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 reverted to being a K-drama genius RAW novel - Chapter 171
래원이 눈앞의 미스터리를 풀기도 전에 또 다른 미스터리가 들이닥쳤다.
전생에서부터 ‘30대 여자 작가’라는 것 외에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있던 임상순을 드디어 만난 것이다.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63화 – 리디북스
“··· 안녕하세요, 작가님께 연락 드렸던 안정원 입니다.”
“··· 안녕하세요, 도래원입니다.”
임상순이 들어오는 모습에,
래원과 안정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30대 여자 작가’라고 알려진 것 역시 사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3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놀라셨죠?”
두 사람의 표정을 읽은 임상순이 겸연쩍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제가 데뷔 때부터 정체를 꼭꼭 숨기는 건, 시청자들의 머릿속에서 저는 지우고 작품만 남았으면 해서 그렇습니다. 별 뜻은 없고요.”
“아···. 그래서 전화를 안 받으시고 문자나 메일로만 회신을 주셨던 거네요···.”
“네, 그렇게 됐습니다. 본의 아니게 까다롭게 굴었네요. 이해 부탁드려요.”
“아, 아닙니다.”
임상순이 구구절절 사정을 말하지 않아도, 래원은 그 속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감독도 그렇지만 작가는 더더욱 나이가 어리면 이 바닥에서 신뢰를 얻기 힘들다.
나이가 어리면 일단은 밑지고 들어가는 셈이다.
어린 작가라고 대본도 어리게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으니까.
그가 정체를 감추기 시작했던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공모전 수상으로 데뷔해서 단막극부터 8부작, 16부작 미니시리즈까지 쓰는 작품마다 관심을 받는 것도 부담스러웠을 것이고.
래원도 어린 나이에 연출 입봉을 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더랬다.
항상 차기작을 생각하며 이겨냈지만, 임상순은 성격상 베일 속에 자신을 가두고 꽁꽁 숨기는 전략을 택한 것 같았다.
“보통은 계약하거나 대면 업무를 봐야 할 때는 제 보조작가를 보내거든요. 그래서 의도치 않게 ‘30대 여자 작가’라고 소문이 난 것 같아요. 딱히 해명할 필요를 못 느껴서 그냥 뒀더니 그렇게 소문이 굳어졌더라고요. 함구 부탁드립니다.”
“그럼요. 작가님, 여기 고기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안정원이 안심하라는 듯이 온화한 눈빛을 보내자,
비로소 임상순은 젓가락을 들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드러나기를 꺼리고 입에 오르는 것을 피하고자 정체를 숨기며 사는 임상순.
하지만 그의 의도와 정반대로, 베일에 싸여 있다는 것에 사람들은 오히려 열광하고 임상순에게 끊임없이 관심을 보였다.
래원과 안정원 역시 이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임상순을 택한 것에 이러한 이유도 한몫했으니까.
래원과 임상순의 만남은 무조건 특종감이었다.
“이제 한배를 탔으니 작가님의 가면은 저희도 지켜드려야죠.”
“고맙습니다, 도 감독님. 듣던 대로 시원시원하신 분이네요. 사실, 오늘 제가 직접 나온 건 도 감독님을 뵙고 싶어서였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어떤 분인지 궁금했거든요.”
래원은 그저 빙긋 웃었다. 래원도 같은 생각이었다.
전생에서부터 임상순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굉장히 궁금했더랬다.
임상순 작가는 필요한 말을 할 때면 적극적으로 나서는 반면, 필요 없는 말은 일절 안 하는 타입이었다.
덕분에 중간중간 안정원이 애써 농담을 던지는 것이 무색해졌고, 자연스럽게 오직 일 이야기만 오가기 시작했다.
“임 작가님 기획안은 전체적으로 좋았는데요, 제가 원하는 각색 방향이 있어서 같이 의논해보고 싶었습니다. 편성도 16부가 아니라 10부작으로 픽스 되기도 했고요.”
“네, 안 실장님 통해서 대략 전해 들었지만, 저도 도 감독님께 직접 연출 의도와 각색 안이 듣고 싶었습니다.”
“월미도88 작가님께는 컨펌 받았습니다만, 원작 웹툰에서는 월미도에 4명의 주인공이 모이는 게 우연한 계기로 아사 무사 그려지는데···. 그게 드라마에서는 자칫 작위적으로 보이기 쉬운 설정이라서요···.”
“주인공 4명이 모이는 것에 자연스러운 동기나 당위성을 부여하자는 말씀이시군요.”
임상순은 확실히 빠릿빠릿했다.
래원의 말귀를 곧잘 알아듣고는 메모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가 래원과 취향이 잘 맞는 것인지, 아니면 협업의 귀재인 것인지···.
어쨌든 그 덕분에 각색 방향을 합의하는 과정은 매우 수월했다.
“네, 이해했습니다, 감독님. 4명이 유럽 배낭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는 설정 추가할게요. 오스트리아 빈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며칠 밤을 같이 보낸 후, 각자에게 ‘상실의 상처’가 있음에 동질감을 느끼며 한국에서도 함께 모여 살게 됐다는 드라마로 초반부 각색하겠습니다.”
“그래서 10화에 엔딩 시퀀스는, 훗날 4명이 성공하고 나서 다시 다 같이 비엔나로 여행 가는 것으로 찍을 생각입니다.”
“좋습니다, 수미쌍관!”
임상순이 상기된 목소리로 래원의 아이디어를 받았다.
래원의 우려와 달리 임상순은 굉장히 유연했다.
작정하고 래원에게 맞춰주려는 것 같았다.
옆에서 안정원은 두 사람의 회의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타이핑을 치고 있었다.
전에 안정원이 말했던 대로, 임상순에게는 이번 드라마의 목표가 ‘래원과의 협업’인 듯 보였다.
이 같은 래원의 시선을 읽었는지, 임상순이 먼저 설명을 덧붙였다.
“제가 생각 없이 도 감독님이 하자는 대로 하는 건 아니고요, 제 입장에서도 충분히 재미있고 일리 있는 각색 안이라서 따르는 겁니다. 저도 잘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정말입니다. 저도 사실 한 고집 하는 작가거든요. 하하하. 이미 소문 들으셨겠지만···.”
알다마다. 전생에서도 임상순 작가는 그 어떤 감독을 만나든 두 작품을 넘기는 법 없이 결별하기로 유명했더랬다.
“작가님, 지금 메일로 프리 프러덕션 일정 가안이랑 캐스팅 리스트업 보내 드렸습니다.”
안정원은 대본 회의 진행이 수월할 수 있게,
조금 전에 래원에게 지시받은 일정을 그새 정리했더랬다.
임상순은 곧바로 메일을 확인했다.
“여름에 촬영 들어가려면, 작가님께서 각색 대본 쓰시는 동안 주인공 4명은 지금부터 캐스팅 진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그러네요. 와···. 근데 이 리스트에 있는 배우들이 다 가능하다고요? 실현된다면 초호화 캐스팅인데요?”
“예산이 꽤 됩니다.”
“스튜디오 다이아가 이 드라마에 사활을 제대로 거나 봅니다.”
임상순에게도 JBC 개국은 아직 대외비이기 때문에, 그는 ‘스튜디오 다이아’에서 제작하는 것 외에 방영 플랫폼이나 방송국은 미정이라고 아는 상태였다.
“보라, 두빈, 나나, 보준···. 4명의 케미가 중요하니까요, 동시에 컨택하면 안 될 거 같고요.”
“감독님 말씀이 맞습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면 조합이 어그러질 테니···. 한 명씩 격파해볼까요?”
“여배우부터 가보죠. 작가님께서는 ‘보라’ 누구 생각하세요?”
“음···. 저는 이 캐스팅 리스트에 있는 분들 다 좋아요···. 다 좋은데, 딱 한 사람만 아니면 되겠네요.”
임상순이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고집스러움을 밝힌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래원은 설마 하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물음표를 띄워 보냈다.
“민세라요. 민세라만 아니면 누가 와도 좋습니다.”
“아···.”
임상순의 단호함에 잠시 할 말을 잃은 래원.
물 흐르듯 진행되던 오늘의 회의가 드디어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래원은 ‘보라’ 역에 민세라가 유일무이하게 제격이라고 봤으니까.
하나씩 무언가 상실한 채로 유럽 배낭여행을 온 4명의 주인공.
그중에서도 [보라]는 가족을 잃은 인물이었다.
교통사고로 자신 혼자 살아남고, 부모님과 동생을 잃었더랬다.
때문에 래원은 지금의 민세라가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작가님은 민세라가 왜 싫으세요? 캐릭터에는 잘 맞는 거 같은데···.”
“싸가지가 없잖아요. 저도 한 싸가지 하는데···. 저보다 싹수없는 배우랑은 같이 작업 안 해요. 부딪힐 게 뻔하니까요.”
이에 래원은 쉴드를 칠 수 없었다. 사실, 업계 평판이 그랬으니까.
민세라와 친해져서 그녀의 속을 아는 이들 외에는, 다들 그녀를 ‘싸가지 없고 도도한 아이돌 출신 여배우’로 알고 있었다.
“저는 사실 민세라가 [보라]역에 최적이라고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네?? 아아···.”
래원의 말을 들은 임상순의 얼굴이 샛노랗게 변했다.
“하지만 제 생각을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주인공이잖아요. 저나 작가님 모두가 만족하는 선택을 해야죠.”
“··· 민세라 배우를 한 번 직접 만나보고 싶습니다. 만나보고서도 제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다른 배우를 찾아봤으면 합니다.”
임상순으로서는 많이 양보한 것이었다.
상대는 도래원이었고, 이번 작업에서 아쉬운 사람은 임상순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나 이와 동시에,
임상순은 민세라를 만나도 자기 생각이 절대로 바뀔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저 시간을 벌고자 함이었다.
자신이 도래원을 설득할 수 있게 더 나은 배우를 물색할 시간 말이다.
하지만, 래원의 생각은 달랐다.
‘민세라를 직접 만나보면 분명 생각이 바뀌실 겁니다, 임상순 작가님.’
래원은 처음부터 이번 드라마의 판을 머릿속에 다 짜두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단 한 번도 틀린 적 없는 판단력과 직감을 발휘해서 말이다.
* * *
집에 돌아온 래원은 배가 불러서인지, 임상순 작가와의 만남 때문인지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침대를 박차고 책상에 앉았다.
기획안과 원작 웹툰 그리고 캐스팅 리스트를 펼쳐놓고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보라] 역은 민세라가 따낼 거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임상순’과 ‘민세라’에 대해 아는 바가 있었으므로, 래원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나머지 [두빈], [나나], [보준] 역의 배우들 조합을 최상으로 끌어내기 위해 캐스팅 리스트를 째려보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던 찰나.
“아씨···. 나도 모르게 자꾸 아는 배우들만 가지고 생각하게 되네···.”
래원은 이미 작업 경험이 있는 엄하늘, 류소현, 민세라, 류지현, 구민준, 장모건, 원준혁, 함현우, 양수호 등등··· 쪽에 시선이 머물렀다.
“같이 작업하고 싶었던 대배우들이 이렇게 가득 있는데···.”
전현지, 송영애, 서연지, 김동헌, 곽보겸, 소기중 등등··· 말이다.
“이 배우들을 정말로 캐스팅 할 수 있다고?”
분명 확답을 들었지만 래원의 내면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았다.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그 자초지종을 모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어. 이 배우들을 가지고 캐스팅을 논하기 전에 이미지가 맞는지 캐쥬얼하게 만나볼 수 있는 상황인지도 모르고, 아는 게 없으니 머리가 안 돌아가잖아···.’
래원이 이번 생을 통틀어 이렇게 답답한 적은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래원과 일을 했던 사람들, 특히 중요한 이들은 거의 다 전생에서부터 인연이 있거나 들어라도 본 사람들이었다.
오직 안정원을 빼고 말이다.
“모르면 직접 물어봐야지.”
결국, 전화를 거는 래원.
신호음이 두어 번 울린 후 전화 너머로 안정원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 네, 감독님.
“안 실장님, 이제는 알려주셔야겠습니다.”
– 예? 뭐를..요?
“스튜디오 다이아 같은 신생 제작사의, 20대 매니저 실장님이,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스타 배우들을 전부 컨택할 수 있는 비법이 뭔지를 말입니다.”
– 아···.
“우리 회사가 JC ENM의 자회사라고는 해도, 실장님께서 하늘이 누나나 강채령 씨 같은 인맥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것들만으로는 납득이 안 되니까요.”
– 그..그렇죠···.
“사정을 알아야 저도 마음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이 배우들과 어떤 관계인지 알아야, 감안해서 캐스팅을 진행하죠.”
안정원이 래원에게 보여주는 믿음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에 대해 더 확실히 알고 싶었다.
– 도 감독님, 설명하자면 긴데···. 제가 인복이 많아요. 전에 일하던 매니지먼트 회사나 제작사를 거치면서 하늘 언니 같은 배우분들이나 대표님들이 다들 저를 좋아해 주셨거든요. 채령 언니 같은 학교 선배들도 그렇고요.
래원은 일단 고개를 끄덕이며 전화 너머로 안정원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앞서 말했듯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캐스팅 리스트였으니까.
– 여기까지가 이선필 본부장님과 하늘 언니를 비롯해서 대외적으로 저에 대해 알려진 거고요. 사실은···. 업계 내에서 홍 대표님과 채령 언니 정도만 아는 제 사정이 따로 있는데요···.
래원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이에 안정원도 짧게 심호흡을 내뱉고는 결심한 듯이 말을 이었다.
– ··· 저희 아버지가 ‘스튜디오 포닉스’ 대표세요.
순간, 래원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스튜디오 포닉스’ 라면,
현재 명실상부 업계 1위의 제작사로 방송사 TBN과 함께 독식 중인 곳이었다.
‘스튜디오 다이아’ 및 개국 예정 방송사 ‘JBC’의 라이벌이자 목표 말이다.
‘이 말인 즉슨, 안정원이 스파이였다는 거야?’
래원이 생각을 정리하느라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자, 안정원이 알아서 설명을 이어갔다.
– 그렇다고 제가 ‘스튜디오 포닉스’의 사람이라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전 뼛속까지 스튜디오 다이아, 아니 도래원 감독님 소속이에요! 스튜디오 포닉스는 등본상으로 제 아버지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회사, 제가 과거에 잠깐 몸담았던 회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거든요.
모르긴 몰라도 안정원에게는 꽤나 복잡한 가정사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실장님, 지금 잠깐 뵙는 거 괜찮으세요? 계속 전화로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네요. 제가 계신 곳으로 갈게요. 어디세요?”
K드라마 천재로 회귀했다! 164화 – 리디북스
* * *
안정원의 집 근처 벤치.
래원은 편의점에서 무알콜 맥주 2캔을 사갔더랬다.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목을 축인 후,
비로소 입을 연 안정원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 보다 차분했다.
“뻔한 스토리예요. 사업한다는 핑계로 맨날 술 마시고 늦게 들어오고, 엄마가 잔소리하면 손찌검하고···. 연예인들이랑 놀다가 바람나고···.”
래원은 구태여 어떤 반응을 보이기보다는 그저 묵묵하게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을 택했다.
“제 인생에 그때부터 아버지는 지워버렸어요. 감독님 만나기 전에 스튜디오 포닉스에서 잠깐 일했던 건,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기에 그랬던 거고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홍 대표와 강채령 외에는 모르는 안정원의 비밀은 꽤나 씁쓸했다.
“울엄마도 바보같이···. 그 쓰레기 같은 인간을 모질게 쳐내지를 못하고, 용서 빈다고 받아주고···. 엄마는 과거라고 지웠을지 모르지만 전 엄마랑 달라요. 술 마시고 우리 때리고, 바람피우고···. 절대 못 잊어요···. 아니, 안 잊어요!”
안정원에 대한 의문이 풀린 래원.
이제는 그다음 질문이 싹 텄기에 그녀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경청했다.
“제가 다른 회사 돌아다니면서 평판도 쌓고 소문도 좋게 나고 쓸 만해지니까, 그 사람은 저를 후계자로 키우려는 심산으로 회사로 불렀던 거겠지만···. 전 처음부터 정보를 빼내러 들어간 거였어요. 어떻게 굴러가길래 업계 탑 티어를 꾸준히 유지하는지···. 자잘한 노하우나 일 처리 방식 같은 거요.”
래원은, 안정원의 이같은 원동력이 대체 뭔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사는 건지 알고 싶었다.
“거기서 많이 배우긴 했죠. 유용한 인맥도 많이 생겼고요. 그 사람이 유명한 배우님들, 감독님들, 작가님들 앞에서는 대놓고 저를 중요하게 키우는 직원이라고 소개시켰거든요. 친딸인 거 밝힌다는 걸, 그러면 죽어버릴 거라고 시위했어요, 제가.”
“강채령 씨는 이 사실을 안다고 했던가요?”
“예, 채령 언니는 제 친언니나 다름없어요. 제가 대학생 때, 그 사람 때문에 집을 나갔거든요. 언니네 집에서 같이 살다가 독립했어요, 그때부터.”
지금껏 술술 이야기를 이어가던 안정원이 잠시 뜸을 들였다.
“감독님, 제 목표가 뭔 줄 아세요?”
“뭔데요?”
래원은, 그녀가 반문해서 되물은 것이 아니었다.
어느덧 자신의 사람이 된 안정원의 원동력, 목표가 진심으로 궁금했다.
“스튜디오 포닉스를 능가하는 제작사나 매니지먼트사를 차리는 거예요. 저 혼자 힘으로요.”
남다른 일 처리의 소유자,
하지만 아등바등하지 않고 늘 여유 있는 분위기를 내뿜는 그녀.
안정원이 상사인 이선필에게도 함부로 고개 숙이지 않는 품격이 느껴지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선필은 안정원의 뒷배경을 모른다고 하지만, 본부장도 분명히 느꼈을 거야···. 뭔가가 다른 사람이라고. 아우라 자체가 보통 직원들과는 다르다고···.’
어느새 두 사람의 맥주 캔이 다 비어버렸다.
래원은 안정원에 손에서 빈 캔을 꺼내다가 같이 버려주며 말했다.
“그 꿈···. 실장님은 해내실 거 같아요. 그냥 그런 느낌이 들어요.”
처음이었다. 래원이 전생에서 보지도 알지도 못했던 일이나 사람을 믿는다는 것.
그냥 그럴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래원의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났다.
* * *
[임상순]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나는 배우들끼리 기 싸움을 하는 거 딱 질색이고, 배우들이 대본에 터치하는 것에 알러지가 있어요. 저번에도 그래서 결국 우리 같이 안 하기로 한 건데, 사람은 안 변하잖아요. 이번에도 세라 씨가 알아서 빠져주면 고마울 것 같네요. 이번 드라마에 저 나름대로는 사활을 걸어서요.임상순의 장문 메시지를 받아본 민세라.
잠시 휴대폰을 노려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보통 이런 이야기는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하지 않나···? 진짜 이 작가님···. 하아···.”
민세라는 예전에 임상순과 같이하려다가 불발된 드라마를 떠올렸다.
민세라에게 들어온 캐릭터가 너무 수동적이라는 생각에, 작가를 직접 만나서 묻고 싶었으나 만나주지 않았다.
질문 몇 가지를 적어서 전달했지만 돌아온 반응은 냉담했다.
나중에 다른 배우가 연기한 방영분을 봤을 때는, 대본과 텍스트로 봤던 것보다 능동적으로 그려졌지만. 그래도 민세라가 보기에는 아쉬웠다.
“그때도 조금만 만졌으면 더 매력적인 캐릭터가 나왔을 텐데···. 작가님 고집 장난 아니네 정말···.”
물론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었다.
그때도 해당 인물이 수동적으로 고구마 역할을 해야만 작가의 의도가 선명하게 드러날 수 있었으니까.
“하아···. 타협은 불가하다는 거지? 나도 이런 작가님이랑은 작업하기 싫은데···. 내가 뭐가 아쉬워서!”
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