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urmet Gaming RAW novel - Chapter 1303
밥만 먹고 레벨업 1304화
가이아 대륙 신화에 내려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농경의 신 데메테르는 가장 자애로운 신이다.] [그녀는 가여운 인간들을 위해 밭을 만들고 씨앗을 뿌려 그들을 먹였노니.] [어쩌면 가이아 대륙 12신 중 가장 사랑받는 신일 것이리라.]그런 그녀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
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은 지금 목욕탕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김칫소를 양념으로 채우고 있다.
“……?”
아무튼 그가 김장김치를 완성했다.
그저 김치만 담근 것이 아니다.
깍두기, 열무김치, 동치미, 배추김치, 갓김치.
많은 종류의 김치를 담갔다.
민혁이 작은 미소를 지으며 펄펄 끓는 가마솥의 솥뚜껑을 열어 보쌈 고기를 꺼냈다.
아주 맛좋게 삶아진 두툼한 녀석을 도마 위에 올려 그대로 썰어냈다.
민혁은 데메테르의 앞에도 막 끝낸 김장김치와 무말랭이, 보쌈 고기를 놔줬다.
“제가 매운 건 잘 못 먹는데…….”
“여기 들어간 ‘입맛대로 고춧가루’란 녀석은 먹는 사람이 느끼는 가장 맛있는 맵기를 냅니다. 맵다고 느껴지나 입에 불이 날 정돈 아닐 겁니다. 또 데메테르 님이 먼저 드시고 검증해 주셔야 올림푸스에 승인받을 수 있겠죠.”
그 말을 끝낸 민혁이 자신이 차린 상 앞에 다가갔다.
민혁의 앞에 아주 맛 좋은 보쌈상이 차려졌다.
민혁이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먼저, 보쌈 고기를 아무것도 얹지 않고 입에 넣어 먹어봤다.
“오…….”
야들야들한 보쌈 고기가 입안에 들어온 순간, 입안에 육즙이 좌악 하고 가득 퍼진다.
그리고 갖은 약재와 풍미가 맛을 더해주고, 부드러운 고기는 몇 번 씹지 않았는데도 목구멍 뒤로 녹아 사라진다.
감탄한 민혁이 이번엔 보쌈 고기를 쌈장에 푹 찍은 후, 그 위에 손으로 쭈욱 찢은 김장김치를 얹어 그대로 입에 넣는다.
아삭이는 김치의 맛이 먼저 지나가며 그 뒤에 숨은 쌈장과 고기의 맛이 그를 전율케 한다.
“크…….”
끝이 아니다. 손바닥 위에 상추를 얹고 그 위에 보쌈 고기 두 점.
쌈장 푹 찍은 마늘, 청양고추, 무말랭이를 얹은 후 또 한입 먹어준다.
이번엔 생배추 끝에 쌈장을 바른 후 그 위에 보쌈 고기를 얹어 입에 넣는다.
양념 되지 않은 싱싱한 생배추는 단맛을 낸다.
아삭아삭-
입안에서 다채롭게 춤추는 그 맛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감돌았다.
그리고 슥삭슥삭 쟁반 국수를 비벼준다.
‘막국수와 족발에 쟁반 국수가 없으면 섭하지.’
잘 비벼진 윤기 나는 쟁반국수 위에 보쌈 고기 한 점을 얹어 그대로 먹어본다.
새콤달콤한 쟁반 국수와 보쌈은 언제나처럼 환상적인 맛을 자랑했다.
식사를 끝낸 민혁이 데메테르를 바라봤다.
보쌈 고기를 처음 먹어보는 그녀는 민혁을 따라 먹어봤고, 그 맛에 감탄하고 있다.
특히나 막한 김장김치는 너무도 맛이 좋아 눈물이 날 지경이다.
“이 김치란 것으로 수백 가지의 요리도 할 수 있다는 게 사실인가요?”
“수천 가지도 할 수 있을걸요?”
“배추가 없으면 다른 대체재의 재료로도 가능한가요?”
“수박껍질로도 담글 수 있는 게 김치입니다. 심지어 김치는 시간이 지날수록 맛있어집니다.”
“……!”
시간이 지날수록 맛있어지는 음식이라. 놀랍기 그지없다.
데메테르는 이 정도 요리라면 올림푸스에서도 충분히 만족할 거라 생각했다.
“일단은 시식용만 가지고 가서 승인을 받겠습니다. 기둥께선 약속대로 내일 가이아 대륙에 방문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김치란 것을 먹고 기뻐할 가이아인들을 상상한 데메테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워프했다.
그녀가 떠난 후.
민혁과 헤이즈가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봤다.
“어쩌면 신들 중 가장 순수한 신일지도 몰라.”
“맞습니다. 그랬기에 올림푸스에서 그녀를 보낸 걸지도 모르겠죠.”
두 사람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곧 시선을 맞췄다.
“시작할까?”
“예.”
그들은 가이아 대륙 벗겨 먹기 계획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이 가이아 대륙에 판매할 것은 다름 아닌 항아리다.
김치를 보관할 항아리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것일 테니까.
“항아리 만드는 원가가 얼마 정도 하지?”
“1만 골드 정도 할 겁니다.”
고개를 주억인 민혁이 헤이즈에게 말했다.
“헤파이스토스에게 항아리 제작주문을 넣어줘.”
“알겠습니다. 폐하. 아…….”
걸음을 옮기려던 헤이즈가 멈칫했다.
사실 그녀는, 이번 일이 굉장히 우려스러웠다.
“가이아 대륙에 방문하는 것.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지 않을 확률이 높겠지.”
민혁은 올림푸스 신들을 믿지 않는다.
사실 어떤 것을 내밀든 그들이 ‘이건 싫다’라고 하면 그만이다.
자신이 훌륭한 김치를 보냈어도 그들이 거절하면 그뿐이다.
“이걸 빌미로 전쟁을 벌이려는 거였을 테니 함부로 물러나지 않을 수도 있어.”
물론 민혁도 그로 인해 가이아 대륙에 가면 위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야만 했다.
“가지 않으면 전쟁은 더 빠르게 발발하니까.”
기둥이 견뎌야 할 무게는 버겁기만 하다.
* * *
천외제국의 모든 무기와 방어구는 헤파이스토스가 오기 전과 오고 난 후로 나뉜다.
그가 오기 전엔 황금망치라 불리는 오르골과 대장장이의 신의 후예 혜민아빠가 주축이 되어줬다.
둘 모두 뛰어난 대장장이기는 했으나, 매번 수준 높은 아티팩트를 뽑아내는 데 한계가 있었고, 천외제국에 대장장이들의 숫자는 적었다.
다른 제국에 비해 천외제국 병사들의 아티팩트는 뒤떨어지는 편이었다.
헤파이스토스가 오고 난 후 완전히 달라졌다.
그는 매번 뛰어난 아티팩트를 생산해냈고 단기간에도 많은 아티팩트를 생산할 수 있었다.
‘가신’이란 이름이 아닌 천외제국 모두와의 친구란 이름으로 묶인 헤파이스토스는 혼신의 힘을 다해 아티팩트를 생산하고 있기까지 하다.
그런 헤파이스토스와 혜민아빠, 오르골이 있는 대장간에 헤이즈가 방문해 민혁의 명을 전한 후 돌아갔다.
항아리 제작에 들어가려던 헤파이스토스가 멈춰섰다.
‘그런 요리를 찾는 건 힘든 일이다.’
하지만 민혁은 그런 것을 찾아냈다.
문제는 올림푸스가 이를 ‘수긍’하느냐다.
헤파이스토스는 누구보다 올림푸스를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겐 실제로 ‘그런 요리’가 필요한 게 아니다.
‘가이아인들을 위해 밀과 벼처럼 즐길 수 있는 요리라?’
가이아인들을 벌레 취급하는 그들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 명분에 불과하다.
‘가이아 대륙에서 활개를 쳐놓고 우리가 원하는 건 충족시켜 주지 못했다는 명분.’
과연 김치를 가져간다고 해서 순순히 인정해 줄까?
아니, 갖은 억지를 부려 전쟁을 발발시키려 할지도 모른다.
헤파이스토스는 알았다.
그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에 ‘자신’이 있었다.
헤라클은 애초부터 헤라에 의해 버려져 지적장애를 가진 채 살아오게 된 인물이다.
하지만 헤파이스토스는 자발적으로 이곳으로 넘어왔다.
그들이 민혁에게 가지는 분노는 생각보다 클지도 몰랐다.
멍한 표정으로 서 있던 헤파이스토스가 헤이즈의 말을 곱씹었다.
‘내일 민혁이가 가이아 대륙에 직접 김치를 전하고 온다라…….’
무사히 돌아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물론 민혁은 죽어도 되살아나는 불사의 존재다.
하나 올림푸스 이들에겐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상징이 될 거다.
‘서대륙의 기둥을 죽였다는 상징.’
망치를 쥔 헤파이스토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오르골 님, 저를 대신해 대장장이들 좀 지휘해 주시겠습니까? 전 다녀올 곳이 있어서요.”
헤파이스토스가 가이아 대륙으로 향했다.
* * *
번쩍-!
빛처럼 내리친 벼락이 플라스틱 통 안에 들어 있는 김치를 흔적도 없이 소멸시켰다.
데메테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제우스를 바라봤다.
“제우스 님, 어째서…….”
“이딴 것 따위 관심도 없었다.”
서대륙의 아테네와 가이아 대륙의 제우스가 맺었던 규율의 일부가 사라졌다.
이제 가이아 대륙도 서대륙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재료나 요리는 명분 만들기에 불과했을 뿐이다.”
제우스의 심기는 불편했다.
헤라클을 건드렸을 때까진 괜찮았다.
그 스스로가 선택한 운명이었으니까.
헤파이스토스가 넘어갔을 때도 괜찮았다.
애초부터 자신들이 먼저 헤파이스토스를 괴물 취급했으니.
그러나 아레스를 건드렸을 땐 이야기가 달랐다.
물론 모든 문제의 시작은 아레스로부터 비롯되었다.
그가 규율을 어겼고 그를 구하기 위해 제우스는 먹는 자들의 기둥에게 한 수 접어줬다.
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내일 그가 온다라.”
제우스가 구름을 지나 지상으로 내려섰다.
데메테르가 그를 만류하기 위해 내려서자 이미 올림푸스 신들을 포함하여 많은 신들이 모여 있었다.
“그를 잡아 천상의 감옥에 가두라.”
천상의 감옥.
가이아 대륙의 죄수들을 가두는 감옥은, 제우스의 허락 없이는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곳이다.
설령 그것이 올림푸스 12신이라고 할지라도.
“저를 이용하신 건가요……?”
데메테르는 적의 없는 자신을 이용해 민혁을 끌어들였음을 깨달았다.
제우스는 말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어깨를 두드렸다.
“수고했다.”
데메테르는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올림푸스 12신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그녀가 모여 있는 수백의 신들을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때.
[반역자 헤파이스토스가 가이아 대륙에 입장합니다.] [그는 올림푸스 12신의 자리를 버리고 서대륙의 한 제국으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그는 모든 가이아 대륙의 수치입니다.]“…….”
데메테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헤파이스토스란 신이 있었다.
가이아인들조차 ‘절름발이 괴물신’이라며 그를 흉내 내며 절뚝거렸고.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너 그렇게 말 안 들으면 헤파이스토스처럼 못생겨지고 다리를 절게 된다?’라고 말하며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는.
신들의 눈은 천 리도 볼 수 있는바.
데메테르의 눈에 지상에 강림해 절뚝이며 세상을 접으며 걷는 헤파이스토스가 보였다.
헤파이스토스란 신이 있었다.
모든 신 앞에 가장 비굴하면서.
모든 인간들 앞에선 놀림거리가 되는 그런 신.
그 신이 어느새 단숨에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그는 언제나와 같았다.
“여어, X신토이스! 다른 대륙에 가서 변했다더니, 괴물 같은 얼굴에 절뚝이는 다리는 똑같잖아?”
“으하하하하하하! 저 절뚝이는 거 봐라!”
헤파이스토스란 신이 있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변치 않듯, 그 신은 수백 명의 신들 앞에서 조롱을 당했고.
올림푸스 12신들은 그가 자신들과 어깨를 견줄 자리에 섰을 뻔했던 것을 경멸했다.
그런 그가 신들의 비웃음 사이로 아버지 제우스를 바라봤다.
데메테르는 그를 유일하게 안타까워한 신이다.
그녀는 그가 이곳에 온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을 버린 아비와 어미 앞에 고개도 들지 못하던 신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그 절름발이 괴물신은 지금 아비 제우스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
“전부 아가리 닥쳐.”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의 비난과 모욕 속에서도 꼿꼿이 서 절대신 제우스를 마주 보고 있었다.
올림푸스의 가장 뛰어났던 대장장이 헤파이스토스의 날 선 목소리가 장내를 숨죽이게 만들었고.
흉측하고 못생긴 아들을 버렸던 제우스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우스가 말했다.
“그래서 무엇이 변했더냐.”
“똑같지 않느냐. 예나 지금이나 모두가 너를 괴물. 절름발이라 욕하고 있다.”
“추악한 너를 보며 아이들은 괴물 헤파이스토스라며 도망치며.”
“신과 인간에게조차도 존경받지 못하고 모두 너를 경멸한다.”
“도대체 무엇이 변했더냐.”
헤파이스토스란 신이 있었다.
아비에게 버림받고 어미의 손에 던져져 하늘에서 떨어졌던 그 신이, 제우스를 보며 말했다.
“제 세상이 변했습니다.”
헤파이스토스란 신이 있었으나, 사라졌다.
이제 천외제국의 헤파이스토스만 있을 뿐.
모든 것은 변하지 않아도, 그의 세상은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