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12)
212화 실물이 더 낫네 -2
씰룩씰룩.
두 손으로 턱을 괸 채 2군 선수들의 훈련을 바라보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눈은 초롱초롱하고, 두 뺨엔 홍조가 피어오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그 표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귀여운 아기를 바라보는 듯한 얼굴이다.
“···.”
과르디올라 감독은 유명한 완벽주의자다.
완벽주의자는 당연히 쉽게 만족하는 법이 없다.
완벽주의자의 눈엔 장점보다 단점이 먼저 보이기 마련이고, 만족스러운 부분보단 더 발전해야 할 부분이 먼저 보이기 마련이다.
한데, 그런 완벽주의자의 얼굴에 지금은 흡족한 만족감이 피어올라 있다.
무언가 아쉬운 부분이 보이지 않을 만큼, 완벽주의자의 눈에도 완벽하기 때문이었다.
파아앙-!
파아앙-!
형광색 조끼를 입은 이지안을 중심으로 좁은 공간에서 패스가 돌아간다.
공간도 좁고, 상대의 압박이 거세 쉽게 풀어 나오기 어려워 보이는 상황.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지안의 발을 몇 번 거치니 공간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내 그 벌어진 공간으로 공이 전개되고, 풀어 나오기 어려워 보이던 형세는 순식간에 뒤집어져 찬스 상황이 된다.
“···.”
혼자 있을 땐 얼핏 평범해 보인다.
2천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몸값의 이유를 한 번에 찾기 어렵다.
하지만 지금은 한눈에 알 수 있다.
그냥 보인다.
왜 저 선수에게 2천억 원이라는 돈을 투자했는지가 말이다.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과르디올라 감독이 적절한 단어를 찾다,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이지안은 고급 윤활유 같은 선수였다.
완전히 녹슬어 버린 기계조차 부드럽게 돌아가도록 만들 수 있는 윤활유.
이지안은 주변 상황에 대한 파악이 놀라울 만큼 빠르고, 따라서 상황과 동료를 이용할 줄 아는 선수다.
항상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은 무엇인지.
주변을 끊임없이 두리번거리며 찾는 게 보인다.
그러면서 계속해서 정답만을 골라 보여준다.
아무리 2군 선수들 사이에서라지만, 그 적중률이 놀라울 따름.
되려 2군 선수들 사이에서 저런 모습을 보여준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이다.
이렇게 보고 있노라면··· 2군 선수들이 1군 선수들처럼 보일 지경이니까.
이지안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다.
항상 최적의 상황을 만들어내니 주변 선수들 역시 최적의 상황에서 플레이하고, 그렇기에 최상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심지어 이지안은 오늘이 처음인 선수다.
아직 아무런 훈련도 받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몸이 배인 대로 움직이고 있을 뿐일 거다.
그런데도 마치 오랫동안 저들과 호흡을 맞췄던 것처럼 이질감이 없다.
“···”
저렇게 게임 안에 들어가야 비로소 특출남이 보이는 까닭은, 이지안의 장점이 하드웨어에 있는 게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있기 때문이었다.
흐름을 읽는 능력.
자잘한 정보까지 캐치해내는 시야.
슈퍼 컴퓨터 같은 빠른 판단력.
그리고 거기에 군더더기 없는 기술까지 더해지면 평범해 보이던 것들도 특별해진다.
깔끔하긴 하지만 화려한 느낌은 없다던 공 다루는 기술이 저런 소프트웨어와 만나니 효율적으로만 보일 뿐이다.
아까까지만 해도 조금 초조해 보이던 과르디올라 감독의 표정이 어느새 편안해 보인다.
“···.”
아까도 얘기했지만, 중소 구단에서 빅클럽으로 넘어온 선수들 중엔 생각보다 실패하는 케이스가 많다.
그리고 그 실패하는 케이스의 선수들은 대게 한 가지 공통점을 공유하는데, 그것은 바로 특정 환경에서만 기량을 꽃 피울 수 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본인이 주인공일 때에만 능력이 최대로 발휘되는 선수들이다.
물론 주인공이 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나 주인공이 되나.
팀의 자원을 몰아받는 것도 그만큼 몰아줬을 때 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빅클럽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주인공이 되기 어렵다.
모든 자원을 몰아받을 수가 없다.
그런 상황에서 위와 같은 특징을 가진 선수들은 적응을 하지 못한다.
결국 예전만 못하다는 소리를 듣고, 실패한 영입이라는 꼬리표가 달리고 만다.
그럼에도 성공하는 선수들은 분명히 있다.
빅클럽, 빅리그에서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압도적인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성공한다.
레알 마드리드 같은 클럽에서도 주인공 역할을 했던 호날두 정도의 능력이 있다면야 실패할 일이 없다.
하지만 그건 이례적인 경우고.
대부분은 중소 구단에서 에이스 놀이를 하는 게 더 잘 어울릴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지안은 실패하기가 어렵다.
최소한 과르디올라 감독은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어느 상황에서든 최선의 기량을 발휘해내는 선수이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됐든, 팀이 됐든.
맞추고, 바꾸고, 끼워나갈 수 있는 선수다.
그냥 한마디로 말하면 똑똑한 선수라 실패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운 것이다.
“···.”
아직은 웃길지도 모른다.
고작 잠깐 훈련하는 모습을 보고 확신을 내린다는 게 말이다.
한 선수를 평가하는 데 있어 확신을 내릴 정도가 되려면 못해도 한 시즌은 두고 봐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니까.
근데도 알 것만 같다.
이건 확신을 내려도 좋을 듯하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고개를 끄덕인다.
실물이 낫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착시현상은 확실히 아니었다.
뭐, 워낙 변수가 많은 바닥이다 보니 앞으론 생각이 또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첫인상만큼은 그랬다.
*
“휴우-”
스탠드에 앉아 축구화의 신발 끈을 푸는데,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온다.
훈련 내내 집중력을 유지했더니 조금은 진이 빠지는 느낌.
나도 모르는 사이 꽤 긴장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
슬쩍 옆을 흘끔인다.
뒷모습만 보면 빈첸초 감독님처럼 보이는 새 감독님이 코치들과 뭐라 뭐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저 얘기의 주제가 나인 것 같다고 한다면 너무 자의식과잉일까.
근데 그렇다기엔 훈련 내내 나만 뚫어져라 보고 계신 것 같던데.
그러니까 나도 긴장했지.
아무튼, 뭐 아직 정식 훈련을 소화한 건 아니고.
그냥 개인 훈련 겸 어쩌다 보니 2군 선수들과 한 게임 뛰어본 것 뿐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새 팀의 훈련복을 입고 뛴 첫 훈련에 대한 소감은··· 생각보다 재밌다는 거다.
긴장이 되긴 했지만 어쨌든 재밌었다.
뭐가 재밌었냐고 한다면··· 글쎄.
그냥 쉴 새 없이 이어지는 패스와 자리 변경, 공간을 먹기 위한 눈치 싸움 같은 게 재밌었달까.
쉽게 말하면 다들 잘해서 흥미로웠다.
수준이 높다 보니 긴장이 되면서도, 그 긴장감이 재밌게 느껴졌다.
이런 게 축구구나··· 싶기도 했고.
흐음.
다만 한 가지 걱정이라면, 2군도 이 정도인데.
1군 훈련을 얼마나 빡셀지 감이 안 잡힌다는 거다.
아직도 생생하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시티를 상대했을 때.
맨시티 선수들이 주던 위압감이 얼마나 숨 막혔는지가 말이다.
다들 정말 수준이 높았다.
따라가는 게 벅찬 수준이었다.
이젠 내가 그 사이에서 그들을 따라가야 하는데, 민폐 덩어리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뿐이다.
심지어 나는 보다 더 잘 하는 게 당연한 입장이기까지 해서.
모르겠다.
열심히 해보는 수밖에는.
“리!”
축구화를 정리하는데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손짓하는 코치님의 모습이 보인다.
이에 괜히 긴장하며 털레털레 걸어가니 코치님이 말한다.
“감독님께서 말해주고 싶은 게 있다는데 말이야.”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이 삼켜진다.
고개를 끄덕이니 옆에서 팔짱을 낀 채 날 쳐다보던 감독님이 말한다.
“피오렌티나에 있을 때, 감독님이 너에게 뭐라고 했었는지 궁금해.”
···음.
이게 이탈리아어가 맞긴 한데, 억양이 익숙치 않아 잠시 생각을 하게 된다.
“···뭐라고 했었냐고요?”
···글쎄.
잠시 질문의 의도를 해석하며 머뭇거리고 있으니 감독님이 다시 말한다.
“훈련 때 뭐 이렇게 하라고 했었다든가, 항상 주문하던 게 있었다든가.”
음.
항상 주문하던 건··· 딱히 없는데.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었는데요.”
아직은 이탈리아어가 편해 이탈리아어로 대답하니, 감독님이 갑자기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하하하!”
이내 빵 터져 버린 감독님이 고개까지 젖혀가며 껄껄 웃는다.
뭔가 되게 깐깐해 보이고 약간 무서운 느낌이던 감독님인데, 이렇게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이었나.
조금 신기한데 아무튼.
한참을 웃던 감독님은 어렵게 웃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그래. 그럼 앞으로도 그렇게 해.”
···무슨 뜻일까.
잘 모르겠다.
저게 무슨 뜻일지는, 앞으로 감독님을 보면서 감독님이 어떤 사람인지를 좀 알아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
훈련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돌아가려던 나는 잠시 코치님께 붙잡혔다.
오늘 시간이 난 김에 할 게 있다고 하여 다시 본부 건물로 향하는 중.
그나저나, 계약도 다 마무리된 지 오래고.
사진 같은 것도 수십 장을 찍었는데 뭘 더 할 게 있다는 건지 궁금하다.
이에 조심스럽게 물으니 코치님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간단한 검사야. 오래 걸리진 않을 건데, 그래도 좀 반드시 해야 하는 검사니 부탁하네.”
검사··· 라면 메디컬 테스트 역시도 이미 받았는데.
더 할 게 남았나.
고개를 갸웃거리니 코치님도 내 궁금증을 알았다는 듯,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툭툭 건드리며 말한다.
“신체검사가 아니라 정신 검사.”
“···정신 검사요?”
정신 검사라니.
말만 들어도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라,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으니 코치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TCI 검사라는 걸세. 성격기질검사라고도 하지. 시험 같은 건 아니니까 긴장할 필요는 없어.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자 하는 것뿐이야.”
···으음.
그렇게 얘기하니 더 좀 그런데.
차라리 시험이 낫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 한다는 게 더 무섭게 들린다.
어쨌거나, 반드시 해야 하는 거라니까.
내키진 않아도 코치님을 따라 본부 건물로 들어가 복도를 걷는다.
그리고 조용한 방에 들어가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니, 얇은 책자 하나가 내 앞에 놓인다.
“질문에 네 생각과 가장 가까운 선택지를 고르면 돼. 제한 시간 있는 거 아니니까 천천히, 편하게. 대신 최대한 솔직하게 해주길 바라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심스럽게 책을 펼친다.
그러자 코치님이 방을 나가고, 조용한 방에 혼자 남은 나는 빼곡한 질문들과 대면한다.
챕터 1은··· 기질 검사.
설명을 읽어보니 기질이라는 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개인의 특성이라고 한다.
그럼··· 어떤 것에도 영향을 받기 전, 원래의 나를 얘기하는 건가.
묘한 궁금증이 인다.
“···”
천천히, 한 문항씩 꼼꼼히 읽어보기 시작한다.
왜 제한 시간이 없다는 건지 바로 알 것 같다.
첫 번째 질문부터 꽤 생각을 하게 만든다.
Q1. 나는 일의 완벽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일의 속도를 우선시한다.
□ 매우 그렇다.
□ 대게 그렇다.
□ 조금 그렇다.
□ 그렇지 않다.
완벽함··· 과 속도.
나는 무엇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할까.
글쎄.
새삼 느끼는 게,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인데도 바로 대답이 잘 안 나온다.
곰곰이 생각해보다 볼펜을 든다.
‘매우 그렇다’에 체크했다.
이어서는 두 번째 질문.
두 번째 질문에서 역시 꽤 시간을 소비하고, 다음으로 세 번째 질문을 맞이한다.
“···.”
혼자 남은 조용한 방엔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만이 들려온다.
나는 그 안에서, 오롯한 나와 마주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