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yeongyeon RAW novel - Chapter 683
1024화 누가 온 경도에서 살인을 했을까? (1)
대리사와는 달리 다른 한쪽은 문 앞이 한산했다. 음산한 기운이 잔뜩 깔린 감찰원 제1 지점은 여전히 문을 굳게 닫고 있었으며 안에서 일하는 관원도, 한가하게 이곳저곳을 거닐며 희희낙락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는 무언가 풀 죽고 기가 꺾인 분위기만 감돌 뿐이었다.
범한은 자신에게 익숙한 관아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과거에는 한 손으로도 하늘을 가릴 수 있던 저곳이 왜 저렇게 변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의 감찰원은 조정 내에서 지위가 급전직하해 처량하게 비바람이나 맞는 신세였다. 특히 바로 한 달 전까지는 수많은 감찰원 관원이 있지도 않은 죄명까지 뒤집어쓰고 형부와 대리사로 체포되어 들어갔다. 감찰원에서는 이 모든 게 도찰원 수뇌가 진행한 청소 작업 때문이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과거의 마력을 잃어버렸는지 감찰원은 더는 역량을 제대로 집결시키지도, 최강의 반격을 펼치지도 못했다.
한쪽이 약해지면 다른 한쪽이 강해진다고 하지 않던가. 그러니 하종위를 위시한 어사 계통은 은근히 호 대학사를 압도해 자신들이 전체 문관 체계를 이끌기 시작하자 곧이어 감찰원도 공격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셀 수도 없이 많은 감찰원 관원이 감옥에서 잔혹한 형벌에 시달리게 된 거였다.
이에 현 경국은 일찌감치 늙은 절름발이가 있던 경국과는 판이한 곳으로 변해 있었다.
* * *
계단 쪽에서 안정적이고 중후한 발걸음 소리와 긍지에 찬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대략 일고여덟 명이 올라오는 중이었고, 복장을 보아하니 제법 품계가 있는 관원들 같았다. 그런데 이들은 3층 귀빈실이 아닌, 주인장의 인도를 받아 곧장 난간 쪽으로 왔다. 병풍을 치고 난간 가장자리 좌석에 앉으려 한 거였다.
원래 신풍관은 유명하지 않은 곳이었다. 대리사와 감찰원 1처가 맞은편에 있기는 했지만 관원들은 신풍관이 격이 많이 떨어지는 곳이라며 싫어했다. 귀빈실에 시중을 들어주는 아가씨를 넣어 주는 곳도 아닌데 이들은 더 먼 곳으로 가려 했다. 그러다 범한이 이곳 난간 자리에서 고기소가 든 만두를 자주 먹자 신풍관은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고상하고 멋스러운 곳으로 거듭났다.
오늘 신풍관을 찾은 관원 대부분은 대리사 소속이었다. 그리고 중요 손님은 교주에서 경도로 돌아온 후계상이었다. 대리사 관원들은 후계상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과거 범문사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다 범한에게서 떨어져 나와 범한과 함께 이름을 날리고 있는 하 대학사 문하로 들어와 대리사로 옮겨 오는 미담을 낳은 인물이었다. ‘세상일 변하는 거 보면 그저 탄식밖에 나올 게 없는 거다.’라고 말이다.
이렇듯 관원들은 범한을 배신한 후계상을 뒤에서는 몰래 깔보았지만 그래도 본인 앞에서는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후계상이 대리사로 부임해 온 첫날이라 그를 공손히 신풍관으로 초대한 거였고, 하 대학사의 체면을 생각해 대리사 부경(副卿)까지 동행한 거였다.
난간 쪽으로 온 관원들이 착석하려 할 때였다. 한데 아직 병풍이 도착하지 않아 그들에게 맞은편 식탁이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일단 호위 무사로 보이는 사람은 이미 식사를 마치고 주변을 경계하며 살피고 있었다. 관원들과 마주 보고 있는 뚱보는 무언가를 허겁지겁 먹고 있었고, 나머지 평민 복장을 한 사람은 고개를 들어 거리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뒷모습만으로도 대리사 관원들은 심장이 ‘두근!’ 하고 뛰었다.
그 순간 후계상은 몸이 굳어버렸고, 관복 밖으로 나온 양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마치 건물 밖 찬바람이 순식간에 그의 피부 속 곳곳으로 스며든 것만 같았다.
한편 나머지 대리사 관원들은 스산해 보이는 뒷모습에 놀란 것일 뿐, 그 사람의 신분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런데 후계상이 공포에 질려 창백해져 있자 그 이유를 알아차리고는 후계상과 마찬가지로 더는 평민 옷을 입은 남자 쪽을 쳐다보지 못했다.
모두 난처해 하며 낮게 깔린 소리를 냈다. 그러자 대리사 부경이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후계상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고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위로하듯 말했다.
“앉지.”
후계상이 안절부절못하며 자리에 앉고는 한참 후 송구스러워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예전이었다면, 이쪽 식탁 관원들이 일제히 맞은편 식탁으로 가 범한에게 공손히 문안 인사부터 올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의 범한은 단순히 관직만 없는 게 아니라 1등 공작이란 작위까지 모두 빼앗긴 터라 아무 지위가 없는 상태였다. 다시 말해, 현재 범한은 단순히 평민이었다.
이번에 난간 쪽으로 올라온 대리사 관원들은 모두 하종위 사람들이었다. 이에 맞은편에 있는 자가 작은 범 대인이라는 걸 안 이상 이들은 더더욱 다가갈 수 없었다. 관원이 일개 백성을 상대할 수 없는 법이고, 지금 제일 잘나가는 하종위파가 패배자에게 굽히고 들어가는 법은 없어서였다.
추풍낙엽 꼴이 된 범한을 향해 이들 관원은 대놓고 비웃는 바보짓은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기뻐했다. 요즘 대리사는 감찰원의 옛 안건을 심사하며 한창 잘나가는 중이었고, 신풍관은 경도 번화가 내에 있으며, 황제 폐하께서 작은 범 대인의 목숨 줄을 꽉 쥐고 있었다. 이에 대리사 관원들은 자신들이 대놓고 상대를 자극하지 않으면 배불리 먹은 범한이 할 일 없이 화를 자초하러 오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기다리는 병풍은 오지 않고 술과 음식부터 먼저 나오고 말았다. 대리사 관원들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소란을 피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관원으로서 체면을 깎는 일이었다. 그리고 자칫 저쪽 식탁에 조용히 있는 세 사람과 이야기라도 나누게 되는 건 그들로서도 원하지 않는 일이었다.
“오늘은 후 대인이 대리사로 온 걸 환영하는 자리이네. 오늘부터 후 대인은 우리의 동료이니…….”
대리사 부경이 웃으며 술잔을 받쳐 들었다.
후계상도 억지로 웃으며 술잔을 받쳐 들기는 했지만 속으로는 당황해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그는 자기보다 어린 스승 범한에 대해 잘 알았다. 이에 ‘범한이 오늘 대리사 앞에 있는 신풍관에 나타난 게 설마 단순히 고기만두를 좋아해서일까?’라고 생각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후계상이 손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간 저쪽에 말없이 있는 세 사람을 저도 모르게 잠시 곁눈질로 살폈다. 그는 자신과 마주 보고 앉아 있는 뚱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바로 신아 군주의 친오빠로, 선천적으로 지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임대보였다. 이에 후계상은 작은 범 대인이 형님을 데리고 왔으니 소란을 피울 목적으로 신풍관에 나타난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속으로 기도했다.
대리사 부경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는 기분이 나빠 잠시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임 부경이 진씨 가문의 역모 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순조롭게 이 직위에 오른 터였다. 더군다나 지금은 감찰원도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중이었다. 이에 대리사 부경은 자신이 뭘 무서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맞는 거였다. 그러니 모두 작은 범 대인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그가 과연 다짜고짜 이 자리로 와 욕을 해댈 수 있을까?
이런 이유로 부경 대인은 후계상의 태도에 불만을 드러낸 거였다.
그리고 그는 난간 쪽, 그것도 범한 맞은편에 앉은 뚱보를 힐끗 쳐다봤을 때 상대방의 신분을 알아차리고는 입가에는 살짝 무시하는 웃음을, 눈에는 조롱의 기색을 담았다.
범한은 자신의 바보 형님과 노는 걸 좋아했고, 이는 경도 사람이라면 모두 아는 사실이었지만 관원들은 이를 대단히 경멸하고 있었다. 대리사 부경 대인의 경우 범한 쪽을 향해 대놓고 조롱하지도 않았고 또한 하지도 못했지만, 그래도 얼굴에는 그 모든 게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두 번째로 환영할 일은 곽 대인이 드디어 강남에서 돌아와 다시 도찰원 좌도 어사가 된 것이지요.”
이 말에 순간 분위기가 떠들썩해졌다. 도찰원 좌도 어사는 대단한 자리였다. 이에 곽씨 성의 대인은 자랑스러워하며 잠시 웃어 보이고는 들고 있던 술잔으로 술을 권하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의 눈빛도 난간 쪽으로 향할 때면 후계상과 마찬가지로 불편해 보였다.
곽 어사는 이름이 쟁(錚)으로 과거 경도부에서 범한을 처리하려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이미 여러 해가 지난 터라 경도 사람들에게 그 일은 이제 희미한 기억 속의 옛일이었다. 하지만 곽쟁이 봤을 때 그 일은 범한도 자신도 잊을 리 없었다. 왜냐하면 강남 황실 금고 일로 그 역시 범한과 대립 면에 섰기 때문이다.
* * *
대리사 관원들에게서 술이 세 차례도 돌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난간 쪽에서 조용히 있던 세 사람이 식사를 마쳤고, 등자경이 조용히 뒤를 따르는 가운데 범한이 임대보의 손을 이끌고 아래층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이 아래층으로 내려가려면 반드시 대리사 관원들이 모여 앉은 식탁 근처를 지나야 했다. 이에 긴장해 동시에 합죽이가 된 관원들은 저 도련님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범한은 떠날 기미가 없었고, 어느새 대리사 관원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와 웃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안 되겠다고 판단한 대리사 부경이 난처한 웃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예의 바르게 인사를 올렸다.
“이제 보니 작은 범 대인이셨군요. 하관…….”
하관이란 두 글자를 내뱉는 순간 부경은 퍼뜩 무언가 잘못되었고 생각했다. 상대방은 지금 아무 신분도 아니고, 자신은 어엿한 대리사 부경인데 어찌하여 자신을 하관이라고 칭한 것인지. 부경이 더듬거리며 말을 멈추더니 어색하게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동석하시렵니까?”
그러자 범한이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 사이 후계상은 정신이 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범한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있었다. 후계상의 등은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하지만 범한은 그런 그를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며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범한이 후계상을 무시하자 식탁에 앉아 있던 관원들은 순간 심장이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범한은 옆에 있는 신임 좌도 어사 대부인 곽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까지 건넸다.
“내가 그대를 강남으로 유배 보냈을 때는 밤낮 불안해하더니만, 훗날 경도 반란 때는 신양 사람이 되어 있더이다. 하여 분명 신양 쪽 사람이 맞는데, 어찌하여 황제 폐하께서는 아무런 처결도 내리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에 3년 전에는 무척 궁금했었지요.”
“그러다 알게 된 사실인데, 상황이 여의치 않자 그대가 불쌍한 우리 장모님을 버리고 도찰원에서 옛정에 호소하며 하종위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더군요.”
범한이 웃음을 터뜨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탄식했다.
“하종위는 세 가지 성을 가진 종놈이니, 그대같이 담벼락에 기생해 난 풀은 자연스레 더 철저히 배웠을 테지.”
현 조정에서 하종위가 대체 어떤 인물인데 범한이 감히 이런 욕설을 한단 말인가! 식탁에 앉아 있던 관원들이 더는 가만히 들어줄 수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범한을 꾸짖으려 했다.
“아이고, 잘못 말했구려. 하종위는 세 가지 성을 가진 종놈이 아니지요. 그동안 섬긴 주인께서 모두 이씨이셨으니 말이지요.”
범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 이씨 가문의 충견이라 해야 옳겠군요.”
그러자 참다못한 대리사 부경이 찬바람이 쌩쌩 도는 얼굴로 몇 마디 했다. 하지만 범한은 못 들은 척하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곽쟁을 얼음장처럼 차갑게 바라보며 온 단어에 힘을 주어 가며 질문을 던졌다.
“그대가 경도로 돌아와 좌도 어사직을 가졌다는 건, 분명 강남에서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일 터. 하여 나는 강남 부하들의 죽음이 당신과 관련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는 중인데?!”
곽쟁이 어찌 대답하면 좋을지 몰라 다음과 같이 싸늘하게 되물었다.
“본관은 황명에 따라 일을 처리했을 뿐이거늘. 설마 작은 범 대인에게는 다른 생각이라도 있는 것인지요?”
“좋소이다. 그래도 기개는 있군. 그래야 어사 대부답지.”
범한이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오늘 그대가 경도로 들어온다기에 내 오늘 이곳에서 기다린 것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