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rd-working billing engineer RAW novel - Chapter 85
열일하는 과금 기사 84화
전에 받은 후원에 맞먹는 수수료의 거액이 통장에 내리꽂힌다.
“잠깐, 그럼 잔액이?”
즉시 계좌를 확인한다.
자유저축 예탁금(G-뱅크 1173-5511)
1,541,543,908원.
수수료를 떼고 받은 12억의 후원금에 영화 촬영으로 받은 2억 5천의 선수금, 그리고 기존 잔고가 더해진 금액.
“그리고 주식이…….”
주식 앱에는 아무런 알림이 없었다. 즉, 자동으로 걸어 두었던 일괄 매수가 시행되지 않았다는 뜻.
빠르게 네메시스의 주식을 확인했다.
네메시스 – 3,409,500원(+57,000원)↑
폭락했던 주식이 어느 순간 다시 오르고 있었다.
“역시 떨어져도 150만 원까지는 안 떨어지는구나…… 하긴 대체재가 생겼다 해도 선두 주자인 건 여전하지.”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결심했다. 설마 여기서 다시 떨어질 리 없다.
“간다.”
[네메시스 소프트를 300주 구매하셨습니다.]10억이 살짝 넘는 돈이 일시에 빠져나간다. 단위가 달라진 계좌에 약간의 허탈감이 느껴졌지만, 이거라면 목적을 이루기에 차고 넘친다.
“그리고…… 쇼핑도 좀 하자.”
캐쉬숍에 들어가 남은 돈으로 다이아 패키지를 왕창 구매할 즈음이었다.
“야옹!”
체다가 울었다. 녀석의 코를 눌러 주자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안녕하세요, 한재연 님. 금융 감독원 중급 감독관 차상주입니다. 혹시 통화 가능하신가요?”
“아, 네…….”
이런 식의 전화를 처음 받아 봐서 절로 떨떠름한 대답이 나왔다. 젊은 여성으로 짐작되는 목소리가 친절하게 묻는다.
“질문 몇 가지만 드리겠습니다. 지금 전화 받으시는 분이 해당 번호의 주인이신 한재연 님 맞으시죠?”
“네.”
“조금 전 네메시스 소프트 주식 300주를 구입하셨습니다. 이는 누군가의 강압, 제안이 아닌 본인의 선택이신가요?”
“네.”
“빠르고 깔끔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중급 감독관 차상주였습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통화가 끝난다. 생각보다 간단한 통화에 나는 잠시 체다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잠시 인터넷 서핑을 해 보니 이 전화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나 말고도 많이들 받는 전화였다.
“큰돈이 한꺼번에 움직이면 이런 걸 확인하는군. 저 감독관인가 하는 사람은 진실신의 사제겠지.”
최근 보이스피싱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더구나 진실신이 머무는 34지구에서 사는 사람들은 거짓말에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다른 항성계나 차원에서 통신을 연결해 많은 피해자를 만들고 있었다.
삼신의 권역은 34지구뿐이고 무력적인 침략이 아니면 게임 마스터도 움직이지 않으니 생기는 빈틈을 노리는 범죄 행위!
그 연결 고리가 보통 이민자라는 걸 생각해 보면, 안 그래도 뿌리 깊은 외계 혐오에 기름을 붓는 악질들이기도 하다.
“로그인.”
아르데니아로 들어간다. 자동 수복 능력으로 원래의 형태를 되찾은 영주성은 가구 하나까지 원래의 모습을 하고 있어 침실 전체가 깔끔한 상태다.
“좋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스킬 상점이 열리길 원한다.”
[306주 → 272주]주식이 줄어들고 허공에 균열이 생겨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팟!
내 앞에 한 사내가 내려선다. 그의 머리 위에는 이런 글자가 쓰여 있다.
<스킬 북 상점>
리벤지의 NPC 중 일부는 상급 약인공지능을 이용해 ‘거의 사람처럼 보이는’ 수준의 지성을 가지고 있다. 튜토리얼 때 만났던 영웅급 NPC 소울 마스터 아케인도 사람이 직접 채팅을 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지 않았던가?
‘하지만 모든 NPC가 그럴 수는 없어. 그럴 필요도 없고.’
단가가 안 맞는다. 리전들로 인해 A.I기술에 추가 요금이 붙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겠지.
그 때문에 리벤지에선 지성이 필요하지 않은 NPC들은 정해진 대사만을 뱉어내는 자판기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역할을 수행한다. 자신의 역할이 이름을 대신하고 있는 이 사내 역시 그런 NPC 중에 하나이리라.
“어? 여긴 어디죠? 당신은 누구십니까?”
“아, 역시 이렇게 되나.”
인간이나 다름없는 반응에 쓰게 웃는다.
하기야 짐작했던 일이다.
‘몬스터들도 이랬으니까.’
제대로 된 대사 한 줄 없는 일반 등급의 고블린들도 온갖 말을 다 했다. 심지어 녀석들은 인간 여성에게 욕망을 느끼고 그들을 납치해 그 몸을 탐하기까지 했다.
게임 속 몬스터의 스크립트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물건을 사러 왔다.”
“네? 물건이요? 물건이라…….”
녀석이 버벅거리는 모습에 나는 불안감을 느꼈다.
‘아, 설마 꽝은 아니겠지?’
게임 속의 상점 주인은 현실적인 존재가 아니다. 지극히 편의주의적인 NPC.
그가 가진 스킬 북은 누가 만들어서, 혹은 획득해서 채워 놓은 매물이 아니고 문자 그대로 ‘그냥’ ‘무한히’ 판매하는 것.
그런데 녀석이 현실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진다면?
‘매물이 없는데 어떻게 팝니까?’
뭐 이딴 소리를 해 버린다면?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아, 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약간은 얼빠진 말과 함께.
띠링!
상점창이 떴다.
[판매 목록] [근접 우선 정렬]전력 베기(일반) (상점) 6,500골드.
파워 스트라이크(고급) (상점) 77,000골드.
전력질주(일반) (상점) 6,500골드,
스피드 하이(고급) (상점) 77,000골드.
견디기(일반) (상점) 6,500골드.
아이언 바디(고급) (상점) 77,000골드.
가쁜 호흡(일반) (상점) 6,500골드.
마나 리젠(고급) (상점) 77,000골드.
……
‘된다.’
나는 즉시 구매를 시작했다.
전력 베기나 파워 스트라이크, 견디기나 아이언 바디 같은 액티브부터 장검 숙련, 장궁 숙련. 스태프 숙련 같은 패시브까지.
수천 권씩 샀다.
우르르!
침실에 스킬 북이 쏟아진다. 양이 너무 많아서 인벤토리에 넣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엄청나게 구매하시는군요.”
“많이 필요해서. 좀 늦은 이야기지만…… 이름이 뭐지? 스스로에 대해 기억나는 게 있나?”
용무를 어느 정도 해결한 상태에서 묻자 멍하니 있던 사내가 인상을 찡그렸다.
“이름…… 모르겠습니다. 제가 스킬 상점 주인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요.”
‘설정이 없어서인가?’
충분한 지성과 역할을 수행할 능력이 있지만 그럼에도 과거가 없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어쩌면 배경 설정이 없는 일반 몬스터 또한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상점 주인 취소.”
“네? 제가 취소라니 무슨 말씀…….”
팟!
[272주 → 283주]사내의 모습이 사라지고 주식이 어느 정도 회복된다.
그러나 처음 가지고 있던 만큼은 아니다.
“뭐? 아니 설마…… 로그아웃!”
지구로 돌아가 주식 수를 확인한다. 다행히 현실의 주식은 그대로였다.
“깜짝이야. 하기야 저 안에 주식이 줄었다고 지구의 권리가 사라질 리는 없겠지만……. 로그인.”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지켜본다.
그리고 잠시 후.
“회복되는군…… 무슨 마나도 아니고.”
기막힌 일이었지만 적어도 주식이 날아가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기에 안심하고 다음 과정을 진행한다.
“잡화 상점을 열겠어!”
아직도 골드도, 주식도 많다.
이제, 그것들을 쓸 시간이다.
* * *
성문이 열리고 군대가 돌격한다.
그 숫자는 무려 6만!
게다가 그 엄청난 숫자의 1/3가량이 클래스 카드와 아이템으로 무장한 정예병이다.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났군.”
“이민자 중 괜찮은 신체 조건을 가진 이들 전부가 훈련소를 수료하는 족족 내려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본인을 포함한 가족들이 시민권을 얻는 가장 빠른 길이지요.”
플라워의 보고에 고개를 돌린다.
“그러면 불만이 많을 텐데?”
내 말에 플라워가 잠시 당황하더니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아닙니다. 성주님. 오히려 조건에 미달하는 아이와 노인이 죄다 와일드 보어 성의 교육대로 들어오겠다고 몰려든 상황이지요. 소드맨 교육대장은 그들을 걸러 낼 시험 기준을 만들기 위해 잠도 못 자고 있지요.”
“……다들 군대를 가고 싶어 한다고?”
“물론입니다. 성주님은 이 클래스의 힘을 너무 무시하시는군요.”
클래스 카드를 장착한다면 여리여리한 소녀가 근력으로 거한을 거꾸러트리는 게 가능하다. 재능이 부족해 마나를 깨우치지 못하던 이들이 마나를 사용하고 몸치였던 이들이 날아오는 화살을 눈으로 인식할 정도로 기민해진다.
본인조차 놀랄 정도로 압도적인 효능감. 하물며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이들은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군인은 가장 확실하게 클래스를 얻을 수 있는 길입니다. 경쟁이 치열한 게 오히려 당연하지요.”
나는 플라워를 바라보았다. 뛰어난 머리와 결단력을 가졌음에도 출신과 성별의 한계에 좌절하던 14살 소녀.
처음 봤을 때의 조그맣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느새 훤칠하게 자라, 턱도 없이 높아진 자리와 권한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고 완벽하게 적응하고 있다.
정의신도 진실신도 없는 이곳의 인간들이 얼마나 쓰레기 같은지 20년 동안 질리도록 경험해 온 나에겐 실로 기적 같은 일이다.
‘이렇게 보면…… 내가 인복은 있군.’
이 야만스런 중세 랜드에 떨어져 열 번도 넘게 배신당하고 뒤통수를 맞아 왔지만 그럼에도 남은 자들이 있다. 플라워, 스틸스톤, 소드맨 등등…….
‘어쩌면 내가 얻어 낸 최대의 성과는 영지가 아니라 그 안의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에도 플라워는 말을 이어 나가고 있다.
“성주님께서는 고향과 가족을 잃은 그들을 이끄셨습니다. 지금 저희의 세력은 온전히 성주님 홀로 일으켜 세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고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숭배에 가까운 말.
그러나 그럼에도 그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극도로 차분하다.
“전쟁에 참여해 죽을지 모른다 해도?”
“원래 저희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었습니다. 물론 성주님께서 그들에게 평온과 안전을 안겨 주셨으니 언젠가 그들의 마음도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다릅니다. 그만큼 성주님은 압도적인 명성과 경외감을 가지고 계십니다.”
보통 국가라고 한다면 위에 있는 소수가 다수를 착취하는 형태인데 비해.
나는 나, [한재연]이라는 개인이 국가 전체, 나아가 구성원 전체를 대상으로 퍼주는 형태다.
‘기형적이지.’
이게 평시였다면 온 대륙의 귀족이 다 나의 적이 되었을 것이다. 제국이든 왕국이든 연방이든 입에 거품을 물고 지랄할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겠지.
내가 영지 세금을 너무 낮춘다고 지랄하던 놈들이 기존의 귀족들 아니던가?
내 능력이 그 누구에게도 피해를 안 준다 해도, 아니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온갖 녀석들이 나를 적대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대륙 규모의 토벌군이 만들어져 나를 악마로 규정하고 해치우려 들었겠지.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러나 몬스터들로 대륙이 엉망이 된 지금, 나는 구원자가 되었다.
“알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행군하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먼 길을 걸어왔음에도 병사들의 제식은 훌륭하지만, 그래 봐야 태반이 신병이나 다를 바 없는 상황이었기에 전투력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아마도 큰 피해가 발생하겠지.’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내가 아무리 강해졌어도 혼자서 전쟁을 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혼자 던전에 들어갔다가 얼음 여왕의 암살에 실패하기라도 하면?
아무리 로그인, 로그아웃을 반복해 체력과 생명력을 회복시키며 버텨도 죽음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병사들도 성장해야 한다. 레벨적으로든 경험적으로든.’
던전을 돌며 실전에 익숙한 정예병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파티 플레이와 전쟁은 분명히 다르다.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정면으로 싸워 승리와 경험을 쌓아 가야 한다.
“카심.”
쿵!
가벼운 말과 함께 허공에서 백색의 드레이크가 나타나 땅에 내려선다. 주변을 걷고 있던 병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백룡 카심! 이렇게 가까이에서 처음 봐!”
“정말로 비늘이 눈처럼 하얗군! 눈이 부실 지경이라니…….”
“이빨 좀 봐…… 무시무시하다.”
한순간 주변 행군 속도가 느려지는 게 느껴진다. 나는 그들이 아예 멈춰 서기 전에 카심의 등 위에 올라탔다.
“다녀오십니까?”
“그래.”
그렇게 대답하고 채팅창을 연다. 내가 구매한 300주의 주식은 꽤 넉넉해서 [단체방]을 운영할 수 있다.
한재연 : 먼저 가서 인사라도 해 두겠다. 진형을 유지한 채 전진해라.
그렇게 채팅을 보내자 두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서른 명의 천인장들이 우르르 대답을 올린다.
나는 그 내용을 슥 살핀 뒤 카심을 조종했다.
콰앙!
난폭한 이륙! 이제는 녀석의 시그니처나 다름없는 모습이었기에 처음처럼 놀라 자빠지는 병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크아앙!”
가볍게 포효한 카심이 쏘아진 화살처럼 하늘로 쏘아진다.
그때였다.
팟!
“……!”
난데없이 눈앞으로 나타난 뭔가를 손으로 채 낸다. 순간 누가 투창이라도 날린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게 뭐야…… 지팡이?”
그것도 눈에 익은 디자인의 물건이었다. 마치 교통 표지판처럼 생긴 그것은.
“아니, 잠깐…… 이거 브람이 들고 있던 그 물건 아닌가? 이게 왜 여기에…….”
내가 놀라거나 말거나 하늘을 가로지르는 카심의 안장에 앉아 지팡이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런 내 눈앞으로 창 하나가 떠올랐다.
[검은 태양의 지팡이.]신의 기적을 증명하는 지팡이.
신격. 검은 태양의 계약자들에게 주어지는 이것은 추종자들의 신앙을 경외를 먹고 작동하는 대신 극히 높은 위력 보정치를 가진다.
[최상급 위압]소유자의 랭크를 1단계 다운, 다운된 랭크 이하의 [모든] 대상의 [모든] 스킬을 봉인시킨다.
[하급 제외]범위 기술에서 예외를 1명 둘 수 있다.
“…….”
가만히 설명을 읽던 난 예전 성재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실 저도 의문이에요. 말 그대로 듣도 보도 못한 성능이잖아요? 경찰 누나가 말해 줬는데 경찰에서도 결국 그 수법이 뭔지 찾아내지 못했다고 하고…….”
“이게…… 그 수단이라고? 아이템?”
그런데 아이템 설명이 너무 이질적이다. 공격력도 스텟 보정도 없이 아이템의 유래와 특수 효과만 서술해 놓은 형태.
나는 깨달았다.
“이거…… 리벤지 방식이 아닌데?”
그걸 깨닫는 순간.
“로그아웃.”
지구로 돌아가 체다의 배를 두들긴다. 결과는 금방 나왔다.
[검은 태양의 지팡이.] [특전 무기, 검은 태양의 화신으로 노멀 클리어 시 사용이 가능해진다. 위력 보정치가 S급인 주제에 힘 요구치 14, 지능 요구치 13밖에 되지 않아 언뜻 사기 무기처럼 보이지만 착용자의 랭크를 1단계 다운시킨다는 리스크가 너무 커 보스전 중심인 아크 데모닉에서는 선호되지 않는다. 고인물들이 예능용으로 주로 사용한다.PS. 굳이 활용하고자 한다면 필드 정리용 양학 무기로 쓸법하다.]
“이런, 이건.”
잠시 멍하니 화면을 보고만 있었다.
“다른 게임의…… 아이템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