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ly Demon Return to Home RAW novel - Chapter (57)
“놈들의 결계에 막혀 영웅보 안으로 진입하지 못한 지 벌써 사흘이 지났소. 약속대로 모든 병력을 이끌고 지존장원으로 가도록 합시다. 반선분들의 활약으로 지존장원 결계가 헐거워져 있으니 분명 뚫을 수 있을 것이오.”
백엽의 말에 흑도 연합 작전 회의에 참여한 이백여 고수들이 웅성거렸다.
그들 중에는 녹림왕, 상효통, 동정수왕이 포함되어 있었다.
백엽은 장강대왕 신분으로 회의에 참석 중이었다.
참고로 백엽은 사흘 전 영웅보로 복귀한 후 다시 보 밖으로 나와 장강수로십팔채 총채주 장강대왕으로 행세하고 있었다.
이는 결계가 뚫리지 않는 한 영웅보 내부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다.
영웅회 고수들에게는 외부에서 지존회주와 연락을 취하며 공동 작전을 마저 수행하겠다고 했다.
물론 결계가 흔들리면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해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흑도 진영에 복귀한 백엽은 곧바로 장강일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가 장강일을 데려와 녹림왕과 관련된 음모론의 진위를 밝히겠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엽의 대답은 의외였다.
장강일을 비롯한 장강사수 모두 실종되었다는 것.
아무래도 지존회주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는 백엽의 말까지 있자 음모론은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그렇게 사흘이 지나고 이제 원래 계획대로 공격 대상을 지존장원으로 돌리자는 말을 하게 된 것이었다.
녹림왕이 말했다.
“장강대왕. 영웅보 주위에 쳐져 있는 결계도 뚫지 못하는데 지존장원이라고 별것 있겠소? 지금 진법 전문가들이 파훼법에 관해 연구하고 있으니 곧 결론이 날 것이오. 며칠 더 기다려봅시다.”
“약속을 어기겠다는 것이오? 지존장원 결계가 헐거워진 지금이 적기라고 몇 번이나 말했소? 이러다가 지존회주의 기습을 받게 되면 녹림왕 그대가 책임을 질 것이오?”
백엽이 계속 밀어붙였다.
지금까지 결계가 훌륭하게 적의 공격을 막아주고 있었지만 언제 반선들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야말로 종잡을 수 없는 반선들이기 때문에 백엽으로서는 그 점에 대해서 어느 정도 조바심이 있었다.
녹림왕도 물러서지 않았다.
“지존회주 그놈이 지존장원에 함정을 파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크오. 천혈방 십대봉공 중 최고수 세 분이 암살 작전을 수행하다가 도리어 당한 사건이 그 증거라 할 수 있소. 지존회주 그놈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것도 우리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오.”
“으음, 녹림왕의 말씀이 옳소. 지난번에 본방에서 보낸 고수 세 명의 무공은 매우 높았소. 하지만 결국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소. 물론 고독을 미리 악양 일반흑도들에게 복용시켜 지존회에 투항하는 일은 막았지만, 지존회주 그놈이 함정을 파고 있을 거라는 말씀은 매우 신빙성이 크오.”
천혈방주 상효통의 말이었다.
중립을 지키던 그는 이제 확실하게 녹림왕 편을 들고 있었다.
이는 백엽이 장강일을 데려오지 않아 더욱더 굳어진 사실이었다.
동정수왕이 말했다.
“장강대왕. 그대의 의견이 정 그러하다면 장강수로십팔채 병력 일부를 지존장원으로 보내면 되지 않겠소? 일만 병력만 보내도 놈들의 허실을 살펴보는데 충분할 것이오.”
동정수왕의 중재에 백엽이 안색을 굳혔다.
진퇴양난의 상황에 부닥친 셈이었다.
하지만 백엽 역시 물러나지 않았다.
“그럴 수는 없소. 일부 병력만 보내면 지존회주 그놈의 먹잇감만 될 뿐이오. 반드시 전 병력이 가야 지존회를 궤멸시킬 수 있소. 게다가 지존장원에 쳐져 있는 결계를 파훼할 수 있다면 영웅보에 쳐져 있는 결계를 뚫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오. 두 개 다 겪어본 나로서는 두 결계가 매우 유사하다는 점을 발견했소.”
“결계는 상승 진법의 대표 격으로 이렇게 직접 구경하는 것 역시 드문 일이오. 다만 워낙 상승 진법이라 그 특징이 비슷한 게 사실이오. 며칠 더 영웅보를 공략해보자는 내 의견에는 변함이 없소. 다만 장강수로십팔채 병력은 장강대왕 그대의 지휘를 받고 있으니 전부 데려가든지 일부만 보내든지 알아서 하시오. 동정수로채 병력은 어떻게 할 것이오?”
“동정수로채 병력은 계속 이곳에 남겠소.”
동정수왕까지 영웅보 공격을 계속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하자, 남은 것은 백엽의 결단뿐이었다.
백엽이 담담히 말했다.
“좋소. 그럼 이렇게 합시다. 무림 관례에 따라 녹림왕 그대와 내가 무공을 겨뤄 이긴 쪽의 의견을 따르도록 합시다. 어떻소? 그럴만한 용기가 있소?”
백엽의 말에 중인들이 술렁였다.
그가 녹림왕을 향해 공개적인 도전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장강대왕 그대가 갈수록 의심스러운 행동을 하는구려. 이만한 일로 나와 겨루고자 하다니, 아직도 내가 그대들을 토사구팽하려 한다고 의심하는 것이오?”
“그게 아니라 나는 보다 확실한 승리를 원하는 것이오. 무엇보다 사흘 간 영웅보 공격에 진전이 없으면 지존장원으로 그 대상을 옮기자고 모두 약속하지 않았소? 한데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니 내 어찌 분개하지 않겠소? 이는 녹림왕 그대가 나를 얕잡아보기 때문일 터. 나는 정식 대결을 통해 우리 전체 병력의 총지휘자를 뽑자고 제의하는 것이오.”
“으음, 총지휘자라. 그건 구미가 당기는군.”
녹림왕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철혈맹의 임시 맹주 자리를 맡고 있는 그였다.
녹림선생이 말했다.
“총채주님. 비무를 벌일 필요도 없이 총지휘자는 총채주님이십니다. 철혈맹의 임시 맹주 지위로 전 병력에 명을 내릴 수 있습니다.”
“흥! 우리 장강수로십팔채는 이 시각부로 철혈맹에서 탈퇴하겠소. 애초 철혈맹은 녹림왕 그대가 중심이 되어 급조된 연합체로 아직 전 흑도인의 동의를 받지 못했소. 만약 임시 맹주 지위로 나를 압박하려 한다면 절대 승복할 수 없소.”
“결국 무공으로만 승복할 수 있다는 말이오?”
“그렇소. 무림인이라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좋소. 대결 제의를 받아들이겠소. 다만 그전에 장강대왕 그대에 대한 일말의 의구심을 해결하고 싶소.”
“무엇이오?”
“최근 며칠 동안 그대를 보면 이전과 다른 점이 많소. 정확하게 뭐라고 말하기는 어려우나 세세한 느낌이 이전과 매우 다르오. 그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겠소?”
“하하하! 설마 내가 가짜라고 주장하는 것이오?”
“그건 아니오. 장강선생께서 확인해주시면 좋겠소.”
녹림왕의 말에 중인들의 시선이 장강선생에게 쏠렸다.
장강선생이 말했다.
“녹림왕 말씀도 일리가 있지만, 우리 총채주님은 가짜가 아니십니다. 역용이 아무리 완벽해도 그 사람의 기억까지 모두 훔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저 역시 총채주님의 사소한 습관 같은 것이 이전과 달라 당황했으나, 대화를 나눠본 결과 모든 기억이 정확했습니다. 이 정도로 답변이 되었습니까?”
“으음, 알겠소.”
녹림왕이 마지못해 자신의 주장을 거둬들였다.
사실 그 역시 지난 사흘간 몇 번 정도 백엽에게 옛일을 거론하며 슬쩍 그 정체를 떠봤던 것이다.
하지만 백엽은 별 무리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천마초혼술로 습득한 기억이 비록 완벽한 것은 아니나 특히 무림과 관련된 것은 빠지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문제는 평소 습관 등 사소한 기억들인데, 이는 기억이라기보다 몸으로 습득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까지 습득하는데 이삼일 정도 더 소요되는 문제점이 있었다.
사실 이 문제 역시 시전자의 무공 수준과 관련되는 것으로, 만약 백엽이 최고의 무공 경지인 무형검에 도달했다면 천마초혼술 역시 즉각 모든 면에서 완벽했을 것이었다.
장강선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백엽의 정체에 대해 가장 먼저 의심을 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옆에서 자주 봤기 때문인데, 백엽의 사소한 습관들이 날이 갈수록 이전대로 돌아오자 의심을 지운 그였다.
백엽 역시 그 점을 간파하고 최근 아무도 몰래 신공을 연마하느라 기질이 조금 변했다고 말해둔 바 있었다.
이제 당면한 주요 의제는 총지휘자 선출.
그동안 상황이 급박해 그 문제는 일부러 거론하지 않았고 모든 문제는 다수결로 처리를 해왔다.
하지만 은연중 녹림왕을 최고 지휘자로 다들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역시 장강수로십팔채 병력이 변수였다.
오만 대 오만으로 녹림칠십이채와 장강수로십팔채의 병력이 같았기 때문에 쉽게 녹림왕이 총지휘자로 자처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상효통이 말했다.
“총지휘자를 선출한다면 본인 역시 출전하겠소. 총지휘자가 있으면 지금처럼 의견이 나뉘는 일도 없을 것이오.”
동정수왕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또한 생각해왔던 일이오. 비록 무공이 다른 세분에 비해 부족하나 도전하겠소.”
장강선생이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네 분 수장께서 의사를 표시하셨으니, 총지휘자 선출 비무를 당장 벌이도록 하지요. 모두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오.”
“동의하오.”
백엽과 녹림왕, 상효통, 동정수왕 네 명이 수락 의사를 밝히자 분위기가 한껏 달아올랐다.
“좋습니다. 모두 밖으로 나가시지요. 모두가 보는 앞에서 정정당당한 대결을 벌이게 될 겁니다.”
장강선생의 말에 중인들이 모두 막사 밖으로 나갔다.
얼마 후 조성된 비무대는 지휘 막사 바로 옆에 있었다.
비무대라 해서 특별히 단을 쌓은 것은 아니고, 경계선을 바닥에 그려 공간을 만들었다.
비무에 앞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바로 대결 순서로, 제비뽑기로 정하기로 했다.
사회는 천혈방 총군사 천혈선생이 맡았다.
원래 장강선생과 녹림선생이 서로 보려고 했으나, 중재안으로 그가 낙점되었다.
이는 상효통의 무공이 녹림왕과 장강대왕과 비교해 낮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상효통이 속으로 기뻐한 이유이기도 했다.
‘동정수왕과 먼저 겨루게 되면 내게도 승산이 있다. 결국 녹림왕과 겨루게 될 텐데, 장강대왕의 무공이 만만치 않아 후유증이 클 것이기 때문이지. 뜻밖에 내게 흑도 대종사의 기회가 오는구나.’
이후 진행된 대진 추첨은 상효통의 기대와 어긋났다.
녹림왕과 동정수왕이 먼저 붙고, 이후 자신과 백엽이 붙게 된 것이다.
상효통은 내심 실망했지만 최악은 면했다고 생각했다.
‘비장의 한 수로 장강대왕 저자부터 이기면 된다. 동정수왕 저자도 암수를 잘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으니 녹림왕에게 불의의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상효통과 붙게 된 백엽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지금 그의 고민인 승패가 아니라 어느 정도로 이겨야 하는가였다.
녹림왕을 제외하고 그의 적수는 지금 이곳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효통 저자를 죽이게 되면 오히려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어떻게든 총 지휘자가 되어 모든 병력을 미혼진 안으로 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적당히 이기는 수밖에 없겠군. 다만 녹림왕이 부담되는구나.’
백엽이 비무 공간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는 녹림왕을 쳐다봤다.
그의 무공 수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백엽으로서는 조금 걱정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차피 한번은 겨뤄볼 상대이다. 다만 본교 무공이 드러나지 않아야 하는 한계가 있어 실력 발휘를 제대로 못 한다는 점이 걱정이군. 천마초혼술로 습득한 장강대왕의 무공을 바로 사용하는 것도 힘들 것 같고, 단순한 장법 정도가 적당할 것 같구나.’
백엽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녹림왕과 동정수왕은 삼장 거리를 두고 자세를 잡았다.
천혈선생이 말했다.
“먼저 쓰러지는 쪽이 패배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