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483
824화 왕씨 집안 아가씨 (1)
목풍아 집안은 경도 1처에서 근무를 하고 있어 경도 귀족 가문 사람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멀리 사라지는 말의 행렬을 바라보던 목풍아가 고개를 저으며 자신도 모른다는 표시를 했다.
그러자 성에서 마중을 나온 계년조 요원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씨 집안 아가씨일 겁니다.”
“왕씨 집안이라고?”
범한이 눈썹을 씰룩이며 일리가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왕씨 성을 가진 아가씨 중에서 연경 대도독 왕지곤의 딸 말고는 경도에서 저렇게 제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경도에서 반란이 일어난 뒤 2년 동안 연경 대영은 반란을 평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다. 폐하를 대신해 동산로 곳곳에 포진해 있는 반란 분자들을 숙청했을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연소을 아래에 있었던 정북 진영을 안정적으로 통제하는 데도 성공했다.
왕지곤은 아직도 멀리 연경을 지키고 있었지만, 사비 장군이 황제의 명을 받고 경도로 돌아와 중책을 맡을 예정이었으니 연경파는 군대 안에서 황제 폐하의 총애를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셈이었다.
“아마 왕 대도독 집안 아가씨일 겁니다. 대도독이 폐하의 성은에 감사하며, 자신의 딸을 경도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제 경도 수비 통령이 될 사비 장군이 이전에 왕 대도독의 부하였던지라 왕씨 아가씨가 숙부라고 부르며 서로 잘 어울린다고 합니다. 게다가 왕씨 집안 아가씨는 과거 섭씨 집안 아가씨의 풍모를 흠모하고 있어서······.”
계년조 요원이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눈치가 빠른 그는 불필요한 문제가 생기는 걸 방지하고자 상사를 대신해서 자세히 설명에 나선 것이었다.
“섭령아를 본받고 싶어 한다는 건가?”
범한이 입꼬리에 기이한 미소가 걸렸다.
“내가 성문 밖에서 처음 섭령아를 보았을 때 경도 백성들은 알아서 길을 비켜줬었네. 나는 한 번도 내 제자가 제멋대로 채찍을 휘두르면서 사람들에게 돌진하는 모습은 본 적 없어······.”
이 장면을 본 범한은 황궁에서 지정한 1 황자의 측비가 누구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예측할 수 있었다. 안색이 어두워진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곧장 황궁으로 가지 말고 먼저 화친 왕부에 들려야겠네.”
* * *
감찰원 표식이 선명한 마차 행렬은 경도 서성문으로 진입한 뒤 새로 난 길 입구에서 흩어졌다. 맨 앞에 있는 두 대의 마차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고 조용히 경도 거리 인파 속으로 들어간 뒤 서남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머지않아 시끌벅적하던 거리 소음은 사라지고 화려하고 조용한 동성에 진입하였다.
멀리 범씨 가문 저택이 보였지만 마차는 멈추지 않고 북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마차는 황성 지역을 거쳐 조용한 거리를 지나 왕공 저택들이 밀집한 구역을 지났다. 그리고는 굳게 문이 닫혀 있는 정왕부를 지난 뒤 마침내 화친왕부가 있는 거리에 진입했다.
마차가 화친왕부 대문 가까이 다가가자 마차 안에 있는 범한의 귓가에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화친왕부 대문 앞에서 골치 아픈 소란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가 코를 쓱쓱 비비며 자신의 예측이 적중했다고 생각했다. 노기등등한 얼굴을 하고 말을 미친 듯이 몰던 왕씨 집안 아가씨의 최종 목적지는 그의 예상대로 화친왕부였다.
범한은 성문에서 오만방자하고 제멋대로인 왕씨 집안 아가씨를 본 뒤 황제 폐하의 뜻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을 한 상태였다. 1 황자가 측비를 받아들이는 걸 강요받는 이유는 훗날 왕비를 폐위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렇다면 측비는 분명 훗날 왕비가 되어도 문제가 없을 만큼 출신이 비천하지 않은 집안의 아가씨여야 했다. 게다가 만일 왕씨 집안 아가씨가 측비가 된다면 1 황자는 장인어른이 왕지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만일 1 황자가 북쪽으로 출병할 때 왕지곤이 이끄는 연경 대영의 지원을 받는다면 전쟁의 전반적인 정세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거였다.
물론 왕씨 집안 아가씨는 훗날 정말 화친 왕비가 된다면 1 황자와 왕지곤의 경국의 군사력을 너무 많이 쥐게 될 수 있었지만, 이건 나중의 문제였다. 2 황자의 교훈이 있기 전에 범한은 황제 폐하가 자기 아들들에게 해서는 안 될 허튼 생각을 할 기회를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군대 중신의 딸이 황자와 혼인하는 건 황자 입장에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일이었다. 만일 그러지 않는다면 누구든지 2 황자 이승택처럼 비참한 말로를 맞이할 수 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범한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었다.
* * *
황제 폐하의 계획은 지극히 원대했다. 그리고 만약 그 계획을 위해 1 황자가 병력을 이끌고 북제를 정벌해야 한다면 북제 공주 출신이 큰 왕비는 엄청난 걸림돌이 될 터였다.
범한은 황제 폐하가 바라는 바가 뭔지 알고 있었음에도 강렬한 반감이 들었다. 북제 큰 공주와 그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성문에서 왕씨 집안 아가씨의 제멋대로인 행실을 보니 황제 폐하의 안목이 정말 옳았던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다.
‘자신의 며느리를 고르는 일인데 어찌 행실이 어떤지 고려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왕씨 집안 아가씨 같은 사람이 정말 왕부에 들어온다면 온 집안에 분란을 초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범한은 한편으로 황제 폐하의 안목을 의심하는 게 옳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냐하면, 황제 폐하와 같은 사람에게 여자란 혼인을 통해 인척 관계를 맺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혼인할 여자의 행실이 어떠한지, 품성이 어떠한지, 자신의 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사람인지는 고려할 사항이 아니었다.
물론 왕씨 집안 아가씨가 왕부 대문에 나타나 소란을 피우는 상황은 폐하도 보고 싶어 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1 황자는 고귀한 신분인 만큼 화친왕부는 거리 절반을 홀로 독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동성 일대가 워낙에 조용하다 보니 왕부의 소란 소리가 멀리까지 잘 들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감시 고개를 내밀고 1 황자 저택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구경하고 비웃을 정도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사람은 없었다. 화친왕부 대문은 시끌벅적 소란스러웠지만, 거리에는 감찰원 마차 두 대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대인, 지금은 찾아가기에 적당한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일단 저택으로 돌아가신 뒤 시기를 봐서 다시 오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범한은 비록 흠차라는 명목으로 서량로에 갔었지만, 사실은 황제의 비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니 경도로 돌아오자마자 황궁에 찾아가 보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이 사실을 아는 목풍아는 화친왕부 대문 앞에 시장바닥처럼 시끌벅적한 걸 보고는 왕야의 체면이 지금 말이 아닐 테니 방문하지 말고 저택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한 것이었다.
범한은 목풍아의 제안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목풍아는 아직도 왕계년처럼 범한의 마음을 추측해 낼 줄 몰랐다. 범한이 굳이 화친왕부를 찾아온 이유는 바로 대문 앞에서 일어나는 소란을 직접 보기 위해서였다.
마차 안에 있는 범한이 온 신경을 집중해서 화친왕부 대문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얼마 뒤 화친왕부가 소란스러워진 이유를 알아챈 범한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왕씨 집안 아가씨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알아차리지 못하는 게 오히려 어려울 정도였다.
아직 폐하가 1 황자에게 측비를 들이라는 교지를 내리지는 않은 상태였지만, 일은 이미 암암리에 추진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 소식을 알아야 할 사람들은 이미 상황을 파악해둔 상태였고, 당사자인 1 황자와 왕지곤은 누구보다도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 경도 수비 통령에 새로 부임한 사비 장군이 직접 연회를 열어 1 황자를 초대했다.
그가 1 황자를 연회에 초대한 건 자연스럽게 1 황자와 왕씨 집안 아가씨가 만날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다. 정말 기발한 생각이었지만······.
성격이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1 황자는 왕씨 집안 아가씨를 보자마자 무슨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그대로 줄행랑을 쳐버렸고, 이에 두 사람은 한마디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
아마도 이 일을 계획한 사비 장군은 상황이 이렇게 될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터였다.
대도독의 딸로 연경에서 곱게만 자란 왕씨 집안 아가씨는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치욕과 굴욕을 맞봐야 했다. 더욱이 자신이 이런 취급을 받으면서 왕부로 들어가 가련한 측비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울분이 더 치솟았다.
‘나를 1 황자 저하에게 시집보내고 싶어 하는 게 황궁의 뜻이라는 걸 분명히 알면서도 왜 나를 미워하는 거야?’
왕씨 집안 아가씨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는 과거 경도에서 말괄량이로 이름을 떨쳤던 섭령아는 숭배하는 만큼 과거 수년간 병력을 이끌고 서쪽을 정벌했던 1 황자를 흠모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오늘 낮에 여종의 충동질을 받아서인지 아니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에 파고 들어가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녀는 예의도 없이 곧장 말을 타고 경도로 들어와 왕부 대문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었다.
물론 사비 장군은 이 일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기에 곧장 사람을 보내 왕씨 집안 아가씨를 쫓게 했다. 이들은 화친왕부 앞까지 따라왔음에도 당장이라도 끌어내고 싶다는 표정을 짓기만 할 뿐 감히 용기 내 왕씨 집안 아가씨를 건들지는 못했다. 그냥 옆에서 애걸복걸하며 말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왕씨 집안 아가씨가 왕부를 찾아온 이유도 우스웠다. 바로 화친왕부에 있는 왕비에게 문안 인사를 올리겠다는 거였다. 물론 범한도 이 황당하고 우스운 핑계가 경도 귀족 여자들이 교류할 때 흔히 하는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다만 범한이 예상하지 못했던 점은 화친 왕비가 자신의 남편만큼이나 직설적이고 꾸임이 없다는 점이었다. 굳게 닫혀 있는 대문은 누구도 들어오는 걸 거절하고 있었다. 심지어 집안 주인들이 외출해 집안에 없다는 흔한 핑계마저도 하지 않았다. 그냥 직접적으로 오늘 왕부에 일이 있어 손님을 대할 수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에 더욱더 굴욕감을 느낀 왕씨 집안 아가씨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기꺼이 신분의 귀천도 따지지 않고 외국 여자를 만나러 왔다는데, 무슨 자격으로 나를 문전에서 박대하는 거야.’
왕부 대문 앞에서 난동을 부리는 왕씨 집안 아가씨는 섭령아와 비슷한 기질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섭령아처럼 분수에 맞게 행동할 줄을 몰랐다.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난동을 부리며 모두를 난처하게 만들 뿐이었다.
왕씨 집안에서 온 장교는 아주 곤혹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가 날뛰는 왕씨 집안 아가씨를 한 번 봤다가 다시 굳게 닫힌 화친왕부 대문을 보고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곳이 어디란 말인가? 바로 화친왕부 대문 앞이었다. 왕씨 집안 아가씨가 연경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경도에서는 예전처럼 제멋대로 행동해서는 안 됐다.
만약 이러다가 정말 왕부 안에 있는 왕야의 심기를 건드리기라도 해서 무슨 큰일이 일어난다면 누가 그 뒷감당을 할 수 있겠는가?
한편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범한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정말 황궁과 사비 장군이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왕씨 집안 아가씨가 제멋대로 행동하는 걸 막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오늘 이 상황은 주도면밀할 사람이 일부러 꾸민 일일 수 있었다. 1 황자의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한편 성 전체가 이 일을 알게 해 공론화시킨 뒤 황제 폐하가 지시를 내린다면 1 황자도 아무 말 못 하고 따라야 할 테니 말이다.
예를 들어서 황제 폐하가 1 황자에게 감정이 깊어 왕부에까지 쫓아온 왕씨 집안 아가씨를 책임지지 않을 작정이냐고 추궁하거나 아니면 경도 백성들이 모두 이 일을 알게 되었는데, 황족의 장자로써 명문가의 체면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보름의 시간 동안 왕씨 집안 아가씨를 집안에 들여 문제를 해결하면 잘못을 꾸짖지 않겠다고 말을 하는 등의 상황도 펼쳐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