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14)
214화 완벽주의자 -2
7월도 중순에서 하순을 향해 가는 무렵.
가끔 마주치는 동네 사람들의 얼굴도 아직 눈에 익지 않았고, 영어보다 이탈리아어가 먼저 튀어나오는 습관을 고치느라 애먹는 중이기는 하지만.
유럽 축구의 일정은 새로운 보금자리에 적응할 시간을 넉넉히 허락하지 않는다.
“···.”
오늘은 첫 팀 훈련이 시작되는 날.
휴가를 떠났던 선수들 모두가 소집되는 날로써, 나 역시 아빠와 함께 차를 타고 훈련장으로 향하는 중이다.
“긴장되니?”
“···아뇨. 뭐.”
“그래. 긴장할 건 없지. 편하게 하고 와.”
“···네.”
훈련장으로 향하는 차 안, 아빠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경기장에 시합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훈련장에 훈련하러 가는 건데 새삼스럽게 긴장할 일이 뭐가 있나 싶지만.
그래도 긴장이 되는 것은 사실.
뭐랄까.
새 학년 새 학기가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학교에 갈 때의 기분 같다고나 할까.
사뭇 떨리는 마음과 함께, 그냥 이런저런 생각이 든다.
나와 같은 반이 될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이번 담임 선생님은 어떤 분이실까.
이번엔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을까, 등등.
여러 생각들이 한데 섞여 미묘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얼마 전에 상담에서 들었듯, 타고나는 기질이라는 건 바뀌지 않는다는 게 사실인 것 같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떨리는 걸 보면 말이다.
“···”
괜히 긴장되는 마음에 창밖에 뒀던 시선을 거둬 핸드폰을 꺼내본다.
영국으로 이사를 오면서 내 메시지함에 단톡방이라는 게 하나 생겼다.
[21-23 Fiorentina (25명)]조금 미안한 얘기지만, 알람은 꺼뒀다.
시도 때도 없이 알람이 울려서.
잠깐 다른 일 하다가 확인해보면 항상 메시지가 수십 개씩은 쌓여 있더라.
지금도 마찬가지다.
어제 누가 나한테 내일은 뭐 하냐고 묻길래, 내일부터 팀 훈련 시작이라고 했더니 다들 오지랖이 끝이 없었다.
첫인상이 중요한 만큼 첫날에 강한 인상을 남겨야 한다느니, 일단 훈련장 들어가자마자 제일 세 보이는 놈부터 잡으라느니, 누가 건들면 이탈리아에 아는 무서운 형들 많다고 말하라느니.
어찌나 헛소리들이 많던지.
물론 또 진지하게 응원을 해줄 땐 해주기도 했다.
새 시즌도 같이 파이팅하자고, 네가 그 사람들한텐 피오렌티나 대표니까 항상 잘 열심히 하고 잘하는 모습만 보이라고.
네가 왜 그 돈을 받고 이적했는지, 네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라고.
그리고 틈날 때마다 피오렌티나에 잘하는 선수들 많다고 감독님한테 찔러보라고··· 음. 뭐야, 이것도 헛소리잖아.
알고 보니 다 헛소리였구나.
어휴.
“···.”
아무튼, 피식 미소를 짓고는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이젠 정말 다른 팀이고, 따지고 보면 남남을 넘어 적이 될 수도 있는 사이인데.
아직도 날 막내라고 부르는 형들의 메시지를 보니 괜히 마음이 이상했다.
한번 막내는 영원히 막내라나 뭐라나.
나중에 다 은퇴하고, 내가 팀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가 되어도 자기들은 막내라고 부를 거란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나도 피오렌티나 선배들은 죽을 때까지 선배로 생각할 테니까.
어쨌거나, 선배들의 메시지를 보니 더 새 학기 같은 느낌이 든다.
벌써부터 작년,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그리운 느낌이랄까.
따지고 보면 단순히 새 학년도 아니라, 아예 전학을 가는 셈이나 마찬가지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사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피렌체로 놀러 가고 싶은데, 그게 단순히 지금 떨려서 그런 건지는 잘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음.
저 멀리 트레이닝 센터가 보이기 시작하는 순간, 배가 살짝 아프려는 걸 보니 떨려서 그런 게 맞는 것 같다.
“···.”
나도 형들과 똑같이 생각한다.
첫인상은 중요하다.
처음 이탈리아에 왔을 때, 그러니까 유벤투스 유소년 팀에서의 첫날 나는 잘하지 못했다.
당연히 내 첫인상은 좋지 못했을 거다.
덕분에,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아이들은 날 좋게 보지 않았고 신뢰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려운 나날들이 이어졌다.
반면 피오렌티나에서의 1군 훈련 첫날, 나는 내 생각보다 더 잘했다.
선배들이 처음부터 날 좋게 봐주고 챙겨줬던 건 물론 다들 좋은 사람이라서도 있지만, 그날의 인상이 좋았기 때문이었던 것도 클 터.
덕분에 나는 좋은 분위기에서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물론 첫인상은 첫인상에 불과할 뿐, 하기에 따라 얼마든 바꿔낼 수 있다.
다만 어려울 뿐이다.
편하게 가려면 첫인상을 좋게 만들어 놓는 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좀 장난스럽게 얘기했지만, 그래서 선배들의 말도 마냥 장난은 아니었을 거다.
첫날 강한 인상을 남겨 휘어잡아야 한다는 거 말이다.
솔직히 맨시티 선수들, 다 천재밖에 없다는 걸 상대로 만나봐서 잘 알고 있는지라.
그런 선수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다는 게 쉬울 리는 없겠다만.
그래도 최대한 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앞으로 편해질 테니까.
게다가 이미··· 본의 아니게 이목이 집중된 상태다.
어마어마한 이적료 때문에 말이다.
다들 내가 궁금할 수밖에 없을 거다.
어떤 의미든, 어쨌든 그 정도 돈을 받고 온 녀석이라면 무언가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
그러니 긴장이 안 된다면 이상한 일일 거다.
안 좋은 첫인상을 주기에 너무 쉬운 환경이다.
이미 기대가 커져 있어, 조금이라도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한다면 그것만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되기 십상이니까.
“자, 여기서 내려라. 아빠는 차 돌려서 나갈 테니까.”
“···아, 네.”
분명 집에서 훈련장까지 차로 1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던 것 같은데, 오늘은 5분도 안 돼서 도착한 것 같은 느낌이다.
가방 하나를 챙겨 차에서 내려, 머리를 돌려 훈련장을 빠져나가는 차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오늘 훈련을 하게 될 훈련장을 바라본다.
몇 번 봐도 훈련장 규모가 장난 아닌 게 더욱 크게 느껴진다.
“···후우-”
프리킥을 차기 직전처럼, 크게 숨을 한번 내쉰 뒤 발걸음을 옮긴다.
진짜로 전학 온 학교의 교실 앞문을 열고 들어가기 직전의 기분이었다.
*
자꾸 학교 얘기를 하게 되는데, 피오렌티나의 훈련장 분위기는 정말 학교 같았다.
남고에 다녀본 적은 없지만 딱 남고 분위기가 이렇지 않을까 싶은 분위기였달까.
아침에 딱 출근하면 꼭 한두 명은 투닥거리고 있고, 꼭 누군가는 실없는 소리를 해대며 낄낄거리고 있고.
왁자지껄한 남고 교실 같은 느낌이 피오렌티나 훈련장의 분위기였다.
반면··· 맨시티 훈련장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
하나둘 선수들이 속속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내며 훈련 준비를 하는 와중.
나를 제외하면 다들 오랜만에 만난 것일 텐데도 인사가 요란하지 않다.
모두 인사는 짧게 나누고 곧바로 훈련 준비에 집중하는 모습.
이런 말 하면 선배들에게 미안하지만, 피오렌티나 훈련장이 평범한 남고 교실 같았다면 여긴 정말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모인 학교의 교실 같은 분위기라고 할까나.
다들 축구 밖에 모를 것 같은 분위기가 풍기는 것이다.
이미 듣기는 했다.
이런 분위기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 없을 만큼 맨시티엔 지켜야 할 규율이 많다고 했다.
감독님이 워낙 깐깐한 분이라 그렇다고.
예를 들면 뭐 훈련 시간에 1분이라도 지각하면 안 되는 건 당연하고.
먹는 음식도 탄산음료나 초콜릿 금지에, 무조건 허락된 것만 먹어야 하는 것도 있고,
훈련 시간엔 핸드폰 사용 금지나 훈련장 출입 시 복장이 불량하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그 외에도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흐음.
안 그래도 긴장되는데 분위기마저 조용하고 뭔가 차가운 느낌이라 더 긴장이 된다.
피오렌티나가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면 여긴 정말 직장에 온 느낌이다.
어쨌거나, 그런 덕에 괜히 축구화 끈을 묶는 것에도 신경을 쓰며 훈련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조용한 분위기를 깨는 선수들의 인사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훈련장 입구를 걸어 들어오는 남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나는 어쩌다 보니 같은 헤어스타일을 가진 감독님들과 연달아 함께 하게 됐다.
과르디올라 감독님이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순간 시계를 확인하니 정확히 정시라, 듣던 대로구나 싶다.
“Line up!”
···첫인사도 범상치는 않다.
이런저런 안부 인사 따위는 생략인 것인지, 정렬을 외치는 낮은 목소리에 모두 피치 위로 빠릿빠릿 움직인다.
이에 나 역시 늦을새라, 얼른 일어나 선수들을 따라 적당히 선다.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삼켜진다.
저번에 봤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
“···”“···”
사뭇 긴장되는 와중, 감독님은 우릴 세워둔 채 코치가 무어라 무어라 하는 얘기에만 귀를 기울인 채 이야기를 듣는다.
무언가 보고 사항이라도 있는 모양.
“···Okay.”
꽤 긴 그 보고가 끝나고 나서야, 감독님이 고개를 끄덕인다.
“···”
그리고는 선수들을 한번 둘러본다.
그 시선이 베일 듯 날카롭게 느껴진다.
그냥 보는 게 아니라 마치 정밀 스캔을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지켜야 하는 규율 중에 선수들마다 정해진 체중 이상으로 넘어가면 징계라는 규율도 있었던 것 같은데.
다행히 눈에 거슬리는 건 없는지, 선수들을 한 번씩 쳐다본 감독님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손뼉을 한번 탁, 치며 말했다.
“Everything is good?”
무슨 일 없냐는 질문에 선수들의 대답은 1초도 안 되어 입을 맞춘 듯 튀어 나간다.
···어쩌다 보니 나는 대답도 못 했다.
괜히 눈치를 보는데, 다행히 감독님은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
고개를 끄덕인 감독님이 말했다.
“좋아.”
그러더니, 갑자기 감독님의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피할 새도 없이 눈이 마주친다.
까닥까닥.
감독님이 내게 손짓한다.
뒤에 숨어있지 말고 앞으로 나오라는 듯하다.
동시에 자연스럽게 다른 선수들의 시선 역시 내게로 향하고, 나는 그 부담스러운 시선을 느끼며 앞으로 나선다.
그리고 원을 그리고 선 선수들 가운데 선다.
곧이어 어깨에 감독님의 손이 얹어지는 게 느껴진다.
“모르는 사람 없겠지만. 그래도 소개는 한번 해야겠지.”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자기소개인데.
어깨를 툭 치는 감독님의 손길에 체념하고 목을 가다듬는다.
이거만큼 긴장되는 게 없다.
그래도, 나름 준비했다.
“···Hi. My name is···”
조금 느려서 듣는 사람은 속이 터질지 모르겠지만, 더듬더듬이라도 영어로 내 소개를 시작한다.
지우랑 같이 머리를 맞대고 멘트를 짰다.
이왕이면 자기소개는 영어로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게 지우의 의견이었다.
이탈리아어로 하는 것보단, 못하더라도 영어로 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을 거라나 뭐라나.
“······pleased to be here. uh··· hope we have a good season together.”
다행히 나름 연습한 덕에 외운 멘트를 모두 해내고는 한숨을 내쉰다.
그리곤 선수들 표정을 흘끗 살피는데, 지우의 말을 듣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짝짝짝-
다들 웃으며 박수를 쳐준다.
방금까지만 해도 무슨 축구하는 기계 같은 얼굴들이었던지라, 내심 쫄았었는데.
그래도 여기 역시 사람 사는 곳이긴 한가 보다.
“나보다 발음 좋은데.”
“···아니에요.”
감독님마저도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하지만, 그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오케이. 인사는 이걸로 하고. 시작합시다.”
짧은 인사를 끝으로 감독님이 손뼉을 한번 치며 말하자, 선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러닝 대열로 서는 것 같아 나 역시 눈치껏 줄을 맞춰 선다.
그리고 이내 휘슬 소리와 함께 러닝이 시작된다.
타타탓-!
맨체스터 시티에서의 첫 훈련이 시작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