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21
천하제일 시한부 (221)
북궁가.
설한풍이 몰아치고, 사시사철 추위에 뒤 덮인 대지.
사람 하나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시리도록 추운 북해란 땅에는 놀랍게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 북해에서 북궁씨는 오로지 단 하나의 일족만이 사용할 수 있는 성씨였다.
바로 북궁대제라 불리는 초대 빙궁주, 북궁천의 후손들로 따로 북해의 지배자라 불리기도 했다.
그들은 한기를 통제하는 강력한 천빙심결의 가르침대로 북해에 설치된 모든 진법들을 조종할 수 있었으며, 철옹성 같은 요새에 터전을 잡고 있었다.
바로 빙궁.
따로 북해빙궁이라고도 불리는 빙궁은 이름처럼 얼음으로 지어진 성이 아니었다.
혹독한 추위에 성 겉면이 모조리 얼어붙었기에, 사람들이 빙궁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빙궁은 중원과 달리 그다지 자유롭지 않은 풍토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생산할 수 있는 자원은 지극히 한정적이었고, 그렇게 자원이 부족하니 그에 맞춰서 문화도 점차 발달, 혹은 퇴보를 반복해 가며 오늘날에까지 이르렀다.
중원과 다른 것은 빙궁은 혈족 계승의 법칙을 따르지만, 무조건 남자만 그 후계를 이어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때론 여자여도 더 뛰어나다면 당연히 그녀에게 후계 위를 잇게 했다.
천 년에 가까운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했던 궁주를 꼽으라면 모두가 북궁천의 이름을 꼽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빙궁을 성대하게 만들었던 궁주를 꼽으라면 생각할 것도 없이 삼십이대 궁주인 북궁예인의 이름을 외칠 것이다.
북궁예인.
그녀는 북궁설의 할머니였다.
북궁대제 이후 여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천빙심결을 극성의 경지에까지 도달한 최초의 여후로서 그녀는 막강 무력을 바탕으로 순식간에 궁을 휘어잡았다.
그녀가 더욱 돋보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그녀와 후계 위를 겨루던 형제들이 모두 한 가닥 하는 고수 중의 고수란 점에 있었다.
북궁예인은 한 치의 실수도 없이 그들의 세력을 뿌리째 뽑아 버렸고, 아예 반란의 싹마저 모조리 끊어 버렸다.
때론 잔인하게, 때론 더욱 잔혹하게.
그녀는 일말의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었다.
그래서 북해인들을 소리쳤다.
그녀라면 이 척박한 대지를 벗어나 저 풍족한 대지에 발을 딛고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 옳았다.
후계 위를 차지하기 위해, 벌어진 형제들 간의 사투에서 그녀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야 말았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위대한 것은 분명했으나, 당시 그녀와 자웅을 겨루던 형제들 역시 누구 하나 못났다 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실력과 인품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녀는 더욱 잔혹하게 그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래야, 자신의 아들인 북궁환을 살릴 수 있었으니까.
그녀는 다친 몸을 돌보지도 못한 채, 꼬박 삼십 년이란 시간을 빙궁을 재건하는 데 주력했다.
뿔뿔이 흩어진 북해인을 모으고, 빙궁을 중심으로 제대로 된 터전을 잡아 나갔다.
빙궁을 수호하는 진법을 재배치하고, 빙궁의 유일한 통로인 협곡을 막아 버렸다.
안 그래도 신비했던 빙궁이 더욱 신비함으로 물드는 순간이었다.
북궁설은 그런 환경에서 태어났다.
북궁환은 늦은 나이에 북궁예인에게서 무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궁예인은 날마다 야위어 갔고, 나중에는 자세를 지도해 주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북궁환은 나이 서른에 직감했다.
“곧 어머니께서 가시겠구나.”
그건 곧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했다.
반란의 씨앗.
그녀가 완벽하게 처리했다곤 하나, 어디까지나 그건 그녀만의 생각이란 걸.
북궁환은 이미 어린 나이부터 깨닫고 있었다.
북궁예인의 모든 안배는 사실 빙궁을 지키기 위함이었고, 그것은 그녀가 힘이 빠지는 그 시기에 적절히 터져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설아.”
북궁예인은 손녀, 북궁설에게만큼은 한없이 자애로웠다.
그녀는 수척한 몸으로 항시, 북궁설을 안아주고 보듬었다.
친구 하나 없고, 형제조차 없는 그녀에게 너무도 미안했고 또한 아쉬웠다.
북궁환 역시 부족한 자신의 아들로 태어나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수련과 궁주직을 수행하기에 바빴으니까.
“할머니.”
어린 북궁설의 환한 웃음은, 때때로 그런 북궁예인의 상념을 모조리 지워 줄 정도로 순수하고 깨끗했다.
북궁예인은 그런 그녀에게 몇 가지 선물을 남겨 주었다.
“빙정이다. 빙정 중에서도 으뜸이라 불리는 만년빙정이니라. 이 할미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니 앞으로 네가 이것을 지니고 있어야겠구나.”
만년빙정.
빙궁에서 제일가는 보물 중의 보물이었다.
하지만 당시 북궁설은 너무도 어렸기에, 그것이 뭐 하는 것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북궁예인의 선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 할미를 따라 해 보련?”
빙하진천류.
지금의 북궁예인을 만들어 준, 빙궁의 무공이다.
또한 사실 천빙심결에 비해 보잘것없는 취급을 받던 무공이기도 했다.
하지만 북궁예인은 알 수 있었다.
빙하진천류야 말로 북궁가의 진짜 무공이라는 것을.
“천빙심결은 한기를 통제하고, 가두고 부순단다. 하지만…… 빙하진천류는.”
북궁예인이 부드럽게 북궁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일순 북궁설의 두 눈이 희미한 은색 빛으로 물들었다.
“한기를 보듬고 어루만지며 친구처럼 타이르지.”
뭐가 다른 것인가.
묻는다면 북궁예인은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강제로, 힘으로 강한 힘을 억제하고 터트리는 것과 풀어헤쳐 놓고 의지대로 움직이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어느 날, 북궁환이 물었다.
왜 자신이 아닌 자신의 딸이자, 그녀에게는 손녀인 설에게 그런 가르침을 내리느냐고.
그러자 북궁예인이 웃으며 답했다.
“천빙심결은 남아에게 전수한 북궁천의 의지이며, 또한 그것은 분명한 북궁천의 배려였다.”
이유인즉슨…….
“초대 궁주이시자, 내 조상님이 되신 북궁천 대제는…… 여인이시다.”
그랬다.
애초에 북해의 무공은 여인이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북궁예인은 결국 숨을 거두었고, 빙궁은 내분에 휩싸였다.
* * *
“무슨 생각을 그리 해?”
북궁설은 느닷없이 들려온 목소리에 퍼뜩 상념을 깨고 돌아보았다.
북궁설에게 말을 건 이는 바로 서희였다.
“아, 서희 언니.”
둘은 다른 이들과 달리 상당히 친해진 상태였다.
“진공자도 오셨군요.”
서희의 곁에는 진청운도 있었다.
그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던지, 진청운의 태양혈은 불룩 솟아 있었고, 그의 전신에서 단단하다는 느낌을 절로 받게 하였다.
“오랜만입니다, 북궁소저.”
진청운이 무심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왜 표정이 그렇게 심각해?”
“아, 잠시 옛 생각이 떠올라서.”
북궁설이 멋쩍게 웃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지?”
서희가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북궁설이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라고 하면 거짓이겠지. 응,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방법이 없는걸.”
서진에게 도움을 청하면 곧바로 그가 움직일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바빴다.
직접 경험했기에, 서진이 가족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 심정을 알 수 있었기에.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시간은 없었다.
삼 개월만 더 지나면 곧 이곳에 온 지도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빙궁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다.
“곧 오라비가 온다고 했어. 조금만 참아. 나도 부탁해 볼게.”
“말이라도 고마워.”
서희의 말에 북궁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그녀는 이곳을 떠나기로 마음먹은 뒤였다.
물론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떠들다 서희와 진청운은 떠나갔다.
요즘 차 사업 때문에 상단으로의 출입이 잦은 터였다.
그렇게 홀로 울적하게 앉아 있는 북궁설을 향해 익숙한 누군가가 다가왔다.
“남궁진.”
남궁가의 마지막 정통 후계라던가.
그 역시 팔자가 기구하다고밖에 평할 수 없다.
어쩌면 자신과 비슷할지도.
“오늘도?”
북궁설의 당연한 물음에 남궁진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연무장에 발을 들이기 무섭게, 검을 뽑아 들고 무섭게 검을 휘두르는 남궁진.
어찌 보면 촉박해 보이기까지 했다.
형(形)을 띄운다고 했던가?
북궁설은 그런 그를 보며 동질감을 느꼈다.
그렇게 한참이나 남궁진의 훈련 모습을 지켜보던 북궁설이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따라 기분이 울적해서 버틸 수 없었다.
술이라도 한잔 마셔야 할 듯했다.
* * *
북궁설은 곧장 번화가로 향했다.
악안의 모습도 순식간에 달라지고 있었다.
악안의 삼대 패거리도 모조리 정리되고, 이제는 주씨세가의 무사들이 악안을 수호한다.
더군다나 남창까지 주씨세가의 영역이었기에, 불어난 무사들은 여화가 안배한 검진대로 빈틈없이 움직였다.
그렇게 주변을 감상하며 걷던 북궁설이 돌연 무언가를 느끼고 걸음을 멈췄다.
‘뭐지?’
목덜미로 서늘한 감각이 날아들었다.
서걱-!
그녀의 심장이 쿵 떨어졌다.
그녀가 자신의 허리께를 만져 보았다.
‘피.’
피가 흥건하다.
언제? 어떻게?
그녀가 차분히 정신을 집중했다.
당한 건 당한 거고 상대가 누군지, 또한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돌연 그녀의 시야가 달라지고 일그러졌던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어?”
없다.
분명 피가 묻은 것을 봤는데 피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더군다나 방금 느낀 그 감각이 모두 허상이라는 듯, 주변은 아무렇지 않은 느낌이었다.
마치 자신과 이 세상만이 동떨어진 듯한 느낌?
‘착각이 아니었는데.’
설마 꿈이라도 꾼 것인가?
그리 생각하며 북궁설은 자신의 팔뚝을 힘껏 꼬집었다.
아팠다.
이건 분명 꿈이 아니다.
스스스-!
그녀의 콧김으로 차가운 한기가 배어 나왔다.
천빙심결.
주변 대기마저 통제하는 북궁가의 비전절기다.
파밧!
그녀가 신형을 띄웠다.
동시에 그녀는 순식간에 속도를 높여 번화가를 벗어나 한적한 숲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습격했다면, 사람이 없는 곳에서 조우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대로, 누군가가 그녀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 * *
처적-!
한참을 달리던 북궁설이 숲 한가운데에 이르러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누구냐?”
그녀가 살기를 피워 올렸다.
눈에 띄는 즉시 죽이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북궁가. 빙궁의 무사인가?”
그녀의 생각대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방갓을 깊이 눌러써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북궁설은 그가 상당히 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폭의 깊이. 자연스레 내 영역 안으로 들어섰어.’
그것이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상대의 오만함?
아니면 영역 안에 들었어도 북궁설을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일까?
그 무엇도 함부로 단정 지을 순 없었다.
“누구냐고 물었다.”
북궁설이 검을 반쯤 뽑았다.
출수와 동시에 상대의 목을 베어 버릴 심산이었다.
그때였다.
철컥-!
그녀의 검이 도로 꽂혔다.
어느새 방갓인은 북궁설의 옆에 도달해 있었고, 그는 가볍게 손을 눌러 북궁설의 반쯤 뽑힌 검을 도로 집어넣어 버린 것이다.
돌연 방갓 속에서 어두운 안광을 마주했던 것도 같다.
“아니군, 넌.”
상대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가 재미난 것을 찾았다는 듯 광소를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북궁가의 기운이다. 과연 주서진은 무엇을 노리고 있음인가?”
스걱-!
위험함을 감지한 북궁설이 검을 뽑아 상대를 베어 버렸다.
‘베었다.’
손에 잡히는 얼얼한 감각에 북궁설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하지만…….
파스스-!
상대의 신형이 연기처럼 화해 사라졌다.
잔상.
어마어마한 속도 때문에 잔상이 남은 것이다.
북궁설은 그 잔상을 벤 것뿐이었고.
‘잔상에 실체를 담아?’
말도 안 되는 경지다.
이런 수준의 고수가 있다는 것은 들어 보지도 못했다.
“주서진에게 전해라. 나 묵야가 맹세를 어긴 그 값을 직접 받으러 가겠다고.”
상대의 말 속에, 아찔한 살기가 깃들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