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70
외전 18. 엔딩 – 헬라(2) (完)
처음 재현이 헬라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은 단연 처음 만났을 때부터였다.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주는 이성에게 끌리는 것은 남자 역시 마찬가지였을까?
재현은 처음 자신을 공격해온 아버지라 믿었던 존재. 후긴의 공격에 당했고, 거기서 죽을 운명이었다.
하나 헬라가 처음 등장해 재현을 구해주었으며, 그로부터 자신이 성취하고 이뤄가야 할 목표가 명확해졌다.
그 끝에 너무나 위험한 일이 예정돼 있다 해도, 언젠가는 닥칠 일.
딱히 자신이 정의로워서가 아니었다. 그저 해야 한다 생각했을 뿐.
다만…….
재현 역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친구였던 김유정, 안호연, 서이나, 이재상, 권소율 등.
모두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설명할 수조차 없었다. 그들은 그저 재현을 보며 어떻게 저렇게 강해질 수 있을까. 나 역시 지지 않겠다.
그런 생각을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이해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재현은 늘 생각했다.
그랬기에 재현에게 헬라의 존재가 소중했던 것이다.
아름다운 정도는 가볍게 차치하더라도, 자신의 고충을 유일하게 함께 감내할 수 있는 존재. 그것이 헬라라는 반신의 존재 이유였기 때문이다.
때로는 외롭다 여겨지고 고독하다 생각되는 길을 함께 나아갈 수 있었던 사람. 그것은 오직 그녀뿐이었으므로.
하물며, 거기서 재현을 위해 헤임달 전에서 한 차례 희생하려 한 것도 모자라….
다른 시점에서도 그를 구하기 위해서 계속해 노력해왔던 것이 바로 헬라다.
자신의 숙명? 목적?
단지 그것 때문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다.
재현은 안다.
헬라가 자신을 믿지 않았더라면 그렇게까지 해낼 수 없었을 거라는 것을.
자신이 제 친구들을 속이며 어떤 과거로 가게 되었을 때.
그곳에 김유정과 자신의 미래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곳에 존재하는 그 누구의 삶도 지금보다 더 암울하다는 것을 말했을 때.
헬라는 바깥에서 또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싸우고 있었다. 로키와 마찬가지로 말이다.
헬라는 재현에게 구세주와 같았다.
적어도 기억을 떠올리기 전까지, 재현이 충분히 강해지기 전까지. 또 무너지려 할 때마다 그녀의 존재는 재현을 바로 세웠다.
헬라가 재현이라는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것을 그는 알았고. 그게 바로 자신으로 하여금 그녀에게 연심이 떠오르도록 했다.
때문에 재현은 말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신경 쓰였던 것 같아요.”
라고.
헬라는 당연히 당황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도 잘 몰랐고, 재현이 자신을 그렇게나 오래 신경 써왔는지도 몰랐으니까.
하지만 재현은 이제 시원해졌다는 듯 이을 뿐이었다.
“틈만 나면 고양이가 돼서는 제 책상이나 침대에 올라가고. 그런 식으로 자꾸 절 자극했는데, 당연히 신경 쓰일 수밖에 없죠. 그거 알아요? 저 몇 번이나 당신 때문에 밤에 잠을 못 잤어요. 힘들었다고요. 저도.”
재현은 이제는 거의 당당해졌다.
덕분에 헬라의 얼굴은 더할 것 없이 새빨갛게 물든 채, 재현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때는… 저도 포기했어요. 제 마음이 채 정리가 되지 않았으니까. 거기다 헬라 당신이 절 좋아할 리 없으니까. 그래서 최대한 참아보려고도 했고, 견뎌보려고도 했어요.”
재현은 피식 웃었다.
“당신에게 내가 아닌 다른 이유를 찾으라고 했던 말 기억해요?”
“네….”
“그거도 어떻게든 제 마음을 숨기면서 한 말이에요. 제가 어떤 누구와 이어지든 당신이 제 바로 곁에서 절 축복하면, 그건 축복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런 마음으로 애초에 누굴 만날 수 있었을지도 솔직히 모르겠지만.”
“그럴 수가….”
헬라는 진심으로 놀란 얼굴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던 사람이, 자신과 같은 타이밍에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고. 그게 지금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그래서 이어질 수 있었다고. 두 사람이?
그것은 헬라에게 짜릿한 전류가 되어 뇌를 관통하는 감각이었다. 아무리 감정이 한없이 적은 분신이라 해도, 이것만큼은 아니었다.
재현의 그 말은, 거의 요르문간드의 아재 개그를 처음 접했을 때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나쁘지 않은 비유라고. 헬라는 속으로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
“……행복하네요. 어쩌면 저는 이러기 위해서 태어났을지도…….”
때문에 넋을 놓은 채, 헬라는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재현이 그 모습을 보며 피식 미소를 지었다.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헬라의 머릿결을 가볍게 쓰다듬는다. 백발의 머리칼이 부드럽게 주변의 빛을 흡수해 어떤 때는 갈색에 가깝게.
또 어떤 때는 붉은 색에 가깝게 변하기를 반복한다.
헬라는 의외로 기분이 좋은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사실 이선화가 평소에 딸과 반려동물(?) 특히 고양이를 키우고 싶다며, 자주 헬라의 머리칼을 쓰다듬었기 때문이었지만.
당연하게도 재현은 그런 사실까지는 알지 못했다. 어쨌든. 헬라는 누군가에게 쓰다듬어지는 것을 꽤 즐기는 상태가 되었다. 그것이 중요했다.
재현은 그렇게 한참을 헬라와 마주하고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었다.
그러고는 작게 속삭이듯 말한다.
“좋아해요. 늘 제 곁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했던 당신을.”
“…저는 처음부터 설명할 필요가 없었어요.”
헬라는 그 재현의 진지한 물음에 스스로 가장 내놓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을 꺼냈다.
“처음부터 저는 존재의 목적이 당신이었어요. 때문에 태어났고, 지금까지 살아왔어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헬라의 표정이 약간 울먹이는. 하지만 굳건한 그것으로 바뀌었다.
“중간부터는 당신이란 사람 자체를 그냥 좋아하게 됐어요. 항상 무너질 때마다 다시 일어나는 재현 군을, 또 누군가는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걸 놔 버려야 했을 그 순간을. 심지어는…… 우유부단한 성격으로 저와 다른 여성분들의 마음을 한동안 괴롭혔던 당신의 모습까지. 저는 전부다.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게 됐어요.”
그게 전부에요.
헬라는 그렇게 덧붙였다.
재현은 미소 지었고 잠시 헬라를 꽉 껴안았다.
지금껏 정말 헤아릴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재현도 사람이었고, 하나의 인간의 몸으로서 지금의 경지에 도달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를 각성하면서였다.
나약했다.
우유부단한 성격은 누군가에게도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는 이기심의 발로였지만, 재현은 알았다.
실은 자신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약함을 지니고 있다고.
그것은 태생적이기에 고치기 쉽지 않겠다고.
평생 혼자 살까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것마저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이야기를 시작할 때, 당신이 곁에 있었으니까. 이제는 끝날 때도 함께 있어 줘야 해요. 알죠?”
“네. 재현 군이 먼저 떠나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어요.”
“제가 당신의 삶의 목적이니까?”
“그것도 있고요.”
헬라는 희미하게 웃으며 곁에 붙어왔다.
은은한 향기가 퍼져나오며 재현의 코끝에 스며든다.
“사랑하니까요.”
재현의 두 눈이 가늘어진다.
“헬라.”
“사랑하니까, 그래서 안 떠난다고 했어요. 그게 무슨 문제가 되나요? 이제 다 고백해버린 판에.”
“…그것도 그러네요.”
재현은 두 사람이 함께 걸어온 길을 차분히 되짚어 보았다.
그것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신화로서 읽히는 이야기이기도 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연담의 일부이기도 했다.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모른다.
다른 누구에게 이 이야기가 어떻게 읽혔는지, 또 무엇을 바꾸었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모두 마찬가지다.
재현에게도, 헬라에게도.
다른 누군가에게도 말이다.
때문에 재현은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 여겼다.
어떤 사람에게든 같은 이야기로 읽히는 신화는 재미가 없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다른 이면을 찾기 위해서 새로이 이야기를 읽고,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며 재미를 찾는 것이 아닐까.
재현은 끌어안았던 몸을 떼어내고 헬라의 입술에 짧은 키스를 하면서도, 그녀와 이어질 긴 시간들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고찰했다.
물론 도중에 정신이 날아가 버려서 뭔가 더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없었지만.
“아무래도 한 번만 해봐서는 어떤지 잘 모르겠죠?”
“그러게요.”
재현의 말에 헬라가 능청스럽게 동의했다.
재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헬라의 손을 꽉 쥔 채.
의미는 명확했다. 좀 더 사람이 적은 장소를 찾아야 했다.
지금 당장 도화선에 불이 붙었다면, 이것을 해결하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니까.
* * *
새파란 바다와 연하늘 사이를 가득 메우는 지평선.
새하얀 빛이 이따금 재현과 헬라의 발아래서 부서진다.
재현과 헬라는 그 시점을 기점으로 갑작스레 바다를 보기 위해 이곳 부산에 도착했다.
새벽녘. 사람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어쩔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최근에는 해양 몬스터의 습격도 꽤나 잦다. 때문에 조심하기 위해 조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현은 그 정도쯤은 조금 어겨도 되는 사람이었다.
어차피 그를 죽일 수 있는 존재 따윈 더는 남아 있지 않으니까.
수면에 내려앉는 하얀 새 떼의 모습이 보인다. 재현은 이를 지켜보며 자신이 쥔 손으로부터 느껴지는 온기를 다시금 되새긴다.
“조금 전에 키스할 때요. 혹시 어땠어요?”
“……보통 그걸 처음 하고 후기를 들려주나요? 서로?”
헬라는 약간 당황한 듯 그렇게 말했지만, 재현은 그런 게 아니라며 손사래 쳤다.
“다른 게 아니라 혹시 느낀 게 있냐고 물어보는 거였어요.”
“사랑? 그런 건 너무 추상적이라 잘 느껴지지는 않던걸요?”
“뛰었잖아요. 심장. 엄청 빠르게.”
“네?”
재현이 웃었다.
“매일 분신이라서 자신은 진짜 아니니 뭐니 하시더니. 결국엔 키스 한 번에 심장이 미칠 듯이 뛰셨잖아요.”
“아닛! 그거언…!”
“그게 살아 있다는 게 아니면 뭐겠어요?”
재현의 불시에 툭 하고 떨어지는 말. 그것은 헬라의 가슴 언저리. 가장 깊은 곳을 파고들기 충분했다.
‘역시 능청스럽다니까.’
헬라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 가지 상념을 도저히 지울 수 없었다.
앞으로 자신은 절대로 이 사람에게서 벗어날 수 없겠구나, 사랑하지 않는 일이 있기란 불가능하겠구나 하는 것.
“에잇.”
괜히 화난 헬라가 재현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과거였다면 대적자에게 절대 하지 않았을 행동이지만 이제 자신은 자유의 몸이었다. 재현에게 이 정도 투정쯤은 마음대로 부려도 좋은 상황인 것이다.
재현은 떠오르는 태양을 등지고 자신의 볼을 꼬집는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이어 빠르게 헬라의 다른 손도 속박하는 재현의 모습.
“재, 재현 군? 방금 그건 장난이었는데…….”
“역시 아까는 조금 부족했던 것 같죠?”
툭.
입술과 입술이 부딪히는 것은 찰나였다. 이어 파도가 철썩이는 소리가 들려오며 귓가에 희미한 환청마저 들려오게 만드는 순간이 두 사람에게 찾아왔다.
이제야 끝이구나.
그제야, 모든 것이 실감 났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모두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받아들인다.
그리고는 서투르게 이별을 말하는 것이다.
안녕,
하는 그저 아무것도 아닌 짧은 인사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