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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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전철을 밟지 않는 법
* * *
띡.띡.띡.띡.띠릭-
늦은 밤.
집에 아무리 조용히 들어오려고 해도 현관문 번호키 누르는 소리 만큼은 어쩔 수 없다.
래원은 오늘도 촬영 때문에 래미의 잠든 얼굴을 볼 수밖에 없었다.
모든 드라마 현장이 그렇듯 의 촬영 일정 역시 빠듯했다.
그래도 주 52시간제 근무가 정착됐고, 래원 자신도 이전의 삶보다 여러모로 빠릿빠릿해진 덕에 다행히 잠 잘 시간이 부족하진 않았다.
래원은 자기 전에 노트북을 켰다.
요 며칠째 틈틈이 하고 있는 일이다.
의 1화에서 4화.
파인 컷팅(Fine Cutting)까지 모두 끝낸 소스를 받아다가 이리저리 편집하고 있다.
하이라이트 티저 영상을 만드는 중이다.
하이라이트 예고편 혹은 티저.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프레스에 공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출부에서 만드는 5~10분 내외의 홍보 영상이다.
시청자들에게도 온라인으로 공개된다.
이 하이라이트 편집은 황태수 감독이 하인혁 조연출에게 일임한 일이지만, 래원 역시 지금 이것을 만들고 있다.
래원이 지금 이렇게 시간을 쪼개 쓰면서까지 선배들이 시키지도 않은 하이라이트 영상을 만들고 있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과거, 의 제작 발표회에서는 하이라이트 예고편이 나가지 못했다.
그때도 1번 조연출인 하인혁이 영상을 준비했지만, 모종의 사고로 프레스 앞에서 틀지 못했던 것.
그 사고는 당시 SBC 전산망을 강타했던 문제의 랜섬웨어 때문이었다.
예능국에서 시작되어 인트라넷을 타고 하인혁의 노트북까지 망가뜨렸던 무시무시한 바이러스 덕에, 팀은 제발회 때부터 언론에 혹독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그때 래원에게는 강 건너 불구경에 불과했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래원 역시 팀의 일원이었고, 조연출로 첫발을 디디는 작품이기도 했다.
래원이 이 팀에 들어온 이상,
과거와 같은 전철을 밟을 수는 없다.
절대로.
랜섬웨어 바이러스를 막을 만큼의 능력은 안 되지만, 지금의 래원에게는 예비 영상을 하나 만들어 둘 수 있는 편집 실력과 연출력이 있다.
황태수 선배나 직속 사수인 하인혁과 이 정보를 공유할까도 잠시 생각했으나, 금방 접었다.
‘그땐 소속팀 없이 내근만 하던 내가, 지금처럼 이번 신입 중에 제일 촉망받는 조연출이 됐다는 건···. 꼭 모든 게 과거랑 똑같이 흘러가지만은 않는단 뜻이잖아.’
그렇다. 랜섬웨어 역시, 래원이 모르는 어떤 연유에서건 아무 피해 없이 지나갈 수도 있다.
그러니 아무리 지금의 래원에게 제작 발표회가 중요하다고 한들,
‘미래에 랜섬웨어로 하인혁 선배의 하이라이트 영상이 뻑날 거니까 제가 예비 영상을 따로 만들어 두겠습니다!’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하인혁인데, 내가 왜?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그의 위기가 래원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대한의 대비는, 이 예비 하이라이트 티저를 잘 만들어 두는 것뿐이야.”
노트북 위에서 래원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 * *
SBC의 어느 종합 편집실.
“디졸브, 음악 프레임 인.”
래원은 홀로 한껏 집중해서 파인 컷팅(Fine Cutting) 중이었다.
모니터에 그간 틈틈이 가편집해온 하이라이트 영상이 띄워져 있었다.
“여기가 아직 아쉬운데···. 기대감과 텐션을 좀 더 극대화하려면···.”
진지하게 고민하는 래원의 미간 사이에 주름이 잡히기 시작했다.
“앞뒤로 한 프레임씩만 더 자르자.”
똑똑똑-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
뒤를 돌아 문을 보니,
“아, 퇴근하다가 여기 오빠 있는 거 보고 오랜만에 반가워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더라구.”
지혜영이었다.
들어와서 래원에게 내민 그녀의 손에, 캔커피 하나가 들려있었다.
“잘 마실게. 안 그래도 계속 하품 나오던 참이었어.”
“방해된 건 아니지?”
“그럼. 전혀. 퇴근 안 급하면 잠깐 앉았다 가.”
지혜영은 기다렸다는 듯 의자를 꺼내 래원의 앞에 자리했다.
“근데 혜영아, 너 뭔가 바뀐 거 같다?”
“오오! 정말?”
“어. 분위기가 뭔가···.”
“오빠 눈썰미 끝내준다! 사실···”
“말하지 말아봐. 내가 맞춰볼게.”
래원이 숨은그림찾기라도 하듯 지혜영을 빤히 쳐다보자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붉게 물들었다.
“머리! 앞머리 생겼네?”
“정답.”
“그리고 단발머리도 살짝 더 짧아졌는데?”
“딩동댕! 와아, 다른 드라마국 남자들 앞머리 자른 건 알아봤어도, 단발 커트한 거 알아본 건 오빠가 처음이야!”
지혜영은 쑥스럽게 웃으며 감탄사를 내뱉다가, 이내 입을 삐죽이며 볼멘소리가 된다.
“오빤 사람도 잘 챙겨, 관찰력도 좋아···. 감독하기에 좋은 건 다 가졌네, 다 가졌어. 세상 참 불공평해.”
“하하. 그 정도는 아냐, 그냥 여동생이랑 같이 살아서 그래. 동생한테 꼬집힘 안 당하려면 눈썰미가 좋아야 하거든.”
래원은 캔커피를 따서 벌컥벌컥 마셨다.
“오빠네 첫 방 이제 얼마 안 남았네?”
“어. 그 전에 제발회라는 큰 산도 하나 있고. 엘리트 팀도 곧 촬영 들어가지?”
“응응. 드디어 다음 주에 상견례랑 대본 리딩해.”
“조연출 일은 할 만해?”
“실수투성이라 많이 혼나면서 배워.”
“너희 연출이 좀 빡세긴 하지···.”
“응, 완전! 어? 근데 오빠가 어떻게 알아? 벌써 그 팀에까지 소문났어?”
“어? 어어. 유명하더라고. 너희 팀 선배.”
“그렇지? 에휴,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현장 나가면 난 이제 죽었어.”
도래원은 울상이 된 지혜영에게 씨익 웃어보였다.
“너무 미리부터 걱정하지 마. 넌 잘 적응할 거니까.”
이전의 삶에서 분명 그랬다.
지혜영은 야무진 데다가 끈기도 꽤 있는 친구였다.
“너무 힘들 땐 전화하고. 우리 일 안 바쁠 땐 짬 내서 받을 수 있어.”
“정말 그래도 돼? 말만으로도 벌써 엄청 든든한데?”
“내가 너보다 조연출 선배잖아.”
“응?”
“촬영 현장에 두 달 먼저 나와 있으니까.”
“하하. 그거 말 되네. 도래원 선배님.”
지혜영의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들렸다.
래원도 덩달아 허리를 펴고 웃었다.
“이제 가야겠다. 내가 오빠 시간 너무 뺏었네. 하던 일 마저 해.”
“나두 오랜만에 너 봐서 좋았어. 잘 가라.”
지혜영은 래원에게 손을 흔들며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한동안 문 앞을 떠나지 못하고, 유리문 건너 도래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때. 최지철 부장이 멀찍이서 지혜영을 발견하고는 그녀를 불렀다.
“지혜영이, 퇴근 안 하고 거기서 뭐 해?”
“아···. 지금 가려고요.”
자신의 쪽으로 다가오는 최지철 부장의 모습에,
지혜영은 놀라며 꾸벅 인사를 하고는 편집실 복도를 빠져나갔다.
“가보겠습니다.”
“어, 그래. 수고했어.”
지혜영이 간 후,
최지철은 그녀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문으로 걸어가 보았다.
그녀가 유심히 보던 게 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지혜영이 보던 그 유리문 너머에 의외의 인물이 있었다.
‘도래원? 쟤 오늘 오프 아냐?’
최지철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입술을 일자로 오므리다가, 다시 드라마국 사무실로 발길을 돌렸다.
“막내 혼자 편집실? 황 감독이 벌써 막내 조연출한테 편집을 시켰을 리는 없고···.”
최지철 CP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드라마국에 들어서는 것을, 황태수가 먼저 발견했다.
“부장님, 아직 퇴근 안 하셨네요?”
“이제 슬슬 가야지. 근데 태수야.”
“예?”
“너네 팀 조연출 애들 오늘 오프 아니냐?”
“오프죠.”
“뭐지···?”
“뭐가요?”
“신입 도래원. 편집실에 틀어박혀 있던데?”
“도래원이요?”
“어. 너 들어온 지 100일도 안 된 애한테 편집 맡겼냐? 너무 빡세게 굴리는 거 아니냐?”
“하하. 그럴 리가요.”
“나 속일 생각 하지말어라. 내가 똑똑히 봤어. 청춘 런웨이 종편하고 있는 거. 예고편인지 하이라이트인지···.”
황태수는 최지철 부장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그 길로 편집실로 향했다.
직접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지철이 형님이 잘못 본 거겠지. 도래원은 어제 밤샘 촬영해서 지금 자고 있을 시간인데, 웬 편집실?’
황태수는 복도를 거닐며 각 방문에 달린 유리창으로 각 편집실의 안쪽을 살펴보았다.
서너 방쯤 지났을까.
정말로 도래원이 있었다.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골똘히 고민에 잠긴 모습.
황태수는 화면에 나오는 편집 영상과 도래원을 지그시 지켜보다가,
‘뭐야? 지철이 형 말이 맞잖아···. 저건 우리 1부인데? 도래원이 저걸 왜···?’
래원이 편집 중인 영상.
여주 한나은과 남주 정건후가 당당한 눈빛과 워킹으로 나란히 런웨이를 거니는 장면에서,
순간 화면이 분할된다.
‘1부에서 갑자기 저렇게 화면이 튄다고···? 저 새끼 뭘 편집하는 거지?’
분할 된 두 개의 화면에
한나은과 정건후의 사연이 담긴 장면이 대조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건 인혁이가 보여준 하이라이트에도 없던 컷인데···. 인혁이가 시킨 건 아닌 거 같고···.’
한쪽 분할 화면에는 한나은이 등장한다.
일명 다이아몬드 수저인 그녀가, 패션계 거물인 부모님 앞에서 까탈을 부리는 씬.
뒤이어, 혼자 어두운 방에 틀어박혀 우는 컷이 이어진다.
‘게다가 정건후 저 씬은 지난 주에 찍은 4부잖아. 1부에서 4부로 튀는 편집이라고?’
황태수가 보고 있는 대로 반대쪽 분할 화면에는, 정건후가 씩씩하게 모델 학원을 청소하는 장면. 그러다가 문 너머로 몰래 강습생들의 워킹을 구경하는 장면이 나왔다.
이어진 컷은 한밤중 아무도 없는 어두운 복도.
낮에 청소하며 보던 워킹 박자를 연습하는 정건후가 등장한다.
그의 얼굴의 클로즈업 되고, 반복된 워킹 연습에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것 같다.
한나은이 우는 장면과 나란히 분할되어 나오며 두 인물의 캐릭터 차이와, 처한 상황 차이를 확실하게 각인시켜준다.
황태수는 좀 더 지켜보다가 불현듯 깨달았다.
‘이건 분명 하이라이트 예고야.
근데 퀄리티가··· 도래원 이 새끼, 제법인데?’
황태수는 편집실 유리창 너머로 마주한 놀라운 광경에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도래원의 손은 여러 편집 버튼 사이를 능수능란하게 오가고 있었고,
며칠 전 하인혁이 보낸 하이라이트 가편집본에 견주어도 결코 뒤처지지 않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황태수는 자기도 모르게 편집실 문을 열고는 스르륵 빨려 들어가듯 걸어 들어갔다.
도래원은 헤드셋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인기척을 느끼지 못한 듯했다.
황태수는 뒤에 한참을 그대로 조용히 서서 래원의 손놀림과 영상을 감상했다.
‘이 정도면···. 메이킹 영상 정도는 당장 도래원한테 맡겨도 되겠어.’
편집을 다 끝낸 듯한 도래원이 기지개를 피면서 깊은숨을 몰아 내쉬었다.
화면은 블랙이었다.
“읏차. 하아···.”
래원이 헤드셋을 빼고 벌떡 일어나 뒤를 돌자,
“선배님···?”
황태수가 서 있었다.
래원은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속으로는 안도했다.
‘황 선배가 종편실에 있는 나를, 오늘까지 못 발견하면. 카톡으로 직접 편집 관련 질문이라도 해서 떡밥을 던져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럴 필요까진 없겠어.’
하늘도 래원의 편을 드는 듯 아귀가 딱딱 맞아들어갔다.
“너.. 지금 뭐하냐?”
황태수가 래원에게, 앞뒤 다 자른 짧은 질문을 툭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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