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er Who Returned 10,000 Years Later RAW novel - Chapter (726)
만 년 만에 귀환한 플레이어 후일담 15화
벚꽃 엔딩 (1)
“아, 시훈이냐? 응응. 오랜만이다, 야.”
“왜 전에 카톡으로 주말에 시간 되냐고 물어봤잖아? 설아한테 물어보니 이번 주는 뭐 인테리어 공사? 그거 해야 한다고 해서 힘들 것 같다는데.”
“무슨 공사인지는 못 들었어. 갑자기 방 하나를 통으로 뜯어고칠 일이 생겼다 하더라고.”
“여튼, 그래서 다음 주쯤에야 시간 될 것 같다는데 너흰 시간 어때?”
“오, 잘됐네. 그럼 다음 주에 볼까? 어디 갈래?”
“벚꽃 놀이? 좀 늦지 않았나?”
“하긴 뭐. 벚꽃이 중요하냐, 오랜만에 제수씨도 보고 네 딸도 보고 같이 먹고 마시면서 놀면 되는 거지. 그래, 그래. 그럼 담주 토욜에 보자.”
“엉, 너도 잘 지내고. 야야. 사랑하긴 개뿔. 징그럽게 씨리. 그런 말은 제수씨한테나 해, 짜식아.”
“그랴. 난 슬슬 애들 바래다주러 간다.”
* * *
“출석번호 24번, 오강현.”
“네.”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강현은 손을 들어 올리며 답했다.
고개를 끄덕인 담임이 출석부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출석번호 25번 전영웅.”
“…….”
“전영웅?”
담임이 고개를 들어 교실 창가 자리에 앉은 학생을 돌아봤다.
초등학교 2학년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덩치의 소년이 두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채 심드렁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영웅아?”
“쓰읍.”
자꾸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게 불쾌하다는 듯 슬쩍 인상을 찌푸린 전영웅이 날카롭게 담임을 노려봤다.
“있는 거 봤잖아. 자꾸 거슬리게 부를래?”
“읏.”
아무리 요즘 교권이 바닥을 친다고 하지만 담임 선생에게 대놓고 반말이라니.
출석부를 쥔 손이 파르르 떨렸지만, 담임은 감히 소년을 꾸짖을 수 없었다.
전영웅은 전국적으로도 몇 되지 않는 ‘초등학생 플레이어’였으니까.
아무리 어린 나이라고 해도, 마력을 다룰 수 있는 플레이어는 그 존재 자체로 걸어 다니는 흉기나 다름없었다.
심지어 전영웅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부터 ‘천재’라는 수식어를 주렁주렁 달며 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던 플레이어.
박봉에 시달리는 공무원이 감히 손댈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왜 하필 저런 양아치가 우리 반에….’
옆 반에도 전영웅과 같은… 아니, 그 이상으로 유명한 초등학생 플레이어가 한 명 있지만 저런 개차반 같은 성격은 아니라 들었는데.
“그, 그럼 다음 번호는….”
담임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다급히 소년의 시선을 피했다.
전영웅은 쯧, 혀를 차며 다시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
고개를 돌려 전영웅을 살짝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강현이 이내 한숨을 내쉬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자, 그럼 수업 시작한다~ 다들 교과서 피고.”
오늘의 1교시는 역사.
강현은 공책을 피고 깔끔한 글씨체로 필기를 하며 수업에 집중했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처음으로 게이트가 열린 이후….”
게이트가 열린 후 몬스터들이 쏟아졌고, 플레이어라는 초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모두 알고 있다시피 서울에서 치러진 악마와의 마지막 전쟁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웠던 게 바로 ‘무신’이라 불리는 김시훈 플레이어란다. 아, 이 부분 시험에 나오니까 잘 기억해 두고.”
“…….”
조용히 필기를 이어가던 강현의 손이 우뚝 멈췄다.
강현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니야’라고 낮게 읊조렸다.
‘마지막 전쟁에서 세상을 구한 건… 우리 아버지라고.’
똑바로 된 역사를 가르치라고 호통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마음속 가득 끓어오르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가 역사서 속에서 자취를 감춘 이유는, 다름 아닌 강우 자신의 의지였으니까.
‘이해할 수 없어.’
어머니의 말로는 아버지는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이 넘도록 세계를 구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플레이어가 감당할 수 없는 균열들을 닫고 있고.
하지만 그런 엄청난 업적들을 이뤄낸 것치고 아버지의 명성은 말 그대로 ‘아는 사람만 아는’ 수준에 불과했다.
아무도 아버지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누구도 아버지에게 감사를 보내지 않는다.
10년의 세월 속.
아버지의 이름은 시간에 씻겨나가듯 사라져버렸다.
‘다들 아버지에 대해서 좀 더 알아야 하는데.’
자신의 아버지가 얼마나 위대하고, 멋진 사람인지 거짓 역사만 늘어놓는 담임의 자리를 빼앗고 반 애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지만.
-왜 그러셨던 거예요?
-응? 뭐가?
-아버지의 존재를 역사에서 감춘 거요.
-아아. 그거?
-다들 아버지가 아니라 시훈이 삼촌만 기억하잖아요!
-그야 내가 그렇게 기억하도록 만들었으니까.
-하, 하지만 그러면 아버지가…!
-강현아.
아버지는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모두에게 기억되는 것보다, 누구에게 기억되냐가 더 중요한 거야.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시며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으셨지만.
강현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무릇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이다.
세계를 몇 번이나 구했을 정도면 그에 마땅한 보상과 명성을 얻어야 함이 당연했다.
좋은 일을 해도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면 누가 남을 위해 희생한단 말인가.
나쁜 일을 했으면 처벌받아야 하고, 좋은 일을 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얻어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비록 어린 나이긴 하지만,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남을 위해 희생만 하고 정작 그 보상에는 관심 없어 하신단 말인가.
“하아.”
이런 생각을 아버지에게 말한다면 또 낄낄 웃으시면서 말없이 머리를 쓰다듬으시겠지.
‘이젠 나도 어린애가 아닌데.’
강현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담임이 가르쳐주는 ‘가짜 역사’를 공책에 써 내려갔다.
* * *
4교시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먹은 후.
집에 돌아가기 위해 가방을 싼 강현은 1학년 교실로 내려갔다.
“아직 밥 먹는 중이네.”
창문 너머를 보니 리아와 강희가 급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리아 주변에는 친구들이 한가득 모여있었고, 강희는 무리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혼자 급식을 먹고 있었다.
“끄응.”
혼자 급식을 먹고 있는 강희를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강현은 이내 침음을 삼키며 몸을 돌렸다.
여기서 자신이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들키기라도 한다면 안 그래도 여린 맘을 지닌 강희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으리라.
“…산책이나 할까.”
강희와 리아를 두고 먼저 하교할 순 없는 노릇.
강현은 가볍게 시간을 때우기 위해 학교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그렇게 운동장을 지나쳐 자재 창고가 있는 학교 뒤편에 도착했을 때.
“끼잉. 낑, 끼히잉.”
“푸하핫! 야, 이 새끼 죽을라 하는데?”
“와, 신기하네. 개새끼는 발이 부러져도 꽤 잘 걸어 다니는구나.”
저 멀리서 들려오는 동물의 신음소리.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불쾌하고, 질척거리는.
악의에 가득 찬 말소리.
“…….”
강현이는 모퉁이에 몸을 바짝 붙인 채 고개를 슬쩍 돌려 소리가 나는 방향을 지켜봤다.
다리가 부러진 강아지 한 마리가 낑낑거리며 비틀거리고 있었고, 다섯 명의 소년이 그를 내려다보며 낄낄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다.
다섯 명의 소년 중 유독 익숙한 얼굴이 하나 보였다.
‘전영웅.’
같은 반에 있는 양아치.
담임 선생님조차 감히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힘을 지닌 플레이어.
“영웅아, 이 개새끼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슬슬 질리는데 죽여야지.”
전영웅은 피식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근처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하나 주워들었다.
“봐봐, 이 형님이 신기한 거 보여줄 테니.”
그가 손바닥을 펼치자 두둥실 허공으로 떠오르는 돌멩이.
맹렬한 기세로 회전하는 돌멩이가 강아지를 향해 파앙! 쏘아졌다.
“끼힝!”
“어라? 저 똥강아지 새끼가 피했는데?”
“아, 씹.”
전영웅은 돌멩이를 피한 강아지를 바라보며 불쾌하다는 듯 눈을 찌푸렸다.
“비켜봐, 이번엔 맞출 테니까.”
가볍게 손을 튕기자 다시 돌멩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이번에는 한 개가 아니라, 무려 열 개에 달하는 돌멩이들이.
“…읏.”
그 모습을 조용히 숨어 지켜보던 강현의 입에서 나지막한 침음이 흘러나왔다.
‘죽는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다리 부러진 강아지가 저 공격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강현은 주먹을 움켜쥔 채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하지? 선생님을 불러와야 하나?’
아니.
그러면 늦는다.
‘그렇다면 내가….’
내가 나서서, 뭘 할 수 있지?
저쪽은 다섯이다.
심지어 그중에 하나는 마력을 다룰 수 있는 플레이어고.
‘그에 비해 나는.’
마왕의 아들로 태어났으면서도, 아직도 마기는커녕 마력조차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반푼이었다.
“…….”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 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생각해보라.
저깟 강아지 한 마리 지키겠다고 위험을 짊어질 이유가 없다.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저 강아지를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이득보다는 ‘손해’가 많은 일이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잖아.’
여기서 용감하게 나서봤자.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거라고는 무자비한 폭력 말고는 없겠지.
자칫하면 저들의 타겟이 강아지에서 자신으로 바뀔지도 모르리라.
잃을 것만 많고.
얻을 것은 없다.
나서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다.
‘어차피 강아지 한 마리 죽은 거로는 아무도 신경 안 쓸 거야.’
목줄도 없고, 털도 너저분한 게 딱 봐도 버려진 유기견이다.
주인 없는 강아지 한 마리가 죽는다 해도 세상 그 누가 신경을 쓰겠는가.
“후우.”
그래.
그냥 돌아가자.
어차피 여기서 도망친다 해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리아도, 강희도.
아버지와 어머니들도.
다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에게 기억되는 것보다, 누구에게 기억되냐가 더 중요한 거야.
“…….”
아니.
한 사람.
이 일을 기억할 사람이 있다.
잊지 못할 사람이 있다.
“…제기랄.”
세상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해도.
‘나’만큼은 이 일을 계속해서 기억하겠지.
“야, 전영웅.”
모퉁이에 바짝 붙어 있던 몸을 떼어내고 그들 앞에 섰다.
두 다리가 후들거린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북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뭐냐, 넌?”
전영웅이 자신을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새끼 덩치는 왜 이렇게 큰 거야.
같은 학년 맞아?
강현은 속으로 투덜거리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네 출석번호 바로 앞번호가 누군지도 모를 정도면 그냥 네 머리가 나쁜 거 아니냐?”
“아니. 아는데, 지금 뭐 하는 거냐고.”
전영웅이 바닥에 쓰러져 헐떡이는 강아지와 강현을 돌아보며 헛웃음을 흘렸다.
“설마 이 똥개 새끼 때문에 그러냐?”
“여기 똥개 새끼가 좀 많아서 그렇게 말하면 누굴 가리키는 건지 모르겠는데.”
“하, 이 씹새끼가.”
“같은 똥개끼리 좀 사이좋게 지내야지 서로 괴롭히고 그러면 못써.”
“…….”
전영웅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옆에 늘어선 소년들을 향해 눈짓을 보내자 네 명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강현은 달려오는 소년들을 침착하게 바라보다가 고개를 획 돌리며 외쳤다.
“선생님! 여기예요! 여기!!”
“읏.”
“야야. 뭐야?”
달려들던 소년들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그때, 강현이 거칠게 발을 박차며 소년들 사이를 뚫고 질주했다.
‘전영웅만 상대하면 돼.’
어차피 다른 놈들은 전영웅 하나만 믿고 설치는 떨거지들에 불과하다.
전영웅이 쓰러진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리라.
“이, 이 새끼가!”
“야! 잡아!”
속았다는 걸 깨달은 소년들이 다급히 강현의 뒤를 쫓았지만.
마력을 다루지도 못하는 그들이 강현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흐읍!”
강현은 전영웅을 향해 거칠게 주먹을 휘둘렀다.
비록 아직 마기나 마력을 다루지는 못하지만.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육체는 초등학생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했다.
하지만.
“장난하나 이게.”
슈우우욱!
전영웅의 손바닥 위에서 회전하고 있던 돌멩이들이 강현의 몸을 강타했다.
“커헉!”
망치로 후려 맞은 것 같은 둔탁한 고통이 퍼졌다.
“덤빌 상대를 보고 덤벼야지. 감히 ‘플레이어’한테 깝치냐?”
전영웅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강현의 머리칼을 우악스럽게 붙잡았다.
그리고.
‘지금!’
촤아아아악!
강현은 주먹에 움켜쥐고 있던 모래를 전면을 향해 던졌다.
“크윽!”
아무리 플레이어라고 해도 눈을 향해 모래가 쏘아진다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법.
전영웅은 강현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으며 뒷걸음질 쳤다.
뒷걸음질 치는 전영웅을 향해 강현이 야수처럼 달려들었다.
“하아앗!”
빠악!
망치처럼 머리를 내려쳐 이마로 놈의 인중을 찍어버린다.
‘됐어!’
정통으로 들어간 일격.
아무리 플레이어라고 해도 인중을 가격당한다면….
“이 건방진 새끼가!”
빠아아악!
휘청거리던 전영웅이 강현을 발로 걷어찼다.
“커헉! 컥!”
걷어차인 강현이 바닥을 뒹굴었다.
“이 새끼 죽여!”
“뒤졌다 넌!”
뒤따라온 소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강현을 짓밟았다.
‘제길.’
강현은 몸을 웅크린 채 비처럼 쏟아지는 발길질을 견뎠다.
‘내가 마기만 다룰 수 있었다면.’
지금 이 순간에도 미동조차 하지 않는 마기가 원망스럽게 느껴졌다.
“끼잉, 낑.”
쓰러져 있던 강아지가 비틀거리며 강현에게 다가왔다.
“저리… 가, 멍청아.”
“끼이잉….”
“똥개들끼리 서로 잘 노네.”
전영웅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머리 크기만 한 커다란 돌멩이를 허공에 띄워 올린 그가 사납게 이를 드러냈다.
“저, 여, 영웅아.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 너무 크지 않아?”
“비켜.”
전영웅이 머리통만 한 돌멩이를 허공에 띄운 채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거기까지 하지?”
싸늘하게 식은 목소리가 내리깔렸다.
전영웅이 흠칫 어깨를 떨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보인 것은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를 지닌 소녀.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귀엽다’는 생각보다는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빼어난 외모의 소녀였다.
“너, 너는….”
전영웅이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김시아.
옆 반에 있는 또 한 명의 초등학생 플레이어.
그녀가 누군지는 같은 학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니.
같은 학년을 넘어 전교… 어쩌면 전국에서 그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 소녀는 그 정도로 유명한 ‘플레이어’였으니까.
아무리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던 플레이어라고 해도, 김시아에 비하면 태양 앞에 촛불에 불과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시아는 그 유명한 ‘무신’ 김시훈의 딸이었으니까.
“아니면 나랑도 싸우게?”
김시아는 허리춤에서 죽도를 꺼내 쥐며 조용히 물었다.
어린이용 죽도에서 푸른 검기가 사납게 타올랐다.
“가, 가자 애들아!”
전영웅은 죽도에 맺힌 검기를 보자마자 몸을 돌려 다급히 도망쳤다.
네 명의 떨거지들이 그의 뒤를 따라 사라졌다.
“…….”
“…….”
전영웅 패거리가 사라진 자리에 어색한 적막이 내려앉았다.
죽도를 다시 허리춤에 꽂아 넣은 김시아는 쓰러진 강현을 향해 저벅, 저벅 걸어왔다.
“…괜찮아?”
“아, 응. 괜찮아.”
김시아가 내민 손을 잡고 일어선 강현이 꾸벅 머리를 숙였다.
“도와줘서 고마워.”
“딱히 도와준 거 아니야.”
차갑게 대답한 김시아가 다리가 부러진 강아지를 지그시 내려다봤다.
“…바보.”
약해빠진 주제에.
쓸데없이 오지랖만 넓어서는.
“응? 뭐라고?”
“아무것도 아냐.”
흥. 콧방귀를 끼며 몸을 돌린 김시아가 관심 없다는 듯 도도한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아, 참.”
빼꼼.
모퉁이 너머에서 슬쩍 고개를 내민 김시아가 손톱 끝으로 애꿎은 벽을 긁어대며 입을 열었다.
“다음 주 토요일에… 벚꽃 보러 간 데.”
“벚꽃?”
“응. 너네 가족이랑, 우리 가족이랑 같이.”
“아.”
“그러니까… 그.”
우물쭈물 입술을 달싹이던 김시아가 강현의 시선을 피하며 말을 이었다.
“그, 그때까지 다 나으라고!”
후다닥.
말을 마친 소녀가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