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49
열일하는 과금 기사 48화
아르데니아에서도 희귀급 아이템 획득 공지를 꽤 본 상태이지만 거기에서 아는 이름을 보는 건 또 다른 기분이다.
“게다가 배리어 완드라니.”
마법사 아이템에 대해 관심도 없던 나조차 알고 있는 물건이다. 흔히 탈 희귀급으로 불리는 물건!
[배리어 완드(희귀)]무기 데미지+13
명중+6
지능+15
에너지 배리어 1%.
에너지 배리어는 적에게 가한 데미지만큼 시전자에게 보호막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다. 에너지 배리어 1%면 100의 데미지를 가했을 때 1의 실드가 생기는 식.
‘당연히…… 쓸모가 엄청나다. 심지어 이건 현실이 되면 더 사기급 옵션 아닌가? 광역 마법을 갈기면 아주 강력한 실드가 생기는 셈이잖아?’
심지어 게임에서도 엔간한 영웅급을 쓰느니 차라리 배리어 완드를 +9강 해서 쓴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쓸 만한 옵션이다.
홉 고블린 녀석 신경도 안 썼는데 이런 귀한 걸 드랍하는 녀석이었다니.
“자식들, 던전 열심히 돌고 있군.”
만족스럽게 웃는데 저 아래 있는 병력들이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내밀어 보니 병사들이 나를 올려다보며 손가락질하는 모습이 보인다.
“들켰네. 하기야 아무리 높이 날아도 덩치가 있으니.”
그러나 그들이 날 인식했든 아니든 상관없었기에 무시하고 던전으로 향한다.
원형의 게이트 형태인 성의 던전과 다르게 중립 던전의 형태는 빛의 기둥.
굳이 땅에 내려서지 않아도 던전에 진입이 가능하다.
팟!
던전 안으로 들어간다.
[들개굴]“크르르…… 컹컹!”
“컹!”
“월월월!”
분명 날고 있던 난 어느새 땅에 서 있었다. 아니 땅 정도가 아니라 지하로 보이는 컴컴한 장소.
“여기가 들개굴이군.”
“으르르…… 컹!”
도사견 한 마리가 침을 질질 흘리며 덤벼들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상대가 아니다.
‘일일이 잡기도 귀찮다.’
나는 수천 마리가 넘는 들개를 무시하고 달렸다. 살인적인 어깨빵과 무릎치기에 들개들은 덤프트럭에 달려든 고라니처럼 박살 나 흩어진다.
팡!
들개굴의 최심부까지 일직선으로 이동했다. 헬 난이도 들개굴의 보스. 흑견 니토(희귀)를 쳐 죽이기까지는 채 20분도 걸리지 않았다.
[들개굴(일반~희귀)의 헬 난이도가 공략되었습니다!] [조건을 우선 완료한 길드부터 공성전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던전이 클리어 되면 용맥 위에 서 있던 모든 존재가 용맥의 테두리 밖으로 밀려난다. 공간 자체가 밀려나는 방식이기 때문에 항거할 수 없는 현상.
그리고 그렇게 확보된 공간에.
[초라한 토성(일반)이 등장합니다!]“뭐냐?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공성? 초라한 토성?”
“지금 우리가 뭐에 밀려난 거야!?”
어느새 나는 혼란스러워하는 기사들 사이에 서 있었다. 던전을 클리어하자 밖으로 쫓겨 나온 것.
나는 저 멀리 보이는 토성의 모습을 보았다.
“컹컹!”
“월월월!”
성벽 위에 개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그 기세는 제법 살벌하지만…… 고블린도 아니고 개들이 제대로 된 수성을 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야말로 [공성 튜토리얼]에 걸맞은 모습이군.’
리벤지 초창기 때 외곽 던전들이 그런 이름으로 불렸다는 정보를 본 적이 있었다.
굳이 나 같은 초인이 없어도 엔간한 군대라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공성을 성공할 수 있으리라.
‘여기서 문제는 내가 여기 성을 먹고 떠난 뒤 다른 사람이 공성전을 신청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런 게 가능할까?
공성전 자체야 어려울 게 없다. 연약한 성문을 부수고 별로 높지도 않은 흙벽을 넘어서 영주성의 옥좌를 터치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옥좌를 터치해 성의 소유권을 얻을 수 있는 것은 플레이어. 그중에서도 공성전을 신청한 길드의 마스터뿐이다.
‘지금 이 조건을 클리어하는 인간이 있을 리 없지.’
내가 이끄는 병사가 아닌 이상 클래스를 어떻게 얻을 수 있겠는가?
또 길드를 창설할 골드는 어디에서 얻고?
혹여 그 모든 조건을 클리어하더라도 공성 신청은 공성 5일 전에 해야 하니 내가 방어하러 오는 것도 가능하리라.
스릉.
그때 한 자루의 레이피어가 내 목을 겨눈다. 손가락보다 얇은 검신에서 날카로운 기세가 느껴진다.
“뭐냐, 너. 아까 그 이상한 새에 타고 있던 그 녀석이지?”
내게 레이피어를 겨눈 이는 여성이다. 남초 문화가 뿌리 깊은 아르데니아에서는 보기 드문 여기사.
심지어 내가 아는 녀석이다.
“헤이즈 스타라이트.”
“……한? 너 한이야?”
내 목소리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짓는 그녀는 여장부(女丈夫)라는 단어를 형상화한 듯한 여인이다.
‘여전히 큼직한 녀석이군.’
모든 게 크다. 185센티미터의 신장은 엔간한 남성들도 내려다 볼 정도이고 떡 벌어진 어깨는 수영선수를 연상케 한다. 거기에 그렇게 큰 몸에 빈틈없이 들어찬 근육, 거칠고 큰 손까지.
말만 들으면 무시무시한 느낌이지만 시원시원 미끄러운 외모와 무시무시한 사이즈의 가슴 때문에 남자로 오해받는 일은 절대 없다.
지금이야 나이를 먹어 중년의 여인이 되었지만 젊은 날에 그녀는 크롬 왕국 모든 기사들을 잠 못 이루게 하던 절벽 위의 꽃이었다. 내가 그녀와 좀 친하게 지낸다고 결투를 건 머저리 기사가 서른이 넘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10년 만이네.”
인벤토리를 조작해 헬멧을 제거한다. 내 얼굴이 드러나자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깜짝 놀라 소리친다.
“늑대 기사!”
“흑사자!”
“천한 산적 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으르렁거렸지만 헤이즈가 한 손을 들자 모두 입을 다물었다. 중세 랜드에서 여기사가 어떻게 이런 장악력을 가지고 있나 의아해 할 수도 있지만 사실 당연한 일이다.
그녀야말로 성검 스텔라의 주인이며 기사대전의 챔피언.
크롬 왕국 최강의 기사.
결투기사(決鬪騎士)였으니까.
“너, 와 이런.”
그리고 그런 그녀가 나를 보며 기막혀 한다.
“아니, 너 왜 안 늙는 거야? 아직도 20대로 보이잖아? 미친 거 아니야?”
“뭘, 너도 그대로인데.”
“그대로? 이 자식이 어따 대고 아부질이야?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하거든?”
주먹을 휘휘 휘두르는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는다. 나이가 마흔이 넘은 주제에 꽤 귀여웠다.
“뭐, 잡담은 나중에 하고…… 네가 여기 있는 건 꽤 뜻밖이네. 지마일은 무너진 건가?”
“그래. 머리 위에 아이스 엘리멘탈이라고 쓰여 있는 괴물들을 이겨 내지 못했지. 그리고 무엇보다.”
“그만! 헤이즈! 어디까지 이야기할 생각이냐!”
호통과 함께 기사 하나가 앞으로 나선다. 고급스럽게 마감된 전신 갑주를 걸친 이십대 중반의 녀석은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너…… 대체 정체가 뭐냐. 괴물이 쏟아져 나오는 빛의 기둥을 어떻게 없애 버린 거지? 그 커다란 새는 뭐냐? 그리고…….”
나는 녀석에게서 고개를 돌려 헤이즈를 바라보았다.
“왕도 여기까지 도망친 모양이네.”
“뭣!? 네놈! 이 건방진!”
애송이 녀석이 검을 휘둘렀다. 위협이 아니다. 명확히 살의를 담아 휘두른 검격!
턱.
엄지와 검지로 잡아 낸다. 전투 예지조차 필요 없다.
“뭐라고!?”
“이게 무슨…….”
주변에 있던 기사들이 깜짝 놀라 술렁이는 모습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놀라도 검을 잡힌 당사자만큼 놀랄 수는 없으리라.
“이, 이게 무슨! 이, 이익……!”
두 손으로 검을 잡고서 용을 쓰지만 검은 바위에 낀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는다.
풀세트를 맞춘 내 근력은 오우거에 맞먹으니 오러로 신체를 강화할 수 있다 하더라도 힘으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
“너, 이 새끼……!”
우우웅!
내가 잡고 있던 검에 은은한 기운이 들어차기 시작한다. 내공 주입으로 상황을 해결하려 드는 모양이 있지만.
‘등신.’
내공 주입이 검의 내구도와 예리함을 강화시키는 건 사실이지만 결국 그뿐이다. 차라리 검을 놓거나 육체 강화에 더 집중해야지 내공 주입이라니.
“눈치가 없는 놈이군.”
검을 잡은 두 손가락을 확 당기자 녀석이 끌려 온다. 주변의 다른 녀석들이 반응하기 전에, 나는 오른손을 들었다.
“그럼 맞아야지.”
퍽!
뺨을 친다. 녀석의 전신 갑주가 번뜩이며 보호 마법이 발동했지만, 이 중세 랜드의 마법으로 내 괴력을 막을 수는 없다.
“너! 너 감히! 내가 누구인 줄…….”
퍽!
“헤이즈! 왜 지켜만 보고 있는…….”
퍽!
“그, 그만! 너 이 새…….”
퍽!
친다. 다시 친다. 주변을 포위하고 있는 기사들은 감히 덤벼들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내가 손에 힘을 조금만 더 줘도 녀석이 죽을 것이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리라.
퍽! 탱그랑!
검을 놓친 녀석이 바닥을 구른다. 나는 쓰러진 사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날 보는 녀석의 눈에 공포가 깃들어 있다.
“사…… 살려 줘…… 내가…… 내가 잘못…….”
기억에 있는 얼굴이다. 크롬 왕국의 3왕자 오닉스 크롬.
검에 대한 재능과 더러운 성격으로 유명한 녀석이다.
“정보 교환 좀 할까?”
“강해졌구나. 너…… 아니면 실력을 숨기고 있던 건가? 좀 그런 느낌이 있긴 했지.”
“실력을 숨기긴 무슨.”
피식 웃는 내 앞에 마주 선 헤이즈가 슬쩍 고갯짓하자, 눈치를 보던 기사들이 슬그머니 다가와 오닉스를 들고 빠진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간략히 설명했다.
“대륙의 모든 용맥에서 괴물들이 쏟아져 나왔다는 건 이미 알고 있겠지. 괴물들은 내륙으로 갈수록 강하고 그 힘은 인간들이 감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나는 헤이즈에게 게임의 설정들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해 주었다.
등장하는 몬스터의 종류와 위치, 던전 클리어 방법.
그리고 던전을 클리어하면 모습을 드러내는 성과, 인류가 새로이 얻을 수 있는 힘, 클래스까지.
‘마냥 숨길 일이 아니지. 지금은 인간보다 몬스터가 문제니까.’
물론 알려만 주는 것이지 뭔가를 지원해 줄 생각은 없다.
내 병사들 뒷바라지만 해도 등골이 휠 정도다.
“너는…… 이런 정보를 어떻게 아는 거지?”
헤이즈의 물음에 잠시 그녀와의 과거를 회상했다.
내가 그녀를 만난 것은 지금으로부터 17년 전이었다. 산적질만으로는 산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용병단을 만들어 의뢰를 받기 시작할 때 즈음.
정략결혼을 하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 전에 세상 구경을 하겠다며 가출했던 말괄량이 귀족 아가씨는 애송이 용병대장을 만나 2년이나 대륙을 쏘다녔다.
“내가 예전에 했던 말 기억나? 야만인이라니 이…….”
“이 미개한 새끼들이 누구보고 야만인이래…… 그거?”
그녀의 대답에 씩 웃어 준다. 그녀는 내가 이 중세 랜드에 와서 만난 귀족 중 유일하게 차별의 시선 없이 날 봐준 이었다. 누구보다 강하고 자유로웠던, 그러면서도 스스로의 의무에서 도망치지 않던 여자.
운명의 갈림길에서 서로 갈 길을 가게 되었지만 이 중세 랜드에서 나에 대해 가장 많이 아는 존재가 있다면 바로 그녀일 것이다.
“그래. 그거야.”
“그거라니…….”
이해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의 그녀를 두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적당한 높이에서 활공하고 있는 스카이가 보인다.
“레드엑스 남작령이 무너진 자리에 성을 세웠다. 사람을 받아들이고 군대를 단련시키는 중이지. 문제가 생기거나 도망쳐야 할 일이 있으면 참고해.”
“……가려고?”
“가야지. 그럼 여기에서 그 머저리 털보 놈 얼굴까지 보겠어?”
피식 웃는 내 모습에 기사들이 발끈한다.
“이, 이 불충한! 아무리 야만인 놈이라지만 감히 폐하께……!”
“이 난장을 치고 가긴 어디 간단 말이냐!”
“포위해! 녀석이 아무리 강해도 여기에 기사가 몇인데……!”
촤촤촹!
십수 개의 검이 나를 겨눈다. 살을 찌를 듯한 살기가 느껴졌지만 우스울 뿐이다.
오크 전사나 겨우 잡을 것들이 어디다 검을 겨눈단 말인가?
<검기 발현>
확신의 검(고급)+9에 검기가 맺힌다. 그리고 빛살처럼 휘둘러진다.
카가각!
십수 개의 검날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대로 떨어진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검날에 깜짝 놀란 기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따라랑! 땅!
“…….”
“이게, 무슨…….”
“오러 블레이드…… 소드 마스터?”
“미친 소리! 그건 전설이야!”
기겁하는 기사들을 무시하고 헤이즈를 돌아본다.
“조만간 또 보게 될 거야.”
“자, 잠깐. 한. 기다…….”
쾅!
땅을 박차 하늘로 솟구친다. 단 한 걸음에 수십 미터나 뛰어오르자 하늘을 날고 있던 스카이가 날 받아 낸다.
나는 그대로 스카이를 몰아 성으로 쳐들어갔다.
삽시간에 공성을 마치고 다시 날아오른다.
‘오늘 내로 성 5개 더 먹는다!’
아직도, 고작 점심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