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191
천하제일 시한부 (191)
“후욱, 후욱.”
숨이 찼다.
몇놈을 벤 것인지, 차마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다.
“지친 것 같군?”
상대가 날 이리저리 훑어보며 비아냥거렸다.
그의 뒤편으로 아직도 많은 수의 마인들이 득시글거렸다.
“그냥 한 번에 와라, 귀찮다.”
난 이내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거칠게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대단하긴 해. 확실히. 음양쌍괴를 고작 열 합도 안 되어 쳐 죽이고, 내 수하들을 이리 눕힌 것을 보면.”
스릉―!
상대가 말과 함께, 천천히 내 주변을 돌았다.
생각보다 신중한 자다.
절대 앞으로 나서지 않으며 천천히 내 체력을 고갈시키고 있다.
‘화포…….’
다행이라면 화포가 더 이상 터지지 않고 있다는 점.
‘제갈세가는 괜찮을까?’
“호오, 아직 다른 생각을 할 정도로 여유가 넘치나 보군.”
난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익숙해.’
놈들의 전투 방식.
무차별적으로 덤벼드는 것 같지만, 살펴보면 상당히 체계적이다.
더군다나 풍기는 기파의 냄새를 맡아 보자면…… 확실히 전에 이놈들과 싸워 봤던 경험이 있다.
“수라마가?”
난 혹시나 싶어 물었다.
상대가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맞군.’
비록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맞는 듯 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인가.’
수라마가는 마교의 지휘부를 구성하는 십대 마가중 한 곳으로, 주로 검술로 유명한 곳이다.
‘귀라마가나, 진천마가가 움직였다면 좀 피곤했을 수도.’
난 당연히 마교를 상대해 봤던 입장에서 십대마가의 세력도를 잘 알고 있다.
대가리 굴리기를 좋아하는 귀라마가가 움직였다면 절대 이런 식으로 싸우지 않았을 것이고.
강력한 패기로 무장한 진천마가는 앞뒤 재지 않고 모두 초토화시키면서 덤벼들었을 것이다.
반면에 암습에 능한 수라마가였기에 체계적으로 인원을 나눠 호북성에 잠입했을 것이다.
‘그것도 정천맹의 눈을 피했다면…… 확실히 맹에도 문제가 생긴 거겠지.’
아무리 수라마가가 암습이나 기습에 능하다해도, 정천맹의 눈을 피할 순 없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호북에 들어와 있다.
그말은 곧 시간을 들여 천천히 호북성에 무사들을 나눴다는 반증이리라.
‘십대마가가 집결한 거다. 본래 뭉치지 않는 그들이 뭉칠 수 있다는 것은…….’
천마가 등극했다는 것.
그것말고는 달리 설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천마는 죽여 없앴다.
물론 소교주가 있긴 했지만, 그는 자취를 완벽히 감춰 버렸다.
‘아, 설마…….’
아무래도 여기서 문제가 생긴 것 같다.
소교주의 행방을 쫓느라, 마교 내부에 감시가 조금 뜸해졌다는 것.
‘사륭회 놈들…….’
난 마교가 나설수 있는 뒷배경에 사륭회가 있다고 본다.
그들이 아니라면 단기간에 이리 천마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승산은 있다.
천마가 무서운 점은 바로 그 무공에 있다.
파천마황공.
무림맹 놈들이 들으면 자존심 상할 법도 하지만, 내 기준에서 파천마황공은 절대의 영역이다.
내 스승이었던 검천신장조차 천마를 상대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 경계를 해야했을 정도니까.
“후우…….”
난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은 끝났나?”
고맙게도 놈은 내가 판단을 내리기까지 차분히 기다려 주었다.
뭐, 섣불리 덤벼들지 못했다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수라마가라…… 고작 너희뿐이냐?”
“…….”
내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상대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
“난 수라마가주, 수라친위대의 일수라.”
상대가 검을 들고 반원을 그렸다.
아수라를 상징하는 여덟 개의 붉은 팔이 그의 등 뒤에서 형상을 드러냈다.
파슷―!
난 이내 내기를 역주천시켰다.
월식호흡, 전상결.
그리고 이어지는 내기의 호흡.
‘진천경신.’
삼매경혼의 색이 달라졌다.
쿠궁―! 쩌저적―!
기파가 준동하면서 그대로 힘을 이기지 못한 대지가 쩍쩍 갈라졌다.
대환단을 통해 내기의 순환을 보다 자유롭게 만든 상태기 때문에 전상결 역시 무리없이 운용이 가능했다.
만족한다.
이 느낌.
아직 부족하지만, 이것만 해도 어딘가.
“신기검단주의 뼈를 이곳에 묻는다.”
파밧―!
준비를 마친 수라마가의 마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 * *
“수라마가는 버리는 패입니다.”
귀라마가의 가주이자, 신녀의 오라버니인 염위가 느긋한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그의 앞에는 신녀, 염희가 앉아 있었다.
화려하게 치장된 복식과 강렬한 화장으로 꾸며진 염희는 이제 그저그런 마가의 여식이 아니었다.
천마신교의 교리를 전파할 신녀의 신분이었다.
“어째서 그런 판단을 하십니까? 아깝지 않으십니까?”
염희가 다소곳이 물었다.
비록 신녀의 신분이었지만, 이름뿐인 신녀란 것도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자신의 오라버니인 염위를 대함에 있어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아깝다라…….”
염위가 교활한 미소와 함께, 턱을 매만졌다.
생각을 할 때 나오는 그만의 버릇이었다.
“수라마가는 우리 마교에 있어서 꽤나 중요한 가문임에는 분명합니다.”
“…….”
염위가 가만히 찻잔을 들어올렸다.
“호전적이고, 피를 보기 두려워하지 않기에 우리에게는 든든한 전력임에는 분명하나…….”
염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도 그렇습니까?”
“그 말씀은…… 그들이 전과 달라졌다는 말씀이시군요, 오라…… 가주님께서는.”
염희의 말에 염위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누구나 변화는 합니다. 변화는 누구나 하지만 과연 적응이란 말도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말일까요?”
“…….”
“원한, 복수, 증오…… 다 좋습니다. 그것이 수라마가가 성장하는 데 있어 원동력이 되어 줄 테니까요.”
염위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의 뒤편으로 중원전도와 함께, 중원 전체의 세력도가 그려진 거대한 지도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새로운 천마를 모셔서 빠르게 마교를 결집시키고 단단하게 굳혀야 할 이 시점에서…… 아직도 천마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단순히 그 이유만으로 그들을 배제할 까닭이…….”
“신녀님.”
염위가 염희를 돌아보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를 본 염희는 재빨리 눈을 피해 고개를 아래로 내리깔았다.
“생각은 제가 합니다. 지금 우리 마교에게 필요한 건…… 결속입니다. 단단하게 서로를 의심치 아니하고 새롭게 옹위된 천마를 따라야만……우리가 살아남는 겁니다.”
나혼자 살고자하면 살수 있다.
하지만 같이 살고자 한다.
염위는 그렇게 염희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 있었다.
“쯧.”
가볍게 혀를 찬 염위가 뒤를 돌았다.
그가 뒷짐을 진 채, 천천히 대전 안을 거닐었다.
“천마께서 파천마황공을 대성하시고 폐관을 나오시는 그 순간이, 저들에게는 재앙이 될 것입니다.”
이날을 기다렸다.
염위는 짜릿한 흥분에 잘게 몸을 떨었다.
전대 천마는 너무 어리석었다.
그저 웅크리고 힘을 키우는 데에만 급급했지, 마인들의 고충을 알지 못했다.
반면 지금의 천마는 달랐다.
너무도 패도적이기에 다루기가 쉽다는 말이다.
“제갈세가의 문을 닫게 만들어 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수라마가에게 그것까지 바랄 순 없겠지요.”
염위가 비장한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는 중원에 그 어떤 세력도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제갈세가만큼은 아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는 놈들이다.
“이번에 그들을 좀 흔들어 보면 뭐가 나오겠지요.”
이번 싸움 역시 철저하게 계산된 그의 계략 중 일부에 불과했다.
* * *
“멈춰라!”
전호는 종서를 끝장내기 위해 주먹을 치켜들었다.
그저 쓰러진 종서의 머리통에 일격만 가하면 끝이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느닷없이 들려온 음성과 함께, 사방에서 느껴지는 이 짜릿한 살기들.
“…….”
전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곤륜.”
곤륜의 제자들이다.
그것도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니라, 제대로 가르침을 전수받은 진짜배기들.
“무령단인가?”
전호가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자신의 주먹을 쓰다듬었다.
“진천마가의 전호. 네놈이 정녕 미쳤구나?”
무령단주, 무적이 천천히 검을 끌러내리며 다가왔다.
“무적. 오랜만이다.”
전호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 인사를 받은 무적의 표정은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신기검단을 건드리다니…… 오히려 잘된 건가?”
“크하하! 이깟 부단주 하나 어쨌다고 정천맹이 움직일 성싶으냐?”
전호가 삐딱하게 고개를 꺾었다.
우드득―!
뼈 맞추는 소리와 함께, 짧게 주먹을 턴 전호가 이내 공격 태세를 갖추었다.
“너희들이야 원래 미친놈들이긴 했지만, 더 미쳐 버린 것인가?”
스릉―!
무적이 이내 검을 뽑아 들었다.
무적, 무린, 무성, 무진.
무자 항렬의 곤륜의 일대제자들이다.
그중에서 맏형이자 대사형인 무적은 다른 사제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을 지녔다.
바로 장문인 무극의 수제자였기 때문이다.
“호오, 이거 언제 한번 붙어 보나 했는데…….”
전호는 잘됐다며 성큼 걸어 앞으로 나섰다.
그의 뒤편 산등성이 아래 새까맣게 마교도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꿀꺽.
무적은 긴장감에 마른침을 집어삼켰다.
‘신기검단의 부단주…… 백종서인가?’
그는 종서와도 안면이 있었다.
“어떤가? 우리 수하들은 빼놓고 둘이서만 붙어 보는 것이?”
전호가 마인답지 않게 정정당당한 승부를 제안했다.
무적은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그걸 지킬지는 모르겠다만, 응하지.”
그가 수락하자, 이내 무령단이 슬쩍 뒤로 물러났다.
펄럭―!
동시에 무적의 무복이 펄럭였다.
웅혼한 기운이 단전에서 줄기차게 뻗어 나와 주변 사위에 그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태청신공.’
곤륜파 독문무공이자, 일대제자에게만 전수되는 절학이다.
거대한 곤륜의 하늘을 담은 듯, 광풍과도 거친 기운이 터져 나왔다.
“전호!”
동시에 무적의 입에서 일갈이 터져 나왔다.
‘창룡후.’
음공의 일환으로 소림의 사자후를 능가하는 곤륜의 절학이 터져 나왔다.
“크윽…….”
미처 대비하지 못한 전호가 귀를 막고 한 쪽 무릎을 굽혔다.
그의 한쪽 귀에서 핏물이 새어 나왔다.
“무적……!”
쩌적―! 콰앙―!
이내 거칠게 몸을 일으킨 전호가 일직선으로 쭉 내달렸다.
마치 성난 멧돼지를 연상케하는 듯한 저돌적인 돌격이었다.
“우습구나.”
무적은 당연히 콧방귀를 뀌었다.
전호를 위시한 진천마가를 수도없이 상대해봤던 전적이 있기에.
파박―!
회련각.
곤륜의 절학들이 그의 몸에서 쉼 없이 터져 나왔다.
채찍처럼 휘어지는 그의 다리가 달려드는 전호의 몸에 무자비하게 작렬했다.
쿵―! 쩌적―! 쿵―!
하지만 전호도 보통은 아니었다.
그는 맞을 건 맞아 주고, 막을 건 막아 내면서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휘익―! 후웅―!
하지만 무적은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전호의 두꺼운 주먹이 애꿎은 허공만 갈랐다.
‘개 같은…….’
전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다. 멍청한 돼지 새끼.”
무적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동시에 그의 동작이 변했다.
회련각을 회수한 무적의 몸이 마치 허공으로 상승하듯 유유히 부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땅을 가볍게 밟아가며 천천히 전호를 도발하는 무적.
‘운룡대팔식.’
늦었다.
전호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운룡대팔식은 마교에게 전대미문의 공포를 안겨 준 무공이다.
기괴막측한 움직임과 더불어 미처 신경 쓰지 못한 사각에서 조여드는 암수는 제아무리 맷집이 단단하기로 유명한 전호라 해도 긴장을 머금게 했다.
“오라.”
무적이 손을 들어 짧게 까딱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