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15)
215화 새로운 세상 -1
꿀꺽꿀꺽.
이온 음료로 입을 헹군 뒤 그대로 삼킨다.
꽤 뜨거워진 햇살, 잠시 그늘 밑에서 휴식을 취하며 숨을 고르는 중.
우르르.
훈련장 가운데선 코치들이 카트를 끌고 와 안에 담긴 공들을 피치 위에 흩뿌리고 있다.
가벼운 조깅과 동적 스트레칭, 그리고 인터벌 러닝을 마친 참이고, 이제부턴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려는 모양.
“후우-”
다만 본격적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숨은 이미 턱 끝까지 차올라 있다.
첫날인 만큼 가볍게 진행될 거라 예상했던 내 생각은 깨져버린 지 오래.
전력 질주로 운동장 몇 바퀴를 뛴 건지 다 세지도 못했다.
덕분에 마지막 몇 바퀴 땐 뒤로 처질 뻔했는데, 어금니 꽉 깨물고 달려 다행히 처지지는 않았다.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달리길래 나도 멀쩡한 척을 하느라 어찌나 고역이던지.
사실 뭐 체력 훈련이야 한두 번 해본 게 아니라 못 버틸 정도는 아니었다만.
러닝은 말 그대로 워밍업에 불과하지 않던가.
그 워밍업 단계에서 힘들다는 느낌을 받으니 꽤나 당황스러웠다.
확실히 빅클럽들은 워밍업에서부터 다른 팀들과 차이를 내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 코치가 선수들을 불러 모은다.
“자-”
선수들에게 하나씩 훈련용 조끼가 건네어진다.
총 세 가지 색깔.
내가 받아든 조끼는 빨간색이다.
“각자 위치로-”
조끼를 입고 주변을 둘러보니 선수들이 익숙한 듯 삼삼오오 모이는 게 보인다.
대충 보니··· 빨간 조끼와 형광 조끼 네 명씩, 그리고 그사이에 하얀 조끼가 두 명씩 끼는 모양새.
나는 어디로 들어가야 하나 잠시 눈치를 살피는데, 코치가 나를 부르며 손짓한다.
저쪽 조에 합류하라는 듯하다.
이에 거기로 들어가 선다.
그리고 나서 같은 조가 된 선수들의 얼굴을 살피는데··· 음.
뭔가 잘못된 조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나와 같이 빨간 조끼를 입은 선수들은 후벵 디아스, 로드리, 코바치치이고.
하얀 조끼를 입은 두 명은 훌리안 알바레즈와 엘링 홀란드.
그리고 반대편이 될 형광 조끼엔 제레미 도쿠, 잭 그릴리쉬, 필 포든, 그리고 데 브라이너가 포진해 있다.
이제부터 뭘 할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뭔가 빡센 조에 걸렸다는 건 저 이름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원래도 그랬지만 더욱 긴장이 되기 시작하는 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레디-!”
코치의 사인과 함께 선수들이 흩어지기 시작한다.
나 역시 눈치껏 선수들의 위치를 살피곤 내 위치를 찾아 선다.
그리고 서로 간의 눈치 싸움이 벌어지길 잠시.
삑-!
등 뒤에서 휘슬 소리와 들려옴과 동시에-
파아앙-!
공 하나가 우리 사이로 투입된다.
그 공에 가장 먼저 발을 가져다 대는 건 상대편의 필 포든이다.
타탓-!
포든이 공을 가져가자마자 빨간 조끼, 그러니까 우리 편 선수들이 달려들기 시작한다.
곧바로 압박이 들어가니 포든은 옆으로 공을 넘기고, 그 공은 데 브라이너의 발아래로 들어간다.
이에 재차 압박이 이어진다.
파아앙-!
파아앙-!
가만 보니, 이거 그냥 론도(Rondo)다.
흔히 워밍업으로 하는 공 돌리기 말이다.
파아앙-!
파아앙-!
하지만 패스의 속도나 압박의 강도에서 알 수 있듯, 여기선 론도를 워밍업으로 치부하지 않는 모양.
이건··· 그냥 실전이지 않은가.
타탓-!
멍 때리고 있을 시간은 없다.
나 역시 동료들의 움직임에 맞춰 내가 들어가야 할 자리로 움직인다.
공이 빠져나갈 만한 길을 차단하고, 쉼 없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형광 조끼들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는다.
타탓-!
···몰아세웠다.
계속해서 트라이앵글을 만드는 상대의 움직임이나 발재간도 대단하지만, 효율적인 압박 대형을 만드는 우리 편의 움직임도 엄청나게 기민한지라.
공을 잡고 있는 그릴리쉬를 순식간에 고립시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오판임을 깨닫고 만다.
파아앙-!
그릴리쉬의 패스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향하고, 그것을 하얀 조끼의 알바레즈가 이어받는다.
알바레즈는 그 공을 어느새 넓은 공간에 나와 있던 데 브라이너에게 넘기고, 우리는 다시 새롭게 포지션을 짜야 하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이제 알겠다.
하얀 조끼는 어느 편에 속하는 건가 했더니, 공격 쪽에 서는 모양이다.
지금은 상대와 협력을 하고 있지만, 우리가 공을 잡게 되면 우리와 협력을 하는 식인 거다.
결국은 공격이 여섯이고 수비가 넷이 되는 형식.
파아앙-!
파아앙-!
뒤늦게 이해가 끝난 와중에도 공은 계속 돌아가고 있다.
그 속도가 눈으로만 좇기에도 벅차다.
순간 지난번 챔피언스 리그에서 맨시티를 상대로 똥개 훈련을 했던 기억이 떠올라 살짝 PTSD가 오는 듯한데.
실전에서 어떻게 그렇게 부드럽게 패스 게임을 이어나갈 수 있었는지 이제 이해가 간다.
훈련도 이런 식으로 하니 가능할 수밖에 없지.
좋다.
잡념은 뒤로 하고, 이젠 규칙도 완벽히 이해했으니 공을 탈취하는 것에만 집중할 시간이다.
감각의 범위를 좀 더 확장시켜, 하얀 조끼 선수들도 레이더망 안에 넣는다.
타탓-!
상대편 선수들의 움직임도 기가 막히지만, 우리 편 선수들의 움직임도 흠잡을 데가 없다.
피치 위에 공 차는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것은, 눈앞에 집중한 탓도 있겠지만 서로 알아서 올바른 움직임을 가져가고 있는 덕도 있을 터.
문제는 나다.
나만 정답을 찾아 움직이면 되는데, 내가 동료들을 못 따라가면 구조상 영원히 공을 못 뺏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어떻게 될까.
다들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피오렌티나에선 이런 훈련 안 하냐고.
왜 이것도 못 따라오느냐고 말이다.
나만 못나 보이는 건 참을 수 있지만, 내 출신이 무시당하는 건 참을 수 없다.
더 집중해야 한다.
파아앙-!
공이 포든의 발에 달라붙는다.
이내 코바치치가 붙고, 포든은 줄 곳을 찾으려 빠르게 눈동자를 굴린다.
타탓-!
동시에 공을 받으려는 선수들과 길목을 차단하려는 선수들이 서로를 견제하며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몇 개의 루트가 시야에 들어온다.
수비 쪽이 아무리 대형을 잘 갖춘다 한들, 6대4라는 인원 차이 때문에 빈틈은 어쩔 수 없이 생긴다.
다만, 그 빈틈을 상대보다 한발 먼저 발견해내고, 한발 먼저 움직일 수 있다면 패스를 끊어내는 일도 불가능은 아니다.
결국 상대도 빈틈으로 공을 보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타탓-!
왼쪽으로 뜀과 동시에,
파아앙-!
포든의 발에서 공이 떨어져 나온다.
왼쪽이다.
내가 움직인 방향.
공을 끊어내기 위해 다리를 길게 뻗는다.
파앙-!
···닿았다.
끝.
수비에 성공했다.
그런데, 내 예상과 달리 플레이는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진다.
타탓-!
상대편 선수들이 내 주변으로 압박을 들어오기 시작한다.
동시에 우리 편 선수들은 빈 공간으로 흩어진다.
그리고 이내 난데없는 코치의 카운트 소리가 들려온다.
“Six!”
공을 빼앗았다고 끝이 아닌 건가.
피오렌티나에선 그랬는데, 여기선 아닌가 보다.
허둥지둥하고 있을 새도 없이 일단은 압박을 피해 공을 동료에게 넘긴다.
파아앙-!
“Five!”
제자리에서 공수가 바뀌고, 패스가 이어지는 동안 코치의 카운트는 1초씩 줄어든다.
“Four!”
파아앙-!
“Three!”
파아앙-!
“Two!”
파아앙-!
“One!”
파아앙-!
그리고 마침내 제로가 외쳐질 순서가 됐을 때.
삑-!
제로를 대신하는 건 휘슬.
그 휘슬 소리가 울리자 모든 선수들이 그제서야 발을 멈춘다.
“Red, one point!”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1점.
카운트가 6부터 시작됐으니, 공을 빼앗아내고 6초 동안 그 공을 지켰기에 주어지는 포인트인 건가.
문득 다시금 지난 경기의 기억이 떠오른다.
어찌저찌 어렵게 공을 빼앗아내도, 그 자리에서부터 재차 들어오는 압박에 고전했던 기억 말이다.
이런 룰 때문이었나 보다.
단순히 다시 공을 되찾겠다는 집념뿐만 아니라, 공을 빼앗기면 6초 안에 되찾아야 한다는 룰.
···참 지독한 룰이다.
그런 룰이 있고, 그걸 수행할 수 있는 선수들이 있으니 그 경기에서 공도 몇 번 못 만져보고 상대의 패스를 구경만 했어야 했던 거구나.
새삼 혀가 내둘러진다.
“레디-!”
하지만 치를 떨고 있을 시간 역시도 없다.
훈련은 곧바로 이어진다.
삑-!
휘슬과 함께 다시 밖에서 안으로 공이 투입된다.
그 공이 향하는 쪽은··· 나다.
파아앙-!
공을 받는 동시에 다시 집중 모드로 전환한다.
가끔 시합을 하다 보면,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를 상대의 반응으로 가늠할 수 있을 때가 있다.
상대 선수들의 표정이 찌푸려지고, 언성이 거칠어지면 우리가 잘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맨시티와의 경기에서 우린 몇 번의 순간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짜증이 난 상태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시합을 하는 게 아니라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맨시티가 잘했기 때문이다.
그땐 맨시티의 축구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 수가 없었는데.
이젠 내가 그런 축구를 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묘한 흥분감이 인다.
당하는 건 싫지만, 하는 쪽이라면 당연히 재밌을 게 분명하다.
나는 맨시티 스타일의 축구에 흥미가 일기 시작했다.
*
피오렌티나에선 몸풀기에 불과했던 론도는, 여기선 메인 훈련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꽤 오랜 시간 동안 강도 높게 이어졌다.
어찌나 쉴 틈 없이 이어졌는지, 훈련이 끝나고 나니 내가 지금 훈련을 한 건지 시합을 뛴 건지 헷갈릴 지경이더라.
다행인 점은 하는 동안 딱히 실수 같은 건 범하지 않았다는 거다.
재밌는 훈련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훈련을 따라가지 못할까 긴장이 됐던 것도 사실.
덕분에 나 혼자 실전인 것처럼 집중했던 것 같은데, 뭐가 됐든 뒤처지지는 않았으니 그걸로 됐다 싶다.
뭐··· 다른 동료들이나 코치, 감독님의 눈엔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후우-”
하지만 훈련이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훈련은 이미 두 번째 세션으로 넘어가는 중.
선수들이 한 곳에 떨어져 잠시 휴식을 취하는 동안, 골대 앞에선 골키퍼들이 장갑을 낀 채 준비 중이다.
곧 슈팅 훈련이 이어질 모양.
다만 이 팀은 슈팅 훈련도 그냥 하는 법이 없는 듯하다.
코치들이 페널티 박스 앞쪽에 깃대들을 설치하기 시작한 까닭이다.
“오케이. 렛츠 고.”
준비가 완료되자 코치가 선수들을 부르고, 선수들이 어기적어기적 줄을 선다.
···나는 적당히 눈치를 보며 괜히 신발 끈을 한번 고쳐 묶은 뒤 줄 제일 뒤쪽에 섰다.
앞 차례는 부담스럽다.
어떻게 하는지는 좀 봐야지.
또다시 사뭇 긴장되는 마음으로 있으니, 곧바로 슈팅 훈련이 시작된다.
제일 처음으로 나서는 건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인 엘링 홀란드다.
“···”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뒷모습만 봐도 괴물 같다.
큰 키에 떡 벌어진 어깨.
다리만큼 긴 금발 머리가 인상적인데, 그보다 더 인상적인 건 외모랄까.
뭔가 모르게 넋을 놓고 보게 된다.
덕분에 지금도 그에게 시선을 빼앗기고 있던 와중, 정신을 차리니 조금 특이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홀란드가 페널티 아크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주변 사방으론 공을 가진 코치들이 넓게 둘러선 모습이 보인다.
그 가운데의 홀란드는 잔발을 구르며 계속 고개를 두리번거린다.
보아하니 어느 쪽에서 패스가 올지 모른 채로 시작하는 것 같다.
단순한 슈팅 훈련이 아니라 집중력과 기민한 반응까지 필요로 하는 훈련인 듯.
괜히 내가 더 긴장해 패스가 시작되길 기다린다.
“헤이-!”
그러다 코치의 외침이 느닷없이 울려 퍼진다.
동시에 패스가 홀란드를 향해 강하게 향한다.
파아앙-!
그러나 그 방향은 코치의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이다.
유치한 수법처럼 보이지만, 당사자는 꽤 혼란스러울 터.
파아앙-!
하지만 홀란드는 능숙하게 공을 받아낸다.
부드러운 터치로 공이 발아래에 떨어지게 잡아놓은 홀란드는,
파아앙-
파아앙-
곧바로 가까이에 서 있던 코치와 원투 패스를 주고받으며 깃대를 통과한 뒤,
뻐어어어어엉-!
대포알 같은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라버린다.
겸사겸사 훈련 중인 골키퍼는 반응도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서 있다.
“···”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순간 박수를 치려다 들었던 손을 다시 내렸다.
주변 누구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탓.
심지어 홀란드도 아무런 표정 없이 되돌아오고 있다.
누가 봐도 박수가 나올 만한 깔끔한 터치와 패스, 그리고 마무리였는데.
여기선 그저 당연한 것에 불과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긴장이 된다.
론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동료들에게 묻어갈 수 있었다지만··· 이건 그럴 수가 없다.
심지어 여럿 앞에서 해야 하니 주목까지 받는다.
···이거야말로 못하면 큰일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