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608
949화 두 사람, 전쟁의 막이 오르다. (1)
사비가 이 상황을 가만히 바라보며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감찰원 관리들 눈에는 진 원장만 보이고 폐하는 보이지 않는 것인가? 폐하의 뜻이 담긴 교지가 있는 데도 감찰원 관리들은 진 원장을 지킬 생각만 하는군. 어쩐지 폐하께서 이번 일을 경계하신 이유가 있었어.’
관도 양쪽 숲 안에서 어렴풋하게 그림자가 보였다. 감찰원 6처 검수들이 안에 얼마나 많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사비의 마음속에서 순간 한기가 느껴졌다.
진평평은 마치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자려는 듯 두 눈을 감고 바퀴 달린 의자에 등을 기댔다.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노인을 바라보던 사비가 얼굴에 쓰고 있던 면갑을 걷어 자신의 결연하고 차가운 얼굴을 드러냈다. 경국 군대 쪽 중신인 그는 경도 수비사 통령에 부임한 이후 북쪽에 있는 상삼호의 위압에 힘들게 버티며 살지 않아도 되었지만, 그 대신 자발적으로든 피동적으로든 무언가를 선택해야만 했다. 다만 폐하의 교지 앞에서 그는 아무 선택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달주로 달려가 고향으로 내려가려는 진평평의 마차 행렬을 포위할 수밖에 없었다.
포위한 이상, 움직인 이상 중단할 수도 없었다. 들판에 서 있는 군마들이 불안한 듯 초가을 밭에 자란 식물을 밟으면서 언제든지 돌진할 준비를 했다. 사비가 천천히 오른손을 들자 들판에 있는 3천여 명의 갑옷으로 무장한 기병들이 천천히 진영을 바꾸었다. 기병들이 천천히 마차 대열로 접근하자 마차 안에 있는 여자들이 놀라 연신 비명을 질렀다.
“대기하라!”
“대기!”
* * *
대기하라는 말이 열두 번 들렸고, 무수히 많은 검은색 강노가 마차 안에서 뻗어 나왔다. 얼마나 많은 화살이 장전되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말 뒤, 마차 옆, 어둠이 깔린 숲속에서 얼마나 많은 자객들이 몸을 숨기고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첫 번째 대기하라는 명령이 관도 양쪽에 울려 퍼지자 서른 대의 검은색 마차 대열 안에서 연이어 많은 맑으면서 차가운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어서 줄을 팽팽하게 당기는 소리와 금속이 부딪치는 소리, 활시위가 움직이는 서늘한 소리가 들렸다. 모두 활시위를 당길 때 나는 묵직한 소리와 쇠막대기를 뺄 때 나는 날카로운 금속 마찰음이었다.
간담 서늘하게 만드는 소리가 잔잔한 파도처럼 연이어 들려왔다. 긴 마차 행렬은 훈련을 받은 듯 질서정연하고 신속한 속도로 공격 준비를 했다.
화살 끝에는 살기등등한 파란 색으로 번쩍였는데, 감찰원 3처에서 만든 독이 발라져 있었다. 감찰원 3처의 독을 만드는 능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천하에서 최고였다.
들었던 오른손을 막 내려놓은 사비는 앞에 펼쳐진 상황에 눈동자가 수축되었다. 그는 감찰원이 얼마나 두려운 기관인지를 알고 있었지만 서른 대의 검은색 마차 안에 이렇게 많은 궁수가 숨어져 있고, 어둠 속에 이렇게 많은 자객과 검수가 숨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대기하라는 날카로운 외침을 들은 즉시 사비는 이게 감찰원의 명령 구호라는 걸 눈치챘다. 일단 대기하라는 명령이 나왔으니 누군가가 발포 명령을 내리는 순간 독을 바른 화살이 자신이 이끄는 3천여 명의 기병을 향해 날아올 거였다.
기병 대열이 설령 마차로 만든 감찰원의 방어선을 어렵게 통과한다고 할지라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가능할까? 독이 묻은 화살에 찔린 병사들 중에서 과연 몇 사람이나 살아날 수 있을까?
마음속에 일렁이는 한기와 두려움에 움츠러들인 눈동자를 숨기고 싶은지 사비가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의 몸과 마음은 방금 전 사방에 울려 퍼졌던 대기하라는 차갑고 무정한 명령 소리에 한없이 떨리고 있었다.
말 위에 앉아 있는 그는 관도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서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삼베옷을 입은 검수들이 진 원장의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여전히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는 진 원장은 수천 명의 기병이 바로 앞에 있는데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천둥과 같은 말굽 소리가 울려 퍼지고 양쪽의 거리는 아주 가까워졌다. 천둥 같은 소리가 귓가를 울리자 관도 위에 있던 달주 쪽 아역과 군사들은 화들짝 놀라 뒤로 숨었고, 하칠간을 중심으로 한 궁정 태감들과 형부 13관아 고수들은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도망자를 체포하려던 일이 어느 순간 조정의 가장 은밀하고 치열한 싸움으로 변하자 이들은 자신들의 임무를 완수하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여기서 유일하게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고 태연히 상황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진평평과, 그의 옆을 지키고 있는 삼베옷을 입은 사내들, 그리고 그의 뒤에 서 있는 늙은 종이었다. 마차 위에서 쇠뇌의 화살을 들고 있는 감찰원 관리들과 강노 시위를 당기고 있는 감찰원 관리들, 그리고 쇠막대기를 꽉 쥐고 있는 감찰원 관리들도 태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감찰원 관리들은 일반 사람들과는 다르게 강철같이 단단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산과 들판을 가득 채운 기병들이 파도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걸 보면서도 이들은 눈꺼풀 하나 떨지 않았고, 활을 든 손가락도 전혀 떨지 않았다. 이들은 전혀 두려워하거나 긴장하지 않은 채 마지막 구령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열두 번의 대기하라는 명령 뒤에 나올 공격 명령을 기다렸다.
사비가 허리에 찬 칼집을 꽉 쥐고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진평평을 바라보았다. 주변 상황을 살피던 그는 감찰원 관리들의 침묵과 냉정함에서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꼈다. 관도에서 멀지 않은 거리에 경도 수비사 기병들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데도 어떻게 공격하지 않고 태연히 대기하고 있을 수 있을까?
심상치 않은 기분을 느끼며 눈을 깜빡이던 사비는 비로소 자신의 눈이 뻑뻑해진 걸 알아챘다. 너무 긴장에서 눈물도 말라 버린 것 같았다. 그가 들고 있던 오른손을 내리자마자 기병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대열 맨 앞에 서 있는 사비는 감찰원 사람들이 언제 자신을 향해 공격을 하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경도 수비사 기병들이 감찰원이 구축한 방어선을 뚫는다고 할지라도…… 그는 전혀 기쁠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이런 장면이 펼쳐지는 걸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이대로 돌격한 뒤에 벌어질 일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등 뒤에서 칼날이 꽂히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 * *
바로 그때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있는 진평평이 손짓으로 사비를 불렀다. 살육을 자행하려 하는 기관의 수장이 아니라 무언가 당부할 말이 있는 평범한 노인 같은 모습이었다.
지금의 상황에 괴로워하던 사비가 그 모습을 보고는 큰소리로 외쳤다.
“멈춰라!”
천둥처럼 우렁찬 사비의 목소리가 관도 양쪽에 울려 퍼졌다. 군대 쪽 중신답게 사비 대장은 수련 경지는 상당했고, 그의 목소리는 빠르게 양쪽 들판에 있는 기병들에게 전해졌다.
군령은 산처럼 엄중한 것인 만큼 어떤 경우에서든 지켜져야 했다. 사비의 외침과 함께 선봉장들이 ‘끙’ 소리를 내며 강제로 빠르게 질주하는 말을 멈춰 세웠다. 굳은살 박인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질긴 고삐를 있는 힘껏 당긴 끝에 겨우 맹렬하게 질주하던 말을 관도에서 수십 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서 겨우 멈춰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기병들이 제때 속도를 줄인 건 아니었다. 기병들 중 수십 명은 속도를 줄이는 데 실패했고, 이에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린 말들이 ‘힝’ 소리를 내며 관도 양쪽에 있는 돌에 부딪히거나 땅에 넘어졌다. 이에 말에 타고 있던 기병들도 손발이 부러지고 피를 흘렸다.
* * *
거친 호흡소리와 긴장한 눈빛이 서로를 주시했다.
사비 대장의 폭풍 같은 호령 한 번으로 3천여 명의 기병이 일제히 멈춘 걸 보면 그가 병력을 부리는 기술은 세상 일류라 할 만했다. 다만 이로 인해 기병은 속도의 우세를 잃었고, 양측이 거리는 더 가까워졌다. 한마디로 말해서 경도 수비사의 기병 전체가 감찰원 쇠뇌의 화살 공격 범위에 놓여, 언제든지 감찰원의 화살에 고슴도치로 변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감찰원의 부하들은 대기하라는 명령이 울려 퍼진 뒤 줄곧 침착하게 대기하고 있었다. 돌진해오던 기병들 쪽에서 엄청난 실수를 저질러 감찰원에게 유리한 상황이 되었어도 이들은 독단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눈빛으로 빼곡하게 밀집해 있는 기병 무리를 지켜볼 뿐이었다.
사비가 거친 숨을 내쉬자 가슴을 가린 갑옷이 살짝 들썩거렸지만, 땀을 흘리지는 않았다. 모험을 선택한 이상 그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말 위에 앉아 있는 그는 감찰원 관리들의 경계심 가득한 시선과 검은 쇠뇌의 화살이 자신을 향해 조준해 오는 걸 느끼면서 관도를 따라 천천히 진평평 앞으로 다가갔다.
말을 탄 채 바퀴 달린 의자에서 멀지 않은 곳까지 이동한 사비는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말에서 내렸다. 입은 갑옷을 무게 때문에 그가 묵직한 걸음으로 ‘쿵쿵’ 소리를 내며 천천히 걸어왔다. 용감한 고위 장군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진평평이 흡족해하는 표정으로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자네들과 같은 뛰어난 인재들이 있는 이상 경국의 앞날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거네. 그래서 나는 자네를 죽이고 싶지 않아.”
사비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진평평의 바퀴 달린 의자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는 투구를 벗었다.
“원장께서는 교지를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교지를 따르라고?”
진평평이 차분한 눈동자로 맞은편에 있는 사비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놈의 결단이 마음에 드는군. 아까 왕씨 놈도 교지를 따르라고 말했는데…….’
진평평이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고달은 내가 데리고 가고 싶네. 그리고 자네도 알지 않은가. 폐하께서는 내가 고분고분 교지를 따르는 걸 바라지 않으실 거네. 그러니 자네가 지금 나한테 교지를 따르라 권유하는 걸 알면 폐하께서 불쾌하게 생각하실 거야.”
사비는 이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일어났다.
“수비사가 경국의 수비사이듯 감찰원도 경국의 감찰원입니다. 그러니 저는 이 두 조직이 서로 싸워서 다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진평평이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겨우 교지를 따를지 말지와 같은 사소한 일 때문에 3천 6백 4십 명의 경도 수비사 정예 기병이 여기까지 달려온 거라 생각하는 건가?”
이 일은 당연하게도 단순히 교지를 따를지 말지에 대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사비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감찰원과 달주 쪽 관리들 앞에서 자신의 태도를 분명하게 보여야 했기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일 뿐이었다. 더구나 그는 3천 6백 4십 명이라는 숫자를 말하는 진평평의 목소리를 듣자 마음속에 한기가 엄습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두려움이 지금 꿈틀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방금 전에 돌진하는 기병을 멈춰 세우지 않았다면, 아마 가장 먼저 쓰러졌을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사비의 마음 속 두려움을 가장 자극하는 건 경도 수비사 안에도 진 원장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폐하께서는 도망자 고달을 잡아서 경도로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사비가 천천히 숨을 들이쉬어 속에서 복받쳐 오르는 불안감을 삼키고는 진평평을 향해 차분히 말했다.
“원장 대인께서 명을 거역하려 하셔도 저는 반드시 그를 데리고 갈 겁니다.”
“내가 자네와 함께 경도로 돌아가지.”
진평평이 두 눈을 감으며 천천히 말했다.
진평평의 말에 화들짝 놀란 사비는 대답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냥 멍하니 서 있었다. 순간 한쪽 팔에 안고 있는 투구가 왠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진평평의 말에 놀란 건 사비뿐만이 아니었다. 진평평 양옆을 지키고 있는 감찰원 관리들도 대경실색한 표정을 지었고, 웬만해서는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삼베옷을 입은 감찰원 6처 검수들까지도 얼굴에 살짝 놀란 기색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