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289
천하제일 시한부 (289)
흑련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흑련의 덩치는 정, 사, 마 세 개의 연합체들 중 가장 거대하다고 알려져 있다.
무림맹처럼 구대문파의 수장들이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며, 마교처럼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천마가 모든 걸 통제하는 것도 아니다.
이들의 힘은 흑련 내부의 네 개의 세력으로 다시 편성된다.
바로 사패주라 불리는 이들이 그것이었다.
반예진이 련주가 되기 전, 사천황이라고 불렸던 이 패주들은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법칙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사문의 계승, 혹은 핏줄의 계승이었다.
절강성과 강소성은 대대로 절강패주의 소관이었으며, 강서와 복건은 복건패주가, 광동과 호남은 광동패주가, 마지막으로 귀주와 광서 쪽은 광서패주가 맡아 관리했다.
그래서 이곳에 있는 흑도계열의 문파, 방파들은 련주의 말보다 패주의 말을 더 잘 들었다.
흑련주도 그것을 알기에 패주들을 설득하고 이끄는 방향으로 줄곧 지휘를 해 오곤 했다.
그중 복건패주, 위한량은 요즘 불만이 많은 상태였다.
강서성을 주씨세가에게 뺏긴 것도 모자라, 그 영향으로 흑련 내에서 자신의 입지가 너무 비좁게 느껴진 탓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만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흑련은 흑도 전체를 대변하는 하나의 연합체다.
결국에 흑련이라는 매개체가 없으면 다른 패주들의 힘도 기대할 수 없었다.
뭉쳐야 흑련이지, 뿔뿔히 흩어진다면 그저 큰 흑도방파 그 이상 이하도 아닐 것이니까.
스윽.
그런 위한량의 막사로 누군가 들어섰다.
“누구…….”
경비무사의 보고도 무시하고 들어선 이는 반예진이었다.
“련주님!”
위한량은 냉큼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만은 불만인 거고, 그는 반예진의 뜻을 그래도 존중하는 편이었다.
그랬기에 여태껏 잠자코 있었던 것이고.
“위 패주님.”
“어서 들어오시지요.”
위한량이 자신의 자리를 반예진에게 양보했다.
전대 사천황이었던 위철휘는 반예진의 아버지, 암흑대제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위한량 역시도 이번 련주인 반예진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그는 정파의 그 누구보다 신의가 깊다고 스스로 자부하는 인물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반예진이 슬쩍 주변을 훑었다.
그녀의 예리한 감각이 막사 주변을 샅샅이 훑고 사라졌다.
뭔가 중요한 말인가 싶어, 위한량은 입을 닫고 가만히 반예진의 말을 기다렸다.
이윽고 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반예진이 마음을 놓고 입을 열었다.
“강서성을 빼앗긴 데 대해 불만이 많은 걸로 압니다.”
“아닙니다, 제가 어찌.”
위한량이 고개를 숙였다.
물론 불만이야 많다.
하지만 그걸 대놓고 내색할 만큼 위한량은 바보가 아니었다.
“지금 어차피 다시 강서성을 찾으러 가는 길이 아닙니까?”
위한량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그는 이번 싸움에 모든 전력을 내걸었다.
주씨세가의 주서진.
심심찮게 들어 봤던 이름이긴 했다.
하지만 그뿐이다.
주씨세가 하나로, 흑련을 상대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이 싸움에서 집니다.”
“…….”
위한량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믿기지 않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지금 무슨……? 설마 련주님은 지금 제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서 이리 오신 겁니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반예진이 침착하게 고개를 저었다.
뭐부터 설명해 줘야 할지 난감했다.
“내가 의도한 싸움이 아닙니다. 당연히 흑련의 세력은 말을 듣지 않을 겁니다. 저들은 이미 알고 있을 테니까요.”
반예진의 세력.
흑련이 가진 진짜 힘.
흑련의 무력 부대가 움직이기 위해서는 고작 련주의 말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바로 ‘그림자.’
즉, 암흑대제의 징표가 찍힌 ‘무언가’가 있어야 했다.
그랬기에 반예진은 그동안 그렇게 아버지를 보살펴 왔던 것이다.
독림과의 싸움 이후로 온전히 흑련을 넘겨받게 되나 싶었는데, 일은 기어코 터져 버렸다.
“사패주를 모두 합친다고 해도, 주 단주가 마음먹고 우리를 잡기 시작하면 당할 재간이 없습니다.”
주서진의 특기.
정정당당한 승부가 아니다.
그는 암습에 최적화된 인물이었다.
천하제일인에 제일 근접했던 천마조차 그의 암습에 당해 버렸다.
“주씨세가를 없애고 강서성 땅을 패주님께 드릴 순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십 년 이내에 모두 땅에 묻혀 있을 겁니다.”
“…….”
위한량의 표정이 사정없이 얼어붙었다.
“주서진이 그 정도입니까?”
“내가 직접 그의 곁에서 그를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반예진의 말에 위한량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에도 말이 많았다.
흑련의 련주씩이나 되는 양반이 주서진의 종노릇이나 하고 있다고.
“그의 가족을 건들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은 버려야 합니다.”
“……근데 왜 개전 명령을 선포하신 겁니까? 지금이라도 철회를…….”
“못합니다.”
반예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짧게 말하겠습니다. 그가 돌아오기 전에.”
반예진이 분주해졌다.
그녀가 퍼트린 기감 너머, 일렁이는 살기가 감지됐다.
자신이 사라진 것을 태무황이 눈치챈 것이다.
“내 시간을 만들 테니, 패주들을 한자리에 모아 주세요. 련주로서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무슨 곡절이 있겠지.
위한량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내 반예진이 빠르게 막사를 벗어났다.
위한량의 행동도 조심스러워졌다.
* * *
사패주가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은 그로부터 사흘 뒤였다.
이미 옥화산 인근까지 사패의 모든 세력을 끌어 올린 흑련은 잠시 싸움을 멈춘 상태였다.
때마침 태무황은 주씨세가를 살피기 위해 진영을 벗어난 상태였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반예진이 위한량의 막사를 다시 찾았다.
“련주를 뵙습니다.”
“련주님을 뵙습니다.”
사패주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서 짧게 목례를 취했다.
“주서진이 이끄는 무사단이 도착할 겁니다. 그들과 조우하면 절대 검을 섞지 마세요.”
반예진은 가타부타 없이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주서진의 무력을 잘 알고 있는, 절강패주 일담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지금이 기회일 수도 있습니다. 이참에 주서진을 꺾어 버리는 것도…… 아예 없는 일만은 아닐 수 있단 말이지요. 어차피 이대로 지내다가는 우리는 주씨세가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 노릇 아닙니까?”
“주서진이 살아 있는 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천하의 마교도 주서진이 등장하니 숨죽여 지내고 있습니다. 우리라고 다릅니까?”
반예진의 말에 사패주의 입이 닫혔다.
“대체 무엇 때문에 이러는지 알려 주실 수는 없습니까?”
이번 독림과의 전쟁으로 가장 많은 손실을 본 광동패주가 물었다.
“부끄럽지만 흑련은 지금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
“…….”
반예진의 솔직한 말에 사패주들이 침음을 집어삼켰다.
그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감히 누가…….”
“협박이라도 당하신다는 말씀처럼 들리오만?”
일담의 요사스러운 광망이 빛을 발했다.
“예, 부끄럽지만 협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것도 목숨을 담보로요.”
반예진은 지금이 솔직해야 할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제 흑련주 직에서 손을 떼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게 싫다고 흑련을 태무황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게 만들 수는 없었다.
“여러분처럼 저 역시 흑련을 더없이 아낍니다. 그렇기에 말씀드립니다.”
“…….”
“가능한 패주들의 힘을 아껴 뒀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패주들이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그들은 흑련주가 될 수 없다.
애당초 다른 패주들이 패주가 련주가 되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리는 만무했으니까.
“여기서 뚝딱거리고들 있었구만, 그래. 크흐흐흐.”
그때였다.
괴기한 웃음소리와 함께, 누군가 막사의 한쪽 면을 북 찢어 가르며 등장했다.
그는 태무황이었다.
당황한 반예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요즘 고분고분 잘 따르는가 싶더라니, 내 이상해서 뒤를 밟았지.”
태무황이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엄청 늙은 나이였음에도, 그의 기세는 패주들을 모조리 아우르고도 남음이 있었다.
“아무래도 네놈인가 보군.”
사패주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들은 자신의 무기를 뽑아 들고 태무황을 향해 겨눴다.
태무황은 거침없이 자신의 기세를 모조리 드러냈다.
들끓는 대기에 사패주들의 기세가 여지없이 맥을 못 추고 무릎을 꿇었다.
“어이가 없군.”
괴물 같은 기파에 사패주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만.”
반예진이 황급히 손을 들고 앞으로 나섰다.
지금 이 자리에서 태무황을 상대할 수 없다.
사패주들이 죽어 버린다면 흑련은 끝이다.
“좋은 생각이다. 그냥 고분고분 내 말을 듣는 편이 좋을 거야.”
태무황은 만족한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위한량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반예진의 앞을 막았다.
“사패가 머리를 조아린 상대는 흑련이지, 저런 늙은이 따위가 아닙니다. 련주.”
“…….”
“재밌겠네.”
일담 역시 자신의 소검을 끌러 내렸다.
금방이라도 한바탕할 기세였다.
“언제고 뒤통수 한번 세게 때려 줄까 했는데, 지금은 아닌 것 같고.”
일담이 반예진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사패주들의 그런 마음에 반예진은 울컥한 심정이었다.
사파에는 지켜야 할 신의 따위는 없다고들 누가 그랬는가.
지금 이들의 모습을 보면 그런 말 따위는 쑥 들어갈 것이다.
반예진은 그리 생각했다.
“크하하!”
태무황이 광폭한 웃음을 터트렸다.
“x발, 그냥 한번 들이받아 보지, 뭐.”
다른 패주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반예진을 보호하듯, 빙 둘러 막아섰다.
“모두 죽여 버리고 내가 직접 사패를 씹어 먹으면 그만이지, 암.”
태무황이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어차피 금방이라도 밟아 죽이면 터질 놈들이다.
사패주는 딱 태무황에게 그런 존재였다.
“이리 허접하니, 세가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그리 숙이고 다니는 거다. 멍청한 후배 놈들아!”
쩌렁쩌렁한 일갈을 시작으로 태무황이 먼저 일담을 향해 권격을 내질렀다.
막대한 기파의 소용돌이와 함께, 태무황의 신형이 섬전처럼 내리꽂혔다.
그 속도가 그대로 무게에 담겨 막아선 일담의 소검이 잘게 균열했다.
쩌정―!
막대한 경력이 터져 나오고, 일담의 신형이 수십여 장을 뒤로 밀려났다.
단 일권에 패주들 중 가장 강하다는 일담이 무력하게 밀려 나간 것이다.
“쿨럭.”
동시에, 일담의 입가로 선혈이 내비쳤다.
단 한 수에 내상을 입고야 만 것이다.
일담이 비척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태무황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다른 패주들 역시 허무하게 나가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패주들의 얼굴에는 포기하거나 비켜서고 싶은 기색은 전혀 없었다.
그들은 끝까지 반예진을 보호하려 했다.
“제길.”
반예진 역시 이들의 뜻을 알았다.
자신이 피한다고 해서 피할 이들이 아니었다.
어떻게 지켜온 흑련인데, 여기서 태무황에게 무릎을 꿇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미안합니다, 아버지.’
아버지가 인질로 잡혔다고 해도.
수하들마저 잃을 수는 없었기에.
스릉―!
반예진이 검을 빼 들었다.
그의 좌수검이 매섭게 빛을 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