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66)
라커룸을 빠져나와 터널을 지나고, 필드의 잔디를 밟는데 문득 생소한 기분이 들었다.
매주 1경기.
전, 후반 총 두 번씩.
이제는 내게 거의 일상이 된 것 같은 일인데··· 왜 갑자기 생소한 기분이 드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문득 뒤를 돌아봤다.
선배들이 내 뒤를 따라 걸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왜 생소한 기분이 드는지 알 것 같았다.
“가자, 가자!”
“수비! 하나씩 집중해서 가보자!”
내가 가장 먼저 라커룸을 나와 필드로 나선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었다.
난 항상 마지막으로 나오는 편이었다.
라커룸에서든 터널에서든 선배들의 뒤를 따라, 그들의 등을 보면서 나왔었지.
이렇게 제일 먼저, 내 등을 보여주면서 나왔던 건 처음인 거다.
물론 별 의미는 없었다.
오늘은 내가 먼저 나가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나온 건 아니었으니까.
그냥 나갈 시간이 되었으니 나왔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조금 생소할 뿐 뭔 의미가 있는 건 아닌데··· 모르겠다.
지금 중요한 건 오늘 경기에 이기는 것뿐이다.
“삐이익-!”
휘슬이 울리고 상대의 선축으로 경기가 시작된다.
오늘 경기는 우리의 홈이고, 우리가 그렇게 만만한 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상대는 절대 질 생각이 없는 듯하다.
물론 모든 경기를 무조건 이긴다는 생각으로 임하는 건 당연한 거긴 한데, 상대는 무승부조차 실패라고 여기는 듯했다는 거다.
전반보다도 더 공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였다.
“뒤로! 라인 맞춰!”
“헤이! 뒷공간 생각해! 인지하고 있으라고!”
공은 계속해서 우리 진영 쪽을 돌아다닌다.
압박을 하며 중원에서 싸우기보단 내려앉는 걸 선택한 우리고, 상대는 높은 위치에서 공을 소유하며 우리의 빈틈을 찾는다.
따라서 공격수인 나는 대부분 상대 진영을 바라보는 게 아닌, 우리 진영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다.
열심히 수비를 하는 동료 10명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시간이 길었다는 얘기다.
마음이 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뭐랄까, 남들 다 청소를 하고 있을 때 혼자 소파에 누워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
청소기가 지나가면 발만 살짝 들어주는.
나만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 눈치가 보이는 기분인 거다.
물론 나도 내 근처로 공이 오면 성실히 압박을 수행하긴 했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 적극적으로 수비를 도울 수는 없었다.
나는 어디까지나 최전방 공격수고, 역습 상황이 나오면 상대의 뒤를 노려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었다.
후반전에 들어가기 직전, 감독님은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었다.
“너는 수사자야. 우두머리 수사자.”
“···네?”
“그 왜 다큐멘터리 같은 거 보면, 수사자가 평소에 뭘 하더냐. 아무것도 안 하지. 암사자들이 열심히 사냥할 때, 그냥 누워서 하품하는 게 다 아니야?”
“···네.”
“하지만 하이에나 같은 외부의 적이 나타났을 때 누가 무리를 지키지? 수사자다. 후반전엔 네가 그 수사자가 되어야 해. 힘을 비축해놓고 있다가, 결정적일 때 상대의 목덜미를 물어뜯어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한다는 거지.”
뭐, 전반에도 비슷하긴 했지만.
후반전엔 아무래도 체력 소모가 더 클 수밖에 없으니 수비 땐 체력을 아끼면서 공격에 더 집중하라는 얘기.
비유는 거창했지만, 적당히 걸러 들으면 뭐 그런 내용이었다.
나는 수업시간에 몰래 전술 공부를 하는 게 취미라, 전술 트렌드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대충은 알고 있다.
최근의 트렌드는 포지션끼리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기보단, 공격수도 수비할 땐 수비하고 수비수도 공격할 땐 공격을 하는 게 대세.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역할의 구분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짜 공격수든 뭐든, 결국 수비 시엔 위치상 내가 최전방에 선다.
그렇기 때문에 역습 때 가장 앞에 있는 것도 나고, 상대 골문까지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것도 나였다.
수비를 돕겠답시고 내가 내려가 버리면, 팀의 입장에선 역습이 어려워지고 만다.
절대적인 거리가 멀어지면 그만큼 벗겨내야 하는 수비의 숫자도 많아지고, 골문까지 도달하는 시간도 길어지니까.
그러니까··· 결국은 나도 수비를 안 하고 싶어서 여기 서 있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괜히 찔려서 주절주절 대긴 했는데, 어쨌든 내가 게을러서 이러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거다.
나는 혼자 꿀을 빨고 있는 게 아니라, 수사자의 마음으로 내가 나서야 할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흐음.
머리라도 좀 길러 볼까.
음, 아니다.
지우가 긴 머리는 별로라고 했으니까···
앞으로 머리를 기를 일은 아마 없을 것 같다.
*
진정한 꿀은 몸만 편해선 안 된다.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해야 그게 진정한 꿀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후반전 동안 공을 몇 번 만지지 못했으나 꿀을 빨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마음이 불편했다.
그만큼 상대가 강하게 우리를 몰아붙였다.
상대의 쓰리 톱은 스피드나 공격성이 워낙 좋았고, 서로 스위칭까지 해가며 우리 수비수들을 곤욕스럽게 만들었다.
경기를 하다 보니 등 번호뿐만 아니라 이름도 외우게 됐는데.
왼쪽부터 인시녜, 오시멘, 로사노의 조합.
보통은 의사소통을 할 때 ‘여기’라든가, ‘왼쪽’ 혹은 ‘오른쪽’, 또는 등 번호로 부르게 되는데.
오늘 우리 수비수들은 상대 선수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소통을 하고 있었다.
“인시녜한테 공주지 마!”라든가, “오시멘 마크 놓치지 마!”라든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등 번호 대신 이름을 부르니 약간 상대를 더 리스펙트하는 느낌이 들었다.
정말 왠지는 모르겠는데 ‘이 녀석은 막아야 한다’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들었달까.
무튼 그랬다.
나폴리의 공격력은 매우 위협적이었고, 우리는 최대한의 집중력을 발휘해 수비를 해야 했다.
그 모습을 보고만 있어야 하니 나도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차라리 함께 수비를 하면 낫겠는데, 내 위치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후반 내내 공 한 번 잡아 보지 못한 건 아니었다. 몇 번의 역습 기회가 오긴 했었다. 잠깐씩 우리가 공을 가지고 주도하는 흐름이 오기도 했었고.
다만 유의미한 기회를 만들어내진 못했다.
상대는 공격만 강한 게 아니라 수비도 강했다.
특히 내가 공을 잡으면 집중 견제가 들어오기도 했다. 내가 만만해 보이는 것도 있겠지만, 아마 전반전에 골을 허용했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는 듯했다.
물론 변명이다.
상대 수비가 강하든, 내게 집중 견제가 붙든 나는 그걸 뚫었어야 했다.
그러라고 수비에서 빼준 건데 그걸 못해내면 난 오늘 경기에서 1인분도 못하는, 팀에 마이너스가 되는 선수가 되어버리는 거니까.
팀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전반전에 넣은 골도 아무런 의미는 없었다.
때문에 시간이 후반전 막바지로 흐를수록 나는 좀 더 집중력을 끌어 올려야 했다.
사실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시합의 흐름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좀 더 공을 오래 가지고, 동료들과 자주 패스를 주고받으며 만들어가는 느낌을 좋아한다.
모두가 나만 바라보고 있는 상황은, 당연하게도 좋아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다.
내가 좋아하는 걸 하기 위해선 싫어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게 세상일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건 우리 팀이 이기는 것이었고, 그러기 위해선 더 집중해야 했다.
전광판의 시간은 어느새 후반 45분을 지나고 있었다.
“하나만 막는다는 생각으로! 집중!”
다행히 아직 실점을 하지는 않은 상황.
그러나 방심을 할 수는 없다.
워낙 집중력을 발휘해 수비에 임하고 있던 동료들이다. 체력도, 집중력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시간대였다.
하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우리가 한 번 공격할 때 세 번 공격했던 상대다. 그렇게 많이 때려놓고 비기게 되면, 억울한 건 상대가 될 거란 얘기였다.
상대의 라인은 더 높아졌고, 모든 집중력이 공격에 쏠린 상황.
감독님이 해주셨던 말씀 때문인가.
괜히 목을 좌우로 꺾게 된다. 눈에 힘도 주게 되고.
수사자가 한 건 할 때가 된 것 같은데······
파아앙-!
라고 생각하자마자 상대의 패스가 끊긴다.
왼쪽에서 중앙으로 향하는 횡 패스가 끊긴 건데, 그 위치가 중원 부근.
나와 가깝다는 뜻이다.
“···!”
공을 끊어낸 보나벤투라 선배와 눈이 마주친다.
그러나 나는 오른손을 뻗어 오른쪽을 가리켰고, 선배의 시선은 그쪽으로 향했다.
누가 봐도 저쪽이 활짝 비었는데 내게 주려고 하는 것 같길래 황급히 방향을 가리킨 것이다.
뻐어어어엉-!
선배의 패스가 오른쪽, 아니. 이제 상대 진영을 향해 돌아섰으니 왼쪽으로 향한다.
공간이 넓다.
그 넓은 공간으로 공이 향하고, 동시에 사포나라 선배가 질주한다.
타타탓-!
나 역시 상대 수비수들과 함께 달린다.
어차피 마지막 기회.
게다가 체력도 많이 아껴 놨다.
있는 힘을 다해 두 다리로 땅을 밀어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마치 초원을 달리는 한 마리의 수사자가 된 기분.
···이게 다 감독님 탓이다.
나 아직 16살인데, 사자 얘기를 하시면 어떻게 참냔 말이다.
타타탓-!
어쨌거나, 사자가 맹수의 왕이라지만, 코끼리 앞에선 귀여운 야옹이일 뿐이다.
내 앞에서 달려가는 수비수들은 코끼리들이었고, 나는 영리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다.
단순히 뛰기만 하는 게 아니라.
타탓-!
슬쩍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달린다.
공이 왼쪽에 있기 때문에 수비수들의 시선이 다 그쪽으로 향해 있었다.
사냥감의 숨통을 한 번에 끊기 위해선 뒷덜미를 물어야 하는 법.
뒤에서 움직여야 한다.
시야의 사각에서.
타타탓-!
수비의 그림자를 밟으며 달리다 보니 어느새 박스 근처.
왼쪽에서 공을 잡은 사포나라 선배는 깊게 끌고 가며 시간을 벌고 있는 상태였고, 나와 수비수들이 속속 도착하는 순간.
“···!”
“···!”
나와 사포나라 선배의 눈이 마주친다.
나는 손으로 수비수들 앞쪽을 가리켰고, 선배는 곧 왼발을 당겼다.
뻐어어어엉-!
땅볼 크로스가 강하게 올라온다.
수비수들과 골키퍼 사이의 공간이다.
“리!”
“리 잡아!”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선배들 목소리는 아닌 걸 보니, 상대 팀 선수들이 외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겠다.
수비수들의 등 뒤에 숨어 있던 난 한 발 먼저 크로스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한 마리 사자처럼.
촤아아아아-
몸을 날리며 송곳니를 내밀 듯 발을 뻗는다.
워낙 크로스가 강해 발만 갖다 대도 들어갈 골이다.
발만 갖다 댈 수 있다면······
파아아아앙-!
···닿았다-
철썩-!!
“와아아아아아-!!!”
발끝에 닿은 공이 골대 안에 처박히고, 동시에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온다.
들어갔다.
타탓-!
슬라이딩을 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일어난 뒤, 사포나라 선배를 가리키며 달려갔다.
나는 그냥 숟가락만 얹은 거고, 선배가 만든 골이라는 의미였는데···
“여기다!”
선배가 엉거주춤한 자세를 취하더니, 내게 등을 보이며 외치는 게 보인다.
저건 마치··· 업히라는 것 같은데.
“와 줘!!”
그냥 포옹 정도로 끝내고 싶지, 업히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사포나라 선배가 엄청 기쁜 얼굴을 하고 있어 외면하기도 뭐 했다.
······하.
“읏차!”
마지못해 그 등에 업히자, 선배는 전광판 앞까지 걸어가 나를 관중들에게 내보였다.
그러자 관중들의 시선과 함성이 내게로 쏟아진다.
“이게! 우리! 막내여!”
“그, 그만···”
심지어 선배가 무슨 어린아이 달래듯 나를 들었다 놨다 하기까지 해서, 수치심에 죽을 것 같았다.
“이놈이! 우리! 애라고!”
16살이 아니라 6살이 된 기분이었다.
ㆍㆍㆍ
─지안 리, 90+1분 극장 골 작렬! 막판 극장 골 포함 멀티 골에 힘입어 나폴리에 2대1 승리!
└막내가 최고다ㅏㅏㅏㅏㅏㅏ!!!!
└막내? 누가 막내인데? 왕에게 예의를 갖춰!
└경배합니다, 영웅이시여
└리 >>>>>>>>> 오시멘
└킹 >>>>>>> 인시녜+오시멘+로사노
└쿨리발리랑 라흐마니가 탈탈 털리는 모습은 솔직히 좀 충격이었어
└아마 걔들이 제일 충격 받았을걸
└지안은 나의 남자친구입니다.
└영웅은 난세에 나타나는 법. 블라호비치가 나간다고 망할 거라 얘기했던 것들. 다시 한번 씨부려 봐.
└그 새끼 팔아서 번 돈, 다 리에게 줘. 그게 그 돈을 가장 가치 있게 쓰는 법일 거야
└나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오늘부터 나에게 신은 두 명입니다. 신은 현실에 존재하며, 그는 축구를 하고 있습니다
└[속보] 교황청, 피렌체로 이전 검토 중···
─지안 리가 이끄는 피오렌티나, 앞서 AC 밀란과 비긴 유벤투스 제치고 리그 3위 등극
└블라호비치 무득점!! 리는 2득점 결승 골!!
└투자의 신을 몰라보고 돈만 밝힌다고 욕해서 미안.
└익절 타이밍이 신의 한 수였네
└유베 친구들 설거지 잘 부탁할게
└중고차를 팔았더니 스포츠카가 공짜로 생겼네
└기름 엄청 많이 먹는 중고차? 반면 우리 스포츠카는 연비도 좋아
└우리가 도둑놈들 밟고 3위에 있다니.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캡처해서 액자로 만들어 놔야지
└어이, 벌써 너무 그러지 마. 앞으로 더 올라갈 텐데
└리가 없었다면 아마 이 자리에 있던 건 도둑놈들이 됐겠지
└멍청한 놈들. 너넨 밀란 만나면 개털릴 걸
└우쭈쭈. 우리 좀도둑 왔어? 기분이 어때? 8천만 유로 주고 산 똥차는 기어 다니는데, 공짜로 풀어준 유망주는 날아다니는 걸 보는 기분이?
└적당히 패. 애 울겠다.
└두고 보자 병신들아. 너네 3라운드 뒤에 밀란이랑 경기지? 떨어질 팀은 떨어진다
└세상에서 제일 안 무서운 사람 특징 : 두고 보자고 함.
경기가 끝난 뒤.
인터넷 반응을 살피던 김지우가 피식 웃는다.
오늘도 역시 지안이는 신이 되었다.
이젠 이쪽 사람들의 유머 코드도 어느 정도 파악해서, 댓글을 보면서 같이 웃을 수도 있었다.
흐음. 그나저나.
‘내 댓글은 비추천 엄청 먹었네.’
자신이 단 댓글에 비추천이 달려있는 걸 확인한 김지우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아닌데 거짓말인 줄 아나 보네.
뭐, 좀 억울하긴 했는데 상관없었다.
동시에 알 수 없는 우월감도 들었기 때문이었다.