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04
래원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갈지 이미 알고 있었기에 드라마를 감상하는 듯이 편안한 얼굴이었다.
‘물론 이전 생에서와 100% 똑같이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지만, 현재 정황상 큰 이변은 없을 것 같은데?’
래원의 이러한 생각을 대변해주듯이,
배미란이 다시 입을 열었다.
“황 부장이 차기 국장 자리에 앉는 그림말이야.”
“···네? 제가요?”
황태수는 반 정도는 예상한 듯한 눈치였지만, 놀라는 척 반문했다.
“우리가 예전에 세웠던 계획보다 많이 앞당겨지긴 했지만, 지금 상황에 못 할 것도 없잖아.”
“··· 사장님께서 그리 말씀해주신다면,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그래. 나는 이번에 황 부장을 꼭 국장 자리에 앉힐 거야. 드라마국을 위해 내 나름대로 사활을 걸 거라는 말이야. 고 부사장이나 박 감사하는 개짓거리를 더는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말이지···.”
배미란의 말속에 등장한, SBC ‘고 부사장’과 ‘박 감사’.
그들은 배 사장의 지시에 자주 반기를 드는 두 인물이었다.
SBC의 여러 부서 중 핵심은 단연 드라마국이었다.
광고주들이 가장 몰리는 곳이기 때문에 수익 대부분을 창출하는 곳이었으니까.
따라서 임원진과 이사진이 항상 높은 관심을 보이는 곳도 드라마국이었다.
[고 부사장]의 드라마국 라인은,김 부국장 – 최지철 부장 – 변덕규 그리고 하인혁으로 이어져 있었다.
이들은 지금 몸을 사리는 척하고 있지만
이번 드라마국 국장 선거를 이용해 반등을 노리려는 세력이다.
또한, [박 감사]의 드라마국 라인은
이 국장 – 문겸 부장 – 임장호 등등 까지 뻗어있었다.
그간 이 국장의 임기 내내 활개를 떨치던 세력이었더랬다.
그 때문에, 배미란 사장의 처지에서는 눈엣가시와도 같았다.
그녀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드라마국을 우리 쪽으로 돌려야 해. 요즘 이사회나 임원진들 분위기를 생각하면 최적기야.”
“조용히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황 부장 승진 이후로 계속 근평이랑 성과가 괜찮았으니 충분히 승산 있다고. 내가 이사진들한테 꾸준히 자네에 대한 미담을 뿌리 둔 것도 있고. 다음 달 사내 소식지에 자네 인터뷰도 싣기로 했으니까···.”
“네, 그것도 차질없이 준비하겠습니다.”
“도 피디도 황 부장이 선출될 수 있게, 동기나 주변에 신경 좀 쓰라고.”
“그럼요, 여부가 있나요.”
래원은 배 사장과 황태수를 향해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난 삶에서는 나에게 악재로 작용했던 황태수 선배의 초고속 국장 승진.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잖아?’
만약 이번에도 황태수가 차기 국장 자리에 앉는다면,
래원의 커리어에 금빛 날개가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 * *
같은 시각, 윤지협 PD의 집.
윤지협은 건강 검진 결과지를 보고 있었다.
그의 손이 덜덜덜 떨렸다.
– – –
MRI 및 혈액 검사 결과 복막 부위에 비특이적 의증 소견을 보여 조직 검사를 시행했습니다.
* 임상 진단명 : Peritoneal Carcinoma
치료를 위해 속히 내원하시어 소화기 외과 전문의 진료를 권고드립니다.
– – –
Peritoneal Carcinoma.
휴대폰으로 검색해보니 ‘복막암’이었다.
순간, 윤지협의 시야가 하얗게 변하고 귀가 멍해졌다.
“아빠아아! 아빠아아?”
“당신, 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고 있어? 애가 부르는 것도 못 들을 만큼.”
“어..어? 별거 아냐, 그냥 대본이랑 스케줄.”
어린 아들과 아내에게 아무렇지 않게 웃어 보이며 둘러댔지만,
윤지협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읏차!”
윤지협은 놀아달라고 양손을 뻗으며 달려오는 아들을 들어 올렸다.
“우아아아아! 아빠 최고!”
신나게 비행기를 태워주며,
윤지협의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고,
‘내일 당장 병원에 가서 치료받으면 돼. 별일 없을 거야···.’
지금 윤지협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 그리고 한 드라마의 메인 PD로서 침착하려 애쓰는 중이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이성적인 판단이 필요해. 모두를 지키기 위해, 를 나 대신 잘 마무리 해 줄 사람···.’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02화 – 리디북스
* * *
서울에서 가장 큰 의학 도서관.
[유진]의 몸속에 살고 있는 [요한]은,지금 구치소에 갇힌 자기 육체의 누명을 벗기고자
그리고, 동생과 영혼이 바뀐 이 기이한 현상을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이곳을 뒤지는 중이다.
의학 논문과 각종 의학 서적을 찾아보다가, 한 권의 책을 발견한다.
「죽음 그 후의 증거
(Evidence of the Afterlife)」
“저자, 미국 루이지애나 방사선 의학과 전문의 제프리 롱(Jeffrey Long)?”
[유진(요한)], 침을 꼴깍 삼키며 이 책의 목차를 펼친다.“유체이탈 현상의 사례 검증.. 이라고?”
유진(요한), 흥분한 얼굴이 되더니 재빨리 해당 페이지로 넘긴다.
「 제인/제시카 쌍둥이 자매는 하나의 탯줄을 공유하고 태어난 사이였다. 그만큼 영적으로 긴밀했던 것으로 보인다. 교통사고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함께 유체이탈을 경험한 둘은, 병원 중환자실에서 다시 깨어나는 과정 중에 서로 영혼이 바뀌는 믿지 못할 일을 경험했다. 」
“우리랑 비슷한 사례잖아?!”
「 그렇게 영혼이 바뀐 채로 삶을 이어가던 자매는, 2년 후 산악 등반을 하다가 함께 조난 당하며 또 한 번의 생사의 고비를 넘기게 됐다. 죽음에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살아난 둘의 영혼은 놀랍게도 다시 원상태로 돌아왔다. 」
“··· 뭐야, 그럼 다시 유진이랑 같이 뛰어내리기라도 하라는 건가? 죽지 않게 기적을 바라면서?”
유진(요한), 한동안 멍하니 책을 응시하다가,
뭔가를 결심한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
.
“컷! 모건아, 표정 너무 좋다. 지금 그대로 한 번만 다시 가보자!”
래원은 한껏 집중한 채로 다시 ‘레디, 액션!’을 외쳤다.
이 모습을 먼발치에서, 도서관 입구에 서서 지켜보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윤지협이었다.
‘선배들한테 하는 거랑 완전 다르네, 도래원? 메가폰 잡았을 때는 카리스마 작렬인데?’
윤지협의 얼굴에는 흐뭇함과 씁쓸함이 반반씩 어려있었다.
그는 지금 병원 진료를 받고 오는 길이었다.
‘지금 윤지협 환자분 상태는··· 예후가 좋지 않습니다. 이미 복막으로 여러 군데 전이됐고, 위치 자체가 수술하기 까다로운 곳이라···. 현재로서는 항암 약물 치료가 최선입니다. 6개월 이상 주기적으로 내원하셔야 하고요, 표적 치료와 면역 항암 치료를 추천해 드립니다. 스트레스받거나 무리하는 일은 당분간 삼가시고, 치료에만 전념하시는 것을 적극 권장합니다.’
아까 진료실에서 들었던 전문의의 말이 윤지협의 귓가에 계속해서 윙윙 맴돌았다.
윤지협은 도래원의 촬영을 지켜보며 낮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윽고,
래원이 다시 한번 찰지게 ‘컷!’을 외쳤다.
“좋습니다! 모건이는 책 인서트랑 나레이션 따고 한 번 더 가볼게. 다음 테이크는 조금 다른 스탠스로! 더 [요한]이스럽게 본색을 드러내서 대사 치면···.”
래원이 디렉팅하는 와중에,
어찌 된 일인지 스텝들이 웅성웅성댔다.
그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어? 윤 감독님 아냐?”
“뭐지? 오늘 A팀 촬영 없잖아?”
“온다는 연락도 딱히 없으셨는데···.”
“윤지협 감독님이 여긴 왜···?”
윤지협 선배가 래원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래원 역시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윤지협을 쳐다보았다.
“윤 선배? 어쩐 일이세요?”
요즘처럼 일정이 한창 바쁠 때 메인 감독이 굳이 B팀 촬영장에 올 이유는 없다.
매우 드문 일에 현장 스텝들과 배우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윤지협 역시 이 같은 분위기를 읽은 듯 표정을 바꾸어 화색 도는 얼굴로 래원에게 대답했다.
“근처 왔다가 우리 래원이랑 저녁이나 같이할까 하고 들렀지. 촬영 곧 끝나지?”
“네, 이번 장면만 마무리하면요.”
“네가 나보다 낫다, 래원아.”
“네?”
“이번 드라마 나랑 같이 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하핫. 선배도 새삼스럽게···.”
불현듯, 윤지협이 래원을 팍 끌어안더니 래원의 등을 팡팡 두드려주었다.
“진심이야. 네 덕분에 내가 마음이 놓인다.”
이에 스텝들과 배우들의 머리에 가득 떠올랐던 물음표가 점차 느낌표로 바뀌고 있었다.
‘윤 감독님이 도 감독님 엄청 아끼나 보네.’
‘두 분 사이가 이렇게 돈독했구나. 보기 좋다.’
영문을 모르는 래원은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들어 윤지협을 바라보았고,
그의 눈을 통해서 그가 지금 이러는 이유를 어렴풋하게 알 것만 같았다.
“이제 나 신경 쓰지 말고 촬영 마저들 하세요.”
윤지협은 다시 멀찍이 떨어지며 도서관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래원이 모두에게 외쳤다.
“다음 테이크 바로 갈게요!”
윤지협은 래원에게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병증을 알릴까 고민하다가,
결국 직접 촬영장에 찾아온 것이었다.
래원의 능력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야 안심하고 미련 없이 물러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지금 윤지협에게는,
말 많은 이 동네에서 괜한 소문이 날 염려를 미연에 불식시키려는 의도도 있었다.
‘내 병을 동네방네 알리기는 싫은데. 그렇다고 내가 아무 액션도 없이 그냥 래원이한테 메인 감독 자리 내주고 휴직하면, 남들이 래원이를 안 좋게 볼 게 뻔하니까.’
이것이 자신이 떠난 빈자리에 남겨질 래원과, 이 드라마를 위한, 윤지협 나름의 최선이었다.
* * *
“선배, 술 마시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래원이 윤지협의 소주잔을 빼앗으며 물었다.
“아우, 그냥 좀 마시게 해줘.”
“건강 검진 결과는 언제 나와요?”
그러자 윤지협이 래원의 손에서 다시 소주 잔을 낚아챘다.
“오늘은 원 없이 마실 거야. 앞으로 계속 못 먹을 거니까···.”
“···? 그게 무슨 말이에요?”
“오늘 너 촬영하는 거 보니까 믿고 맡길 수 있을 거 같다. 도래원 너라서!”
“무슨 말이냐고요!”
“래원아, 네가 메인 감독해라.”
“······.”
이에 래원이 말없이 윤지협의 소주 잔을 채워주었다.
“의사가 뭐랬는데요?”
“복막암. 치료에만 전념해야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다더라.”
지난 삶을 통해 알고는 있었으나
래원도 목이 타기는 마찬가지였다.
소주 잔을 가득 채우고는 원샷으로 넘겼다.
“선배, 약한 생각하지 말고 이겨내야 해요. 형수님이랑 아드님 생각하시면서.”
“그래야지. 그러려고 오늘 너 찾아온 거야. 미련 한소끔 남은 거··· 너랑 같이 마시면서 너한테 훌훌, 다 털어버리려고.”
“잘하셨어요. 잘 오셨어요, 선배.”
“네가 고생 좀 해줘라. 는 이제 네 드라마다, 래원아. 잘 만들어줘.”
이 말에, 래원은 안주로 나온 먹태를 씹으며 덧붙였다.
“선배 드라마기도 해요. 크레딧에서 선배 이름 안 뺄 거니까.”
그러자 윤지협이 시선을 피하고는 고개를 젖히며 다시 술잔을 비웠다.
하지만 래원은 똑똑히 보았다.
윤지협의 눈가가 촉촉해진 것을 말이다.
* * *
이튿날,
윤지협은 곧바로 휴직계를 썼다.
휴직 사유는 윤지협의 부탁으로 윗선에만 알려졌다.
래원이 드라마 의 메인 감독이 되자,
유찬이 자연스럽게 B팀 감독이 되며 팀 전체가 바빠졌다.
사람이 든 자리는 표가 안 나도 난 자리는 티가 난다고 했던가?
옛말에 틀린 게 없었다.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가장 먼저 래원에게 연락을 한 것은, 옥영임 작가였다.
휴대폰 너머로 그녀의 목소리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 고마워, 도 피디. B팀으로 들어와 준 것도, 이번에 메인 감독 맡아준 것도. 전부 다 고마워 정말.
의외였다.
갑자기 메인 연출이 바뀌었다는 소식에 옥영임 작가 입장에서 툴툴툴 투덜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쌈닭으로 유명한 그녀의 입에서 진지하게 고맙다는 이야기가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때문에 순간 말문이 막혀버린 래원은,
옥 작가에게 다음 일정을 언질하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 내일 대본 회의 때 뵙겠습니다, 작가님.”
– 그래. 잘 부탁해, 도 피디.
그녀의 목소리에 진심 어린 안도감이 느껴졌다.
때문에 래원은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된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작품성만큼은 올해 최고의 드라마로 만들어 보자.’
지금 이 분위기가 에 옥 작가를 비롯한 수많은 스텝과 배우가 사활을 걸고 있다는 방증처럼 느껴졌으니까.
* * *
어느덧 5월 말.
사람들의 옷차림이 반팔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는 SBC 드라마국의 차기 국장 선거가 내달로 다가왔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그 후보가 비로소 공개됐다.
이 국장, 김 부국장, 황태수 부장.
모두가 예상했던 2명의 후보와 의외의 인물 1명까지 총 3명이었다.
이 때문에 SBC의 옥상정원에는
그 어느 때보다 뿌연 담배 연기가 가득했다.
3명의 후보 중 하나인 김 부국장과
그의 라인 최지철 부장, 변덕규 PD가 배신감에 이를 갈며 희뿌연 근심을 내뿜고 있었다.
그들의 옆에는 도래원도 함께였다.
“황태수, 그 새끼 그렇게 안 봤는데···.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 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