 거의 2억 달러에 달했으니 우려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재성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덕분에 교육사업을 가져오고 매입가격도 1억 5천만 달러로 낮췄으니 손해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기는 하지만 내년에도 딱히 경영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가 않아 걱정입니다.”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워싱턴 포스트를 손에 넣는 건 불가능했겠죠.”
“그건 그렇습니다.”
“늦어도 2~3년 안에 흑자로 전환될 테니까. 염려하지 말고 내일 현 경영진들과 만나게 자리를 만들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데이비드는 몰랐지만 재성의 머릿속에는 경영을 정상화시키는 걸 넘어 워싱턴 포스트를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강자로 만들 구상이 다 세워져 있었다.
며칠 뒤.
미국 주요 언론을 통해 워싱턴 포스트 매각 소식이 일제히 보도됐다.
[130년 역사의 워싱턴 포스트 경영난 끝에 매각!] [1877년에 탄생한 미국 최고의 언론사. 아시아 사업가에 1.5억 달러에 매각!] [워싱턴 포스트 매각! 종이 신문의 몰락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인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워싱턴 포스트도 신문 위기에 무너지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진 못한 워싱턴 포스트. 매각으로 생존의 길을 찾게 될까?] [100년 만에 주인이 바뀐 워싱턴 포스트는 부활할 수 있을까?뉴욕 타임스와 함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워싱턴 포스트가 아시아 재벌 사업가에게 팔렸다.
워싱턴 포스트 컴퍼니와 마이어 가문의 대변인에 따르면, 한국의 사업가인 박재성에게 1억 5천만 달러에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신문 출판 부분과 교육 사업부를 분리해 일괄 매각했다고 발표했다.
더욱이 이번 매각은 기업이나 펀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이루어진 인수라는 것에 충격을 더했다.
이번 인수를 두고 전문가들은 메이저 신문사들의 몰락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라며······.]
↳워싱턴 포스트가 팔리다니······.
↳이게 바로 시대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기업의 말로지.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종이 신문을 보겠어.
↳인정. 인터넷에 들어가면 온갖 정보들을 다 찾아볼 수 있는데 돈을 주고 신문을 받아볼 이유가 없지.
↳그래도 종이 넘겨가며 보는 맛이 있는데 ㅠㅠ
↳그나저나 박재성이 누구야?
↳글세······ 처음 듣는 이름인데?
↳돈이 썪어 나가고 자랑질 하기 좋아하는 아시아 부자 중에 한 명이겠지.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사인 만큼 평소라면 크게 이슈가 됐을 일이었다.
하지만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더 큰 화젯거리 덕분에 잠시 반짝이다가 이내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버렸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들도 있었다.
평소와 다름 없이 업무를 보고 있던 정태규 비서실장은 인터폰 벨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실장님. 미주 지사장님 전화입니다.]“미주 지사장이 무슨 일이지?”
정태규 비서실장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인터폰 스위치를 눌렀다.
“연결해요.”
[네.]잠시 뒤, 벨소리가 울리자 정태규 비서실장은 몸을 뒤로 기대면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실장님. 저 조 지사장입니다. 바쁘신데 죄송합니다.]박경수 회장의 최측근으로 계열사 사장급 대우를 받았기에 미주 지사장은 깍듯하게 행동했다.
“무슨 일이오?”
[박 부사장님 일로 연락을 드렸습니다.]순간 얼굴이 확 굳어진 정태규 비서실장이 수화기를 고쳐 쥐며 황급히 물었다.
“미국에서 문제라도 생겼소?”
이제 마음을 다 잡고 성실하게 생활하나 했는데 그새 또 사고를 쳤나 싶었다.
[그게······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답답하게 굴지 말고 어서 말해보시오!”
[박 부사장님이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하셨습니다.]“······?”
나쁜 소식을 각오하고 있던 정태규 비서실장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1억 5천만 달러에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해 마이어 가문에서 가지고 있던 신문 출판 부분과 교육 사업을 인수했다고 합니다.]“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저도 믿기지가 않아서 이리저리 확인을 해봤습니다만 전부 사실이었습니다. 관련 기사를 메일로 보냈으니 확인해 보십시오.]“······알았소. 일단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하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채 전화를 끊은 정태규 비서실장은 마우스를 움직여 조 지사장이 보냈다는 메일을 확인했다.
그러자 재성이 워싱턴 포스트를 인수했다는 현지 신문 기사들이 떴다.
“도깨비장난도 아니고 이게 무슨······.”
멍하니 화면에 뜬 기사들을 바라보던 정태규 비서실장은 헉 하고 정신을 차렸다.
그는 급하게 기사를 프린터로 출력한 뒤 바로 회장실로 달려갔다.
얼굴이 상기되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박경수 회장이 물었다.
“무슨 일인가?”
최근 들어 여러 가지로 신경 쓸 일이 많은 박경수 회장은 귀찮은 기색이 완연했다.
“방금 미국에서 연락이 왔는데 막내 도련님이 큰 사고를 치신 것 같습니다.”
“뭐야?”
박경수 회장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이럴 줄 알았지!”
책상을 쾅 하고 내려치자 세워져 있는 장식품들이 흔들거렸다.
“몇 달이 지나도 귀국을 안 하더니 역시 꿍꿍이속이 있던 거였어.”
박경수 회장은 이를 갈며 외쳤다.
“그래 무슨 일을 저질렀다던가? 미국에서 마약이라도 했나?”
그러자 정태규 비서실장은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라고 아실 겁니다.”
“당연하지. 미국에서도 유명한 언론사 아니야.”
뜬금없이 튀어나온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박경수 회장은 이내 정색했다.
“혹시 거기에 막내 놈 기사라도 떴나?”
외국 언론에 기사가 먼저 떴다면 국내에도 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렇습니다.”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던 박경수 회장은 속이 문드러지는 것만 같았다.
설마 믿었던 놈이 발등을 찍을 줄이야!
“이놈자식이 이젠 아주 세계적으로 아비 망신을 시키는군.”
어깨를 부들부들 떨면서 화를 눌러 참고 있는데 정태규 비서실장이 조심스레 말했다.
“저, 사고를 치긴 했는데 생각하시는 그런 쪽은 아닙니다.”
박경수 회장이 고개를 들자 정태규 비서실장은 프린트 해온 신문 기사를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
“막내 도련님께서 워싱턴 포스트를 사비로 인수하셨답니다.”
그 말에 박경수 회장은 눈을 껌벅거렸다.
일순 멍한 표정을 짓던 박경수 회장은 신문 기사를 확 잡아챘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기사를 읽어 내려가는 박경수 회장의 표정이 점점 묘하게 바뀌었다.
“재성이 이놈은 미국에 가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