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 Carry Support RAW novel - Chapter (131)
전환의 계기 (2)
거상의 길
분란의 씨앗
악마의 미끼
국면 변화
다시 하늘로
라딕스 섬의 비밀
섬의 기운
코르케스족의 마을
사원으로 가는 법
동행
정원에서 있던 비극
빛의 사원 (1)
전환의 계기 (2)
메이데이가 보내준 기록.
스파이가 일일이 작성했다는 그 보고서엔 쓸 만한 정보들이 많았다.
보고서를 읽으며, 현은 회귀자 길드가 꾸민 계획들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경계의 도시엔 이미 성왕국의 NPC가 존재한다.
-그들은 수송선의 탑승 절차의 허점을 파고들어 도시로 들어온 자들이다.
-지금은 회귀자 길드의 곁에서 마법진을 그리고 있다. ‘이동’ 혹은 ‘소환’ 기능을 지닌 마법진으로 추측된다.
-마법진이 완성되고 다른 성왕국의 NPC들까지 경계의 도시에 들어서게 된다면, 쉐이드 길드의 힘으론 대응이 힘들다. 치명타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
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모르는 새에 도시에서 이런 계획이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니.
-정황상 회귀자 길드와 성왕국 사이에 유착관계가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회귀자 길드는 그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도 계속 쉐이드 길드를 적대할 것이다.
보고서를 읽을수록, 또 다른 미래를 생각할수록 소름이 돋았다.
메이데이가 알려주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아직도 도시 안에 존재하는 분란의 싹을 발견하지 못했겠지?
「현, 드디어 마법진을 발견했다. 어떻게 할까?」
살론의 목소리에 현의 정신이 번쩍였다.
「마법진의 위치를 파악한 건가요?」
「그래.」
「그럼 더 이상의 연기는 필요없죠.」
아인을 데리고 프라이빗 룸 근처 카페의 의자에서 일어섰다.
「좋아요, 거기서 기다려요. 지금 저랑 아인도 그쪽으로 갈 테니까.」
「그런데, 네가 도착하기도 전에 내가 다 암살해 버리면 어떡하지.」
「투명화가 안 통하는 녀석들도 있을 텐데, 할 수 있어요?」
레벨이 높은 NPC들은 기척을 읽어낼 수 있다.
마법진을 그릴 수 있을 정도라면 분명 고위 신관일 테니, 살론 혼자서 상대하긴 위험할지도 몰랐다.
「뭐, 정 해보고 싶다면 말리진 않겠지만요…」
「아니… 크흠, 그냥 기다리지.」
그로부터 잠시 후.
현은 아인과 함께 살론이 있는 장소에 도착했고.
그 즉시 당황한 유저들, NPC들의 면면을 볼 수 있었다.
“현…?”
“계속 제자리에 있었다고 했잖아! 어떻게 여길 발견한 거야?”
“이봐 무슨 일인가?”
“몰라, 그냥 싸워!”
현은 그들의 고함을 일일이 들어주지 않았다.
NPC들은 생각보다 약했고, 유저들도 자신이 아는 그 회귀자 길드원들이 아니었다.
한적한 거리의 건물들 몇 개가 통째로 사라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현이 회귀자 길드가 몇 달에 걸쳐 준비해온 계획을 수포로 돌리는 순간이었다.
‘일단 쉽게 마무리했지만….’
화르륵, 화르륵!
이프리트의 발톱에 불타 흩어진 잔해들을 바라보며, 현은 잠깐 생각에 빠졌다.
‘이걸로 끝이 아닐지도 몰라.’
문득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회귀자 길드가 꾸미던 음모가 이것 하나뿐일까?
전작부터 이어져온 자신을 향한 그들의 악의는 그리 만만히 볼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도 자신에겐 계속 오늘과 비슷한 위기가 닥쳐오겠지.
이번엔 운이 좋아서 미리 싹을 뽑아낼 수 있었지만, 다음에도 그럴 수 있을까? 그 다음에도? 계속…?
‘일단 메이데이에게 고맙다는 말은 전해둬야겠군.’
큰일로 번졌을지도 모르는 소란은 그렇게 작은 해프닝으로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이렇게 해프닝만이 계속될 거라 생각할 수는 없으리라.
지키는 것은 부수는 것보다 몇 배는 어려운 일.
현은 이번 사건으로 무언가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
정보거래는 무사히 끝났다.
메이데이를 비롯한 다크니스 길드원들은 쾌재를 불렀고, 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니, 서로에게 윈윈인 거래였다.
그렇게 대략적인 일까지 정리한 후.
‘평범하게 넘길 일이 아니야.’
현은 이번 사건을 유심히 분석해 보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더 심각한 일이었다.’
대형 길드들은 한두 번 습격을 받는다 해서 무너지지 않는다.
길드가 보유한 기반들이 유기적으로 서로를 보완하며, 시간이 지날수록 입은 피해를 자연히 복구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은 경계의 도시 일부가 부서질 뻔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심장이 떨어질 듯 놀랐다.
쉐이드 길드는 경계의 도시를 잃으면 끝장이었으니까.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탓에 이런 부작용이 생겼어.’
쉐이드 길드의 모든 기반은 경계의 도시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격언이 존재하듯, 초대형 길드들은 일반적으로 여러 곳에 기반을 분산해 둔다.
예를 들어, 하루아침에 데모니아 협곡이 사라진다고 해도 다크니스가 망하진 않는다.
이전부터 존재해온 수많은 시설들과, 수천 명의 길드원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며 데모니아 협곡에서 손실된 부분을 복구해 나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쉐이드 길드는?
경계의 도시가 무너지는 즉시 모든 기업들과의 계약이 해지된다.
더 이상 총기를 연구할 수도, 생산할 수도 없다.
유저들에게 나누어 준 쉐이드 포인트도 전부 날아가 버려 무수한 원성이 쏟아지리라.
도시의 경비병을 맡아주던 수천 마리의 해골들은 실업자가 되어 버리고, 결국 스코타나토스의 품으로 돌아가겠지.
회귀자들이 집요하게 도시를 노렸던 이유도, 경계의 도시에 타격을 가하면 길드 전체가 휘청거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대로는 안 돼!’
현의 생각이 깊어졌다.
길드의 구조를 통째로 바꾸지 않는 한 비슷한 습격은 계속해서 일어날 것이다.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하나?
‘잠깐….’
그렇게 고민을 이어가던 어느 순간, 현의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스쳤다.
현은 조금 사고를 확장해 보았다.
어쩌면 자신은 너무 편협한 생각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꼭 도시나 건물 같은 물리적인 것만 기반이 아니잖아.’
아스리안은 유저만의 장소가 아니다.
유저와, 그보다 더 많은 수의 NPC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다.
유저들 사이에서 자신의 이름은 연예인 이상의 파급력을 지니지만, NPC들에게 자신은 수억 명의 유저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내게 명성이 있었다면?’
제국의 황제가 궁을 벗어난다고 갈 데가 없을까?
황제는 어디서든 황제요, 타국에 가더라도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그렇다, 압도적인 명성을 지닌 자는 주위의 소란에 휩쓸리지 않는다.
하찮은 수를 쓰는 적들에게 피식 웃음을 날린 뒤, 훗날 그들을 벌할 뿐이다.
‘그래, 명성이 필요해.’
새로운 기반을 또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기나긴 시간과 무수한 노력,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성을 얻는 것은 그보다 간단하다.
아스리안의 유저는 비교적 쉽게 명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명예의 전당이다!’
예전엔 명성을 얻기를 주저했다.
명성이 높은 유저는 NPC들의 관심어린 시선을 견뎌내야만 하니까.
루이즈를 쫓는 자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은 랭킹 등록을 자제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루이즈의 곁엔 그녀를 섬기는 만의 마물들이 있었다.
하늘에 루이즈를 비호해 줄 조화의 세력 또한 존재했다.
경계의 도시가 무너진다 해도 루이즈에겐 갈 곳이 있다는 뜻이었다.
현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명성을 얻어서 뭘 할 수 있지?
뭘 또 주의해야 하지?
그렇게 현은 수많은 상황들을 떠올려 보았고,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앞으로 한 발 나아갈 때였다.
‘당장 랭킹부터 등록해야겠군.’
그날 명예의 전당에 새로운 아이디 하나가 등장했고, 전 세계의 커뮤니티는 하루 종일 들썩였다.
***
27위 – 현 (Lv.254)
랭킹에 새롭게 등장한 그 아이디는 많은 이들을 흥분에 빠뜨렸고, 또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현이 살고 있는 한국에서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저거 진짜 현이야? 동명이인 아니고??
-저 정도 랭커 중에 같은 아이디는 없던 걸로 아는데….
-찐이라고?
-근데 레벨 왜케 낮은데, 난 400쯤 되는 줄 알았구만.
-10위권도 안 되는 건 진짜 의외네.
가장 많은 반응은 역시 현의 레벨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 주제로 영양가 없는 글도 심심찮게 올라왔다.
1. SHA컴퍼니 운영하느라 바빠져서 – 34표
2. 이번학기 학사경고 맞아서 – 114표
3. 아인이 올해 성인이 되기 때문에! – 1064표
-아 3번은 인정이지 ㅋㅋ
-ㄹㅇㅋㅋㅋㅋ 게임할 시간이 어딨음 ㅋㅋ
-무슨 뜻인가요? 전 순수해서 잘 모르겠는데….
정답은, 메인 퀘스트와 최후 각성 퀘스트가 겹친 탓.
몇 달 전 기준으론 그나마 1번이 정답에 가까웠지만, 해당 선택지의 투표수는 처참할 정도로 낮았다.
그저 랭킹에 이름을 올린 것뿐임에도 인터넷 기사들이 마구 쏟아졌다.
재밌는 사실은, 경제나 사회면에도 이따금 현의 이름이 등장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현에게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거냐? 아스리안 시작한 이후로 랭킹 등록한 거 처음이잖아.
-뭔가 이유가 있겠지.
-이번에 역사 퀘스트 갱신된 거랑 관련 있을 거 같음.
-쉐이드 길드원들만이 그 이유를 알 것.
……
「현, 어째서 랭킹을 등록한 건가요?」
「현, 어째서 혼자만 랭킹을 등록한 거냐?!」
누군가의 예상과 달리 길드원들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가장 먼저 소식을 접한 지니와 살론이 귓속말을 보내왔다.
TarrTar : 형, 무슨 일이에요?
그리고 학교에 있던 타르타르도 캡슐 메신저로 문자를 보냈다.
이곳저곳에 답장을 보내는 현을 보며, 루이즈가 가만히 물었다.
“뭐 큰일이라도 일어난 것이냐?”
“현이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나 봐.”
현은 바빠 보였기에 아인이 대신 루이즈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가?”
“글쎄, 현이 결정한 거니까 의미가 없진 않겠지.”
아인과 루이즈가 둘만이 그나마 침착했다.
아인은 프라이빗 룸의 소파에서 뒹굴며 현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려 주었다.
잠시 후, 여유가 생겨난 현은 시선을 돌렸다.
프라이빗 룸의 둘에게도 상황을 설명해 주기 위해서였다.
“아인, 루이즈, 너희 도움도 필요해.”
“흐흠…?”
“나의 도움이라고?”
빤히 자신을 바라보는 둘에게, 현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지금부터 명성을 얻어야 하거든.”
“명성?”
“응. 제국의 황제보다 큰 명성을.”
“오오, 드디어 왕의 길로 나아가려는 것이구나!”
“뭐, 그렇게도 볼 수 있지.”
“뭐든 부탁하거라! 반드시 그대를 왕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으니!”
허리에 양손을 짚는 루이즈를 보며, 현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아직 말하진 않았지만, 어쩌면 그녀의 부하들의 도움까지 받아야 할지도 몰랐다.
“명성을 어떻게 얻으려고?”
반면 아인은 구체적인 방법을 물었다.
아스라 온라인을 한 번 경험해 본 그녀다.
랭킹에 이름을 등록한 것만으론 황제와 명성을 겨루기엔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터넷이 발달한 현실에선 적당히 큰 사건만으로 빅뉴스가 되지만, 아스리안에선 그렇지 않다.
특히, 황제와 비슷한 정도의 명성을 얻기 위해선 위업이라 불릴 정도의 발자취를 남겨야만 했다.
“그건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지. 엇…?!”
아인의 질문에 멋쩍은 웃음을 짓던 중.
띠링! 갑작스런 알람 소리가 현의 귓가를 울렸다.
“으응…?”
같은 순간, 아인의 눈도 동그래졌다.
아인은 허공에 손가락을 놀리며 소리쳤다.
“뭔가 왔어!”
“퀘스트?”
“현도?!”
“뭐야, 아인 너도?”
현과 아인은 서로 눈짓하며 천천히 퀘스트 창을 펼쳐 보았다.
-명성을 원하는 그대에게.
-지상에 제 이름을 널리 퍼뜨리세요. 무지한 자들에게 조화의 사상을 전파하세요!
(보상 : 그대의 명성도 함께 퍼져 나갈 것입니다!)
동시에 알람이 울렸지만, 현과 아인에게 떠오른 퀘스트는 똑같은 것이 아니었다.
아인이 받은 퀘스트는 현의 것보다 훨씬 짧은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의 사도여.
-뭘 해야 하는지는 알겠지?
(보상 : 내 힘이 허락하는 한 뭐든 들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