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lden Spoon Life White Paper RAW novel - Chapter 581
581. 저희가 아니라 국민연금에 특혜를 주는 겁니다.
재성이 술병을 들어 자신과 배준봉 총리의 잔을 채우면서 차분하게 말했다.
“애런 아서 대통령이 가장 원하는 걸 채워주는 겁니다.”
“그게 뭔지 모르니 이러는 것 아니오?”
“동맹 관계가 훼손될 걸 알면서도 애런 아서 대통령이 무리한 행동을 하는 이유가 뭘 것 같습니까?”
“그거야 중간 선거 전에 부정적인 여론을 덮고 성과를 보여주려는 것이지 않소?”
“맞습니다.”
당연히 그래야 되겠지만 미국 내부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는 모습에 재성이 작게 머리를 끄덕였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은 대선 공약을 이행하는 것과 동시에 오랜 테러와의 전쟁으로 인해 구멍이 난 국방비 부담을 덜려는 목적일 겁니다.”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이후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은 16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었다.
라출라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종전 선언을 하고 미군 병력을 완전 철수시키며 끝없는 수렁에서 빠져 나오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IS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등장하면서 계획이 꼬여 버렸지.’
급진 이슬람 무장세력인 IS가 시리아 내전을 발판으로 급격하게 세력을 확장해 이라크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모술과 인근 유전은 물론이고 수도 바그다드까지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위험에 처할 정도로 IS의 기세가 커지며 자칫 중동 전체가 급진 이슬람 세력의 손에 들어갈 상황이 되자 미군이 다시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미국의 주축으로 한 국제 동맹군에 의해 IS가 패퇴하며 시리아 동부 일부를 제외한 모든 점령지를 되찾을 수 있었다.
‘IS 와해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테러와의 전쟁 종결에는 실패하고 말았지.’
아무리 미국이 천조국이라고 해도 16년이나 중동과 아프가니스탄 양쪽에서 두 개의 전선을 형성하며 전쟁을 벌이는 건 힘겨울 수밖에 없었다.
‘빈 곳간을 다시 채워 넣어야 되는데, 국내에서 세금을 더 걷기는 어려우니까 선택한 것이 바로 동맹국들한테 삥을 뜯는 거지.’
보통 정치인이라면 국제 관계를 생각해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비주류에 독불장군 성향이 강한 애런 아서 대통령은 그런 걸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사실 미군 입장에서 일본은 몰라도 주한미군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 봤자 큰 이득이 없습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분담금의 용도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죠.”
한국이 내는 분담금은 원칙적으로 주한미군에 고용되어 일하는 한국인 근로자 인건비와 미군기지 내 각종 건설 비용 또는 군수 지원비 등 세 가지 명목으로만 사용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맞소. 지금도 미집행된 분담금이 6,223억 원이나 쌓여 있는 상황이오.”
“애런 아서 대통령도 바보가 아닙니다. 분담금을 더 받아내 봤자 실효성이 없다는 건 알고 있을 거예요.”
재성은 잔에 담긴 투명한 술을 바라보면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니 마음대로 쓰지도 못하고 계좌에 쌓아놔야만 하는 돈보다 직접 이득이 되는 걸 제안한다면 지금처럼 무리한 요구를 해오지 않을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지 않겠소?”
재성이 씨익 흰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말했다.
“간단합니다. 분담금을 올리지 않는 대신 미국제 무기를 왕창 사주는 걸로 퉁치는 거죠.”
“미국제 무기 구입이라…….”
“미국이 요구하는 게 분담금을 40억 달러 인상하는 것이니. 똑같은 액수만큼의 무기를 구매하면 될 겁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 재성과 달리 배준봉 총리는 어깨를 움츠렸다.
“한화로 4조가 훌쩍 넘어가는 건데. 너무 큰 액수 아니오?”
“물론 적은 돈은 아니죠. 하지만 매년 40억 달러를 분담금으로 지출하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라고 봅니다만.”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건 그런데…….”
재성은 턱을 비스듬히 괴고서 깔끔하게 비워 버린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한국이 미국제 무기를 40억 달러 치나 구매하면 군수공장이 위치한 지역 주민들의 지지율이 올라갈 테죠. 그러면 혜택을 입은 군수업체들이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기부금을 듬뿍 낼 거고요. 애런 아서 대통령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주머니가 빵빵해질수록 아주 기뻐할 겁니다.”
그러면서 재성은 문득 뭔가를 떠올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중간 선거가 실시되는 주들 가운데 마침 애런 아서 대통령의 지지세가 강한 중부 미주리 주에 보잉 공장이 있으니 F-15를 추가 구매하면 더욱 효과가 클 것 같군요.”
슬쩍 미끼를 던진 재성은 느긋하게 말을 덧붙였다.
“도입된 지 30년이 훌쩍 넘은 F-5 계열 전투기를 아직 공군에서 150대 넘게 운용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2000년 들어서 사고만 8번이 발생해 12대가 추락했을 정도로 노후화가 심각하다고 하니 명분으로 내세우기도 괜찮지 않습니까.”
Freedom Fighter, 자유의 투사라는 별명답게 한국과 이란을 시작으로 엄청나게 많은 서방 국가들이 사용한 대표적인 경량 전투기가 바로 F-5였다.
생산과 배치가 이루어지던 70년대에는 나름 가성비 좋은 전투기였다.
하지만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공대공 전투는 불가능하고 대지 공격용으로 머릿수만 채우는 노후 전투기에 불과했다.
‘애초에 F-5 전투기 자체가 미국이 동맹국에 뿌리는 값싼 로우급 전투기였으니 성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지.’
지금은 대부분 퇴역하고 극히 일부 국가에서만 현역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런 노후 전투기를 세계 10대 경제 대국에 들어가는 한국 공군이 주력 전투기로 운용하는 건 정말 황당한 일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사정이 있겠지만 그래도 F-5 같은 노후 전투기를 계속 운용하는 건 공군 조종사들한테 시한폭탄을 안겨주고 하늘로 날아오르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40억 달러로 보유한 F-5 전부를 새 전투기로 대체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이걸로 일부나마 교체할 수 있다면 공군 조종사들은 물론이고 국방력 강화를 위해서도 이득이 되는 일일 터였다.
“분담금 인상 대신 미국제 전투기를 도입한다라.”
한쪽 손으로 턱을 매만지며 말을 되씹는 배준봉 총리를 보며 재성이 이야기를 덧붙였다.
“미국 주머니를 채워주는 게 아니라 국방력을 강화하는 거라면 국회와 국민의 동의를 받기도 한결 쉬울 겁니다.”
곰곰이 생각해 본 배준봉 총리는 머리를 끄덕이며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박 회장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좋은 의견인 것 같소.”
그는 역시 재성에게 도움을 구하길 잘했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왜 진작 이런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군.”
“도움이 되셨다면 다행입니다.”
배준봉 총리는 한결 부담을 던 얼굴로 말했다.
“미국 측과 협상을 해봐야 하겠지만 박 회장을 찾아오기로 한 건 정말 잘한 결정인 것 같소.”
“별말씀을요. 직접 나서지는 못하지만 저도 애런 아서 대통령에게 한국의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보겠습니다.”
“그래주겠소?”
배준봉 총리가 반색했다.
“정말 고맙소. 일이 잘 풀리면 고마움의 표시로 골드원을 국민연금 위탁 운영사에 포함시켜 주도록 하겠소.”
국민연금은 600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기금을 운용하는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연기금이었다.
많은 자금은 운영하다 보니 기금 포트폴리오의 위험 분산과 운용수익 원천의 다변화 등을 위해 일부 기금을 외부에 맡겨 위탁운용하고 있었다.
이렇게 위탁운용되는 기금이 무려 200조 원이나 됐다.
이러다 보니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 대형 운용사들까지 국민연금 위탁운용에 눈독을 들였다.
‘작년에 국민연금에서 위탁운용 수수료로 지불한 돈이 9천억 정도였으니 욕심을 낼 만하지.’
배준봉 총리 입장에선 재성이 기뻐할 거라 생각하고 준비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재성은 심드렁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감사한 말씀이지만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위탁 자금이 적을 것 같아서 그러는 거요? 최소 10조 원 이상 맡아서 운용할 수 있도록 해줄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하하 웃으며 배준봉 총리가 말했지만 그래도 재성의 표정은 여전했다.
“그게 아니라 골드원이 국민연금 운용을 맡게 되면 특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 그쪽을 걱정하는 거였소? 역시 신중하시군.”
배준봉 총리는 괜찮다고 손을 흔들었다.
“나중에 껄끄러운 일이 생길까 봐 그러는 거라면 확실히 야당 쪽에서 꼬투리를 잡을 수도 있을 거요. 하지만 골드원은 실적이 좋아 충분히 위탁운용사 자격이 되지 않소. 괜히 시비를 걸어봤자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사그라들 테니 염려하지 마시오.”
“으음.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만.”
재성은 약간 난처한 듯 미묘한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저희가 아니라 국민연금에 특혜를 주는 게 됩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귀찮아질 수도 있어요.”
“뭐요?”
금방 이해를 하지 못한 배준봉 총리가 두 눈을 깜박였다.
“작년 글로벌 대형 IB들의 평균 운용 수익률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글쎄. 잘 모르겠소.”
“10% 안팎입니다.”
재성은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렸다.
“그에 비해 골드원의 전년 운용 수익률은 50%가 넘지요. 쉽게 말하자면 1억을 가지고 5천만 원 넘게 벌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재성은 툭 하고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
“참고로 골드원이 운용하는 자금은 1조 달러입니다.”
수익률도 비교가 안 됐지만 무엇보다 입이 떡 벌어지는 건 골드원의 운용자금 규모였다.
일개 사모 펀드가 굴리기엔 너무 엄청난 돈이 아닌가.
단순히 따지면 국민연금이 더 많지만 그건 전 국민이 매달 꼬박꼬박 내는 돈으로 운용하는 것이고 골드원은 단 한 사람의 손 안에서 움직이니 그걸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액수였다.
“골드원이 대단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 정도인 줄은 몰랐소이다. 역시 박 회장이오.”
“뛰어난 인재들이 많은 덕분이지요.”
재성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골드원은 사실상 제가 전체를 소유한 패밀리 오피스(Family office)입니다. 운용하는 자금 역시 제 개인 자산과 유니콘 그룹 자금이지요.”
“허어…….”
배준봉 총리는 자신의 앞에 마주 앉아 있는 재성이 세계 제일 갑부라는 사실을 새삼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재성의 이야기 또한 흥미로웠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자금 위탁을 제안했습니다만 전부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국민연금 자금을 받아 운용한다면 다른 데서도 재차 부탁을 해올 것 아닙니까. 그런데 국민연금 자금은 받고 다른 돈은 안 받는다면 괜한 분란이 생기게 될 겁니다.”
그러면서 재성은 미안한 듯 미소 지었다.
“그러니까 총리님의 제안은 감사합니다만, 받아들이긴 어렵겠습니다.”
자금 위탁을 받으면 골드원이 아니라 국민연금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니 거절한다는 뜻이었다.
설마 그런 말을 들을 줄 상상도 못 했던지라 황당하긴 했지만 틀린 이야기가 아니라 반박도 못했다.
게다가 골드원 입장에서는 전혀 아쉬울 것이 없다는 걸 깨달은 배준봉 총리는 이내 수긍하며 머리를 끄덕였다.
“허허, 이거 참. 조금 당혹스럽지만 어쨌든 무슨 말인지 알겠소. 솔직히 그 정도 수익을 낸다면 나라도 예금을 다 털어서 맡기고 싶을 것 같소이다.”
“생각해서 해주신 제안인데 죄송하군요.”
“아니요. 오히려 이런 것도 모르고 엉뚱한 제안을 한 것 같아서 내가 미안하오.”
이건 마치 황금을 넘칠 정도로 가지고 있는 사람 앞에서 금화 주머니 하나를 맡기며 선심을 쓰는 척한 것 같지 않은가.
배준봉 총리는 괜히 민망한 마음에 술잔을 집어 들었다가 빈 것을 깨닫고 다시 내려놓았다.
“자, 한잔 드시죠. 제가 따라 드리겠습니다.”
재성이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화제를 넘기자 배준봉 총리는 고맙게 받아들였다.
“좋소.”
가볍게 술잔을 부딪친 뒤 단번에 술을 쭉 들이켜며 배준봉 총리는 크으, 소리를 냈다.
* * *
미국 텍사스 울프캠프 셰일 오일 광구.
유니콘 에너지 로고가 선명하게 그려진 헬리콥터 한 대가 로터 소리를 내며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다.
아래에 있는 황량한 황무지에는 셰일 오일과 가스를 채취하기 위한 시설물들이 곳곳에 보였다.
시추 시설을 연결하며 두 개가 나란히 길게 이어진 대형 수송관은 멀리 남쪽 멕시코만에 위치한 프리포트(Freeport) 항구까지 이어졌다.
유가 폭락으로 그동안 암흑기를 보내던 셰일 업계는 국제유가가 50달러 선을 회복하고 새로 당선된 애런 아서 대통령이 에너지 업계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다시금 훈풍이 불고 있었다.
그걸 보여주듯 그동안 시추공을 닫고 멈춰 있던 유정들이 다시 생산을 재개하며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유니콘 에너지 대표인 커밍스는 선글라스를 낀 채 쌍안경으로 아래에 보이는 시추공을 살펴보았다.
“보유한 시추공 가운데 현재 절반가량 생산을 재개했고 올해 말까지 가동률을 100%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옆에 탄 셰일 오일 담당 임원이 셰일 광구 상황을 설명했다.
“흠.”
커밍스 대표는 눈에 대고 있던 쌍안경을 내리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가 호조를 이어가고 백악관도 에너지 증산을 적극 밀어주고 있으니 셰일붐이 다시 찾아올 거야.”
아무리 귀에 헤드폰을 끼고 있어도 헬리콥터 로터 돌아가는 소리가 워낙 요란해서 목소리를 한껏 키워야만 했다.
커밍스 대표는 배에 힘을 주고 크게 소리쳤다.
“호황이 왔을 때 놓치지 않고 제대로 올라탈 수 있도록 가동률을 최대한 끌어올려! 그리고 아직 개발하지 않은 유정도 바로 시추 시설을 세워서 생산을 시작해.”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담당 임원의 대답을 들으며 커밍스 대표는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둥근 방풍창 아래에 유니콘 에너지의 마크가 찍힌 시추 시설이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커밍스 대표는 그 모습을 보고 얼굴 가득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