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06)
206화 언젠간 만나게 되어있다 -1
2022/23시즌.
맨체스터 시티는 트레블을 달성했다.
프리미어 리그 우승.
FA컵 우승.
그리고 오랜 염원이었던 챔피언스 리그 우승까지.
선수들은 기뻐했고 팬들은 오열했다.
그동안 남아있던 아쉬움을 모두 날려 버리고, 맨체스터 시티라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트레블이라는 영광을 새겨넣을 수 있음에 행복해했다.
그러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흐르고 역사라는 책의 페이지는 계속해서 넘어간다.
오늘의 역사는 곧 어제의 역사가 되고, 오늘이 어제가 되는 순간 역사는 다시 백지부터 시작이 된다.
모든 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
조용한 사무실 안, 편한 차림의 한 남자가 마우스를 딸깍거리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다.
스페인 출신의 축구경영인이자 맨체스터 시티의 CEO, 페란 소리아노다.
“1억 300만 유로··· 음···”
소리아노가 들여다보고 있는 화면엔 축구 기사가 띄워져 있다.
레알 마드리드가 주드 벨링엄을 1억 300만 유로(약 1,440억 원)에 영입했다는 소식의 기사였다.
“···재밌네.”
소리아노가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피오렌티나도 그렇고, 레알 마드리드도 그렇고.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 안 할 것처럼 굴더니, 뒤로는 이미 한 발을 빼고 있었던 건가.
뭐, 예상 못 한 바는 아니다만.
조금만 더 먼저 알았다면 협상을 더 이어갔을 텐데.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
이틀 전.
맨체스터 시티는 피오렌티나 측과 구단 간 합의를 마쳤다.
이제부터 이지안이라는 선수와 개인 합의를 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는 뜻이었다.
“···후우.”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리는지, 소리아노가 한숨을 내쉰다.
세상 그렇게 완강한 사람들은 난생처음 봤다.
이적료에 관해서 어찌나 단호하던지 조금의 양보도 없더라.
피오렌티나 보드진들 말이다.
그 꼴이 조금 꼴 보기 싫긴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는 없었다. 저자세로 협상에 임해야 했다.
본인들이 원하는 매물의 값어치가 억만금을 주어도 모자라지 않은 것이기도 했거니와,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경쟁자가 반대편에서 협상 중이기도 했으니까.
사실 레알 마드리드와 영입 경쟁을 붙어 이길 수 있는 팀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레알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말이다.
레알이 영입에 관심을 보인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만 해도 발을 빼는 팀들이 부지기수일 정도.
그것은 심지어 맨시티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자금력도 자금력인데, 레알은 선수들의 드림 클럽이라고 불릴 만큼 위대한 역사를 쌓아온 클럽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포기하기 어려웠다.
처음부터 끝까지 갈 생각이었다.
보드진부터 감독, 코치진까지 모두가 만장일치로 의견이 합쳐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트레블이 어제의 역사가 되고, 그 어제의 역사가 뛰어넘어야 하는 벽으로 다가오게 될 내일.
그 내일을 위한 만능 카드가 이지안이었으니까.
뭐,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이긴 하겠지만.
매주 승패가 갈리는 프로축구의 세계는 그렇다.
지난 시즌에 트레블을 했어도, 그다음 시즌에 우승을 하지 못하면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아니, 사실 거기까지 갈 필요도 없다.
트레블을 향해 가는 와중에도 한 경기 지면 위기론이 대두되는 게 이 바닥이다.
전반전에 잘했던 선수가 후반전에 부진하면 욕을 먹는 게 이곳의 생리.
따라서 지난 시즌 트레블이라는 업적은 위업이고 대업이었지만, 새 시즌을 준비하는 입장에선 넘어야 하는 벽이자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쉽게 말하면 다음 시즌 다시 트레블을 해도 본전이라는 거다.
물론 그 앞에 2연속이라는 말이 붙을 테니 좀 다르긴 하지만, 말이 그렇다는 얘기.
막말로 리그 우승에 FA컵 우승 정도 했다고 치자.
더블도 대단한 거다.
그러나 그렇다고 비판의 소리가 안 나올까.
분명히 나올 거다.
왜?
이 팀은 지난 시즌 트레블을 했던 팀이니까.
그러니 새 시즌 준비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전력을 최대한 유지하고, 나아가 더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도전자가 챔피언이 되는 것보다, 챔피언이 챔피언 자리를 유지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챔피언은 모두의 견제를 이겨내야 하기 때문이고, 그렇게 이겨도 본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이지안이었다.
모든 보드진들의 픽이자, 과르디올라 감독의 픽.
이제 18세가 되는 어린 선수라 케빈 데 브라이너의 장기적 대체자가 될 수 있고, 팀의 중추가 될 수 있는 선수.
그러면서도 즉시 전력감이 되기에 충분한 선수.
모든 돈을 다 써도 좋았다.
어차피 어중간한 영입 여럿을 할 바에 확실한 선수에게 확실히 투자하자는 게 맨시티의 방향성이기도 했으니까.
“쯥쯥쯥···”
그런 의미에서, 레알이 먼저 발을 뺐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게 조금 아쉽기는 하나.
경쟁이 붙으면서 더 뛰어버린 금액을 자신들이 떠안게 된 게 나쁘지는 않았다.
영입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까짓 오버 페이쯤이야 다 메울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휴우우···”
이젠 그저 슬슬 진행에 들어갈 개인 협상만 잘 마무리되길 바랄 뿐이었다.
ㆍㆍㆍ
“···야.”
“응? 왜?”
오랜만에 집 대청소를 하고 있던 와중.
자기도 도와주겠다며 물건들을 정리 중인 지우에게 묻는다.
“너 여기 좋다고 하지 않았었냐.”
“나? 그랬었지? 근데?”
“···아니. 뭔가 기분이 좋아 보여서.”
“뭐 기분 안 좋아야 될 이유라도 있나?”
“···아냐. 그거 저쪽에 두면 돼.”
“저기? 오키. 확인이요.”
쫄래쫄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물건을 들고 가는 지우의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요 며칠, 상당히 좋아 보이는 지우의 기분을 이해하기가 조금은 어려웠다.
아니, 분명 언제는 여기가 너무 좋다고, 우리 집 같다고, 떠나기 싫다고 했으면서.
막상 떠날 수도 있다고 했는데도 기분이 좋아 보인다는 게 이상하잖아.
그래서 그 날 내 말을 잘못 들은 건가 싶기도 했다. 아니면 들었는데 잘못 이해한 건가 싶기도 하고.
근데 자기도 짐을 정리 중이라고 한 걸 보면 또 그건 아닌 것 같던데.
뭐가 어찌 됐든 알 수가 없다.
여자의 마음은.
“하아. 이 집도 정 많이 들었는데. 나중엔 하숙집보다 이 집이 더 생각날 것 같아.”
“···실제로 여기에 더 많이 있지 않았냐.”
“하하하. 그럴걸?”
물건을 놔두고 온 지우가 조금은 휑해진 거실을 바라보더니 한숨을 섞으며 말한다.
이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본다.
그러고 보면 이 집에 그렇게 오래 산 것도 아닌데.
그런 것치곤 정이 많이 들었다.
아마도 2년, 3년이라기엔 너무나 많은 일들이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되돌아보면 정말 초고속으로 지나간 듯하다.
처음 이곳에 온 날, 그리고 훈련장에서 혼자 공을 차던 게 진짜 먼 옛날처럼 느껴진다.
체감상으론 거의 5년은 된 것 같달까.
뭐, 그만큼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게 바뀌었다.
가장 많이 바뀐 건 나고.
그렇게 바뀔 수 있게 해준 건 지금 내 앞에 있는 지우다.
···음.
근데 지우는 딱히 바뀐 게 없는 것 같네.
매일 봐서 못 느끼는 건가.
“얘들아. 이쯤 해두고 밥 먹으러 가자.”
“예에! 밥!”
방을 정리 중이던 아빠가 거실로 나오며 말하자 지우가 만세를 부른다.
매일 봐서 못 느끼는 게 아니라 지우는 그냥 그대로인 게 맞는 것 같다.
예나 지금이나 밥 먹자는 게 제일 기분 좋은 말인 거 보면 말이다.
“···”
뭐··· 그래서 좋다.
나야 변해야 하니까 변한 거지만.
지우는 저 모습 그대로일 때가 제일 좋으니까···
*
“야. 어떻게 안 되나? 내가 이지안인데! 이거 한마디면 다 되잖아.”
“···싫어. 그런 거.”
“에잇. 어쩔 수 없넹.”
몇 번 남지 않은 피렌체에서의 식사.
상황이 상황인지라, 식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내게도 남은 한 끼 한 끼가 소중하다.
그래서 근사한 식당에 오려고 했는데, 이게 웬걸.
생각해보니 따로 예약을 안 했다.
요 며칠 내내 계약서만 들여다봤더니 정신이 다 빠진 모양이다.
“그냥 동네로 가자. 여긴 너무 번잡해. 그렇지? 지우야.”
“넹. 좀 조용하게 먹고 싶기는 해요.”
“좋네. 좋아.”
하는 수없이 발길을 돌린다.
그러다 문득, 이거 어디서 한 번 봤던 장면인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든다.
언제였지.
꿈에서 봤었나.
“···어.”
그렇게 조용한 식당을 찾아 거리를 걷던 중.
또 한 번 기시감이 드는 간판을 발견하곤 발걸음을 멈춰선다.
···아, 기억났다.
프로 계약을 맺은 뒤 며칠 뒤였나.
내 카드라는 게 생기고 나서, 아빠와 지우한테 밥을 사겠다고 했던 날이었지.
그때도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려다, 예약을 안 해서 못 들어가고 떠돌아다니다 여기로 왔었던 것 같은데.
···되게 옛날 일처럼 느껴지네.
“저기 갈까?”
가만히 서서 식당을 바라보고 있으니, 지우가 묻는다.
이에 고개를 끄덕이자 지우와 아빠가 앞장서 식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나는 잠시 추억에 빠졌다.
하얀 머리를 곱게 빗어넘긴 점원 할아버지가 생각났다.
그때, 갑자기 자신의 보물 1호라며 선수들의 사인이 가득한 유니폼을 보여주시던 그 점원분 말이다.
이탈리아에 와서, 누군가의 유니폼에 사인을 해준 건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그게 하필 유명한 선수들의 사인이 가득한 유니폼이었어서, 나 같은 게 거기에 사인을 해도 되는 건지 벌벌 떨렸던 기억이 난다.
그랬던 나도 이젠 어느새 사인을 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새삼 또 시간이 흐르고, 나도 변했다는 게 다시금 실감이 난다.
“···”
왜인지 입가에 지어지는 미소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
*
“아, 잘 먹었다.”
“배불러.”
아빠가 등을 기대며 배를 통통 두드리자, 지우도 아빠를 따라 등을 기대며 배를 통통 두드린다.
저런 건 왜 따라 하는 건지.
“휴우-”
잘 먹기는 했다.
남으면 싸 간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다 시켰는데, 먹다 보니 맛있어서 남길 수가 없었다.
식단 관리만 안 했어도 자주 왔을 텐데.
“잠깐 쉬었다 갈까? 일어나질 못하겠다.”
“저도요. 좀만 앉아 있다 가요.”
아빠와 지우가 의자와 한 몸이 되어 늘어지고.
나는 식당 안을 둘러본다.
모든 게 만족스러운 식사였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그때 그 점원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쉬는 날이신 건가.
나이가 나이인 만큼 어쩌면 일을 관두셨을지도 모르고.
더 일찍 오지 않았던 게 못내 아쉽다.
그 점원분껜 별거 아닌 일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내겐 꽤 소중한 추억이어서 다시 뵙고 싶었는데 말이다.
물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주제에 이런 말을 하는 게 우습긴 하지만.
“···”
어쨌거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도 의자에 등을 기댄다.
그러면서 가게 안을 둘러보고 있던 와중이었다.
“오···!”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그곳엔 하얀 백발의 할아버지가 서 있다.
손에는 보라색 옛날 유니폼이 들린 채다.
“오셨군요!”
“···아.”
그때와 달리 머리도 정리가 안 되어있고, 옷도 편한 차림이신 걸 보면 퇴근했다가 다시 오시기라도 한 건가.
급하게 머리를 정리하시더니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내게 오신다.
그리고 점원분께서는 사인이 가득한 유니폼을 펼쳐 보이며 내게 말했다.
“혹시 기억하십니까?”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다.
“당연히 기억하죠.”
내가 웃으며 대답한 탓일까, 점원분의 입가에도 환한 미소가 걸린다.
“그럼 그때 제가 했던 말도 기억하십니까? 이 유니폼을 보여드리면서 여기 잔카를로 안토뇨니의 사인도 있고,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의 사인도 있다고 자랑을 했었는데.”
기억난다.
그리고 그다음에 했던 말도 기억이 난다.
언젠간 내가 해준 사인부터 자랑을 하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하셨었다.
고개를 끄덕이자 점원분께서 환한 미소를 짓고는 유니폼을 다시 펼쳐 보이신다.
그런 뒤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말씀하셨다.
“손님, 이게 제 보물입니다. 80년대부터 가지고 있던 거예요. 이 도시를 거쳐 간 스타들의 흔적들이 남아있죠. 여기 보시면 리의 사인도 있고···”
그 모습을 보니 콧잔등이 시큰해지기 시작해··· 어금니를 꽉 물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