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163
열일하는 과금 기사 162화
* * *
기지개를 켠다. 솔직히 몸에는 피로가 거의 없어서 그냥 시늉. 문제는 육체가 아무리 멀쩡해도 정신이 피곤하다는 점이다.
‘하.’
나는 정신력이 강하다. 이는 자화자찬이 아닌 객관적인 사실이다.
선별사들이 내 특성란에 괜히 [초인적인 정신력]을 넣어 줬겠는가?
온몸을 찢기는 와중에도 로그인, 로그아웃을 반복해 전투를 이어나가거나 수면 술식이 있다 한들, 고작 하루 30분 정도 자면서 매일 미친 듯 일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지.
‘연약해졌구먼.’
그러나 지금, 고작 10시간 필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진다. 초월자에 준하는 전투력. 수십 수백억의 수입.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이만큼 이뤄 내고 나니 과거만큼 필사의 의지를 끌어올리기가 어려운 상황.
결국 시스템 UI를 종료해 키보드를 없애 버렸다.
“오늘은 여기까지.”
공모전이 끝난 후 오룡넷의 인기 작품을 순차적으로 아르데니아에 풀었다. 말하자면 불법 유통이지만…… 그런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낄 거였으면 전설 펫 한 장으로 20억을 벌어 챙기는 양아치 짓 따위는 안 했으리라.
“수고하셨습니다.”
어느새 다가온 플라워가 따끈한 김이 피어오르는 음료를 건넨다.
별생각 없이 받았다가 익숙한 향기에 깜짝 놀란다.
“커피잖아?”
언젠가 남부 지대에서 재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적은 있지만 대뜸 이렇게 결과물이 도착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달달한 이 맛은……
‘믹스 커피!?’
황당해하는 내게 플라워가 설명했다.
“역시 아시는군요. 만독성에서 파밍되는 커피콩이라는 재료 아이템과 세계수의 정원에서 나는 설탕을 조합해 만든 아이템입니다. 마나 회복력을 올리는 효과도 효과지만, 맛이 아주 좋아서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고급 음료로 각광 받고 있다더군요.”
“드랍 템인가…… 차지한 성이 많아지니 조합이나 요리 재료도 충당이 되는 모양이네.”
하기야 장비 제작에 들어가는 가죽, 철, 목재, 보석, 역시 8개의 화점을 차지하며 순조로이 파밍되는 상황이다.
언데드 계열 몬스터나 거미 계열 몬스터가 드랍하는 천이 좀 문제긴 하지만, 이 역시 시간을 내 해당 착점을 정복해 두면 해결될 것이다.
“그나저나.”
나는 창가에 서서 커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도시 중앙의 길드 타워를 제외하고 가장 큰 규모를 가진 주상복합단지. 속칭 노벨 타워의 옥상에 정좌(正坐)하고 있는 외눈박이 거인의 모습이 보인다. 허벅지 위에 카타나를 올려 둔 녀석의 모습은 너무나 정적이라 살아 있는 생명체가 아닌 그림처럼 보였다.
“설마 사이클롭스 사무라이를 고를 줄이야…….”
한 달 전, 나는 제1회 문학 공모전에서 우승한 로즈리안에게 3마리의 전설 펫을 제시했다. 내가 지닌 전설 펫은 스무 마리도 넘지만 죄다 컬렉션에 들어가 있어 남에게 줄 수 있는 종류는 그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선택지가 협소해도 전투형 펫을 선택할 줄은 몰랐다. 당연히 제국인들에게 큰 의미를 가지는 카심, 아니더라도 스윗 홈을 고를 거라고 생각했거늘.
“그래도, 사이가 좋아 보이지 않나요?”
“……그렇긴 하네.”
정좌하고 있던 사이클롭스 사무라이, 젠타에게 새하얀 머리칼을 깔끔하게 묶은 로즈리안이 다가간다.
그녀의 손에는 커다란 냄비가 들려 있었는데, 그게 젠타의 손으로 넘어가자 무슨 소주잔 같다.
“~~~~.”
“~~~~.”
둘이 뭔가 대화를 한다. 거리가 워낙 먼 데다 민첩 수치가 낮아서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들 사이의 분위기가 온화하다는 것 정도는 알 수 있다.
아무래도 로즈리안이 넘겨 준 것이 무슨 차 종류였던 듯 젠타가 차분한 태도와 자세로 입만 축이듯 천천히 마신다.
“……뭐, 좋게 생각하지. 저런 게 옆에 붙어 있으면 적어도 사고가 날 일은 없을 테니.”
나는 잠시 그들을 구경하다 고개를 돌렸다.
“헤이즈는?”
“29층에 방을 구해 주었습니다. 같이 온 아이도 같은 층에 자리 잡았고요.”
“레드라고 했던가.”
10대에 불과한 꼬맹이지만 비범한 재능을 가졌다는 존재.
헤이즈가 대충 언급한 말이 있어 나는 그녀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미래의 영웅.’
영웅 클래스인 엘리멘탈리스트(Elementalist)와 전설 클래스인 마스터 위저드(Master wizard)의 가능성을 품은 자.
‘클래스 카드의 설정을 보면 엘리멘탈리스트는 30대, 마스터 위저드는 120살이었지. 외모는 둘 다 20대였지만 말이야.’
물론 그것들은 다 ‘가능성의 세계’에서의 일이기 때문에 실제로 레드라는 소녀가 전설급에 이른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스페셜 보스의 과거 버전이라 할 수 있는 에드워드의 신화적인 재능을 생각해 보면 그녀의 재능 또한 실로 대단할 것이다.
물론 그 재능을 개화할 가장 빠른 방법은 지금 당장 그녀에게 전설 클래스를 부여하는 거지만.
‘굳이 그런 폭탄을 만들 이유가 없다.’
당장 인류가 위험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괜한 모험일 뿐이다. 워낙에 선하고 정의로운 성격이던, 더불어 나와의 인연이 있던 헤이즈와 달리 [다른 세계선]의 영웅들이 무슨 생각을 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능력 있다고 막 가져다 쓸 거면 전 무림맹주. 현 참마기사 녀석에게 검왕 클래스를 넘겼겠지.
“그래…… 일단은 푹 쉬게 두고 언제 한 번 얼굴이나 보자고 전해.”
“네, 폐하.”
나는 플라워가 집무실을 나간 뒤 차분히 커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아르데니아는 완전히 안정되었네.”
8개의 화점에 신화급 성을 짓게 되면서 몬스터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게 되었다. 예전처럼 날마다 온 대륙을 쏘다니거나 어딘가를 지키고 있을 필요가 없는 상황.
즉.
“이제 결정을 해야 할 때군.”
한동안 필사만 죽어라 하느라 미뤄 두었던 일을 처리할 시간.
“뭘 익힐지.”
네 명의 대마법사가 동원된 일주일간의 대수술 결과 나는 천형이나 다름없던 폐급 마나 적성을 이겨 낼 수 있었다.
눈을 감아도 느끼지는 마나의 흐름.
굳이 자세나 호흡을 살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읽혀지는 기세(氣勢).
의지를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움직이는 마나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내 전력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어.’
그렇다. 달라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폐급 마나 적성 상태에서 너무나 강대한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염원하던 마나의 재능을 얻었지만, 굳이 말하자면 이제 출발선일 뿐이다.
맨손으로 특수 장갑을 뜯어내는 지금, 어느 세월에 마나를 쌓아 유의미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기껏 폐급 마나 적성을 지웠는데 겨우 감지 능력 하나 얻은 거로 끝낼 수도 없던 만큼 여러 가지 선택지를 곱씹는다.
“일단은 무공.”
가장 끌리는 선택지다. 고작 입문자급 내공으로 이 야만의 세상에서 20년을 살아온 나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무(武)를 궁구(窮究)해 온 내 무공 이해도는 이미 대가의 경지라 말해도 부족함이 없겠지.
그러나 내공.
‘진짜가 아니지.’
나는 지금도 내공을 다루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건 제대로 된 내공이 아니다.
대자연의 기운을 단전에 축기(蓄氣)해 쌓은 내공이 아니라 앎의 힘으로 차크라를 열어 구현한 내공이기 때문이다.
기공의 효과. 그러니까 순간적인 내공 방출이나 땅에 뿌리 내리는 공능 등은 사용할 수 있지만 어디 내공의 효과가 그게 전부던가?
실제로 거인족의 랜드 브레이커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내 몸에는 무공 수련자 특유의 변형이 없다. 덩치가 커지지도, 육체가 강건해지지도 않는다.
이제 축기가 가능해졌으니 직접 내공을 쌓아 전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말이지만.
“어느 세월에 내공을 쌓냐…….”
그렇다. 그게 문제다. 내공은 하루아침에 쌓이는 종류의 힘이 아니라는 것!
“그런 면에서는, 마법이 낫지.”
마법 계통 중에는 능력만 된다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했다.
[마법]의 차크라를 연다면, 거기에 전설이나 신화급 마법 클래스를 장착한다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생체력.”
무지막지한 돈을 씹어 먹고 덩치를 키운 컬렉션과 수많은 몬스터를 학살해 64레벨에 이른 내 신체 스텟은 이미 엔간한 초월자보다도 높다. 지금 이 몸에 생체인자를 받아들이고 진화를 거듭한다면…….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전력 상승이 일어날 것이다.
“…….”
다 마신 커피잔을 내려놓는다. 그래 사실은 알고 있다. 고민거리도 아니라는 것을.
“생체력이 최강이지.”
당연한 이야기다. 내 육신은 이미 너무나 강력하고 전투 예지는 사실 무공보다는 생체력 수련자에게 더 유용한 힘이다. 기감이 떨어져 그냥 맞으며 싸우는 생체력 수련자에게 전투 예지까지 있으면 실전에서 어떤 위용을 보일 것인가?
그러나.
“무공이 하고 싶은걸…….”
이게 참 미련하고 비효율적이라는 걸 안다.
요소. [무공]의 힘으로 이미 절정 고수를 넘어서는 내공을 휘두르고 있는 상황에 언제 쓸 만해 질지 까마득한 축기를 시작한다니? 그야말로 시간 낭비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고 싶다.
“진짜 마공이라도 찾아 봐야 하나…… 천마신공이랑 흡성대법. 식마공이 그렇게 축기가 빠르다던데.”
결국, 나는 정보를 더 구해 보기로 했다.
“로그아웃.”
지구로 넘어가 인터넷을 뒤진다.
<천마신공에 입문하려는 어린 양들에게>
<천마등천신공(天魔登天神功)>
<천마흡마공(天魔吸魔功)>
<천마(天魔) 문워크(Moonwalk)>
<천마역근공(天魔易筋功)>
<천마…… >
천마신공의 온갖 바리에이션들이 주르륵 등장한다. 단순히 ‘천마신공이 강력해서.’라기에는 너무나 많은 파생 심법들.
이는 천마신공이 강력하면서 동시에 너무나 높은 난이도를 가지고 있기에 벌어진 현상이다. 그냥 익힐 수가 없으니 눈물의 똥꼬쑈라도 해 보는 것이다.
“역시 답은 흡마공인가? 마침 천마흡마공이라는 게 있다니 몬스터들의 기운을 흡수해서…….”
그런데 그때였다.
웅!
익숙한 감각이 느껴진다. 왼팔을 들어 보니 제로섬이 진동하고 있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흔들었다.
“이걸…… 굳이 저장할 필요는 없겠지.”
마침 한가한 상황이다.
팟!
SF적인 느낌이 나는 말끔한 방으로 이동한다. 전에 듀얼 어쩌고 하는 괴상한 게임 속과 전혀 다른 느낌.
낯설면서도 익숙한 감각에 나는 그곳의 정체를 파악했다.
“……내면세계.”
“그래. 내 내면세계야. 아직 4층이라 그다지 넓지는 않다.”
먼저 앉아 있던 멀린이 호로록 차를 마신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뭉개진 자루는 신기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게 안 넓은 건가요? 제 방은 단칸방보다 작은데…….”
아무래도 이 둘 역시 내면세계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하기야 내가 화점을 차지해 층수를 높이고 착점을 차지해 외부 요소를 만들었듯 그들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차크라를 개방했을 것이다.
“전에 끌려갔을 때와는 다르군요.”
내 말에 멀린이 놀란다.
“끌려오다니. 그럼 내 게임에 온 게 사고란 말이야?”
“굳이 말하자면…… 예.”
“나 참. 인제 와서 강제로 남의 게임에 끌고 가? 이거 시작한 지 몇 년째인데 이런…….”
잠시 생각에 잠기는 멀린. 나는 문득 떠오르는 게 있어 인벤토리를 열었다.
팟!
역시나 짐작대로 아이템이 꺼내진다. 현실의 그 무엇도 가져올 수 없는 내면세계지만…… 아이템들만은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멀린은 이 세계에서 스펠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멀린. 혹시 이거 필요하십니까?”
7장의 전설 카드를 보여 주자 멀린이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전설 카드? 아니 왜 다크 스타의 카드를 네가 가지고 있어?”
“현실에 나타난 몬스터를 잡아 얻었지요.”
“아, 그 몬스터 사태인가 뭔가 하는…… 드랍 더럽게 안 되던데 전설 장비까지 떨궜단 말이야?”
신기하다는 듯 말하지만 별로 동하는 표정이 아니다.
“별 의미 없나 보군요.”
“내가 다크 스타 개발자이자 운영자라니까? 마음만 먹으면 초월 아이템을 수천 개씩 복사할 수 있어.”
“……아니 뭐라고요?”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지만 생각해 보니 당연한 일이다. 개발자이자 운영자이면 아이템 복사가 문제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면 문제가 있다.
“아니, 그러면 왜 쫓기고 있던 겁니까? 사기 덱을 만들어 다 쓸어 버리면 될 텐데?”
“그게 그렇게 안 되니까. 전설 카드 수천 장이 있어도 흥행력이 딸리면 덱에 넣을 수가 없…… 어라?”
거기까지 말한 멀린이 멈칫한다.
“아니, 이게 뭐야…… 흥행력이 이미 담겨 있어?”
조금 전까지와 달리 내 전설 카드들을 보고 멀린의 눈이 반짝인다.
“바로 쓸 수 있는 전설 카드 7장…….”
내가 몬스터제 장비들에 과금력이 이미 들어있다고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 그는 잠시 가만히 카드들을 보다 말했다.
“너, 혹시 마나를 쌓는 거로 고민 중이지 않아?”
깜짝 놀라 묻는다.
“그걸 어떻게…….”
“예전부터 폐급 마나 적성이었다면서. 그걸 회복했다면 당연히 이제 문제는 마나지. 내가 지금 보니 아직 안 쌓았군. 마력을 쌓을지, 오오라를 쌓을지, 내공을 쌓을지 모르지만…….”
멀린이 허공에 손가락을 움직인다.
띠띠띠띠~ 띠로리~
허공에 수십 개의 숫자가 주르륵 지나간다.
“……죄송하지만 수련법은 이미 충분히.”
“아니 이제 와서 무슨 수련법으로 그걸 해결하려고 그래? 훨씬 편한 길이 있는데.”
“편한 길이라니 그게 뭡니까?”
의아해하는 나를 보며 멀린이 뭐 그런 멍청한 질문을 하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뭐긴 뭐야?”
파앗—-!!
공간을 찢어 버리며 불타는 뭔가가 모습을 드러낸다. 고작 엄지손톱만 한 크기지만 마치 태양처럼 빛나는 무언가!
‘아니 저건 뭐길래 내면세계까지 들어오는데?’
내가 황당해하거나 말거나, 멀린은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말했다.
“쩌는 영약(靈藥)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