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Return to Home RAW novel - Chapter (26)
삘리리리.
천혈방 악양지부에 울려 퍼진 백엽의 피리 소리는 잔잔했다.
군웅들이 영문을 몰라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상황에서 한가하게 피리를 불 때가 아니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오?”
불길한 예감을 느낀 이복승이 소리쳤다.
하지만 피리 소리는 계속되었다.
삘리리리.
곡조는 평탄했다. 은은한 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왠지 울적하게 만들었다.
마치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애타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혹시나 음공을 펼치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던 군웅들이 때아닌 감상에 젖었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잔치는 없는 법.
어느 순간 피리 소리가 멈췄다.
“백 소저. 이제 그만 돌아가도 좋소. 그대들을 막는 사람은 없을 것이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백여희 역시 영문을 몰랐으나, 천혈방주와 동정수로채주가 대군을 이끌고 악양에 도착했다는 말에 그녀 역시 다급한 심정이었다.
‘마교의 움직임 때문에 화산파와 형산파 무사들이 본산으로 철군한 지금 빨리 이 사실을 알려 대책을 세워야 한다.’
백여희가 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피해는 고해풍과 화산파 장로 세 명 정도.
중상을 입었지만, 목숨이 위급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고수가 한 명이라도 아쉬운 상황이라 너무나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특히 화산파 장로들은 매화검선과 매화검수들이 다시 화산으로 돌아갔을 때도 영웅보로 와준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광도객과의 대결을 통해 천혈방 세력이 영웅회와 비교도 할 수 없이 강하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천혈방에는 광도객과 같은 식객만 백여 명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비록 백엽이 악양에 온 천혈방 오대식객을 모두 죽였지만, 그들과 비교도 될 수 없는 힘이 남아 있는 것이다.
‘애초 외부 지원 없이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다. 하필이면 이때 마교 놈들이 화산파와 형산파를 노리다니.’
백여희가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다.
사실 그녀가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것은 백엽 때문이었다.
‘지존회주 저자를 우리 편으로 끌어올 수 있다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듯한데, 이대로 돌아가면 대책이 없다.’
백여희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감사드려요. 하지만 천혈방 무사들이 우리를 막고 있으니 돌아갈 방법이 없군요.”
“안심하시오. 그들은 그대들을 막지 못할 것이오.”
“흥!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오? 우리 무사들에게 명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오.”
이복승이 언성을 높였다.
천혈방주가 대군을 이끌고 악양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기양양한 그였다.
‘한시진만 저놈을 여기 잡아두면 방주께서 도착하셔서 처리할 것이다. 백대식객과 삼십육장로, 십대봉공이 모두 올 것이니 어찌 저놈 하나를 죽이지 못하겠는가.’
이복승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그만큼 자신있어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기실 천혈방주가 전 병력을 이끌고 악양으로 온 것은 악양무림 장악을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악양무림을 넘어 호북무림까지 노리고 있었다. 영웅회를 궤멸시킨 후 무사들을 호북성에 진입시켜 그 세력을 대폭 확장할 계획이었다.
이는 일급기밀로 악양지부에서는 이복승과 오대식객만 알고 있었다.
물론 사균 역시 그 계획을 알고 있었는데, 악양무림을 장악한 후 동정수로채 수적들 역시 북상할 계획이었다.
게다가 호북성 공략에는 장강수로십팔채 수적들도 참여하기로 결정된 상태였다.
물론 그렇게 되면 무림맹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나 맹의 반격을 막아내기로 결정된 곳이 바로 녹림칠십이채였다.
이미 녹림왕의 지시로 녹림 병력 대다수가 산동성과 하남성 경계에 집결하고 있었다.
참고로 녹림왕의 본거지인 태산은 산동성에 있었다. 무림맹 총단이 있는 낙양은 하남성에 속해 있어 신속한 출병이 가능했다.
이복승이 말했다.
“백 소저. 조금만 기다리면 본방의 방주께서 도착하실 테니 평화협정과 관련해 말씀을 드려보는 게 어떻겠소? 어차피 모레 다시 이곳으로 오기로 했잖소?”
“우리를 죽이려는 건가요?”
“하하하. 그럴 리가 있겠소? 특사단은 절대 죽이지 않는 것이 본방의 철칙이오. 어떻게 하겠소? 어차피 무력으로 이곳을 벗어나는 것은 힘들 것이오. 여봐라. 포위망을 좁혀라.”
“존명!”
천혈방 무사들이 일제히 대답하며 영웅회 무사들을 에워싸고 있던 범위를 좁히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멀쩡하던 천혈방 무사들이 픽픽 쓰러지기 시작했다.
“으윽!”
“크윽!”
마치 혈도를 찍힌 것처럼 맥없이 쓰러지는 천혈방 무사들.
천여 명에 달했던 그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쓰러졌다.
천혈방에서 멀쩡한 사람은 이복승 한 명뿐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이복승이 기겁을 하며 반사적으로 백엽을 쳐다봤다.
“곽 회주! 그대의 짓이오?”
“그렇소.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잠시 하독을 했을 뿐이니까.”
“독을 풀었단 말이오?”
“그렇소.”
“으으······ 설마 아까 그 피리 소리에?”
“그렇소. 특사단이 무사히 돌아가면 해독을 시켜주겠소.”
“으으······.”
이복승이 침음을 내뱉었다.
하지만 백엽의 가공할 독공에 할 말을 잊은 듯했다.
한가지 다행인 것은 쓰러진 천혈방 무사들은 모두 주저앉아 꿈쩍도 못할 뿐 생명에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참자. 이제 곧 방주님께서 오신다. 백여희 저 계집이 돌아가든 말든 사실 큰 문제가 아니지.’
이복승이 애써 진정하며 안색을 폈다.
“하하하. 역시 대단하오. 곽 회주의 독공에 탄복을 금하지 못하는 바이오. 그래도 같은 흑도라서 살수를 펼치지는 않았으니 그 점은 고맙게 생각하오. 우리 방주님은 인재를 중요시하니 곽 회주를 보면 탐을 낼듯하오. 백 소저! 이제 그대들을 막을 사람은 없으니 이만 돌아가시오.”
“흥! 글쎄요. 이 좋은 기회를 굳이 놓치고 싶지 않군요.”
백여희가 눈을 빛내며 쓰러진 천혈방 무사들을 쳐다봤다.
이복승이 깜짝 놀랐다.
“설마 비겁하게 쓰러져 있는 우리 무사들을 해칠 생각이냐?”
“못할 것 있나요? 그러는 당신들은 여태까지 얼마나 많은 양민을 해쳤나요? 정파 무림인 역시 사로잡혔다가 당신들에게 처형당한 경우가 부지기수예요. 악한을 처단하는 데는 다소 편법을 쓰더라도 순리에 어긋나지 않는 법. 각오가 되었겠지요?”
“네년이 정말! 하지만 우리에게는 동정수로채 영웅들이 있다. 사 부채주! 저놈들이 우리 무사들을 죽이려 하고 있소. 도와주시오. 곧 방주님과 동정수왕께서 오실 텐데 절대 우리 무사들이 죽는 경우가 있어선 안 되오.”
“알겠소.”
사균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여희라고 했나? 좋게 보내줄 때 어서 가라. 어차피 영웅회와 전면전이 벌어지면 그때 죽임을 당하겠지만 지금은 살려주마. 어서 가라.”
“흥! 제가 보기에는 당신들 또한 별반 차이가 없을 것 같군요.”
“뭐라고? 우리도 중독되었다는 말이냐?”
사균이 깜짝 놀라 수하들을 쳐다봤다.
그때 믿기 힘든 일이 발생했다.
백여희의 말대로 천여 명의 수적들이 천혈방 무사들처럼 픽픽 쓰러지는 것이 아닌가.
주저앉아 꿈쩍도 못 하는 것으로 보아 그 증상이 똑같았다.
동정수로채 수적 중 멀쩡한 사람은 사균 한 사람뿐이었다.
그 모습에 남은 흑도 무사들 또한 놀란 표정이었다.
지존회 무사들을 제외한 그들의 수는 대략 구백여 명.
대부분 단상에 앉아 있는 중소문파 수장들의 휘하 무사들이었다.
이복승이 단상 위에 앉아 있는 지휘부 고수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그냥 두고만 볼 것이오? 곧 방주께서 오실 것이오. 어서 조처를 해주시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이오?”
악양 오대문파 중 영웅보, 충의문을 제외한 세 곳의 문파 대표가 단상 앞으로 나왔다.
각각 흑수보(黑手堡), 백골문(白骨門), 사해방(四海幇) 수장들이었다.
그들 세 사람은 일반 흑도들을 대표하고 있었다. 실제 오늘 대회에 참석한 일반 흑도 무사들 대부분이 그들 문파 소속이었다.
다만 영웅회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절반 정도의 병력은 본거지에 남겨두고 왔다는 공통적 특징이 있었다.
조금 전 말한 사람은 흑수보주로 이들 세 사람 중 나이가 가장 많았다.
“특사단 저놈들의 공격을 막아주시오. 백여 명밖에 안 되니 충분히 막을 수 있을 것이오.”
“그게······ 그보다 곽 회주의 생각부터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소.”
흑수보주가 백엽을 다소 두려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그 파급력이 클 수 있는 독공이라고 하지만 혼자서 이천 명을 중독시킨 자였다.
그것도 피리 소리로서.
“본 회주의 생각 말이오?”
“그렇소. 같은 흑도끼리 특사단의 공격은 막아줘야 하지 않겠소? 곽 회주께서 한 말씀 하시면 그대로 돌아가지 않겠소?”
“아, 그렇게 되는 것이오?”
백엽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백여희가 미소를 지었다.
“곽 회주께서는 중립을 지키실 겁니다. 회주께서는 진정한 흑도의 영웅이시니까요. 우리 맹주님께서도 곽 회주님 같은 분이 흑도를 통일해야 무림의 평화가 유지된다고 하셨지요. 회주님. 지금 천혈방주와 동정수로채주가 대군을 이끌고 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천혈방과 동정수로채는 수많은 양민을 학살한 짐승들입니다. 놈들을 본보기로 삼아 처단해야 흑도 역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겁니다.”
“으음, 일리가 있소.”
백엽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다들 그를 쳐다봤다.
누구도 그의 의중을 정확하게 알기 어려웠다.
생사신의가 급히 전음을 날렸다.
「교주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고민 중이오. 신의의 생각은 어떠하오?」
「제 생각에 이곳에 있는 천혈방과 동정수로채 놈들은 이참에 제거하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어차피 우리 지존회 무사들로 받아들일 만한 재목이 아닙니다. 그동안의 악행도 너무 심했고 말입니다.」
「이천 명을 모두 죽이란 뜻이오?」
「네. 살려두면 후환이 될 겁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놈들을 처리하고 지존장원으로 가셔서 곧 들이닥칠 천혈방과 동정수로채 본대 병력을 상대할 계획을 세우십시오.」
「본회 무사들을 제외한 일반 흑도들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흑수보, 백골문, 사해방 이 세 파의 악행 역시 천혈방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최소한 무공 폐쇄라도 시켜야 합니다.」
「성녀의 생각은 어떠하오?」
「교주님께서 천혈방주와 동정수왕까지 이참에 제거하실 요량이라면 지금 저들을 죽이시면 안 됩니다. 그러지 않고 잠시 이 자리를 떠나 다시 계획을 세우실 생각이면 신의님 말씀이 타당합니다. 다만 천혈방과 동정수로채 놈들이 이미 제압당한 상태이니 무림 관례에 따라 무공 폐쇄가 적당할 것 같습니다. 일반 흑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천마음으로 이천 명이나 중독시켰으니 아무리 교주님이라도 천마진기 소모가 극심할 터. 이 상태에서 삼만 병력을 상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놈들의 동태를 살피면서 최소한 하루 정도 쉬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일단 이곳을 정리하고 지존장원으로 가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칠마종의 움직임을 살핀 후 그에 맞는 지시도 내려야 하니까요. 칠마종 병력을 철수시키면 화산파와 형산파 무사들도 원래 계획대로 지원 병력을 다시 보낼 테니, 그때까지 시간을 버는 게 좋겠습니다.」
「알겠소. 참고하겠소.」
백엽이 전음을 보낸 후 일반 흑도 무사들을 향해 말했다.
“그대들에게 선택권을 주겠소. 지금이라도 우리 지존회에 들어오면 받아주겠소. 거부하면 한 명도 빠짐없이 무공이 폐쇄될 것이오. 이것은 새로운 흑도 질서를 세우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니 잘 선택해서 후회하지 않기 바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