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484
825화 왕씨 집안 아가씨 (2)
모두 사람의 허점을 파고드는 교활한 방법들이었지만, 사실 범한에게는 아주 익숙한 방법이었다. 그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1 황자가 그동안 자신을 각별히 대해주었으니 지금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저 난처한 상황을 자신이 가서 해결해 주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잠시 고민하다가 옆에 있는 목풍아를 바라보며 지시했다.
“대문을 두드리러 가세.”
검은색 마차 두 대가 왕부 문 앞으로 왔다. 마차 바퀴가 덜그럭대는 소리가 왕부 대문 앞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치는 아가씨의 앙칼진 목소리와 겹치면서 기묘한 조화를 만들어냈다.
지금 왕부 대문에는 약 39여 명의 사람이 둘러서 있었는데, 모두 왕씨 집안이 연경에서 데리고 온 집안 장군들과 경도 수비에서 왕씨 집안 아가씨에게 보낸 집사와 종들이었다.
그중에서 한 늙은 집사는 울먹이면서 자신의 집안 아가씨에게 어르신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왕부 대문에서 소란을 피워서는 안 된다고 애원하고 있었다. 이렇게 소란을 피우다가는 왕씨 집안이 경도에서 웃음거리가 될 텐데, 그럼 왕씨 집안이 어떻게 계속 경도에서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말이다.
애걸복걸하던 집사가 왕부 정문을 향해 두 대의 마차가 다가오는 걸 보고는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집사가 간곡하게 타일렀음에도 왕씨 집안 아가씨의 귀에는 집사의 말이 전혀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왕씨 집안 장군과 집사가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두 대의 검은색 마차를 바라보았다. 이들이 속으로 아가씨가 난동을 피우는 걸 누가 밖에 알려서 큰일이 난 게 아닐까 하고 걱정했다.
한편 왕씨 집안 아가씨는 마차가 다가오든 말든 돌사자상을 밟고 올라서는 왕부 안에 대고 삿대질을 하며 큰 소리로 고래고래 욕을 늘어놓고 있었다.
그때 마차 안에서 범한의 점잖은 목소리가 들렸다.
“어느 집안 아가씨이기에 거리에서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 것인가? 예의 없이 행동하는 이유가 뭔가?”
인기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노티가 풀풀 풍기는 이 말은 범한이 마차 안에서 한참을 고민해서 생각해 낸 말이었다.
범한의 말에 왕부 대문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었다. 평범한 말이었지만 말투에서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잔혹함이 느껴졌다.
게다가 이 말은 왕씨 집안 아가씨의 행실을 꾸짖는 동시에 집안의 가정교육까지 질타하는 말이었다. 그러니 그녀 뒤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이 굳을 수밖에 없었다.
집안 장군이 마차 두 대를 번갈아 노려보다가 애써 화를 삼키며 정중하게 물었다.
“그러는 대인께서는 어느 집안 분이신지요?”
지금 난동을 부리고 있는 왕씨 집안 아가씨가 상황 파악을 못 한다고 해서 여기 있는 왕씨 집안이나 사씨 집안사람들 모두가 바보인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들은 화친 왕부 대문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왕씨 집안 가정교육을 문제 삼는 사람이 분명 상당해 배경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자연스레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집안 장군은 마차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 표식을 통해서 상대방이 감찰원 관리라는 것도 파악해 둔 상태였다.
현재 조정에서 감히 연경파의 체면을 건드릴 수 있는 관리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감찰원 관리라면 그럴만한 뱃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위에는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주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바퀴 달린 의자에 앉은 늙은 주인은 이미 조금씩 자리에서 물러나고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두둔해줄 작은 주인이 있었다.
이 작은 주인은 온정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냉혹하게 행동하는데다가 가진 배경은 너무나도 드높아서 경도에 온 지 채 5년도 되지 않아 조정 상서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황태자와 장 공주마저도 쓰러뜨렸다.
그러니 이런 작은 주인의 보호를 받는 감찰원 관리라면 연경파 사람들에게 오만방자한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집안 장군은 경도에 오기 전에 대도독 대인에게 경도에서는 반드시 행실을 조심해야 하며 절대로 감찰원이 눈 밖에 나는 짓은 해서는 안 된다는 명령을 받고 온 상태였다.
그래서 지금 마차 안에 사람이 감히 왕씨 집안 가정교육을 문제 삼는데도 집안 장군은 애써 화를 참으며 침착하게 신분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마차 안에 사람은 그의 질문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부하가 마차 발을 걷자 범한이 마차에서 내려와서는 인파를 뚫고 굳게 닫혀 있는 화친 왕부 대문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돌사자상 위에 있는 여자를 바라봤다.
이 행실에 제멋대로이고 말투가 거친 왕씨 집안 아가씨는 분명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구석이 있었다. 게다가 그녀는 분명히 외부인이 온 걸 알면서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여전히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왕부 안에 대고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젊은 감찰원 관리가······ 오래오래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데도 말이다.
결국 범한의 따가운 시선을 이기지 못한 왕씨 집안 아가씨가 고개를 획 돌리고 소리쳤다.
“뭘 봐? 그 눈 안 깔아!”
그 말에 순간 주변이 쥐죽은 듯 고요해졌다. 범한의 뒤에 있는 감찰원 부하가 차가운 눈빛으로 돌사자상 위에 있는 왕씨 집안 아가씨를 노려봤다.
목풍아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는 게 언제든지 왕씨 집안 아가씨에게 주먹을 날릴 기세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집안 장군과 집사는 일이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고는 재빨리 앞으로 나갔다. 이들이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범한 앞을 막아서며 자기 집안 아가씨와 거리를 벌리려 했다.
눈을 굴리며 상황을 살피던 늙은 집사가 앞으로 나가 머리를 조아리며 연신 사과를 했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집안 장군의 표정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그 장면을 바라보던 범한은 자신의 추측이 맞았다고 확신했다. 왕씨 집안 아가씨가 이렇게 화친 왕부를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건 상대방을 도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아마도 왕씨 집안 집사와 장군은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한 모양이었다.
범한이 속으로 이렇게 충직한 부하기 있기에 왕지곤이 안심하고 자신의 버릇없는 딸을 경도로 보낼 수 있었던 것이고, 또 왕씨 집안 아가씨가 화친 왕부로 찾아와 난동을 부릴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범한이 집사를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들은 어느 집안사람들인가?”
집사는 이미 자신이 상대하는 감찰원 관리가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직감한 상태였다. 비록 몇 품 관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감찰원 관리는 조정의 직위 외에도 종종 작위를 겸해 가지고 있을 수가 있기에 함부로 대할 수 없었다.
“이 노비는 왕씨 집안 집사입니다. 연경에서 경도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아가씨가 줄곧 연경에서만 생활하셔서 경도의 격식에 익숙하지 않아 그러신 것이니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대인께서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왕씨 집안 아가씨가 그 말을 듣고는 돌사자상에서 내려와 소리쳤다.
“이건 또 뭐야? 저런 놈한테 그런 말을 왜 하는 거야?”
왕씨 집안 아가씨의 버릇없는 말에 늙은 집사가 당장이라도 울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왕지곤이 경도에서는 얌전히 처신하라고 누누이 당부했음에도 오늘 아가씨는 실성한 것인지 집안사람들이 막는데도 굳이 왕부에 찾아와서는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게다가 그것도 모자라 젊은 감찰원 관리에게 뭐 하는 놈이냐며 욕을 퍼붓다니······. 경도는 연경과 달라서 거리에서 당당히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모두 엄청난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했다······.
“연경이라고?”
범한이 능청맞게 살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왕 대도독 집안사람들인가?”
왕씨 집안 아가씨가 범한을 노려보며 말했다.
“네가 우리 집안을 알아? 너는 뭐 하는 놈인데?”
범한이 왕씨 집안 아가씨를 철저히 무시하며 집사와 장군에게 온화한 목소리로 타일렀다.
“얼른 자네 집안 아가씨를 설득해서 데리고 돌아가도록 하게. 황궁에서 아직 교지도 내리지 않았는데 이렇게 왕부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는가?”
집사와 장군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대답하면서도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 움직이지 않았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집안 아가씨를 말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치만 살피는 이들을 지켜보던 범한의 눈에 늙은 집사 얼굴에 난 채찍 자국들이 보였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조금씩 피가 나오고 있었다.
범한이 고개를 돌려 버릇없이 행동하는 왕씨 집안 아가씨의 왼손에 말채찍이 들려 있는 걸 확인하고는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렇게 충성스러운 집사를 아껴주지는 못할망정 말채찍으로 때리기나 하다니. 왕씨 집안 아가씨가 갈수록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침 이때 범한이 자신의 질문을 무시한 것에 머리끝까지 화가 난 왕씨 집안 아가씨가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굳게 닫힌 화친 왕부 대문에서 있으면서 이미 체면을 잃을 대로 잃은 상황에서 누군지도 모르는 젊은 관리가 또 자신의 체면을 깎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안색을 붉으락푸르락해지고 눈에는 눈물까지 고일 정도였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그녀가 결국 왼손을 높이 들고 말채찍을 휘둘렀다.
말채찍이 ‘쌩’ 소리를 내며 빠른 속도로 범한의 코끝을 향했지만 범한은 그녀를 그저 바라만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 뒤 만난 여자들은 모두 각양각색의 미묘하게 아름다운 부분이 있었어. 어린 시절 담주에 있었을 때 항상 악질 토호를 찾고 싶어도 찾을 수 없었는데, 오늘 마침내 어수룩한 눈망울에서 보게 되는구나.’
‘슥슥’ 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바람에 몇 차례 불더니 왕씨 집안 아가씨가 들고 있던 말채찍이 범한 앞에서 네 조각으로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감찰원 6처 검수는 난폭하게 행동하는 여자가 제사 대인을 다치게 하는 모습은 절대 볼 수 없었다. 이에 전광석화처럼 순식간에 여섯 일곱 명의 사람들이 나타나서는 왕씨 집안 아가씨를 포위했다.
집사와 장군은 젊은 감찰원 관리 곁을 지키는 고수들이 이처럼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화들짝 놀랐다. 자신의 집안 아가씨의 안전이 걱정된 이들이 재빨리 왕씨 집안 아가씨 앞을 막고 섰다.
만약 평상시였다면 이들은 눈앞에 있는 젊은 감찰원 관리가 범한이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챘을 거였다. 하지만 지금 경도 사람들 모두 감찰원의 작은 주인이 폐하를 대신해 서량로를 순시하러 갔다가 돌아오는 중이라고 알고 있었기에 범한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양측이 당장이라고 검을 뽑고 달려들 것처럼 긴장된 분위기가 들렀다. 언제든지 왕부 밖에서 싸움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감찰원 검수들은 비록 두려운 존재들이었지만 연경 왕지곤이 자신의 딸을 보호하라고 보낸 집안 장군도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물론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집 앞에서 이 난리가 일어나는 데도 화친왕부의 대문이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는 점이었다.
범한은 하지만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왕씨 집안 아가씨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게 계속 욕을 하겠다면 굳이 막지는 않겠네. 다만 나중에 내가 직접 왕지곤에게 찾아가서 물어볼 거네. 도대체 어떻게 가정교육을 하면 딸이 그렇게 제멋대로 행동하게 되는 거냐고 말일세. 아니면 차라리 내일 사비를 찾아가는 것도 좋겠군. 숙부로서 교육할 시간이 없다면 내가 대신 교육해도 괜찮겠냐고 물어봐야겠어.”
정말이지 오만방자하고 버릇없는 말투였다. 경도 조정안에서 왕 대도독과 사 통령의 이름을 직접 부를 수 있는 젊은 사람은 단 세 명뿐이었다. 그중에서 두 명은 1 황자와 3 황자였고, 나머지 한 명은······.
집사와 장군이 서로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은 상대방의 눈에서 간담이 서늘한 두려움과 뼈저린 후회를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큰일 났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부르르르 떨었다.
다만 우둔하고 미련한 왕씨 집안 아가씨는 상대방이 자신의 아버지의 이름을 직접 부르는 걸 듣고는 버럭 화를 냈다.
“너는 도대체 뭐 하는 놈이기에 감히 내 아버지의 존함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거야! 무슨 주제로 나를 가르치겠다는 소리를 하는 거냐고!”
범한이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야생마같이 거친 섭령아도 고분고분하게 길들인 내가 볼품없는 조랑말에 불과한 너를 길들이지 못할 것 같으냐?”
이 말을 끝으로 범한은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는 왕씨와 사씨 집안사람들은 무시한 채 대문 앞 돌계단을 걸어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