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vity 10000% Catastrophic Player RAW novel - Chapter 88
* * *
두 사람이 순식간에 도착한 곳은, 삼면이 밋밋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는 방.
방의 한 면은 전체가 특수한 창살로 되어 있어, 대충 봐도 가둬두기 위한 시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기다 이 감옥 안에선 특성과 아이템의 효과가 무효화 된다.
공간이동 능력자인 애쉬조차, 들어올 수는 있으나 나갈 수는 없는 공간인 셈.
애쉬는 생소한 공간을 두리번거리는 이성우를 뒤로 하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이 시설에선 특성도, 아이템도 사용할 수 없어요. 딱히 위해를 가하진 않을 거예요, 난동만 부리지 않는다면.”
그러니 얌전히 있으라는 이야기.
그녀는 슬그머니 감방의 문을 밀었으나, 본부와의 대화대로라면 열려있어야 했을 감방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어······?”
이성우는 피식 웃고는, 애쉬가 해준 이야기를 고스란히 되돌려주었다.
“미리 말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군요. 그쪽은 저에게 적극 협조한 탓에 미운털이 박혔어요. 난동만 부리지 않는다면 별일 없을 테니, 얌전히 계시죠.”
미운털?
나는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어째서?
아니, 그보다도 당신이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건데?
“이, 이건 말도 안 돼요. 시큐리티! 여기 문이 잘못 잠겼어요, 어서 열어줘요!”
하지만 멀리 복도 끝에 서 있는 간수는 귀찮다는 듯 귀나 후빌 뿐이었다.
스르륵―
다리가 풀린 애쉬가 주저앉았다.
“이렇게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내가 얼마나 개 같이 일했는데. 클랜시, 개새끼.”
“직장 생활이 다 그렇죠. 뭐, 별일 없을 테니 열 내지 말고 앉아 봐요.”
철푸덕.
체념한 듯 맨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은 애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렇게 같이 갇힐 줄 알았다면 함께 점프 뛰는 게 아니었는데.
제 손으로 가둔 사람과 한 공간에 있어야 한다는 게 얼마나 민망한 일인지.
오죽하면 제 손으로 잡아넣은 범죄자와 한 감방을 쓰게 된 경찰관의 이야기가 클리셰처럼 등장하겠는가.
“하아, 이성우 플레이어는 제가 원망스럽지도 않은가요?”
이성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차피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신 걸 텐데요, 뭘. 미안하면 썰이나 좀 풀어봐요.”
“무슨 썰이요?”
“이곳, 51구역 비밀실험장에 대한 이야기라든가. 이 감옥은 어떤 원리로 플레이어를 구속하는 건지, 또 다른 곳엔 무슨 신기한 기술이 있는지.”
애쉬는 천장과 텅 빈 복도를 한번 흘긋거리곤,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한 번 들어오면 절대로 못 빠져나가는 곳이라 그 흔한 CCTV 하나 없는 곳인데. 얘기 몇 개 해준다고 별일은 없겠지.’
상부에서 자신을 언제 풀어줄지도 모를 일이라, 시간도 죽여야 하니까.
“하아, 그래요. 어디 보자, 뭐부터 얘기할까.”
이성우가 씩 웃으며 말했다.
“처음부터. 이곳에 던전이 형성되었을 때의 이야기부터 쭉 들어볼까요.”
이성우가 51구역 던전의 내력에 대해 속속들이 들어보려 하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먼 미래, 미국이 붕괴하기 직전에나 드러나는 비밀이지만. 51구역 던전의 컨셉은······ 다트 에메트(Da’at emeth)라는 고대 비밀결사의 오파츠 창고다.’
그 안을 메운 온갖 함정과 기관들 하나하나가 전부 무지막지한 오버 테크놀로지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던가.
등장하는 던전 파수꾼과 보스 역시 오버 테크놀로지의 산물이라, 클리어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려졌었다.
그렇기에 미국은 이 던전을 클리어하려 억지로 애쓰는 대신 꼭꼭 숨겨놓고서, 던전 내의 오파츠를 차근차근 연구하는 방향을 택했다.
즉, 이 시설에는 그 오파츠 또는 오파츠 연구 결과물이 가득할 터.
‘특별연구소의 홍선희 소장이나 데우스 길드의 전자인간 엑스가 보면 그냥 환장해서 달려들겠지.’
그렇다.
이성우는 모처럼 극비의 51구역에 발을 들인 김에,
쓸만한 오파츠는 죄다 뜯어갈 생각이었다.
이성우의 활약 탓에 악마를 만만히 보고,
자신들 힘으로 구마(驅魔)에 나서보겠다는 미국 관리부 측의 계산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기껏 도움을 구하기에 와줬더니, 간 보면서 슬쩍 발을 빼려는 모양새가 괘씸한 것도 어쩔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 대가를 톡톡히 받아 갈 생각이었다.
물론 던전 클리어 보상과 별개로.
* * *
한편, 세인트 루이스의 모처의 그림시커 은신처도 지옥 못지않게 뒤숭숭하긴 마찬가지였다.
“역십자기도회의 티모시도 연락 두절이군. 분명 1시간 전에 주 경계를 넘었다고 했는데······.”
그림시커 멤버, 닐이 사라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사라 모건.
현시점에선, 미국 내 그림시커의 수장이나 다름없는 인물.
대상을 ‘즉사’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탓에 감히 대항하기도 힘든데다, 이곳 세인트 루이스 안가에 집결한 세 그룹 가운데 가장 큰 세력을 이끌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가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럼, 여기 없는 멤버들은 전부 잘려 나간 거네?”
“어어, 뭐 그렇지······. 그래도 별일 있겠어? 추적이 좁혀와서 잠행했겠지.”
사라가 닐을 맹렬하게 노려보았다.
“그렇다고 13명이 전부 연락 끊고 잠수를 타? 대가리 총 맞았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조용히 자리를 지키던 타락한 드루이드, 리암 그레이도 거들었다.
“갑자기 주인님과의 소통도 예전 같지가 않아. 어째서인지 연락을 피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착각이었으면 좋겠지만, 이런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걸 우연으로 치부하기보단 뭔가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 게 안전하겠지.”
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리 좀 모아보자고. 도대체 이게 다 뭔 지랄일까? 지옥도 뒤숭숭해, 갑자기 멤버들이 공격받기 시작해, 그나마 빠릿하게 움직여서 미리 숨어든 우릴 제외하곤 전부 깔끔하게 정리당했어. 이게 다 뭐냐고.”
리암이 조심스레 운을 뗐다.
“결국 그 모든 일의 시작은, 한국이었겠지.”
“안드레아? 갑자기 들고 일어난 거, 좀 이상하긴 했어.”
닐의 대꾸에 리암은 고개를 내저었다.
“갑자기가 아니겠지. 그 친구가 죽은 뒤에 한국 전역이 성역화된 걸 봐. 분명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그리고 난······ 그 친구를 죽였다는 놈이 그 이유라고 본다.”
“······이성우.”
동아시아 유일의 측정불가급 플레이어.
물론 측정불가급이라곤 해도, 따지고 보면 SS급이거나 SSS급이다.
단지 독일과 미국 외엔 SS와 SSS급을 판별할 수 있는 측정장치가 없기에 과대평가되는 것일 뿐.
미국엔 이미 SS급 플레이어가 여럿 존재한다.
다만, 문제는 등급이 아니다.
“놈은 안드레아뿐만 아니라, 그가 모시던 주인까지 살해했다고 하지.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위 악마조차 살해할 수단을 쥐고 있다는 건데. 그럼 주인님들께서 갑자기 몸을 사리시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사라의 말에 리암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우리가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려면, 이성우를 제거해야겠군. 하지만 당장은 우릴 잡아 족치려는 미국 관리부부터 어떻게 해야 해. 주인님을 소환하는 건, 포기해야겠고. 좋은 의견 있어?”
침묵하는 리암.
쓸만한 의견은 뜻밖에도 닐에게서 튀어나왔다.
“꼭 주인님을 청해야 하나? 이미 주인님께 받은 아티팩트가 많잖아?”
퍼뜩.
사라와 리암의 시선이 동시에 마주쳤다.
“······영혼석.”
그리곤 허둥지둥 각자 원래 본거지에서 챙겨온 물건을 뒤지기 시작했다.
“여기 있다.”
“나도 찾았다. 닐, 네 것도 가져와 봐.”
“여깄어.”
테이블에 놓인 세 개의 고위 악마 영혼석.
각자 모시는 주인 악마가 이 땅에 생겨나는 게이트를 변질시키라며, 힘을 나누어 담아준 물건.
지금까지 조금씩 쪼개서 티나지 않게 변칙 게이트를 만들어, 플레이어들의 희생을 늘리는 용도로 쓰고 있었는데······.
“작은 조각 하나만 써도 게이트 마력 등급이 한 단계는 상승하는 물건이지. 이걸 덩어리째로 세 개를 한꺼번에 쓰면?”
“S급을 뛰어넘는 게이트가 탄생하지 않으려나.”
“크흐흐, 그거야말로 측정불가급 게이트로군?”
고위 악마 3체의 힘을 게이트 하나에 한꺼번에 풀어 넣는다?
그런 건 평소라면 떠올리지도 못했을뿐더러, 설령 떠올렸다고 하더라도 감히 시도해보지 못했을 방책이었다.
아까운 영혼석을 그런 호기심에 소진할 순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목숨이 경각에 달한 절체절명의 상황.
지금은 관리부가 이 안가를 파악하지 못한 듯 조용하지만, 결국 들통나는 건 시간문제에 불과할 것이다.
아끼다 똥 되느니,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배수의 진을 치는 게 낫다.
“자, 문제는 이걸 투입해도 아깝지 않을 수준의 게이트가 등장해줘야 한다는 건데.”
그때, 세 사람의 핸드폰이 동시에 진동했다.
“흐흐흐······ 이거 아무래도 운명이 우리 편인 모양인데?”
―[미주리 주 게이트 안전처] 웰던 스프링 보호관리지구 내 A급 게이트 발생. 해당 지역 방문자는 속히 대피하십시오.
무려 A급 게이트의 등장.
심지어 웰던 스프링이면 이곳 세인트 루이스에서 멀지도 않다.
이거면 은신처를 벗어나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일단 게이트 변질에 성공만 한다면,
S급 게이트를 뛰어넘는 최악의 재앙을 빚어낼 수 있을 것이고.
그 혼란을 틈타 관리부의 추적을 완전히 떨쳐내고 남미나 캐나다로 빠져나갈 수도 있을 터.
“닐, 애들 불러 모아. 당장 움직인다.”
“오케이.”
닐이 허둥지둥 위층으로 올라가자, 리암도 근육질의 몸을 일으켰다.
“난 먼저 현장으로 가 있겠다. 미주리 관리국의 머저리들이 도착하면, 머리를 뽑아버리지.”
“좋아, 곧 보자고.”
두어 발, 걸음을 옮기던 B는 돌연 거대한 늑대로 변모하더니.
쏜살처럼 달려 나갔다.
혼자 남은 사라는, 탁자에 놓인 고위 악마 영혼석 세 개를 챙기며······.
그 막대한 지옥의 힘을 게이트에 해방시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하고 전율했다.
“관리부 개자식들······ 얌전히 있는 우릴 물어뜯었겠다? 이걸로 고생깨나 할 거다.”
어쩌면, 어쩌면 이 회심의 한 방으로 미국 중부가 초토화될지도 모를 일이고.
사라가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 지하실을 나서자.
꺼지지 않은 담뱃불이 바닥에 쌓인 먼지에 서서히 옮겨붙기 시작했다.
* * *
세인트 루이스의 머나먼 동쪽, 펜타곤.
그림시커 전담대응반이 다시 한번 바빠지기 시작했다.
“위성 영상에 움직임 잡혔습니다!”
클랜시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켰다.
“새끼들, 제 친구들이 모조리 실종돼서 똥줄 좀 탔나 보네. 관측 내용은?”
“그게······ 대형견으로 보이는 개체 한 마리가 집에서 뛰쳐나와 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고. 차량 두 대가 그 뒤를 따라 이동 중입니다.”
클랜시의 미간이 패였다.
“웬 개?”
“······그러게 말입니다. 영문을 모르겠습니다만, 영상 확인했습니다. 띄울까요?”
“됐어. 소환 의식에 필요한 제물을 놓쳤나 보지. 병신들. 악마 불러내라고 건드리지도 않고 내버려 뒀더니, 개나 쫓아다니고 자빠졌네.”
“푸흣······ 크흠, 죄송합니다.”
“됐어. 나도 웃겨 죽겠으니까. 어휴, 씹. 저런 머저리들 때문에 쫄아서 사리고 있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네.”
곳곳에서 요원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역시나 악마숭배자들도, 악마란 것들도 생각보다 별거 아니라는 안도감이 그런 식으로 표출되는 것이었다.
“저, 팀장님? 더 락으로부터의 보고입니다. 애쉬와 이성우가 덫에 빠졌답니다.”
클랜시가 흡족한 얼굴로 손을 비볐다.
“좋아······. 거기에 TV랑 팝콘도 좀 갖다주라고 해. 감히 미국을 등쳐먹으려 했던 속임수가 산산이 부서지는 꼴을 지켜볼 수 있도록 말이야.”
그는 벌써부터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한 뒤, 한국 정부로부터 뭘 받아올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었다.
가장 탐나는 성역화 버프는 국가 단위에 부여된 것이니, 어쩔 수 없다 치고.
잘하면 남산에 심긴 세계수 정도는 가져올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에 찬 그는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다.
팽팽히 당겨졌다가 순간 느슨해진 긴장의 끈에······ 오히려 따끔하게 얻어맞게 되리라고는 말이다.
* * *
한편, 이성우는 애쉬에게서 들은 51구역 비밀실험소에 관한 정보를 머릿속에서 한 차례 재구성.
반드시 챙겨야 할 물건, 가능하다면 한 번 살펴보면 좋을 물건, 굳이 필요 없는 물건으로 우선순위를 설정했다.
“사실, 제 능력에는 사념 충격이라고. 동반 이동자의 부정적 사념이 여과 없이 흘러들어오는 부작용이 있어요. 대개는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말로 표현 못 할 생각과 상상들인데. 이상하게도 이성우 플레이어한테선 그런 게 없었어요. 희한하죠?”
대뜸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다, 반문하는 바람에 퍼뜩 정신이 든 이성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글쎄요, 제가 워낙 별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그 말을 듣고서 레라지에가 코웃음을 쳤다.
“무슨 소릴. 머릿속에 악마 살해와 지옥 파괴밖에 없는 녀석이. 지금도 이 시설을 어떻게 망가뜨릴까, 그 생각뿐이지?”
이성우는 가볍게 눈을 흘기며 속삭였다.
“안 부숴. 그냥 훔칠 거거든.”
“네?”
애쉬의 반문에 이성우는 행동할 때가 됐음을 느꼈다.
더 지체해 봐야 좋을 건 없으니까.
“지금부터 일어나는 일, 애쉬 대위님은 아무것도 모르시는 겁니다.”
“대체 무슨 소릴······.”
그 순간, 그녀의 눈앞에서 이성우가 사라졌다.
“어?”
미약하게 남아있던 기척까지도.
“뭐, 뭐지? 어떻게······? 여긴 더 락이잖아, 특성도 아이템도 사용이 불가능할 텐데?”
혹시나 해서 단거리 공간이동을 시도해봤으나, 그녀의 능력은 전혀 반응이 없었기에.
더더욱 황망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어떻게 돼먹은 남자야······?”
그 순간, 이성우는 [빛을 삼키는 반지]의 은폐를 발동한 채.
바닥으로부터 한 뼘 정도 부유한 상태로 아주 조용히, 복도 입구에 앉은 간수 앞을 지나고 있었다.
‘은폐의 지속시간은 앞으로 15분.’
꼭 필요한 오파츠들을 훔쳐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너흰 날 여기에 가두지 말았어야 했어.’
애지중지하던 물건들이 사라진 걸 깨닫게 되면, 배 좀 아플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