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ven's First Time Limit RAW novel - Chapter 49
천하제일 시한부 (49)
마기.
마공을 수련해 마기를 내뿜는 자들을 마인이라 칭한다.
헌데, 그 마기가…… 정파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오대세가, 그것도 남궁세가의 정통 후계자들에게서 느껴진다.
“마교와 손을 잡았더냐?”
내 물음에 남궁천은 그저 피식 웃을 뿐 답하지 않았다.
무언은 긍정이라 했던가.
“남궁진성을 왜 죽였나? 어차피 너희 다 죽을 텐데.”
진심으로 화가 났다.
단순히 마공을 익혀서?
아니다.
마공도 종류가 여러 가지다.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화가 나는 것은 바로 ‘마교’의 마공을 익혔다는 점이었다.
남궁천의 아들놈이라는 저 두 놈에게서 절대 잊지 못할 마교의 냄새가 펄펄 풍겼다.
“이 정도의 마기라면…… 적어도 오 년 이상 마공을 수련했다는 건데, 참…….”
입맛이 썼다.
누구는 그 고생해가며 마교 놈들 잡아 족치고 있었는데, 누구는 뒷 틈으로 손을 잡고 마공을 익히고 있다니.
“내 아들놈은 마땅히 ‘책임’이란 걸 깨달은 거다. 본인이 한 짓으로…… 가문이 망해 버렸으니.”
“그렇다고 죽여?”
남궁진성, 남궁천에게는 아들이다.
그 아들을 죽임으로써 뭘 얻을 수 있을까?
극단적이라면 극단적이지만 남궁진성을 죽임으로써 남궁세가의 단결력은 더욱 단단하게 굳어진다.
그만큼 세가 내 무사들에게 가주만의 굳은 각오를 보여줄 수 있는 계기도 됐고 말이다.
“우리라고 이러지 말란 법이 있나? 살아남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아, 그 말 지겹게 들었어. 네 형한테.”
난 바로 남궁천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 버렸다.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남궁천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기분 나쁘다는 듯이 물었다.
“꿇거라, 신기검성.”
하…… 정말이지.
“그동안 내가 좀 잠잠했지?”
이해한다.
저들은 아직 날 제대로 겪어 본 적이 없을 테니까.
“그래, 살아남기 위한 방법. 다 이해해. 인질도 잡고…… 협박도 해 보고 뭐…… 다 이해한다고.”
우웅!
내기를 주천시켰다.
전하결의 인도 대로 움직이는 전신을 순환하는 내기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우우웅!!!
서릿발 같은 기세가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일주천을 끝낸 진기가 단전을 빠져나와 중완혈을 거쳐 조해, 충양혈을 향해 움직이고 그에 맞춰 몸의 움직임이 달라졌다.
파짓!
대기가 타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상대와의 거리를 좁혔다.
내가 노리는 것은 단 하나.
서희를 붙잡고 있는 놈.
“후야!”
남궁천의 다급한 일갈이 터져 나왔다.
남궁후.
들어 본 적 있다.
남궁천의 둘째 아들놈이라지.
투콱!
난 그대로 살짝 몸을 띄워 남궁후의 모가지에 발을 걸었다.
그러고는 체중을 실어 반대 방향을 향해 허리를 힘껏 틀었다.
쩌정!
어마어마한 반발력이 내 다리를 튕겨 내려 했다.
하지만 어림없다.
“크읏!”
남궁후는 손쉽게 튕겨져 나갔다.
그러고는 볼품없이 땅을 뒹굴었다.
“뒤로 와.”
난 빠르게 서희를 등 뒤에 숨기고는 다시 자세를 고쳐 잡았다.
남궁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것이다.
“죽이거라.”
남궁천의 말에 이번에는 다른 놈이 반응했다.
형을 잡고 있는 녀석이었다.
남궁태.
남궁가주의 첫째 아들놈이다.
우습게도 첫째이자 다음 후계자 위에 거론되는 놈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소가주직을 물려받지 못했다.
헌데, 이런 모습이라니.
참 실망이 크다.
스륵!
남궁태가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난 굳이 그쪽으로 시선을 두지 않았다.
형에게 정이 없어서?
형이 어찌 되든 상관없어서?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촤악!
피가 튀었다.
“후, 늦었습니다. 단주님.”
날 향해 경외 어린 시선을 팍팍 쏘아 보내며 포권을 취하는 한 사내.
귀면탈혼이었다.
그는 전과 달리 놀라울 정도로 날카로운 기세를 사방으로 쏘아 보내고 있었다.
기운을 아직 미처 가다듬지 못한 탓이리라.
풀썩!
이내 남궁태가 허무하게 쓰러졌다.
“…….”
동시에 남궁천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가주님, 일단 자리를 피하심…….”
“……거라.”
“옛?”
호법좌사는 이미 진 싸움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남궁천을 향해 조용히 후퇴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남궁천은 그를 멀리 떼어 내려 했다.
“난 가지 않는다.”
우웅!
기세가 다르다.
“하.”
아뿔싸.
큰 거 하나를 망각했다.
제 아들놈들에게 마공을 전수했으면서, 본인이라고 가만히 있었을까.
스릉!
남궁천이 검을 들고 무릎을 굽혔다.
그의 두 눈이 시뻘겋게 물들었다.
마치 악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차오르는 마기에 남궁천의 표정에 환희가 깃들었다.
“적어도 십 년. 작정하고 마공을 익혔군. 천하의 남궁세가가.”
나도 더 이상 괄시할 순 없었다.
피부가 저릿할 정도로 느껴지는 이 마기는 섣불리 대했다간 큰코다친다.
우우웅!!!
사방을 잠식하기 시작한 마기는 점점 더 덩치를 키워 갔다.
이제는 그의 마기만이 전장에 남아 현기증이 일 정도로 광폭한 기운을 마구 쏟아 내고 있었다.
“가, 가주님.”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남궁세가의 무인들이었다.
그들은 가주의 변한 모습에, 또한 느껴지는 마기에 당황했는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쿠웅! 쩌저적!!!
동시에 남궁후 역시 가볍게 진각을 밟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내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렸다.
비록 남궁천만큼은 아니지만, 그의 마기도 충분히 심상치 않아 보였다.
“물러나.”
난 서희와 형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들이 뒤로 물러나기 무섭게 귀면탈혼이 내 곁에 섰다.
“어찌할까요?”
“넌 나서지 마라. 마공에 휩쓸렸다간…… 금방 정신이 무너질 테니.”
골수까지 배어 버린 마기는 마치 마약과도 같아 절대 끊을 수 없다.
한 번 익히기 시작하면 그것의 끝이 설령 죽음일지라도 계속해서 파고들고 또 파고들게 만든다.
그것이 마공이다.
그래서 무림에서 마공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
그런 개 같은 마공을…… 무림에 퍼트린 것이 바로 천마신교 바퀴벌레 같은 놈들이고.
후웅!
남궁천의 자세가 돌변했다.
그의 검이 짙은 묵기로 휘감겼다.
눈에 보일 정도로 형상화된 검기.
아니, 검강.
‘저건…… 마라혈강.’
꿀꺽.
뒷목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마라혈강.
천마신교 내에서도 서열 십 위 안에 들었던 검마의 무공이다.
문제는 일정 경지를 넘지 못하면 순식간에 정신이 피폐해진다는 것에 있다.
지금 남궁천의 모습이 딱 그랬다.
“제기랄.”
급한 대로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검을 대충 주워 들었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검이다.
“후우…….”
작게 심호흡을 한 후, 그대로 기수식을 잡았다.
‘무엇을 보았느냐.’
파짓.
검을 쥐기 무섭게 환영이 날 괴롭혀 온다.
‘검은 꽃…….’
검은 꽃.
그래, 검은 꽃을 보았다.
‘무능이다, 무능. 무능! 무능! 무능!’
이날 이때까지 수도 없이 한계를 증명하고 또 증명했다.
분명 열 살 때 만났던 그 할아버지는 내게 재능이 없다 했으나, 현재의 난 천하제일을 논하고 있다.
그럼에도 왜, 보이지 않는가!
우득!
검을 잡은 팔뚝에 힘줄이 돋아났다.
동시에, 근육이 터질 듯 팽배하고, 무복이 미친 듯이 휘날렸다.
흠칫.
뒤에 서 있던 귀면탈혼이 사색이 된 채, 뒷걸음질을 치기 시작했다.
고작…….
고작 검을 쥐었을 뿐인데.
기운이 돌변했다.
아니, 사람 자체가 변했다.
남궁가의 무인들은 감히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벌벌 떨었다.
개중에는 검을 떨구는 자도 생겨났다.
“크아아앗!”
마기를 순식간에 집어삼키는 내 거력을 감당하지 못한 남궁천은,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몸을 날렸다.
꾸드득!!!
쥐고 있던 검자루의 끝부분이 갈려 나갔다.
내 내기를 이 검 또한 감당해 내지 못함이라.
‘삼재검법.’
조용히 검을 들고 가볍게 가로로 그었다.
단순한 가로 베기.
스각!
동시에 귀를 스치는 조용한 소음.
하지만 그 여파는 절대 단순하지 않았다.
쩌엉!
하늘과 땅이 갈라진 듯, 공간 자체가 쩍 벌어졌다.
그것은 아주 찰나였기에,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감히 알아채지 못한 변화였다.
쭈가아악!!!
남궁천의 마공이 휩쓸렸다.
남궁천이 내뿜는 마기보다 더욱 짙은 마기가 게걸스럽게 주변에 내재된 마기를 집어삼켰다.
핏!
이윽고 남궁천의 목에서 핏물이 튀었다.
털썩!
그가 피를 내뿜으며 허물어졌다.
그의 눈에 금세 생기가 사그라들었다.
퍼걱!
동시에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남궁후 역시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목이 기하학적으로 꺾인 채, 푹 고꾸라졌다.
일대에 정적이 찾아왔다.
번뜩!
난 그대로 남궁가의 무인들을 샅샅이 훑었다.
마공의 향.
그 역겨운 기운을 가진 자를 찾기 위해.
하지만 없었다.
파스스!
동시에 쥐고 있던 검이 잿 가루가 되어 휘날렸다.
“후우.”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몸에 긴장을 풀었다.
전신에 퍼졌던 진기를 회수하자, 머리가 깨질 정도로 퍼졌던 감각 범위 역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검을 들기만 하면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신체’를 다시 잠재운 것이다.
“미, 미친…….”
귀면탈혼이 털버덕 주저앉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다리에 힘이 풀려 버린 것이다.
왜 신기검단주를 그리 높게 평가했는지 한 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일하게 이곳에서 귀면탈혼만이 간신히 보았던 그것.
‘만약 남궁천의 뒤편에 다른 무인들이 있었다면…….’
그의 시선은 남궁천이 덤벼들던 그곳의 하늘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진의 검격이 닿았던 곳, 구름의 모양이 정확히 검격의 모양대로 싹둑 잘려 나가 있었다.
* * *
다음 날.
“도망친 남궁가의 무인들은 도합 백 정도로 추산됩니다. 어찌할까요? 쫓을까요?”
“냅둬.”
초영의 보고를 듣고 있던 난 너무도 귀찮아 그대로 손을 내저었다.
“이대로 살려 두면 소문이 퍼질 겁니다. 그리되면…… 이곳이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될 겁니다. 무려 신기검성의 거처니까요.”
초영의 말이 맞았다.
소문이 퍼진다.
난 이걸 극도로 싫어했다.
관심받는 것도 싫었고, 무엇보다 조용히 살고 싶었다.
그런데…….
생각이 달라졌다.
“왜?”
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서희에게 눈길을 주었다.
내 시선을 받은 서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냥 서희가 편하게 지낼 수 있게 세가다운 세가를 만들어 주고 떠나려 했다.
헌데, 글렀다.
글러도 한참이나 글렀다.
아, 일단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초영에게 답변을 해 줘야 했다.
“정천맹이 알아서 쫓을 거다. 날 건드렸으니까. 내가 이곳에 있는 걸 아는 놈들이니까.”
내 말에 초영이 과연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마공에 대해 슬쩍 넘겨줘. 그럼 그놈들이 도망칠 구석은 없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초영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는 그대로 방을 나섰다.
난 다시 서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어제 봤지?”
“응……? 아, 응.”
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아침에 남궁천을 포함한 남궁가의 무사들을 도륙 낸 일을 말하는 것이다.
“무공을 가르쳐 줄 순 있지만, 시간이 안 돼.”
늦어도 너무 늦었다.
무공을 배우기에 가장 적합한 나이는 오륙 세 전후.
그전에 근골을 다지고, 세맥을 열고 기초를 완벽히 다져 놔야만 열을 가르치면 일곱은 흡수할 수 있다.
하지만 서희는 아예 기초가 없다.
“미안하지만 무공을 가르쳐 줄 순 없겠다. 어느 정도 효율이 나올지도 모를 노릇이고.”
그렇다고 완전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신 호위를 붙이면 된다.’
서희를 완벽하게 지켜 줄, 초고수를 데려오면 되는 것이 아닌가.
난 실망한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서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마침, 딱 적당히 떠오른 녀석이 하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