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44
천하제일 시한부 (244)
화산파에 왔다.
화산파는 도가 계열의 검문으로 유명했다.
검을 익히지 않은 도인들은 선인봉에서 기거하며, 검을 수련하는 제자들은 모두 낙안봉에서 기거하고 수련한다.
난 지금 화산의 낙안봉에 와 있었다.
쪼르륵.
진하게 우려낸 찻물을 찻잔에 따라 주며 화산파의 장문인 매곡자, 즉 매곡진인이 입을 열었다.
“일찍이 저희 화산을 방문해 주신다고 개방에서 기별이 왔습니다.”
“예,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요.”
난 조용히 찻잔을 들어 목을 축였다.
역시 아무리 먹어도 차는 영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허허, 신기검단주께서 과연 어떤 말씀을 해 주실지 이거참 긴장되는군요.”
매곡자는 사람 좋은 미소와 함께, 마주 찻잔을 들었다.
난 가만히 그가 찻잔을 내려놓길 기다렸다.
똑같이 한 모금을 축인 매곡자가 잔을 내려놓고 날 쳐다봤다.
이때다 싶어 난 곧장 입을 열었다.
“흑련의 동향은 알고 계시지요?”
“알고 있지요. 요즘 강남무림이 영 시끌벅적하다고들 하더군요.”
매곡자의 말에 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흑련이 이렇게 대규모로 움직이는 걸 화산파가 절대 모를 리 없다.
“무림맹의 동향은 어떻습니까?”
“흠, 글쎄요. 저희 사제가 와 봐야 알 텐데요. 아직 무림맹에서는 여타 말이 없습니다.”
무림맹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즉, 무림맹의 말이 있으면 화산파는 흑련을 칠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흑련은 내버려 두시지요.”
“…….”
내 말에 매곡자가 가만히 날 바라봤다.
“무림맹이 개입하면…… 싸움이 정말 크게 납니다.”
“허허, 저희가 싸움이 커지는 것을 두려워할 것 같습니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무림맹이 개입하면 진짜 정사대전이 벌어질 테니까요.”
내 말에 매곡자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강북무림을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무림맹은 가만히 있을 겁니다. 항상 시작은 저들이 했었으니까요.”
“강북무림에 혼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내 말에 매곡자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내 말을 약간 오해한 듯했다.
“흑련을 편드시는 겁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흑련과 싸우는 그 무언가가 강북무림에 혼란을 조장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흠, 그 말씀은…… 마교를 염두에 두고 계신 건지요?”
답답했다.
마교는 이미 내가 막아 냈다.
진짜 큰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 정천맹이 해산해야만 했을 정도로 큰 피해를 입어 가면서까지 말이다.
“정천맹이 해산한 이유는 이미 아실 테니, 그렇게 모른 척 물으시는 저의가 궁금하군요.”
난 가만히 찻잔을 들었다.
매곡자는 지금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다.
저 여유로운 웃음은 확실히 나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에 서기 위함이 분명했으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단주께서는 지금 흑련의 싸움에 개입하지 말아 달라고…… 무림맹에 저희가 그렇게 압력을 좀 넣어 달라고 부탁하러 오신 것이 맞지요?”
“뭐, 맞습니다.”
“그렇다면 저도 상황을 알아야겠습니다. 아무리 구파일방이 무림맹에 묶여 있다 해도 엄연히 강북을 책임지는 연합체인 것은 분명하지 않습니까?”
사실 껄끄럽다.
묵야를 시켜 무림맹에서 간자들을 색출해 내기도 했다.
무려 칠 년이란 시간 동안 말이다.
매곡자를 믿느냐고 말한다면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가 정답이다.
굳이 매곡자가 아니어도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소림사 방장이어도 난 사륭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생각이 없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기에, 함부로 입을 열 수는 없습니다.”
“허허, 이것참. 아쉽군요. 그렇다면 저희도 도움을 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저야 다른 곳을 찾아가면 그만입니다. 화산파를 가장 먼저 들른 것은 그래도 그것이 예의가 아닐까 싶어 찾은 것입니다.”
점점 언성이 높아졌다.
뭔가 꽉 막힌 듯이 가슴이 답답해졌다.
“아마 그들이 강북무림에 충격을 주기 위해 구파일방에 치명적인 수를 준비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때 가서 후회하셔도…… 저는 그냥 무림맹 자체는 없는 셈 치렵니다.”
“…….”
내 말에 매곡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괜히 강하게 나왔나 싶은 표정이었다.
이쯤 말했으면 아마 슬슬 불안해질 때도 됐을 텐데…….
아니나 다를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매곡자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그들이 대체 뭐길래 구파일방을 논한단 말입니까?”
구파일방.
그들은 강력하다.
사실 제대로 붙는다면 흑련이나 마교나 고전을 면치 못할 정도로 강력하다.
더군다나 당금 시대는 무림맹이 압도적인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무림맹이 개입하지 않게 막아 주실 겁니까?”
“…….”
매곡자는 가만히 고민했다.
사실 장문인이라고 해도 함부로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일 것이다.
하지만 화산파의 한 표는 중요했다.
난 화산파뿐만 아니라 무림맹에서 표결을 행사하는 주요한 문파들을 둘러볼 생각이었으니까.
똑똑.
그때였다.
나와 장문인이 있는 이곳 접객실의 문을 누군가가 두드렸다.
“장문인, 저 둘째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온후한 음성과 대비되는 이 기척…….
‘강하다.’
누군지 궁금했다.
“오오, 마침 잘 왔군. 들어오게.”
매곡자의 허락이 떨어지기 무섭게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동시에 나와 눈이 마주친 그 역시, 뭔가를 느낀 듯 흠칫하는가 싶더니 날 향해 꾸벅 목례를 취했다.
“신기검단주님이시군요. 처음 뵙습니다.”
“주서진이요, 누구십니까?”
화산파의 문양이 새겨진 도포를 걸친 채, 매곡자보다는 한참 어려 보이는 한 사내.
매곡자도 그 내공이 엄청 고강하다 생각했건만, 이자는 더했다.
“화산의 매화자라 합니다. 화산의 일 장로이자, 무림맹의 장로를 맡고 있지요.”
‘이자다.’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매화자.
이자가 화산의 제일고수라는걸.
“엄청난 기운입니다. 과연 화산이군요.”
겉치레가 아니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다.
만약 내가 곤륜에서 경지를 깨우치지 못했다면, 절대 알아채지 못할 만큼 고강한 경지에 올라선 자.
내심 무림맹을 무시했던 것도 사실인데, 처음 들른 화산에서 이런 괴물을 발견하다니.
“신기검단주께서도…… 젊은 나이에 엄청나군요.”
매화자 역시 진심으로 감탄을 표했다.
강자는 서로를 알아본다 했던가.
허공에서 얽힌 우리 둘의 시선에서 마치 불꽃이 튀는 것만 같았다.
“밖에서 얘기를 좀 들었습니다. 손님이 드셨다 하여 기다릴까 하다가…… 실례가 되겠습니까?”
“실례랄 것은 없습니다. 앉으시지요.”
난 내 옆자리를 가리켰다.
매화자는 말없이 내 옆에 앉았다.
그러고는 날 향해 대뜸 물었다.
“무림맹을 막아 달라고 하셨습니까?”
“예.”
“안 된다면 저희를 죽이실 생각이셨습니까?”
“예?”
매화자가 이내 빙그레 웃으며 천장 위를 가리켰다.
“아.”
그곳은 묵야가 몸을 감춘 곳이었다.
“일전에 무림맹에서도 본 적이 있습니다. 정천맹 사람인 걸 일찍이 알아 그냥 못 본 척했었지요. 수하이신지요?”
“예, 수하 겸 친구 겸. 겸사겸사지요.”
얼굴이 화끈했다.
“장로들과 교관, 단주 할 것 없이 아주 착실하게 죽이셨더군요. 안 그래도 그들을 비밀리에 조사 중이었는데.”
매화자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조사 중이셨다구요?”
“예, 뭐 그것도 있고. 아무튼 흑련이 뭘 하든 무림맹이 가만히 있어 달라고 말씀하신 것도 그 일환이겠군요? 이곳저곳에 똥물을 뿌려 놓은 그 간자들을 잡기 위해서?”
“…….”
설마하니 무림맹이 아는 건가?
사륭회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오로지 주씨세가의 식솔들과 내 수하들만이 알고 있을 뿐.
“아아, 그들이 하도 수상해서 몰래 조사 중이었습니다. 오해는 하지 마시지요.”
매화자가 빙그레 웃었다.
이제 보니 매곡자랑 웃음이 꽤나 닮아 있다.
“무림맹을 막아 드리지요. 신기검단주께서 하시는 말씀이신데, 따르겠습니다.”
매화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매화자는 동시에 매곡자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장문 사형, 송구하지만 이번 일은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리하시게.”
과연, 진짜 권력자는 매화자가 맞았다.
매곡자가 단번에 승낙하는 걸 보니.
“그럼 두 분이서 담소 나누시게들.”
매곡자는 눈치빠르게 방을 벗어났다.
난 이내 천장을 향해 눈치를 주고 묵야마저 멀리 떼어 냈다.
“둘뿐이니 얘기를 해 보시지요. 그들이 누굽니까?”
매화자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아니, 뭐랄까.
마치 꼭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그런 단단한 의지가 엿보이는 듯했다.
“사륭회.”
난 그를 믿기로 했다.
그가 간자라면, 이만한 강자가 사륭회가 침투시킨 간자라면.
묵야는 이미 정천맹에서 제거됐을 테니까.
“사륭회? 들어본 적이 없군요.”
매화자가 가만히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대체 정천맹은 무슨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겁니까?”
“정천맹은 새외와 싸워 왔소. 흑련도 견제했고, 무림맹도 뭐……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흠, 사륭회라…… 혹 무림맹에 더 남은 간자가 있습니까?”
“아마도 있을 겁니다. 문제는…….”
난 말과 함께, 기막을 펼쳤다.
밖으로 얘기가 아예 새어 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겁니다. 사륭회의 대가리 정도 되는 놈들을 몇 놈 잡아 죽였는데…… 그것도 껍데기 수준이라더군요. 진짜배기 전력은 이제 움직였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흠…… 마교보다 더 위협이 됩니까?”
“마교조차 사륭회의 손아귀에 놀아났었습니다.”
내 말에 매화자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물론 마교의 전력도 제대로 가용되지 않았습니다. 도중에 정천맹이 희생하면서 막아 냈지요.”
“그 점은 너무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매화자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오대세가는 혹시 알고 있습니까?”
매화자의 물음에 난 말을 멈추었다.
어쩌면 이 대답이 편을 갈라 버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저 묻는 것이니.”
내 눈치를 읽은 매화자가 걱정 말라며 손을 내저었다.
“맞소.”
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주씨세가의 깃발 아래 모두 한자리에 모일 거요. 하나, 난 아직 승낙하지 않았소.”
“승낙하지 않은 연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무림맹의 맹주가 바뀌었으면 한다더군요.”
내 말에 매화자가 지그시 눈을 감았다.
어쩌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마음은 알고 있습니다. 오대세가도 결국 정파, 강북무림의 한 부분이거늘 저희 무림맹이 너무 제…….”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오대세가는 이미 무림맹을 믿지 않습니다. 난 최대한 분열을 막고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고.”
“…….”
“이 상황에서 무림맹이 흑련과 붙어 버리면…… 무림맹이 이용할 보급로는 오대세가 쪽에서 모조리 차단시켜 버릴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숫자나 역사적으로나 봐도 구파일방이 우세하긴 하다.
하지만 오대세가가 마음먹고 훼방을 놓는다 가정하면 구파일방 역시 꽤 골머리가 썩을 것은 분명했다.
“좋습니다. 무림맹이 움직이지 않게 막아 보지요. 하지만…….”
매화자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그가 마저 입을 열었다.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역시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