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oes, Demons & Villains RAW - chapter (140)
목 차
138장. 영웅의 담론(2)
139장. 악당의 담론
140장. 악당의 이변
141장. 마왕의 이변
142장. 영웅의 이변
143장. 마왕의 구원
144장. 영웅의 구원
145장. 악당의 분전
146장. 영웅의 분전
147장. 악당의 결전
148장. 영웅의 결전
149장. 악당의 전율
150장. 사제의 상념
151장. 검자의 상념
152장. 요마의 상념
153장. 50년 전
154장. 영웅의 회상
155장. 악당의 회상
156장. 마왕의 회상
157장. 마왕의 전투
158장. 자객의 전투
159장. 악당의 전투
160장. 사제의 전투(1)
138영웅의 담론(2)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대답, 동시에 모든 의문을 풀어 주는 해답이기도 했다. 아무리 강대한 힘을 지닌 집단이라도 그 힘은 적을 상대할 때만 강한 법이다.
세계 정복을 이뤄 낸 핵심이었던 13사도, 그들이 모두 배반을 했다면 암흑성이 아무리 강대했었다 한들, 파멸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13사도가 뿔뿔이 흩어짐에 따라 암흑성이 파멸한 이유 또한, 자연스럽게 어둠 속에 묻히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모든 사도가 암흑성의 총사를 배신했던 것은 아니에요. 어떤 사도는 침묵했고, 어떤 사도는 도망쳤죠. 세나드 씨는 그중에서 침묵을 지킨 분이었어요.”
그래서… 조부님은 암흑성에 대해 입을 다무셨던 것일까? 아무리 암흑성이라 할지라도 강직한 성격의 조부님에게 있어 누군가의 배반을 지켜본다는 것은 두고두고 후회로 남는 일이셨을 것이다.
그렇기에 암흑성의 파멸에 대해 침묵하고 선조 일검자의 유지를 어기면서까지 프리 나이츠와의 연을 끊으셨던 거라고 생각해 보면, 앞뒤가 맞았다.
“그렇게 배신으로 암흑성을 무너트린 사도들은 그 이후로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조직으로 돌아갔지만, 사실 그들이 모르는 한 가지 비밀이 있었죠.”
충격적인 사실에 상념에 잠긴 나를 마주한 채, 사제장은 가볍고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밝힌 그 비밀은 그 말투와는 달리, 더없이 놀랍고도 전율적인 것이었다.
“13사도의 주인에게는 한 명의 제자가 있었지요. 다른 사도들 모르게 그 모든 악의를 전수받고, 최후의 날 스승을 버리고 도망침으로써 살아남은 암흑성 최후의 사도, 13번째 사도가.”
“……!”
암흑성의 총사에게… 제자가 있었다고? 전혀 상상치도 못했던 이야기에 나의 심장은 터질 듯 요동쳐왔다. 실질적인 암흑성의 수장으로서 유일하게 세상을 정복했던 절대 악의 군주이자, 아흔 가지 비전을 터득하여 누구도 당해 낼 수 없었다는 지상 최고의 악당.
암흑성의 총사, 모든 것이 비밀에 둘러싸인 채 전설로만 전해지는 그에게 제자가 있다는 것은 그만큼 놀라운 사실이었으니까.
그와 더불어 내 마음속을 파고드는 것은 한 줄기 오싹한 의심. 세간에 알려져 있기로 40년 전, 광풍의 혈전에서 광검자와의 결투 이후, 투검자의 맥은 끊어졌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렇게 절전된 걸로 알려진 ‘전장의 불꽃’을 그분은 대체 어떻게 습득하셨던 것일까. 알 수 없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다.
‘데몬 소울’에서 비롯되어 12식인귀와 사라진 ‘불사의 심장’, 용검자의 비전인 ‘세계의 열쇠’, 성검자 어르신의 비전인 ‘철의 영혼’, 고대에 실전됐다는 ‘짙푸른 용의 불꽃’ 등.
상식적으로는 절대 한 사람이 익힐 수 없는 그 수많은 비전을 그분은 대체 어디서, 어떻게 익히셨을까.
어쩌면 그 비전의 출처는 아흔 가지 비전을 터득했다는 이 지상 최고의 악당, 암흑성의 총사가 아니었을까?
“하긴, 그것도 이제는 옛날이야기일 뿐이죠. 과거 암흑성을 배반했던 사도들은 이미 죽어서 사라진 지 오래고, 이제는 그 조직마저도 거의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모두 전설일 뿐이라는 듯,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사제장을 보면서도 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깊은 의심과 어둠을 느꼈다.
정확하게 알려져 있진 않지만 암흑성이 사라진 것은 대략 40―50년 전, 한 사람이 늙어 죽기에는 충분한 세월이지만 불노불사를 추구하여 《악의 서》라는 희대의 기보를 만들어 냈던 암흑성의 사도들이 과연 단순하게 늙어 죽었을까?
더구나 막강한 세력을 지녔던 그들의 조직마저 고작 수십 년 만에 연이어 사라졌다는 것은 단지 우연에 지나지 않을까? 그것은 혹시, 13번째 사도가 스승을 대신해 복수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이라는 노래에 들어 있는 것은 12개의 조직일 뿐, 만약 13번째 사도가 어떤 조직의 수장이 아닌 단지 암흑성의 총사의 제자로서 사도의 직위를 얻었을 뿐이라면 그것은 납득 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 추측대로라면 암흑성의 총사가 죽으며 혼자가 된 13번째 사도가 강대한 세력의 수장이었던 12사도에게 복수를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암흑성이 당했던 그대로 내부에서 조직을 무너트리는 방법을 썼다면?
13번째 사도가 총사의 제자였다면 다른 조직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을 것이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각 조직의 내부로 파고들어 가는 것도,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각 조직의 심층부로 파고들어, 수년, 혹은 수십 년의 세월에 걸쳐 12사도의 조직을 무너트리고 사도에 대한 복수를 행해 왔던 것이라면…? 때로는 적에게 비전을 가르쳐 충돌시키고 때로는 스스로 내분이 일어나게 유도하고 때로는 외부에 조직의 정보를 팔아넘기면서?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한 줄기 오싹한 한기가 나의 등을 스쳐 지나갔다.
한때나마 세계를 정복했던 조직들을 상대로 다른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수십 년에 걸쳐 복수극을 벌여 온 그 한이, 절망이, 증오가 너무나도 섬뜩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자리에 굳어 있는 나를 향해 사제장은 싱긋 웃으며 말을 끝맺어 왔다.
“오라버니를 너무 믿지 마세요. 그분은 거짓말쟁이 악당이랍니다.”
여우 같은 눈웃음과 함께 내 귓가에 의심을 불어넣는 사제장을 나는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토록 순순히 내 질문에 대답해 주는…. 아니, 필요 이상 많은 것을 알려 주는 의도가,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내게 아까 포기했던 질문을 반복하게 했다.
“당신의 정체는… 대체 무엇입니까?”
설령 그녀가 13사도의 후예라고 할지라도 이토록 많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은 너무나 의심스러운 일이었기에 나는 그것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질문에도 사제장은 그저 싱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알고 계시지 않나요? 소녀는 ‘암흑의 의지’를 품은 자, 악의를 품고, 악의 가르침을 따르며, 악을 행하는 자라는 걸요.”
그제야 나는 새삼 깨달았다.
아무리 어려 보인다고 해도 이 소녀는 암흑 교단의 사제장. 그 누구보다도 악신의 뜻을 잘 이해하고 있는, 그야말로 악신 그 자체와도 같은 어둠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더 이상 그녀에게 휘둘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나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사제장의 말이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다. 사제라도 거짓말을 못 하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게다가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분이 13번째 사도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만약 그분이 정말로 13번째 사도라면, 그리고 근 수십 년에 걸쳐 암흑성을 배반한 12사도에 대한 복수를 행해 오셨다면….
입 안이 바짝 마르고 폐가 숨쉬기 힘들 정도로 조여 오는 고통 속에 나는 힘겹게 그 의심을 마무리 지었다.
…나의 조부님을 독살한 범인은, 혹시 그분이 아니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