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became the youngest member of Top Idol RAW novel - Chapter (54)
54화. 영상편지
모든 경연 프로그램이 그러하듯, 파이널 순위 발표식쯤 오면 데뷔조의 윤곽이 드러나기 마련이었다.
아이돌 서바이벌 n회차.
남돌 서바이벌 떡밥이라면 정말 쉬지 않고 주워 먹었던 한유영은 파이널 직전의 이 시점이 가장 살벌하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내 새끼를 데뷔시키기 위한 각종 견제와, 마지막 반격을 위해 쉬지 않고 영업글이 올라오는 시점.
“글이 또 올라왔나….”
1화부터 스타프 본방을 챙겨봤던 한유영은 스타프에 누구보다 진심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오늘도 습관적으로 즐겨보던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맘때쯤이면 꼭 올라오는 그거.
각자 자신의 희망 데뷔조 라인업을 떠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현시점 내가 원하는 데뷔조]도서한
하준서
서하임
진세현
서이안
최한
이도경
이렇게 일곱 반박은 안 받음
-스타프 일곱 명 데뷔하는 거 확정이야?
└응 시작할 때부터 못 박았어
└ㅅㅂ 일곱이라니… 말도 안 돼 TBN아 모른 척해줄 테니까 아홉 명으로 수정해줘 ㅠㅠ
└스타프 처음 시작할 때의 나: 어떻게 저 중에서 일곱 명이나 고르냐 ㅋㅋ
지금의 나: 제발 한 명만 더…
└이거 나다
└22222222
-나랑 픽이 똑같은 사람 처음 본당 제발 이렇게 데뷔하자 얘들아
└미친 나도 ㅠㅠ 이러면 뵤서한 최한 막내즈 케미 볼 수 있는 건가?
└케미? 둘은 안 친해보이던데 ㅋㅋㅋㅋ
└반박은 안 받는다고 본문에 말해뒀잖니 ^^
└ㅋㅋ눈치 챙겨
-최한 이도경 빼고 강시우 받음
└강시우 222222
└제발 우리 시우 데뷔시켜 주세요
└여기 완전 정병존이라서 미쳐버릴 것 같음
└현실적으로 강시우 데뷔는 좀…힘들지 않을까
└최한 이도경 강시우 셋 다 순위가 정병존이야
└강시우 코어는 쎄잖아
└코어팬만 쎄잖아 ㅎㅎ
└피디새끼가 분량 안줘서 우리애 존재감이 없어요 ㅠㅠ 건드려 무대도 완전 귀엽게 찢어놨는데
-근데 TBN 서바 특 잘 가다가 꼭 순위 대폭 뒤집힘
└들었지? 뵤서한 팬들아 절대 방심하지 마라 파이널은 무조건 최애임 ㄱㄱ
└내 최애 순위 높다고 방심하지마 ㅠㅠ 그렇게 차애 뽑다간 네 최애 데뷔 못한다
└이건 ㄹㅇ이다
└파이널 라이브 보고 입틀막한 게 한 두 번이 아냐 최우진 떨어질 줄 누가 알았냐고…
그 아래로 예상 데뷔조 명단 글이 주르륵 올라오며 열띤 토론의 장을 열었다.
여기까진 이맘때쯤 늘 올라오는 글이니 그렇다 쳐.
꼭 이런 특이한 글도 하나씩 올라오더라.
[우리 할머니가 무당이라서 내가 신기가 좀 있는데]데뷔조는 하준서 도서한 진세현 서하임 서이안 차성빈 강시우야
다들 미리 성지순례 하렴
-성지순례 왔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리 서지 말라고
└성지순례 왔습니다 우리 시우 데뷔시켜주세요
└말랑순두부 데뷔시켜 주세요
└데뷔조 명단에 햄스터 한 마리 올라갑니다
└준서야 데뷔 축하해
-하다하다 신기 빌런까지…
-이거 맞추면 넌 돗자리 깔아라
└예약이 줄설듯 ㅋㅋㅋㅋㅋㅋ
쯧.
한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짧게 혀를 찼다.
“자기가 원하는 픽을 줄줄이 늘어놨네….”
저런 망상글이 하루 이틀 올라오는 게 아니다.
더 이상 구미가 당기는 글이 없었던 한유영은 스크롤을 휙휙 넘기다가 인터넷 창을 닫아버렸다.
바로 그때.
띠링-
그녀가 구독해 둔 TBN 공식 채널의 알람이 울리고,
한유영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뭐야, 이거.”
어그로 가득한 제목의 예고편 영상이 올라왔다.
[스타프 파이널 미리보기] 연습생들이 무대 직전 울게 된 상황은?보나 마나 파이널 직전 팬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영상이 분명했다.
“가족들의 영상편지?”
하물며 수십 번은 본 듯한 TBN 서바이벌 프로의 익숙한 레파토리라니. 그녀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아, TBN 감 다 잃었냐.”
언제 적 감성팔이야.
하도 사골처럼 우려먹어서 이제 이런 건 먹히지도 않는다고.
한유영은 나직이 투덜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별 감흥 없이 영상을 클릭했을 뿐인데….
“……!”
한유영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 * *
지난 순위 발표식을 거치고 나니 남은 인원은 고작 열둘이었다.
원래도 꽤나 휑했던 스튜디오가 오늘따라 유독 허전해 보였다.
우리는 허전해진 공간을 말소리로 채우며 스튜디오 안에 들어섰다.
“와, 여기를 또 오네요.”
“오늘 여기 왜 모인 거예요?”
“진짜 영화 보기 딱 좋은 의자네.”
콘셉트 평가 당시에 한 번 왔던 스튜디오.
푹신한 영화관 의자를 본 연습생들의 입에서 감탄이 튀어나왔다.
서하임은 하이 텐션의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파이널 곡 들려주려나?”
“그러게요.”
지난번에 여기에서 콘셉트 평가 곡을 선공개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했다.
그러나 스타프 2회차, 나는 여기서 무슨 콘텐츠를 할지 알고 있었다.
십여 년째 서바이벌 프로에서 유구하게 먹히는 콘텐츠.
바로….
가족들의 영상편지였다.
“뭐야.”
번쩍.
커다란 스크린에 불이 켜졌다.
당연히 MC 한다원이 뒷문에서 등장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던 연습생들은 일제히 놀란 눈이 되었다.
MC 한다원도, 파이널 곡의 작곡가도 아닌.
어쩐지 누군가를 닮은 듯한 한 여자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자의 음성이 스튜디오를 울렸다.
[서하임.]“뭐야, 우리 누나야!”
서하임은 기겁하며 제자리에서 폴짝 뛰었다.
나는 나대로 놀라서 스크린을 돌아보았다.
서하임을 닮은 둥글둥글한 얼굴이지만 그 눈빛에서는 묘하게 호락호락하지 않음이 느껴지는 강단 있는 분위기가 느껴진다.
나이 차가 꽤 나는 모양인지,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 정도 되어 보이는 나이였다.
그러니까.
저분이… 서초코 씨?
“와, 누나셔?”
“대박…. 너랑 진짜 닮았다.”
“그런 말 하지 마!”
우리들 사이에서는 그 이름만으로 이미 유명인사였다.
하준서는 극존칭으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서초코 님…?”
사람 이름 가지고 놀리면 안 되는데.
인간적으로 초코 씨는 진짜…좀 놀라워.
범상치 않은 이름과는 다르게,
서초코 씨는 달달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음성으로 운을 떼었다.
[하임아, 어느덧 파이널이네.] [네가 이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알고 있어.]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서초코 씨, 혹시 대본을 읽고 계신가요?
제작진도 엔간하면 감동적인 bgm 깔아주면서 당사자가 눈물 흘리는 장면을 뽑아보려 할 텐데….
저 초점 없는 눈빛과.
진심이 1프로도 실리지 않은 것 같은 무미건조한 목소리.
설상가상으로 하나하나 주옥같은 멘트까지.
[누나는 항상 너를 응원한다.] [파이팅!]심지어 너무 억지로 시킨 것 같은 멘트들이라, 모니터 뒤로 얼굴이 썩어가는 게 보였다.
서초코 씨는 자신과의 싸움을 감내하고 있었다.
“푸흡.”
“미안해, 너무 웃겨서.”
“아, 미치겠다.”
하준서는 앞으로 고꾸라져서는 정신없이 웃어댔다.
서하임은 시뻘게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저 정도면… 멘트 따오라고 협박한 거 아니에요?”
“누나가 진심을 다해서 준비한 영상편지라잖아.”
“영혼이 없는데요? 아니, 사람이…눈빛이 탁해.”
눈빛이 탁하단다.
“쿨럭.”
이번에는 나도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다음으로 이어진 영상편지들은 정상적이었다는 것이다.
서초코 씨의 화려한 스타트 이후로, 하준서의 부모님이 스크린에 등장했다.
하준서를 똑 닮은 푸근한 인상의 두 분이었다.
타지에 나와서 몸고생 마음고생 하는 동안, 가장 보고 싶어지는 건 가족일 수밖에.
여기서부터는 다른 연습생들도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준서야, 고생이 많았지?]하필이면 마음고생이 가장 심했던 3차 순위 선발식 직후였기 때문에,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평상시엔 잘 울지 않던 하준서의 눈시울도 이내 붉어졌다.
“스읍…하…. 괜히 뭉클해지네….”
[충분히 잘하고 있으니까,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고. 항상 응원해, 아들.]하준서는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환하게 웃었다.
“네, 열심히 할게요!”
그 뒤로는 다른 연습생들을 위한 영상편지가 이어졌다.
하준서처럼 눈물을 삼키는 경우도 있었지만, 서이안은 거의 두 눈이 새빨개져서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이고, 형 괜찮아요?”
아마도 지금 이 순간.
2차 순위 선발식 끝나고 쏟아졌던 악플부터, 지난 순위 선발식에서 탈락할까봐 가슴을 졸인 일까지.
그간의 다사다난한 역경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가족이란 그런 거니까.
지치고 힘들 때,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그런 존재니까.
나는 우느라 어깨를 들썩이는 서이안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바로 그때였다.
[서한아.]갑자기 내 이름이 불렸다.
* * *
내 기억이 맞다면, 내게 영상편지를 보내온 것은 부모님이었다.
3차 순위 선발식을 간당간당한 성적으로 살아남았던 나는 당시 꽤나 마음이 약해져 있는 상태였고, 서이안만큼은 아니었어도 솔직히 조금 울었었다.
그땐 지금보다 더 어렸고, 죽어라 힘들었었으니까.
헌데.
보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부모님의 영상편지는 어디로 가고.
[서한아, 형이야.]왜 저 인간이?
입가에 걸려 있던 흐뭇한 미소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진세현은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서한아, 너네 형이야?”
“나이 차가 엄청 날 것 같은데…?”
“네, 저 형 있어요.”
“아, 맞다.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열 살 차이 나는 형이 있긴 하지.
친하냐고 묻는다면, 딱히 친하지는 않았다.
나이 차도 꽤 날뿐더러, 어려서부터 형은 조금 어려운 존재였다고 해야 할까.
머리 좋은 걸로는 나도 어디 가서 밀리는 편은 아니었다만, 형은 클라스가 달랐다.
날 때부터 천재였으니까.
한국대 언론정보학과 수석 졸업에 방송 PD 합격 프리패스.
지금은 SBC의 예능국에 취직해서 피디 일을 시작한 시점이었다.
먼 훗날, 이도연 기자의 말을 빌리자면 신입 때부터 소문이 날 정도로 유능했다고 했다.
앞자리의 이도경은 능글맞게 웃으며 자연스레 멘트를 얹었다.
“형님 인상이 되게 좋으시다.”
하하.
너네 누나 전 남친이야.
나는 속에 있는 말을 삼키며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형이 착하죠.”
비주얼, 학벌, 일머리까지 그 어느 하나 빼놓지 않고 갖고 있던 형이 딱 하나 가지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인성이었다.
그러니까, 이 상황 자체가 나에게는 몹시 이질적이란 말이다.
원래라면 바쁘다고 이런 영상편지 제안 따위는 단번에 거절했을 인간인데.
대체 왜.
어울리지도 않는 영상편지에 출연한 걸까.
내 동공이 흔들리건 말건, 담담한 목소리가 입을 열었다.
실로 뜬금없는 한마디였다.
[콘셉트 평가 무대 봤어.]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형에게 한 번도 인정을 받아본 적 없었다.
일부로 인정을 안 하려 했다기보다는, 예능 PD로서 내가 정말 눈에 차지 않은 걸 테지만.
어쨌든 내게 이쪽으로의 재능은 없다고 판단했던 것 같았다.
때문에 아이돌의 꿈을 접고 수능 준비를 시작했을 때도,
‘차라리 그 길이 낫다. 잘 생각했네.’
그렇게 잔인하고, 무덤덤하게 내게 말했던 형이었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이.
여느 때처럼 무미건조한 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네가 춤추는 거, 노래하는 거. 처음 봤는데….] [잘하더라.]형이 피식 웃으며 덧붙였다.
[너 아이돌 해도 되겠다, 서한아.]별것 아닌 말이 순간 왜 마음이 울렸을까.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형에게 받은 인정이었다.
“…….”
갑작스레 훅 들어온 한마디에 눈물이 툭 떨어졌다.
하준서가 당황한 얼굴로 다급히 물었다.
“서한아, 너 울어?”
“아뇨…. 안 울었는데요….”
나는 고개를 저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안 울었어요. 그냥 눈에 먼지가 좀 들어갔나?”
“눈물이 흐르는데…?”
“서한아, 울 수도 있지~.”
아닌 줄 알았는데.
나, 인정받고 싶었구나.
* * *
멤버들의 영상편지로 잠시나마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지만,
서바이벌은 늘 그렇듯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 법이다.
-이제 슬슬 공개할 때 됐는데….
-이게 파이널 직전 마지막 공개지?
-내 새끼 순위 올랐을까 ㅠㅠ 벌써부터 긴장돼 미치겠다
-이러면 나 파이널 떨려서 못 봐….
팬들의 간절한 기다림에 보답하듯,
다음날, 제작진은 실시간 투표 순위를 공개했다.
그리고.
커뮤니티에는 하나의 글이 올라왔다.
[시발 순위가 이게 말이 되냐?]순위의 대격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